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79화 (79/651)

제79화: 피의 금고(2)

터벅터벅 걸어내려가던 권총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한곳을 주시했는데 저기냐고 묻는다.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리며 바라보더니 맞는 것 같다는 듯 돌아보았다

원래는 흰색이었으나 사막의 모랫바람을 맞아 옅은 베이지색으로 변해 버린 웅장한 사원이 있었다.

몽골제국의 침략 때 불탄 것을 16세기 중반에 다시 건립한 ‘아우보스사원’이다.

물론 옛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특히 IS본거지가 되면서 이슬람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일부 유물이 국제 도굴단에게 팔아 넘겨졌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무너진 담장과 균열이 간 사원벽에서는 수백년의 무게와 위엄이 흘렀다.

“누구요?”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서 지팡이를 짚은 비쩍 마른 노인 한명이 걸어 나왔다.

바닥까지 끌리는 흰색의 장옷을 걸쳤고 허리에는 다양한 장식을 한 허리띠 한 개를 두르고 머리에는 흰색의 터번을 칭칭 감았다.

이맘(Imam), 이곳 사원의 기도와 예배를 이끄는 사람으로 보였다.

“저기를 좀 올라가야겠소.”

권총수는 첨탑을 떠받치는 둥근 원형의 돔을 가리켰다.

움찔!

노인은 어깨를 떨었다.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에서 모스크는 기도하는 공간일 뿐 신이 사는 집은 아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장소이기에 정성을 다해 가꾸고 지키는 건 이맘이기 이전에 신자로서 당연한 책무였다.

그러나 노인은 가지 말라고, 장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막지는 않았다.

이미 작정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막을 수 없다.

전쟁속에 신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특히 노인의 눈이 빛난 이유는 이슬람복장을 갖췄으나 결코 알라를 모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여자들을 납치 성폭행하며 팔아넘기는 이슬람을 빙자한 IS도 아니다.

그들이었다면 이렇게 형식적으로나마 허락 따위도 받지 않는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노인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버렸다.

권총수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현명한 노인이군 하는 표정이었다.

가로 막아도 갈 것이고 허락해 주지 않아도 갈 것이다.

노인은 절대적으로 가야 한다는 자신의 의지를 읽어 낸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사원안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인 듯 음산하기조차 했다.

입구 오른쪽으로 난 원형의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갔다.

계단은 둥근 돔 천장에서 끝난다.

돔을 따라 벽면으로 유리문 다섯 개가 오각형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다.

문은 아랫부분에 있는 손잡이를 밀고 당기며 개폐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끼이익!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쇳소리가 나면서 조금씩 열렸다.

“됐어?”

이 정도 열면 사격하는데 지장이 없겠냐는 시선이다.

“다섯 개 모두 열어.”

“다섯 개.”

“한 개만 열려 있으면 금방 알아볼 것 아냐.”

“아차!”

오민철은 깜짝 놀라며 둥근 돔을 둘러 있는 다섯 개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제로!”

소대장으로부터 무전이 걸려왔다.

거리가 멀어 소대원 교신용이 아닌 5킬로 거리까지 커버하는 AR-11 휴대용 무전기를 가져왔다.

권총수는 핸드폰 보다 좀 더 큰 무전기를 꺼내 응답했다.

“제로, 말하라 둥지.”

제로는 평소 저격 팀 호출 부호이고 둥지는 소대, 또는 중대 호출부호 이다.

“현재 상황이 어떤가?”

“거치 중입니다. 끝내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첼라크 호텔 맞은 편 작은 공터에 아이들이 바람 빠진 공을 차고 있었다.

공터 한쪽으로 키 작은 아카시아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무슬림 복장을 한 소대장과 나카야마도 있었다.

누가 봐도 잠시 햇빛을 피하고 있는 지역민의 모습이었다.

다시 공터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면서 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에 모인 사람들 7명이다.

일부는 더위에 지친 듯 물을 마셨고, 어떤 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락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초라한 행색을 한 사내들은 모두가 무슬림으로 변장한 1소대였다.

복장만을 본다면 신앙 깊은 무슬림이다.

이곳 사람들도 웬만해서는 한 낮 기온이 40도 중후반을 오르내리는 여름철에는 장옷(원피스처럼 입는 다쉬다쉬)을 좀체 입지 않는다.

그야말로 눈뜨면 알라로 시작하여 눈감을 때 알라로 하루를 정리하는 신심 깊은 사람들만이 이런 복장을 갖춘다.

더구나 일부 대원들은 장옷 위에 망토까지 걸쳤다.

직사각형의 망토는 주로 밤이면 추워지는 사막의 기후를 대비한 이불 기능까지 갖춘 것이기 때문에 한낮에는 무척 덥다.

그런데도 긴장한 탓인지 땀을 흘리는 이는 없었다.

“출발!”

소대장이 앞장섰다.

차가 다니는 왕복 2차선 도로이지만 무단횡단이 일상이 된 듯 많은 사람들이 그냥 건넜다.

그러나 소대원들은 횡단보도에 서서 멈췄다가 불이 바뀌자 건너기 시작했다.

보도를 따라 왼쪽으로 20여 미터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첼라크 호텔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면 시리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호텔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도시이다 보니 호텔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시끄러웠다.

IS의 허락을 받은 각국의 종군기자들이 들어와 있었다.

물론 각국이라고 해봤자 이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쿠바, 아랍계 방송 알자지라 뿐이다.

서방쪽 언론은 CNN 한 곳 뿐이었다.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고 최대한의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IS에서도 인정한 듯 보였다.

누구든 락까를 취재하려면 IS 고위층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잠입 취재는 적으로 간주되어 사살된다.

사흘 전 이탈리아와 일본 기자가 몰래 활동하다 걸려 현장에서 총살당했다.

“사격 준비 끝.”

소대장이 꽂고 있는 귓속 무선 리시브를 통해 권총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대장은 기침을 하는 듯 입을 막으며 말했다.

“우리가 보이는가?”

“보고 있습니다.”

소대장은 호텔로 들어가는 다섯 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기자들은 로비 곳곳에 삼삼오오 몰려있었는데 피곤한 듯 졸기도 했다.

커피 숍이 있었지만 출입문이 잠겼고 아랍어로 글씨가 서 붙었다.

‘출입자는 총살’

섬뜩한 문구였다

“11시 방향, 두 명, NIRT 기자. 소대장님 중심입니다.”

시간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위치를 정해 주었다.

소대장은 흘긋 권총수가 가리킨 곳으로 눈알만 돌렸다.

앞 가슴에 이란 국영방송 NIRT 기자라는 신분증을 걸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옆구리가 약간 불거졌다.

‘기관단총인가?’

지척이다 보니 자세히 관찰할 수 없어 권총수에게 물었다.

기자가 총을 숨기고 있을 리는 없고 변장한 가짜일 것이다.

‘조준경 눈금으로 살핀 결과 대략 660밀리 정도 나오는 군요’

소대장 이마가 찌푸려졌다.

660밀리 길이를 지닌 소총을 떠올리는 것이다.

IS 제식 소총이랄 수 있는 AK는 900밀리가 넘는다.

러시아에서 새로 개발한 신형 AK-15일지라도 개머리판을 접어도 700밀리를 오버한다.

“MK18로 추정됩니다.”

파팟!

소대장 눈이 커졌다.

정확한 명칭은 MK18CQBR이다.

미군 단축형 소총으로 불리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총신이 짧다고 하여 기관단총으로도 분류한다.

어쨌든 미군의 소총을 갖고 있다면 노획품일 가능성이 높고 락까 동부를 치고 들어오는 미 해병 제26원정부대가 사용하고 있다.

무기시장에서 거래로 나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획품에 무게를 뒀다.

잔고장이 없는 것이 최대 강점인 총이다.

‘660 밀리라면 개머리판을 접었다 펴면 730여밀리 길이다.’

‘3시 방향 프론트 두 명의 남자 직원.’

소대장이 다시 눈알만 돌렸다.

프론트 직원들이 업무는 보지 않고 출입하는 사람들만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살기’

중얼거리듯 들려오는 말에 소대장은 깜짝 놀란다.

6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사람의 살기를 감지하고 귀띔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하나?’

살기라는 건 누군가를 죽이려는 마음을 지녔을 때 자신도 모르게 풍겨 나오는 무형의 기운이다.

동물들은 살기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약하다.

‘살기입니다. 강합니다’

소대장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IS일 가능성이 많았다.

기자들도 감시하면서 호텔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호텔을 지킨다면 그 이유는 어느 정도 간파 할 수 있었다.

‘소대장님, 차량입니다. 검정색 밴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대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검정색 벤이란 말에 순간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범죄자들이 은행을 털 때 이용되는 차량, 현금수송차량 모두 검정색 밴이었다.

밴의 등장만 아니었다면 곧바로 11시 방향으로 서 있는 가짜 기자와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한 IS를 처치하고 호텔을 봉쇄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 층 한층 훑어 올라가며 검색하면 뭔가 나올 것은 분명했다.

‘비렌드라, 오스카르 지하 주차장을 살펴보도록’

슬며시 남기는 메시지 같은 무전에 비렌드라와 오스카르가 재빨리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더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위험하다.

엘리베이터는 좁아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는 잘못하면 포위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하 1층으로 들어가는 문을 잠시 노려본 두 사람은 좌우 벽에 몸을 붙인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행히 안으로부터 어떤 공격도 없었다.

지하주차장은 그다지 넓지 않았으며 이십여대의 차량들이 있었는데 검정색 밴은 한눈에 들어왔다.

밴은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장소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검게 선팅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밴으로 다가갔다.

차의 요동이 전혀 없는 것이 승차자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차량 뒤로 접근한 비엔드라가 귀를 댔다.

사람이 있으면, 미세한 자세 변화만 주어도 울림이 있다는 걸 훈련에서 배웠다.

오스카르가 반응이 있냐는 듯 시선을 던졌으나 비엔드라는 차량에 귀를 대고 꼼짝 하지 않았다.

슥!

오스카르가 다가오려 하자 차에 귀를 대고 있던 비렌드라가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울림이 있다.

‘전화통화다’

밴의 측면으로 붙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지만 백미러가 있어 발각 가능성이 크다.

비렌드라는 한쪽 귀를 막았다.

여러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는 한쪽 귀를 막으면 혼란스러우나 조용한 곳에서, 더욱이 희미한 음성일 때는 두 귀로 듣는 것 보다 좀 더 선명하게 들린다.

이 역시 카스텔노다리 훈련소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비렌드라의 표정이 몇 번 변하더니 재빨리 바닥을 굴러 옆에 있는 승용차 뒤로 숨었다.

“402호 어쩌고 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402호는 분명하게 들었어.”

이어 재빨리 무전기에 대고 자신의 귀로 엿들었던 내용을 로비에 있을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소대장은 프런트 직원과 커피 숍 입구에 기자 신분으로 있는 사내들을 살피며 작은 소리로 교신을 끝냈다.

‘4층으로 이동한다’

일행은 한 명씩 눈치 채이지 않도록 비상구로 향했다.

비상구 문을 열고 나간 소대장은 권총수에게 무전을 보냈다.

‘여긴 둥지, 제로 목표는 4층이다.’

일행은 신속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4층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총구를 조정하여 올렸다.

“엇.”

권총수가 당황한 목소리를 뱉었다.

한참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묘하게 4층 창문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아이 뭐야.”

관측수인 오민철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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