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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87화 (87/651)

제87화: 시장진출(2)

거기에 비하면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일급이 달랐다.

권총수와 오민철의 하루 일당은 3,000달러였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백만 달러가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계약금을 더 요구할 수도 있지만 많은 계약금은 한 가지 단점을 끌어안고 있었다.

100만 달러가 넘어가면 3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그건 아카데미를 포함한 미국의 보안회사 모두 비슷했다.

목돈이 필요한 사람은 일급을 낮추는 대신 계약금을 풍성히 가져가지만 권총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계약금이 적은 대신 1년만 뛰고서도 언제든지 본인이 원하면 타 회사로 옮길 수 있는 조건에 사인을 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오랫동안이 아닌 단기 1년 계약이기 때문에 하루 3,000달러가 크게 부담스러운 건 아니다.

그렇게 만난지 20여분 만에 사인이 이뤄졌다.

권총수는 제임스와 헨더슨을 데리고 비빔밥 집으로 향했다.

먹고 싶은 걸 묻자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은 비빔밥이라고 했다.

런던에 한인 식당이 있는데 전주 비빔밥을 아주 잘한단다.

그래서 본토인 한국에서 제대로 된 비빔밥을 한 번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주는 아니지만 절대 그 이하는 아니라고 평가하는 비빔밥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화악!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이 밥을 비비는데 수저가 아닌 젓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여러 나물이 엉키지 않고 고루 양념이 번진다.

권총수는 제임스를 보며 빙긋 웃었다.

외국인이 우리 음식을 좋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임스가 비빔밥을 능숙하게 비비고 잘 먹는 건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다.

필시 제임스는 오늘을 위해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한국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음으로 한국인인 자신과 오민철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낯선 간격을 좀 더 빠른 시간내에 좁히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런던에 있는 한국 식당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것이다.

“이사님은 전장 보다는 비즈니스가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 머리면 굳이 총을 잡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몫을 해낼 것 같았다.

권총수는 제임스를 향해 비빔밥을 가득 담은 숟가락을 들어 보이며 다시 한 번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판이 크다.

한가운데에는 5만원 권 지폐가 수북했다.

카드를 치는 사내는 모두 다섯 명.

세븐 카드 하이(high) 로(low), 높거나 가장 낮은 패를 가진 사람이 먹는 게임이다.

양쪽으로 먹을 수 있다는 룰로 인해 당연히 판이 커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선(先) 뭐해. 배팅 안 해?”

야구 모자를 쓴 뚱뚱한 사내가 오른쪽에 앉은 비쩍 마른 사내를 향해 인상을 썼다.

“아이 씨, 난 꽥.”

사내는 바닥 패와 손에 들린 패를 한참 비교해 살피더니 카드를 엎었다.

“천!”

뚱보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천원 짜리 한 장을 던졌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정장의 사내가 피식 웃는다.

“안 되지. 천 받고 20만.”

“야 어떻게 천 받고 20만을 쳐.”

“6구부터는 하프베팅이라고 했잖아.”

여기저기서 언성이 터져 나왔다.

투툭!

사내는 천 원짜리에 이어 오만 원 권 네 장을 던졌다.

“20 받고.”

네 번째 사내가 오만원짜리 네 장을 넣는다.

“얼마야.”

판돈을 이리저리 헤집어 살피더니 자기 앞에 있는 돈을 모조리 넣었다.

“50.”

“뭔데?”

마지막 역시 정장을 한 쉰 중반 가량의 키 큰 사내가 이마를 찡그렸다.

“뺑끼입니다. 형님.”

50을 넣은 사내가 빙긋 웃었다.

“아 돌겠구만.”

애매한 카드라는 듯 바닥 패와 자신의 손에 들린 패를 한참 살핀다.

“50이라고, 좋아 받기만 하지. 콜.”

사내가 익숙한 동작으로 돈을 세어 넣었다.

그러자 모든 시선이 다시 야구 모자를 쓴 2번째 뚱보에게 몰렸다.

천원을 베팅했기 때문에 받고 더 때릴 수가 있다.

“얼마야.”

뚱보는 자기 앞에 놓인 돈을 헤아려 보더니 정장의 키 큰 사내를 향해 물었다.

“찾아 올까요. 아니면 일단 카드로 대신 할까요?”

그러면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찾아와. 현금박치긴데.”

카드와 현금은 느낌이 다르다.

카드는 당장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머뭇거림이 없으나 현금은 다르다.

눈앞에서 현금이 나갈 때의 마음과 카드가 나갈 때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사내는 알고 있었다.

“50이라고 했지. 에이 죽었어.”

예상대로 뚱보 사내는 카드를 엎었다.

남은 사람은 3,4,5 셋이다.

“50만 받고,”

사내는 자기 앞의 돈을 헤아리다, 돈이 모자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기다려. 돈 빼올 테니까?”

사내는 카드를 엎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출입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먼저 밖으로부터 열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들어섰는데 부딪힐 뻔했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서자 카드를 치던 사내들의 눈이 날카롭게 일어났다.

불법 도박장은 아니다.

단지 쌓여 있는 판돈이 많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어떻게 오셨죠?”

50중반의 키 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커들 치시네.”

오민철이 수북이 쌓인 판돈을 보며 웃었다.

“돈이 풍성한 걸 보니 세븐 카 오디(Ordinary game:높은 패가 먹는 것)같지는 않고.”

카드는 외인부대에서 배웠다.

물론 부대에서 도박은 허용되지 않으나 휴식시간을 이용해 하는 오락 차원의 게임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는다.

“세븐카 하이 로우 게임이군요. 쏠쏠한 판입니다.”

금방이라도 끼어주면 자릴 잡고 한판 칠 기세였다.

“채명천 사장님이 누구십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그러자 사내들 시선이 오십 중반의 키 큰 사내를 항한다.

“혹시 어제 전화 하셨던?”

키 큰 사내 채명천이 물었다.

이곳 대봉실업 대표 이사였다.

하지만 간판이 그러할 뿐 흥신소였다.

“야 판 걷어라.”

“돈 빼자는 얘깁니까?”

“걷어 임마. 손님 오셨는데.”

채명천이 인상을 쓰자 사내들은 담요를 통째 말아 안쪽으로 가지고 가버렸다.

“앉으시죠.”

권총수와 오민철이 맞은편에 앉았다.

“창수야. 여기 커피 좀 가져와라.”

“네 대표님!”

안쪽으로부터 남자의 굵은 대답이 들려왔다.

“어떤 건입니까?”

“25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 한 건에 대해 알아보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25년 전 사건이라는 말에 채명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커피 드시죠.”

뚱뚱한 사내가 쟁반에 자판기 커피 세 잔을 가져와 각자의 앞에 놓고 돌아갔다.

후룩!

오민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어제 전화로 뭐든지 자신 있다고 하신 것 같은데, 농담이시겠지만 무덤의 시체도 살려 놓을 수 있다고 하셨죠?”

“핫핫!”

채명천은 싱긋 웃더니 커피로 입술을 축인다.

손님을 유치하려면 무슨 말인들 못할까.

“어떤 사건입니까?”

권총수는 정색하고 25년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배우 설지에 대해 얘길 했다.

얘기를 듣고 난 채명천의 표정이 굳어진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관할이었던 종로경찰서에 근무 하셨더군요.”

뚝!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려던 채명천의 동작이 멎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권총수를 보는데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그럼 사과드리죠.”

채명천이 들어 올린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온 것이 틀림없다.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 했죠?”

“권총수라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맞습니다. 근무 했었죠.”

권총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두툼한 봉투 한 개를 꺼냈다.

봉투 겉면에 나라은행이라는 로고가 찍혔는데 입구가 닫히지 않을 만큼 오만원권이 빼곡했다.

“오백만원입니다. 만족스런 소식을 가져올 때마다 500씩 늘어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려고?”

“본론을 전달했는데, 하던 포커도 계속 치셔야죠.”

“한 가지만 묻죠. 가해자 쪽입니까 피해자 쪽입니까?”

“양쪽 모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실에 가까울수록 판돈은 클 것입니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손을 들어 보이고 나갔다.

채명천은 굳은 얼굴로 닫힌 문을 보았다.

진실에 가까울수록 판돈은 크다는 건 결과에 따라 수고비 지불을 두둑하게 주겠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형님!”

안쪽으로 들어갔던 직원들이 나왔는데 모두 내용을 엿들은 모양이다.

사석에서는 형님, 공석에서는 대표님이다.

모두가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들로 흥신소일에 매우 적합한 품성들을 지녔다.

그들은 조금 전 걷었던 포커판 담요를 들고 있었다.

“가서 일봐.”

채명천은 소파가 아닌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딸칵!

창문 환풍기를 틀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25년 전’

인상을 찌푸리고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 않아도 엊그제 일처럼 환하게 그려진다.

경찰에 막 발을 담그자마자 만난 사건인데 사망자의 신원이 평범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떠들썩했었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떨어져 버린 여자.

‘설지’

가장 완벽한 미의 여신으로 불렸다.

‘내가 보기에 사건이야’

절친했던 동료 경찰관이 술좌석에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교통사건이라는 말 뜻은 우연이 아닌 고의적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채명천은 담배를 끄고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상대가 받기를 기다리는 듯 잠시 귀에 대고 있더니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해, 안 바쁘면 오늘 저녁이나 하지. 바쁘다고? 그럼 그렇게 하지. 12일 날 그곳에서 보자고.”

채명천은 핸드폰을 끊었다.

전세로 살게 될 신혼부부가 현관을 들어섰다.

“나가 있을 테니 실컷 보세요.”

권총수는 마당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전세 4억에 내놓았는데 이틀도 되지 않아 벌써 세 번째 방문객이다.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하늘을 향해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기지개를 켜는데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집안을 모두 둘러 본 듯 젊은 부부가 나왔는데 그다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언제까지 들어와야 햐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나가야 들어 올 수 있거든요.”

남자는 가만있고 여자가 말했다.

“나가는 대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언제쯤 집을 비우실건데요?”

“오늘이라도 비워 달라고 한다면 당장 내 짐은 지하실로 옮기겠습니다.”

“아,네!”

그러더니 남자를 흘긋 한번 보고 돌아섰다.

“계약하고 싶어요.”

“지금 말입니까?”

“네.”

“그러시죠. 부동산에 먼저 가 계세요. 곧 뒤 따라 가겠습니다.”

두 부부가 집을 나갔다.

부동산에서 계약을 마치고 늦은 오후에 사용하고 있었던 살림살이 몇 개를 지하실로 옮겼다.

현재 계획으로는 1년 계약이기 때문에 곧 돌아 올수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

‘만약 죽으면’

영국으로 건너가 어떤 일에 투입이 될지 모른다.

계약금 50만 달러에 일급 3000달러짜리 용병을 공사장 경비 따위를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오민철은 우리가 죽긴 왜 죽냐며 재수 없는 소리라고 눈을 부라렸지만 권총수의 생각은 달랐다.

권총수는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자신이 죽고 나면 집을 누구에게 상속할 건지 잠시 고민을 했다.

물론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려는 것이었다.

“아 자식, 진짜 이해를 못 하겠네”

옆에 앉은 오민철은 계속 투덜댔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남을 준다는 거야. 난 죽어도 못줘.”

피식!

갑자기 권총수는 실소를 지었다.

생각을 수십수백 번 곱씹어 봐도 한 곳 뿐이다.

재수 없는 곳, 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던 곳,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근무 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겠다고 하듯 자신도 노향 보육원이 있는 곳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상속자로 유병칠을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자신과는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철학이 너무 다른 녀석이다.

“노향 보육원으로 합시다.”

권총수는 유언장에 사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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