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작전명령 ‘흑새’사냥(2)
소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지나가는 민간인도 금방 터질 것 같은 폭탄으로 느껴진다.
급기야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50미터 이내로 접근한 자는 발포해도 좋다.
물론 그 이전에 다가오지 말 것을 세 차례 경고하고 그런데도 듣지 않을 땐 사격을 하라.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도와 달라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방아쇠를 당긴다는 건 명령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전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군과 적군, 딱 두 가지 집단만 존재했다.
중간은 없다.
민간인도 없는 것이다.
아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적이 된 것이다.
아침 8시, 밤새 이어진 치열한 공방전으로 소대원들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쟁도 체력이다.
특식이라고 하여 칼로리 높은 고단백 전투식량이 지급 되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회의 참석차 여단 사령부를 찾아갔던 중대장이 돌아와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식사하면서 듣도록, 그동안 사령부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집요하게 우릴 괴롭히는 적의 속셈을 알아냈다”
뚝!
후룩!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흑새 사냥이었다’
순간 중대원들 모두가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IS 사이에 퍼져 있는 사막의 흑새란 별명은 권총수를 의미한다.
결국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방식의 저돌적 공격은 권총수를 제거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났다.
“헐! 어느 멍청한 부대가 저격수를 함부로 노출시킨대.”
오민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저격수는 깊이 감춘다.
저격수는 가장 평범하다.
저격 할 때가 아닌 평소에는 누구도 저격수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없다.
“그들을 아둔하다고 할 수 만은 없다. 그런식으로라도 우리 저격수를 없애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 아니겠나. 우리만 공격 했다는 건 최소한 정확한 신분과 계급은 아니어도 27여단 저격수가 외인부대 소속이라는 정보까지는 입수한 모양이다.”
그리고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중대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는데 몸 관리 잘하라는 격려였다.
저격수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시가전이다.
은폐밖에 되지 않는 숲속과 달리 건물이라는 튼튼한 엄폐물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공격적이 된다.
또한 주변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어 수시로 이동하기가 편하다.
그러다보니 권총수가 있는 1소대는 항상 적의 정예 병력과 맞섰다.
시가전 18일 동안 권총수에 의해 사살된 적의 지휘관만 17명이었다.
헬기까지 격추 시켰던 모술 진입 작전 말고 시가전에서만 기관총 사수 9명, RPG사수 5명을 사살했다.
IS에게 기관총이나 RPG는 최고의 중화기이다.
가끔 미군에게 빼앗은 험비나 장갑차를 끌고 나타나긴 하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압권이었던 건 어제 미 해병대 주력기관총인 M240B를 잡고 있던 IS대원을 초반에 제거함으로써 모술 시청을 큰 피해 없이 탈환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이가 갈릴 만도 했다.
권총수는 히죽 웃고 나서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 * *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al-Assad)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며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급기야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으로 번지고, 주변 아랍국이 자국의 이익에 맞춰 끼어들고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급기야 전면전으로 번졌다.
더욱이 미국과 러시아가 출전하면서 국제 대리전이 되었고, 혼란을 틈타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뒤죽박죽 전쟁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 2017년 1월.
시리아 락까에 정부군의 공격이 더욱 혹독해졌다.
락까를 빼앗느냐 뺏기느냐에 따라 내전의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락까의 주인은 시리아 반군과 IS다.
정부군은 러시아의 수호이 전투기까지 지원을 받으며 연일 락까를 맹폭했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애꿎은 락까 시민들이 죽어 나갔고, 많은 국제 민간기구 요원들이 오폭에 희생되자 유엔은 공격중단을 외쳤지만 시리아 정부도 러시아 군도 두 귀를 막아 버렸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우린 형제의 애(愛)로 어려움에 처한 시리아를 외면 할 수 없다면서 러시아군 철수 계획이 없다는 것을 거듭 밝히며 연일 하늘에서 폭탄 비를 쏟았다.
사방은 캄캄했다.
멀리서 전투기를 향해 쏘아대는 대공 포탄이 불꽃처럼 밤하늘을 갈랐다.
불타고 꺾인 대추야자나무 언덕에 일단의 군인들이 있었다.
위장크림까지 발라 어둠과 더욱 분간이 되지 않는 군인들은 1소대였다.
쿠쿠쿠쿵!
지금 대공포가 하늘을 수놓고 있는 도시는 락까이다.
락까는 IS의 자칭 수도다.
이곳에 IS 군사령부를 비롯해, 각종 행정 시설, 무기고, 신병모집소등이 있다.
지금 IS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전국인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터키 시리아 정부의 판단이다.
‘작전명 타이거 사냥’
5개국 모두 IS라는 공동의 적을 일단 섬멸 한다는 것이 묵시적 합의였다.
“휴식 끝!”
소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울렸다.
일행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1소대의 목표는 ‘첼라크 호텔’이었다.
CIA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하면 첼라크 호텔 어딘가에 IS를 움직이는 막대한 자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 돈이 호텔을 빠져나가기 전에 불태우던지 압수하는 것이 오늘 작전의 핵심이었다.
호텔이라고 해봤자 5층 밖에 되지 않지만 옛 도시 락까에 있는 호텔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고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숨 쉬고 있는 락까로 들어가야 한다.
총소리와 포탄 떨어지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소대장의 무전이 다시 파고 들었다.
“부대 사주 경계!”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경계에 들어갔다.
소대장은 망원경을 눈에 대고 전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스팔트가 깔린 중앙선 없는 좁은 이면도로를 따라 움직이던 망원경이 한 곳에 고정됐다.
도로 좌우로 2미터 높이의 모래 포대를 쌓은 진지가 있는데 PKM이 한 정씩 설치되어 있었다.
“둘!”
겉으로 보이는 적병은 기관총을 잡고 있는 두 명 뿐이다.
소대장은 주위를 더욱 자세히 살폈지만 도로 좌우는 일반 가게와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살피는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락까 시민들은 이미 오래전에 시내를 탈출하여 지금은 거의 IS 와 그 추종자들만이 득실대고 있었다.
“소대 보고.”
“비렌드라 이상무.”
“도도프 이상무.”
사주 경계중인 소대원들로부터 별일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대장은 좌측으로 이동하더니 작은 전봇대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은 강둑이었다.
유프라데스강 줄기의 하나인 필라우 강이 흐른다.
수심은 모르지만 유프라데스강 본류에서 가까워 제법 깊어 보였다.
또한 물살도 빨랐다.
인기척에 소대장은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가 다가와 있었다.
“조금 세지?”
물살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대장은 강을 이용해 작전을 펼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권총수가 보기에도 수심도 문제지만 물살이 너무 셌다.
자칫 체력이 떨어지면 그대로 휩쓸려 가버릴 수가 있다.
소대장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기관총이 거치된 진지를 살폈는데 그가 섣불리 정면 공격을 주저하는 건 파악되지 않은 어떤 병기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락까는 IS의 마지막 영토이다.
눈에 보이는 두 자루의 기관총은 이쪽을 속이려는 위장일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진짜는 따로 숨겨 놓았을 수도 있다.
“어떤가?”
적진에서 저격수는 소대장과 작전에 대한 충분한 협의를 할 수 있도록 교전수칙에 명시되어 있다.
권총수는 자신의 야간 스코프를 꺼내 살폈지만 역시 2정의 기관총 말고는 특별이 체크된 것이 없다는 눈치를 보였다.
인원이 고작 기관총사수 두 명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위장이냐 사실이냐.
소대원들이 돌아가며 살폈으나 누구도 작전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너무 허술한 것이 의심스럽다’
소대원 전원이 같은 생각이었다.
“어디가려고?”
오민철이 일어나는 권총수를 보며 물었다.
“소대장님 제가 접근해 보겠습니다.”
가장 보호되어야 할 저격수가 소대 작전의 선두에 선다는 것이 항상 미안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막을 수도 없었다. 거리는 1킬로가 조금 넘는다.
“좋다. 허락한다.”
탁!
권총수는 오민철의 HK416를 빼앗아 쥐더니 휙 하더니 30여 미터 앞 오른쪽으로 있는 반쯤 무너진 주택의 지붕으로 뛰어 올랐다.
화악!
소대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면에서 지붕까지는 3미터 정도 되었는데 단 한 번에 점프하며 뛰어 오른 것이다.
‘저 인간 저거’
오민철은 넋을 놓고 말았다.
서전트 점프가 1미터 50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으나 단번에 지붕에 착지하는 건 오늘 처음본다.
점프가 아니다.
물론 현대인의 눈에는 점프로 보이겠으나 정확히 말하면 부운등공이었다.
부운등공은 내공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띄우는 가장 일반적인 강호 경신술 중 하나이다.
내공의 수위에 따라 솟구쳐 오르는 높이는 달라지겠지만 일갑자 일 경우 1장(약 3.3미터)정도는 너끈하다.
지붕과 지붕을 소리 없이 뛰어 건너는 권총수의 모습은 흡사 들고양이 같았다. 500미터 가까이 접근한 권총수는 휴대하고 있던 저격용 스코프를 꺼내 살폈다.
빛이라고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대공포탄과 이따금 F-15와 러시아 SU-27기들이 떨어뜨리고 간 폭탄이 터지며 발생하는 섬광, 그리고 몇 개의 별이 전부였다.
권총수가 갸웃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코프를 내리고 다시 이동했다.
300미터까지 접근한 권총수가 다시 스코프를 눈에 댔다.
좌우를 한참 동한 훑던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M19’다문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잔인한 총이다.
중대 화력과 맞먹을 정도라고 할 만큼 독보적인 소대 화기로 미군에서 사용중이다.
정식 명칭은 Mark-19 40밀리 유탄기관총이다.
유탄발사기는 수류탄을 좀 더 멀리 던져 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다 개발된 총이다.
그런데 유탄기관총은 한 발씩 발사되는 유탄발사기의 한계를 뛰어 넘어 기관총처럼 유탄이 날아간다.
보병 화기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불리는데 분당 300여 발의 유탄을 발사할 수 있다.
특히 탄착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m 이내의 인명을 살상시키고 15m이내 인명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
폭발력도 좋지만 5밀리 내외의 철판도 뚫을 만큼 관통력도 좋다.
그야말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저들 손에 들어갔지’
어쨌든 눈에 보이는 건 러시아 기관총 PKM 두 정뿐이다.
단초로운 무장에 멋모르고 밀고 들어왔다면 모조리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을 뻔 했다.
소대장의 오랜 군 경험이 아니었다면 적이 파 놓은 허술한 함정에 빠져 들었을 것이다.
기관총 2정이 지키는 진지가 평소라면 강력한 저항선이 되겠으나 락까가 함락되면 본거지를 잃는 IS의 입장을 보면 절대 무거운 방어무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이쪽에서 보면 평소라면 모를까 락까 탈환에 필사적이기 때문에 기관총 두정이면 해볼만 하다고 달려들 것이고 적은 그걸 노려 M19를 숨겨 놓은 것이다.
권총수가 돌아왔다.
소대원들의 눈이 잔뜩 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