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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89화 (89/651)

제89화: KAS(Kilo Alpha Services)2

수영장, 헬스장, 골프 연습장 운운해서 사무실이 으리으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간단한 회의용 탁자와 회장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놓인 책상, 그리고 구석진 옷걸이에 걸린 블루 칼라의 양복 윗도리가 전부였다.

짧은 곱슬 머리에 약간 말라 보이는 쉰 초반 가량의 사내가 보던 책을 엎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영합니다. 미스터 총수, 민철.”

스톤스는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드럽다.

마치 여자의 손을 만지는 듯 스톤스의 손은 작아서 권총수의 손이 큰 편이 아닌데도 쏙 들어왔다.

서양사람 치고 작은 손에 놀랄 정도였다.

“앉으시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 제임스와 헨더슨이, 그리고 솔로 석에 스톤스가 자리를 잡았다.

슥!

제임스가 갖고 있던 가방의 지퍼를 열고 서류를 스톤스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대충 훑어본 스톤스가 권총수 앞으로 내민다.

“여기 싸인을.”

스톤스가 한 곳을 가리켰다.

권총수는 스톤스가 내민 만년필로 사인을 했다.

사사삭!

이어 오민철도 사인을 했는데 한글이다.

권총수 오민철 모두 한글 정자체로 자신의 이름을 썼는데 스톤스가 서툴지만 분명하게 읽었다.

“궈초수, 오미첨.”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스톤스는 사인이 된 서류를 잠시 내려보더니 제임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시가잭을 열더니 손가락 굵기의 시가를 권했다.

“피우십니까? 마카누도입니다.”

마카누도는 쿠바 명품 시가중 하나로 매우 고가에 거래된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거절 하지 않았다.

오민철은 약간 흥분해 보이기도 했다.

딸칵!

스톤스가 붙여준 라이터 불에 두 사람은 길게 빨아 당겼다.

후후후!

연기를 내 뿜던 권총수는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연기가 말보로처럼 빨리지 않아 의외로 심심했고 금세 시들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오민철은 염소처럼 부지런히 빨아 제친다. 후우!

담배를 막 배울 때처럼 푸른 연기를 뿜어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제 우린 동료가 되었습니다.”

직원이란 표현이 아닌 동료라는 건 무슨 뜻일까.

권총수는 아마 오랫동안 SAS에서 군 생활을 한 탓이라고 해석했다.

한국군은 전우라는 표현을 쓰지만 프랑스 미군 모두 동료, 또는 동료 대원이라고 호칭했다.

SAS 대령출신의 군인.

평생을 전쟁터와 첩보원으로 살아왔다가 KAS를 창업하여 일약 미국의 3대 민간 보안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미국의 3대 민간업체라면 아카데미, 마르케스, 다인코프이다.

마르케스, 다인코프 모두 독창적인 자신들의 전문 분야가 있고 제일 큰 아카데미만 다방면으로 진출해 있다.

민간 전쟁기업중 가장 폭넓은 기술과 장비, 인력을 보유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 날 밤은 호텔에서 묵었다.

운기조식에서 끝난 권총수가 놀란 눈을 하며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형 뭔 일 있어?”

오민철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헤실 거리는 오민철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뭔 일 있냐고? 왜 맛이 간사람 마냥 웃는데?”

“아무 일 없어.”

“그런데 왜 웃어?”

“사실은 말이야..”

“응.”

“너무 좋아서, 오늘부터 무조건 하루에 3,000달러씩 벌잖아.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난 또!”

그제야 권총수는 안도했다.

가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 분열증세를 보이는 퇴역군인들이 적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오민철의 웃음을 보자 가슴이 철렁한 것이다.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는 그들 모두 한 순간 돌변하기 때문이었다.

지이잉!

그때 제임스에게서 내려오라고 전화가 왔다.

오늘 킬로 알파 서비스 훈련장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옷차림을 갖추고 1층으로 내려갔다.

킬로 알파 서비스 훈련장은 런던에서 북쪽으로 30킬로 떨어진 차우칼 지역에 있었다.

북쪽에 있는 캠브리지와 런던 사이에 있는데, 차우칼 훈련소는 1500만㎡ 의 광할한 습지에 있다.

여의도 면적이 840만㎡인 만큼 약 두 배 정도 되는 셈이다.

훈련소에 들어서자 바리케이트를 치고 흑복(대테러복)을 차려 입은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톰 잘 있었나?”

근무중인 한 명의 흑인을 향해 제임스가 아는 체를 했다.

척!

열린 조수석 문으로 다가와 사내는 제임스와 악수를 나눴다.

톰이란 사내는 차안을 슬쩍 살피더니 권총수와 오민철에게 시선이 멎었다.

“수고하게!”

제임스의 인사를 뒤로하고 검정색 랭글러는 천천히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M4군요.”

권총수가 물었다.

왜 영국군의 제식소총인 L85A2을 쓰지 않느냐는 의미였다.

조수석 제임스가 빙긋 웃는다.

“군대는 어쩔 수 없지만 민간 기업은 영연방의 국방법을 지킬 필요는 없네.”

그러면서 킬로 알파 서비스의 규정소총이 M4가 된 이유를 밝혔다.

2003년 영국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합세했다.

이라크 동부지역을 치고 올라가던 영국군 제51 보병여단 7대대 5중대는 야음을 틈타 이라크 군 집결지를 공격했다.

이라크 군을 몰아붙이며 기세를 올리던 중 갑자기 여기저기서 달컥 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총에 모래가 들어가면서 노리쇠 기능이 잠겨 버린 것이다.

그 뿐 아니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에 총기 작동 불안이 계속 발생했다.

다행히 공중지원이 있어 위기를 면하긴 했지만 이후 영국군은 모래가 들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총기 몸통에 테이프를 감기도 하는 등 특히 총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불문가지.

전쟁터에서 총기고장은 곧 죽음이다.

그 전까지는 킬로 알파 서비스의 기본총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군의 M계열이었고 또 하나는 L85A2였다.

처음부터 L85A2를 채택하지 않으려 했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민간 보안회사의 기본소총이 미군의 M 계열이어서 되겠느냐는 국방부 관계자의 볼멘소리에 어쩔 수 없이 채택했다.

“이제는 M4로 바꾸었지. 국가 체면 세워주다 회사 직원들 잃게 생겼는데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제임스가 빙긋 웃었다.

타타타탕!

커브 길을 돌아서자 총소리가 요란했다.

끼이익!

차를 세웠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다.

이동표적 사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외인부대에서의 옛 추억이 떠오른다.

흑복을 걸친 20여명의 사내들이 돌아가며 걸어가는 속도로 이동하는 타겟을 향해 총알을 쏟아냈다.

두두두두!

오민철은 물론 권총수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실수가 없다.

사내들은 이동표적에 정확히 총알을 박았다.

“SAS 출신들이지. 퇴역한지가 몇 년 되다보니 아직은 예전 실력이 나오지 않고 있네.”

오민철이 흘긋 제임스를 본다.

30미터 이동표적 열 개에 거의 백발을 모조리 넣는 사격인데 현역 때 실력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동표적 열 개가 모두 지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다.

30발들이 탄창을 네 번 갈아 끼워야 하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경이적인 동작이고 솜씨다.

훈련소는 살아 있었다.

많아야 20명, 거의가 10명 내외가 모여 여러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격투술과 자동차 운전이었다.

군대 격투술 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의 시스테마와 이스라엘의 크라브마가를 꼽는다.

KAS는 시스테마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

외인부대에서도 약간의 격투술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오민철은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

‘열개의 주먹보다 한 자루 칼이 낫다’

한마디로 어쩌다 우연히 맨손으로 치고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목숨 걸고 시간 낭비 해가면서까지 격투술 따위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오민철의 생각이었다.

실 예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시스테마가 뛰어난 세르게이가 태권도를 한 오민철을 당해내지 못했다.

오민철은 붙잡으려는 세르게이에 맞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피하기만 했다.

그러다 딱 한번 뒷차기로 끝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오민철의 유도 기술 즉, 잡는 기술은 시스테마의 세르게이를 무척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세르게이는 시스테마의 자존심을 걸고 세 번 도전했지만 오민철에게 모두 무릎을 꿇었다.

고생 만큼 효과가 없다.

외인부대 간부들 앞에서 격투술은 시간낭비라고 잘라 말해 버린 것이다.

승용차들이 내는 굉음이 귀가 먹먹했다.

마치 F1 자동차 경주장에 온 듯 십여대의 승용차들이 좁은 커브길을 무자비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외인부대에서 자동차 면허는 땄지만 훈련을 받은 기억은 없다.

자동차의 스피드가 어디에 그렇게 필요할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VIP를 경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권총수는 멈칫했다.

앞으로 자신도 누군가를 경호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경호는 전쟁과 또 다르다.

전쟁이 선이 굵은 싸움이라면 경호는 치밀하고 매우 섬세한 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호원들의 연봉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특히 굉장한 위험에 노출된 남미의 부호들은 자신이 버는 돈의 절반을 경호에 쏟아 붓는다고 할 만큼 막대한 돈을 신변보호에 투자한다.

“그냥 달리는 것이지.”

“도주라는 말이군요?”

“그렇네. 도주보다 더 분명한 경호는 없지. 그러기 위해서는 운전실력이야 말로 최고의 능력이라네. 과거 총리를 2년 모신 적이 있었지. 물론 SAS출신이란 특채로 들어갔지만, 거기서 배운 것이 뭔지 아나. 사격술이 아니라 운전 실력이었네. 얼마만큼 도망을 잘가느냐.”

끼이익!

차라리 마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운전자들의 테크닉은 완벽했다.

권총수는 흥미로운 눈으로 자동차 훈련을 받고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폭탄제조술 훈련 과정을 마지막으로 킬로 알파 서비스의 훈련장 견학이 끝났다.

“어떻소?”

질문을 던지는 제임스의 표정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우리 회사 만큼 제대로 훈련장을 갖추고 있는 민간 보안업체는 없을 것이라는 투였다.

놀랍긴 했다.

군부대도 아닌 민간 보안업체 훈련장이 여의도 두 배 만큼 넓은 곳에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오민철은 외인부대 훈련시설을 보며 707보다 뛰어난 시설이라고 은근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금 본 건 외인부대보다 더 앞선 시설들이다.

“최곱니다.”

권총수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제임스가 웃는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아침부터 많은 사내들이 모였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판초우의를 입었는데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한쪽을 흘긋 거렸다

“9시까지라고 했잖아.”

어제 밤 취침 전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내일 아침 9시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스나이퍼 사격장으로 집결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비가 내리자 판초우의를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슈팅 갤러리 스나이퍼(shooting gallery sniper)란 팻말이 세워져 있는 아스라이 뻗은 사격장이다.

사격장은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사람 키를 넘는 갈대와 뒤엉키며 자라나는 넝쿨식물, 거대한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700, 900, 1,200미터가 이곳 훈련소의 표적거리다.

사내들이 투덜거린다.

얼굴 가득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을 때 한 대의 랭글러 지프가 나타났다.

검정색 지프가 멈추고 차에서 모두 네 사람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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