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78화 (78/651)

제78화: 피의 금고(1)

권총수는 히죽 웃었다.

긴장 되어 있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M19가 있습니다. 인원도 십여명 넘게 오른쪽 빈 주택에 숨어 있습니다.”

“뭣이?”

“아니 그게 왜 거기 있는 거야?”

나카야마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 괴물을 어떻게 구입했지. 무기시장에서도 거의 구하기가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모든 시선이 소대장에게 고정됐다.

11명으로 기관총 2정과 M19가 지키는 저지선을 돌파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포병 지원을 해보죠?”

위생병인 태국출신 피아퐁이 눈을 빛냈다.

“하긴.”

누구도 반응하지 않자 피아퐁은 메마른 실소를 지었다.

27여단과 외인7중대 소속 2,3중대 모두 공개적인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1소대만 게릴라전으로 나섰는데 그건 첼라크 호텔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IS자금 회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비밀리 움직이고 있다.

테러단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줄만 끊으면 아무리 조직적이고 훈련이 잘되었다고 해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은행을 턴다거나 현금 수송차를 공격하는 테러범들이 있다.

돈 때문이다.

포병 지원이 있게 되면 요란해질 것이고 IS 수뇌부에서 눈치를 챌 수도 있다.

소대장의 시선이 소대원들을 스윽 훑는다.

바라보는 시선이 평소와 조금 달랐는데 권총수는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그건 어떤 결단을 내리기 앞서서 짓는 지휘관의 고뇌였다.

권총수는 소대장의 머릿속에 있는 작전이 어떤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판단하기에도 지금은 정면공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느 지역에 부비트랩과 매복이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작전로(作戰路)를 벗어났다가는 몰살당할 수도 있다.

“그냥 친다.”

마침내 소대장 입이 열렸다.

그런데 의외로 소대원들은 무덤덤했다.

그건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의미였다.

‘때로는 정면공격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전술이다’

프랑스의 영웅 드골이 뱉은 말이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한참을 허둥대며 헤맸다.

숨어 있는 M19 사수를 저격하기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도 일부였지만 야시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 접근하면 그땐 위험하다.

저격은 절대 두 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 한 발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면 오히려 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길고 잔인한 이 전쟁의 끝이 걸렸다.

“여기서?”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반파된 벽돌 집 지붕이다.

시멘트 주택 옥상 펜스처럼 빙 둘러 쌓아 올린 30센티 높이의 벽돌 위에 총을 거치했다.

벽돌이라고 해도 워낙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PKM이나 M19라면 곧장 뚫고 들어올 것이다.

특히 적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눈에 띌 장소였다.

너무 위험했지만 저격수가 자리를 잡았으므로 오민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엎드려 관측에 들어갔다.

M19는 오른쪽 주택 철 대문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철 대문이 좌우 방호벽이 되어 주고 있었고 사수로 보이는 IS대원이 보였지만 대문이 열린 틈의 폭은 20센티를 넘기지 않았다.

“음!”

오민철은 권총수 눈치를 살폈다.

관측경으로 확인이 되긴 하지만 어두운 밤이다.

더욱이 거리가 있기 때문에 20센티 좁은 틈으로 총알을 쑤셔 넣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 있냐고 물어 볼 수가 없다.

권총수가 M19를 제거해주지 못하면 오늘 밤 공격은 어렵다.

물론 그래도 내려온 명령이므로 공격을 해야겠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저격 팀.”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없자 소대장이 먼저 물어온다.

저격이 시작되고 공격이 이뤄진다.

“대기해주십시오.”

별 문제는 없다.

곧 저격을 실시할 것이므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얘기였다.

가슴이 답답하다.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으나 이상하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 번도 두근거리지 않던 심장이 소리가 들릴 정도로 격렬하다.

가볍게 찌푸린 인상은 어떤 불안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 분명해 보였다.

“사격 준비 끝!”

“사격개시.”

오민철이 소대 무전기를 개방한 상태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소대원들 모두가 이곳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공격준비를 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끼었을 것이다.

타타탕!

어둠이 부서졌다.

드르르륵!

드륵!

그와 동시에 도로 곳곳에 숨어 있던 소대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돌연 굵직한 총소리가 울렸다.

보지 않아도 PKM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상탄!”

오민철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M19를 잡고 있는 사수의 머리위로 지나간 총알은 안쪽 벽에 박히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탕!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으나 M19는 멈추지 않았다.

저격수 존재를 간파한 듯 사내는 몸을 대문 뒤로 감추고 방아쇠만 당겼다.

두두두두둥.

지상 최강의 보병화기답게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와르르!

과릉!

M19에 맞은 처마가 내려앉고 담벼락이 주저앉는다.

가공할 파괴력이다.

타악!

갑자기 권총수가 오민철의 HK416을 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조준경!”

오민철은 부리나케 HK416 조준경을 옆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재빨리 총에 조준경을 설치한 권총수가 다시 조준을 했고, 드르르르르! 총구에서 엄청난 불이 뿜어 나왔다.

M19 사수가 숨어 있는 대문에 수십발이 격중되며 구멍이 뚫린다.

그리고 더 이상M19의 공포스런 굉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HK416으로 M19 사수를 가리고 있는 대문에 30여발 탄창 한 개를 전부 쏟았다.

두꺼운 철대문을 M10이 관통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단발사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구멍에 계속 쏜다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문 뒤에 숨은 사수가 그 각도 그 방향에 계속 얼굴을 숨기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방법은 자동소총으로 갈겨 버리는 것이었다.

탕!

다시 저격 총을 잡는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를 당겼고 PKM을 쥐고 있던 사내는 진지 앞으로 상체를 푹 숙였다.

그러자 왼쪽 기관총 사수는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방아쇠만 당겼다.

콰콰쾅!

그때 수류탄이 터지면서 진지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가 던진 수류탄 두발이 정확히 진지 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드르륵!

소대원들이 진지를 향해 치고 들어갔다.

쾅!

소대장이 던진 수류탄이 다시 진지 안으로 들어갔고 남은 PKM이 허공으로 총구를 올렸다.

사수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탕!

타탕!

간헐적인 총소리는 1소대가 진지를 완전히 제압했고 쓰러진 적에 대한 확인사살을 하는 소리다.

뚝!

재빨리 총을 거두고 도로를 뛰어가던 권총수와 오민철이 얼어붙었다.

낯익은 시신 두 구가 눈에 띄었다.

투석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신장을 이식시켜 주고자 입대한 체코출신의 바라프와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자국 출신이라며 으스대던 폴란드에서 온 청년 노바크였다.

바라프는 오른쪽 폐가 있는 곳에 핏물이 흥건했고, 노바크는 목에 파편들이 박혔다.

M19파편이다.

결국 19가 일을 내고 만 것이다.

“속히 합류하도록.”

무전을 통해 소대장의 명령이 전달됐다.

“철수하면서 부대로 데려 갈 것이다.”

권총수는 눈을 뜨고 있는 노바크의 눈을 감겨주고 뛰기 시작했다.

소대원들은 재빨리 준비해온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사르왈이라는 넉넉한 재색 바지를 입고 그 위로 코트처럼 길게 늘어진 장옷 다쉬다쉬를 걸쳤다.

그리고 머리에는 챙이 없는 검정색 페즈를 머리에 쓰자 완벽한 지역사람으로 변했다.

“저기다!”

소대장이 주택 한곳을 가리켰다.

대문이 없는 불 꺼진 집이다.

아무도 없다.

물론 사전에 이미 정찰되어 확정된 비트(비밀 아지트)다.

아무리 지역사람 복장을 했지만 험악한 이 밤에 돌아다닌다는 건 의심받을 일이므로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메르(바다), 여긴 리비에르(강) 응답하라.”

소대장은 나카야마가 지고 있는 무전 송수신기를 쥐었다.

“바다 여긴 강이다. 내 말 들리는가?”

“강, 여긴 바다, 감도 좋다. 말하라.”

“1차 저지선 통과, 2명 떠났지만 1차 저지선 통과.”

“알았다. 조심하라. 깊숙한 적진이다. 조심하라.”

“잘 알겠다.”

무전을 끊은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편히 두 다리를 뻗는다거나 등을 기대고 편히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20분 전까지 같이 살아 얘기를 나눴던 바라프와 노바크를 생각 하고 있었다.

입을 여는 사람도, 목이 마를 텐데도 물을 마시는 사람도 없었다.

침묵.

또 침묵이다.

모두가 입을 꽉 다문 채 아침이 찾아온다.

간밤의 잔혹한 폭격과 대공포들이 쏟아내는 포성도 사라지고 락까 시내는 조용해졌다.

“담배들 안 피우나?”

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기분 더럽네.”

오민철이 한숨 쉬듯 연기를 뿜으며 중얼 거렸다.

딸칵!

권총수가 담배를 물자 오민철이 지포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준다.

“쉬면서 들어라.”

소대장이 방바닥에 작전지도를 펼쳤다.

“이곳이 작전명 타이거(첼라크 호텔)다.”

정확히 삼각형의 표시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거리는 2킬로가 약간 넘는다. 우리 걸음이면 10분이면 도착하겠으나 민간인 신분이다.”

민간인들이 너무 빠르면 주위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의미였다.

탁!

한곳을 짚었다.

“여기가 1차 집결지다.”

호텔이 보이는 맞은 편 작은 모스크 옆 공터였다.

“공터에는 평소 아이들이 공놀이를 한다. 물론 지금은 알 수 없다.”

2인 일개조로 각자 움직인다.

9명이 집단으로 이동하는 건 워낙 살벌한 락까 분위기상 위험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첼라크 호텔로 가지 않았다.

이미 프랑스 무인정찰기에 의해 락까 시내에 대한 지리가 완벽하게 찍혔다.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첼라크 호텔에서 동남쪽으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모스크(회교사원) 한 채가 있었다.

무인기에 찍힌 사진 분석결과 첼라크 호텔보다 1층 정도 더 높다는 분석이 나왔으므로 지금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이다.

“으음!”

갑자기 권총수가 마른 침을 삼켰다.

길거리에 두 구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뒹굴고 있었다.

성별은 알 수가 없었지만 누군가 칼로 죽인 듯 뱃속의 장기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사람들 표정이다.

누구도 시선을 집중한다거나 하다못해 포대자루 같은 것으로도 덮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건 또 뭐야?”

오민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명의 여자가 AK를 든 두 명의 사내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여자가 소릴 지르며 버티자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었다.

여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두 사내에게 붙잡혀 골목으로 사라졌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권총수가 옆에서 속삭이듯 중얼 거리는 두 명의 무슬림의 말을 엿듣고 돌아섰다.

“넌 창녀야. 넌 창녀야 하는 거야. 그리고 저 사람들이 그러는데 무슬림 여자라도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창녀로 취급하여 끌고 가버린대.”

“끌고가서?”

“보나마나 성적 노리개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랍의 부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버리겠지 뭐.”

뒷말은 신문에서 본 기사였다.

물건을 훔쳤다고 손목을 잘라버린다.

결혼을 빙자하여 어린 소녀와 처녀들을 인신매매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길거리 아무데서나 공개 처형이 이뤄진다.

무자비한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폭정과 반달리즘(오래된 문화역사적 가치 있는 물건 파괴)이 판을 치고 있다고 BBC와 뉴스위크지는 떠들었다.

‘이건 전쟁이 아닌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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