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피의 금고(3)
태양이 호텔 동쪽 벽면을 통째 덮으면서 강렬한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권총수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작전을 앞두고 있다.
오늘 작전의 성패에 따라 IS의 궤멸이냐 아니면 전쟁이 길어지느냐가 걸렸다.
‘상황 보고하라. 우린 입구에 있다’
저격 팀으로부터 아무런 상황보고가 없자 소대장이 다급히 물어왔다.
소대장이 이끄는 침투 팀은 저격팀으로부터 실내의 사정을 전달 받지 못하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4층 상황은 오로지 저격 팀만 알 수 있고 이쪽에서 빨리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햇빛이 정면으로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해 오민철이 대신 교신했다.
“음!”
소대장의 답답한 신음이 들려왔다.
작전은 늦어질수록 실패에 다가선다.
시기를 놓치면 성공할 확률은 떨어지고 이런 특수전의 성격상 부대원에 큰 피해가 올 수도 있다.
“복도에 다섯 명이 AK를 들고 있습니다.”
홱!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있던 오민철은 들리는 소리에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 눈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호텔 유리창에 반사된 태양빛이 조준경을 통해 권총수의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비상구 바로 앞에 두 명이 있습니다. 세 번째 방문 앞에 또 다른 두 명입니다. 4층이 조용한 것을 보면 투숙객을 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꿀걱!
오민철은 침을 삼켰다.
자신은 반사광으로 호텔 건물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는데 권총수는 4층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다.
“아!”
한순간 오민철은 비명 같은 신음을 흘렸다.
‘대력금강심법’
권총수는 지금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여 모든 내공을 눈에 집중 하고 있다.
자신은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강렬한 반사광을 뚫고 호텔 4층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소림의 독문절기중 하나인 불룡안(佛龍眼)이다.
십이성 극성의 경지에 오르면 한 치 두께의 철벽 너머도 투과할 수 있는 안공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문을 열면 오른쪽으로 한명, 왼쪽은 내가 맡겠습니다.”
권총수는 비상구를 보고 있는 두 사내 중 자신과 가까운 쪽 사내, 소대장 측에서 볼 때는 왼쪽을 행해 조준했다.
“셋, 둘, 하나 사격!”
타아앙!
총성이 울리고 왼쪽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동시에 4층 비상구 문이 열리며 HK416이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두!
드르륵!
총소리에 세 번째 객실 문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사내가 복도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두루루루!
소대원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퍽!
꽈당!
순식간에 두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복도를 적신다.
소대장이 무언의 손짓을 했다.
소대원들은 403호 객실에서 조금 떨어졌다.
타아앙!
하는 총성이 울리더니 객실 문 한 가운데 구멍이 났다.
문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저격수의 총을 빌어 확인 해 본 것이다.
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소대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다가섰다.
타타타탕!
무자비한 총알 세례에 순식간에 출입문이 벌집처럼 구멍이 났고 안으로 부터 헉! 커억! 하는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면 갈기기 위해 문 뒤에 서 있던 IS의 목줄이 끊어지는 소리다.
드르르륵!
소대장이 손잡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푸푹!
손잡이가 뜯겨져 날아가고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렸다.
두두두두!
바로 그때 안으로부터 총성이 울리고 엄청난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소대원들 모두 벽에 붙어 몸을 웅크렸다.
출입문은 안과 밖으로부터 쏟아진 총알에 걸레조각이 되었다.
두두두!
여전히 사격은 멈출 줄 몰랐다.
철판으로 된 문은 조각조각 찢어졌고 1분 가까이 이어지던 양쪽의 사격이 멈췄다.
툭! 소대장이 찢어진 철판 사이로 수류탄 한 개를 집어넣었다.
파팡!
테러진압할 때 사용하는 섬광탄이다.
콰앙!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드르르륵!
드륵!
강력한 섬광에 순식간에 시력은 마비된다.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집념이 뛰어나도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천지를 진동할 것 같은 굉음은 일순간 시각과 청각을 무력화 시켜 버린다.
한 마디로 잠깐 얼이 빠져 버린 것이다.
네 명의 사내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네 명 모두 통이 넓은 무슬림들의 일상복 차림이었는데 너무 많은 총알을 맞아 온 몸이 시뻘겋다
멈칫!
소대장의 눈이 빛났다.
검정색 다쉬다쉬를 걸치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사내가 수많은 전깃줄과 폭약이 주렁주렁 매달린 조끼를 입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스위치로 보이는 리모컨이 들려있다.
누르면 터질 것이다.
소대장은 적의 옥쇄작전에 걸려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지막에 몰리면 IS가 가장 즐겨 쓰는 너 죽고 나죽자는 전략이다.
소대장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한쪽 구석에 검정색의 커다란 금고가 눈에 들어왔으며 옆으로 네 바퀴 달린 이동식 롤러가 있다.
금고를 롤러에 싣고 밴으로 옮기려 한 모양이다.
뭐가 들었을까.
CIA의 추정대로 어마어마한 달러가 들어있을까.
삼엄한 경비와 자살 폭탄까지 준비된 걸 보면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금고는 있다.
“반갑군 친구들.”
폭탄을 온 몸에 두르고 있던 사내는 여유가 있었다.
“복장을 보니 미군은 아니고?”
“우린 외인부대다.”
“레지옹 에트랑제.”
사내는 놀라움이지 경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멈칫!
사내와 얘기를 나누던 소대장의 눈썹이 떨렸다.
보청기처럼 귓속 깊숙이 넣어둔 무전 리시버에서 권총수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둥지, 여긴 제로, 응답하라. 둥지.”
두 세 번 호출하더니 반응이 없자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는데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오민철이 뚫어져라 호텔을 살폈다.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어엇!”
“저건 또 뭐지?”
권총수 역시 놀랐는데 호텔 앞으로 도요타 지프 두 대가 멈추고 9명의 사내들이 내리는 모습이 조준경에 잡혔다.
AK를 휴대했는데 권총수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지원병력.”
권총수는 재빨리 다시 소대장과 교신을 시도했다.
“지원 병력 9명 도착, 반복 한다. AK로 무장한 지원병력 9명이 지금 차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권총수는 잠시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격수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
무턱대고 호텔로 뛰어 들어가는 사내들을 향해 저격을 할 수는 없었다.
한두 명은 잡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
보나마나 적은 정찰대에게 연락을 취해 이곳 모스크를 공격하도록 할 것이다.
저격수는 한두 명 죽이는데 의미를 둬야 한다.
다수를 상대로 사격솜씨 몇 번 자랑하는 병사가 아니다.
한방으로 적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한 명을 죽여 기울어지는 판세를 아군 쪽으로 돌리는 것이 저격수의 임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두두!
총소리에 호텔로 뛰어들던 IS대원들이 우수수 나뒹굴었다.
터번을 쓴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로비를 향해 걸어오는 IS들을 M4로 무차별 갈겼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엎어졌고, 네 명은 계단 아래로 엎드렸다.
상대가 로비에 있기 때문에 계단 아래 엎드린 IS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지리적으로 낮은 곳에 있고 다섯 개의 계단 높이는 1미터 정도 된다.
로비의 공격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곧 날 쏴주시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들리는가?”
소대장 목소리다.
“어찌 된 겁니까? 우릴 지원하는 팀이 있습니까?”
그러나 소대장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혹시 자리 이동이 가능한가?”
권총수는 소대장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출입구를 제외하면 이쪽은 복도 창문 말고는 총알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그러나 호텔 반대쪽으로 가면 있다는 뜻이다.
소대장은 최소한의 시간을 끌어 보겠다고 했다.
벌떡!
곧장 총을 들고 일어났다.
“형 나 먼저 갈게.”
재빨리 삼각대를 접어 통째로 백에 넣은 권총수가 계단을 내려갔다.
소대장은 누군가와 지금 대치중이고 대화도 쉽지 않을 만큼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리 이동이 가능하냐는 말도 목숨 걸고 했을 것이다.
스으윽!
삽시간에 지나간다.
보법이라기 보다는 신법이었다.
금강부동신법.
홱!
어!
사람들이 뭔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수십미터 앞을 지나고 있었다.
아무도 믿기지 않는 듯 입만 쩌억 벌린다.
권총수를 봤던 사람들은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그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고 보지 못한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일제히 한쪽을 바라보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쪽을 향했는데 뒤늦게 사원을 나온 오민철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마치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을 향해 취했던 ‘우로 봣’동작을 떠올렸다.
반파된 건물이었다.
아직까지 화약 냄새가 맡아진 걸 보면 폭격을 맞은지 2,3일이 채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권총수는 6층에 엎드렸다.
멀리 첼라크 호텔이 보였는데 조준경에 나타난 거리는 910미터였다.
“자리이동 완료.”
곧바로 무전을 보냈다.
모스크에서 이곳으로 옮기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소대장은 바로 응답하지 않았는데 지금 무척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럴 땐 기다려야 한다.
조준경으로 4층을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작아졌다.
커텐이 쳐져 있었다.
소대장이 커텐 쳐진 것을 모르고 장소 이동을 지시했을리는 없다.
커텐이 쳐져 있으나 자신이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권총수가 저격에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동하라고 했을 것이다.
소대장은 생사의 도박을 결행하고 있었다.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1시.”
아주 약하게 들려온다.
커텐이 쳐져있어 보이지도 않지만 총구를 한시 방향으로 틀었다.
“커피숍 의자!”
권총수는 재빨리 오민철을 불렀다.
“형 어디야?”
“호텔 지나가고 있어, 여기 장난 아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지원병력을 모조리 청소했다.”
“그건 됐고 당장 호텔 1층 커피숍 의자 높이 재봐. 지금 당장.”
오민철은 곧바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190.”
다시 소대장 목소리다.
소대원을 인질로 잡고 있는 타겟의 신장이 190정도 된다는 뜻이다.
그때 커피숍으로 달려간 오민철이 무전을 보냈다.
“푹신한 방석 의자야 높이 45센티, 또 필요 한거 뭐야?”
“됐어.”
190센티미터 키를 가진 사내가 45센티 높이의 의자에 앉아 있다.
권총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190이면 자신보다 13센티 정도 크다.
재빨리 건물 벽으로 다가가 등을 대고 의자에 앉은 자세를 취했다.
“45센티 높이 의자면 이 정도.”
스나이퍼 훈련 과목중 앉은키 계산법이 있다.
지금과 같이 표적이 있지만 육안 확인이 어려울 때를 대비한 과목이었다.
키가 크면 대부분 다리가 길다.
가끔씩 앉은키가 큰 사람이 있지만 스나이퍼 교육자료에 보면 평균 87프로 정도는 상체보다 하체가 길었다.
즉 상체가 특이하게 긴 사람은 13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표적 역시 앉은 키는 지극히 일반적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