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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85화 (85/651)

제85화: 불꽃, 생명을 다하다(2)

권총수는 화면속 권철태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화면을 통해 봤을 때부터 어디선가 본 사람인 듯 하여 당황했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가슴이 뛴다.

대통령과 자신은 일면식도 없고 만난 적은 더더욱 없다.

콕 집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한 알 수 없는 이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권총수는 군인들과 차를 마시는 권철태를 깊숙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날 호텔을 나온 권총수는 곧장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어차피 태어나 버려졌으니 이 세상은 타향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정을 두면 고향이라고 했다.

한때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차고 적지 않은 사람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았던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싶었다.

삐걱!

부동산 사무실을 들어서자 마흔 중반 가까이 되는 남자가 소파 탁자에 앉아 신문을 들척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천오돈 사장님이십니까?”

“혹시 권총수 사장님?”

“예!”

“반갑습니다.”

권총수는 천오돈과 악수를 나눴다.

전화 통화는 두 번 했지만 얼굴은 오늘 처음 본다.

“앉으세요.”

권총수가 소파에 앉았고 천오돈이 냉장고 문을 열고 비타민 음료 한 병을 내 놓았다.

“드시죠.”

권총수는 마개를 따고 반쯤 마셨다.

“완전히 제대하신 겁니까?”

“예!”

“말로만 듣던 외인부대를 나오시다니 영광입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사장님께서 알아보라고 하신 25평대 전세 매물이 몇 개 있습니다. 가격은 3억 전후죠. 그리고 단독주택 하나가 아주 싸게 나왔습니다.”

“얼마입니까?”

“6억 5천에 나왔는데 잘 하면 2,3천은 깎을 수 있을 듯 합니다만?”

모은 돈은 3억이 조금 넘는다.

안 먹고 안쓰며 악착같이 모으지는 않았다.

다만 워낙 작전과 훈련이 많다 보니 지출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이 동네에서 6억짜리 단독이라고 하면 상당히 낡고 작을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혼자 조용히 사는 집을 원하신다고 해서.”

“가보시죠.”

“그럴까요.”

두 사람은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예상대로 집은 상당히 낡았다.

단층 철근 콘크리트 집이었고 지대가 상당히 높았다.

북한산 비봉이 올려다 보일 만큼 구기동 골짜기에 있었는데 조용하긴 했다.

지은 지 40년이 넘었으며 한 번도 리모델링은 없었다.

방은 두 개였고 주방과 거실이 마주 트여 제법 넓어 보였다.

권총수는 한참을 살폈는데 중개사가 재빨리 다가와 말했다.

“은행에 집을 잡히면 최소 2억에서 2억 5천은 대출이 될 것입니다. 땅값만 해도 상당하죠.”

권총수는 마당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6억에 한번 거래를 시도해 보시죠. 거래만 이뤄지면 복비 제외하고 500을 드릴테니.”

중개사의 눈이 번쩍 빛난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렇게 통 크게 나오지 않는다.

많은 신혼부부들을 겪었으나 지금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음 날 권총수는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을 찾아갔다.

대출 담당자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프랑스 국방부를 통해 다달이 들어오는 유로화는 액수의 크고 적음을 떠나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백 프로 된다 안 된다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만 될 겁니다.”

은행 직원이 서툰 말 할 위인은 아니다.

담당 직원이 된다고 하면 된다.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은행을 나왔다.

* * *

발칵 뒤집혔다.

발단은 책 한 권 때문이었다.

‘퀸(Queen)의 남자’

그건 추리소설이었다.

여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여자와 권력의 정점을 찍고 싶어 하는 야망에 굶주린 한 정치인의 위험한 사랑을 추리 기법으로 풀어냈는데 서평을 쓴 어느 평론가의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복사 해놓은 듯하다. 소름이 끼친다’

누군가의 삶.

그 누군가가 누구냐.

그러면서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돌았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뉴스에까지 소설책에 대한 보도가 나가면서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 귀퉁이에 꽂혀 있던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태어나 스스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책을 사보긴 처음이었다.

20,000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임에도 권총수는 과감히 계산을 치렀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들을 종합해보면 책속의 여자주인공 퀸(Queen)이 한 여자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제 아무리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든다고 하지만 가끔은 허구인 듯 하면서도 사실을 기록하곤 한다.

5일 후.

은행으로부터 대출 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권총수는 곧바로 부동산 사무실에 연락을 했다.

중개사로부터 매도인이 당장 계약서를 쓰자고 한다는 말에 오케이 했다.

권총수는 보던 책을 놓고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30분 후 부동산 사무실에서 중개사와 육십이 넘은 집 주인을 만나 계약서에 사인했다.

잔금을 치루기까지 며칠 시간이 있었으므로 권총수는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 간단한 내부공사를 부탁했다.

* * *

골목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내렸는데 잠시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뭔가를 찾는 듯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올라가더니 대리석으로 된 5층 건물 앞에 멈췄다.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오른쪽으로 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입주 회사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붙었다.

‘도서출판 노란가지’

라는 간판에 시선이 멎었다.

301호다.

권총수는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3층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권총수와 마주치자 고개를 꾸벅했다.

건물에 입주한 회사 직원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이윽고 3층에 올라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노란가지라는 출판사 간판이 붙은 회색의 문이 있었다.

똑똑!

안으로부터 네 하는 대답이 들린다.

권총수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10여명의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가까이에 앉은 여직원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부장님과 약속을 했습니다만?”

“어느 부장님 말씀하시죠?”

“혹시 권총수씨?”

그때 안쪽에서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예!”

“이쪽으로 오세요.”

권총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편집부장: 최재필’이란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앉으세요.”

안쪽으로 6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는데 권총수는 3인용 쪽에 앉았다.

최재필은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양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작가라고 하셨죠?”

퀸의 남자를 쓴 작가를 한번 만나고 싶었다.

한데 워낙 퀸의 남자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다 보니 기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많은 언론사와 여성지 기자들이 취재 요청을 해 오자 급기야 작가는 잠적 해버렸다.

잠적한 작가를 대형 언론사 기자도 아닌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작가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동안 틈 날 때 마다 써 놓은 원고가 있는데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제안을 하자 출판사에서 오케이 하여 이렇게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원고 좀 볼 수 있을까요?”

편집부장 최재필이 눈을 빛낸다.

“지하에 커피숍이 있던데 그곳에서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원고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아, 예.”

최재필은 얼떨결에 따라 나섰다.

최재필의 눈이 커졌다.

작가가 아니라는 말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데다 권총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자 자신도 모르게 섬칫한 기분이다.

“성영재 작가 어디 계시죠?”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

이런 일은 빙빙 돌리는 것 보다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용건을 말하는 것이 좋다.

“기자십니까?”

“기자면 명함을 먼저 드렸을 겁니다. 부탁합니다. 성영재 작가를 만나야 합니다. 장소를 가르쳐 주시죠?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자와 작품 속 퀸이라는 여자의 캐릭터가 너무 흡사해서 말입니다.”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입니다.”

그때였다. 조용한 커피숍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총수야.”

오민철이다.

데님으로 된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었다.

“왔어. 형! 앉아.”

털썩!

오민철은 권총수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셔?”

턱으로 묻는다.

“형 인사해, 내가 아는 출판사 부장님.”

“출판사? 전쟁터에서 사람만 때려잡던 네가 글을 쓸리는 없고.”

전쟁터에서 사람만 때려잡았다는 말에 최재필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다리다 소대장님 한테서 전화 왔다. 고작 보름 지났는데 무척 반가워하더라고.”

“외인 7중대가 이라크와 터키 국경으로 이동 할거래. IS잔존세력이 양국 국경을 넘나들며 또다시 세력을 확장 중인가봐. 아 참 저격수는 너 대신 비렌드라가 뽑혀 스나이퍼 스쿨에 입소했대.”

“비렌드라면 차분한 형이니까 스나이퍼에 딱 제격이지.”

꾸울꺽!

최재필이 침을 삼켰다.

“지금 스나이퍼라고 하셨는데...전쟁영화속에 나오는 저격수 말입니까?”

“맞습니다. 부장님도 군대 다녀왔으면 아실 텐데?”

“형 같은 707같은 특수부대 출신들 아닌 일반 보병들이 제대로 훈련된 저격수를 본다는 건 어렵지.”

“그럴게 아니라 너 책 한권 쓰면 되겠다. 외인부대 5년 동안 저격수로 보여주었던 대활약을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쫘아아악 갈겨 놓으면 히트 칠텐데.”

‘외인부대 저격수’

최재필의 눈이 커졌다.

결국 저격수 출신이었다는 말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오민철의 말처럼 외인부대 5년을 소설로 만들면 대박의 조짐이 있다는 장사꾼 특유의 계산이 발동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퀸의 남자를 쓴 작가의 소재지를 가르쳐 주었다.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11월 초로 접어든 바다 바람은 이미 한겨울이었다.

50초반 가까운 사내는 자색의 계량 한복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뭔가 불편한 고민에 빠진 듯 얼굴은 좀체 펴지지를 않았다.

멈칫!

말소리가 들린다.

사내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멀리 자신이 묵고 있는 백련사에서 오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두 명의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말하길 닷새 전부터 정체 불명의 사내들이 자신의 집 근처를 얼씬 거린다고 했다.

짐작 가는 곳이 없지는 않았다.

경찰은 절대 아니다.

한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한번 겪었다.

그들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제거한다.

어딜 가든 오든 흔적을 절대 남기지 않는 그들인데 벌건 대낮에 그것도 보란 듯이 정문을 통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결에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석가모니불 앞에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기 위해 온 문밖 신도들 같지도 않았다.

남자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시선을 다시 바다로 던졌다.

두 사내의 목소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나물 맛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걸 보아 절 입구에 있는 산채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척!

발자국 소리가 등 뒤에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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