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작전명령 ‘흑새’사냥(1)
비렌드라는 차분하게 말했다.
“물을 부으면 폭발하지.”
“폭발?”
오민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렌드라는 타오르는 유정의 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물을 뿌리면 물도 끓어오르지. 기름도 끓고 물도 끓으면서 물을 부은 양만큼 폭발해. 물을 부으면 불 폭탄이 되는 거야.”
오민철은 이마를 찡그렸는데 전혀 이해를 못하는 얼굴이다.
“총수야, 히말라야 저 자식 내가 모른다고 마구 이빨 맷돌질 하는 것 아니냐?”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불이 물을 부으면 꺼져야 하는게 상식 아냐?”
“나도 기름불에는 물을 붓는 것 아니라고 들은 것 같는데, 그냥 넘어가자 뭐 이런 걸 가지고.”
“부대 이동!”
그때 소대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반쯤 무너진 3층 건물로 들어섰다.
야전이라면 개인텐트나 소대막사를 세웠겠지만 시가지전에서는 가급적 주위건물을 이용하여 생활한다.
오히려 시가전에서의 텐트는 적의 관측에 쉽게 걸려들 뿐이다.
너무 멀쩡한 건물도 피한다.
적의 공격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지나치게 파괴된 건물은 무너질 위험이 크다.
반파된 삼층 건물은 공병부대에서 나온 건축전문병사가 폭격이 아니면 당장 붕괴 위험이 없다는 확인을 해주었다.
야간전투는 미군이나 프랑스 군이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걸 아는 IS는 가급적 야간 전투를 피했다.
그 대신 곳곳 길목에 상상을 초월하는 함정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이쪽 역시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자정에서부터 2시까지 동초근무다.
동초근무는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3층 건물 주변을 경계하는 일이었다.
권총수는 HK416을 잡았다.
저격수라고 하여 개인 소총이 없는 건 아니다.
평소에는 개인소총으로 다른 소대원들과 같이 훈련하며 생활한다.
“처음에는 총소리에 잠이 오지 않아 무척 고생했는데.”
두 사람은 무너진 시멘트 주택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는 총소리도 자장가로 들리니.”
오민철이 어둠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철컥!
오민철이 사격자세를 취했다.
담벼락 밖은 2차선 도로였는데 뭔가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치치칙!
밤이 아니면 들을 수 없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작은 소리에 오민철이 반응을 하자 권총수가 웃었다.
“제법이네.”
그건 오민철의 대력금강심법이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권총수는 이미 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는 뜻도 되었다.
“사막여우야.”
아직 오민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권총수는 소리만 감지 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짐승의 종류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1분여 지나고 정말로 자그마한 사막여우가 야시경속에 나타났다.
여우중 가장 작다.
권총수는 먹을 것을 찾는 듯 여기저기 더듬거리고 있는 사막여우를 보며 감탄했다.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하는 무자비한 전쟁 속에서 살아 있는 사막여우를 보자 숙연해지기 까지 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사막여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깜빡! 깜빡!
그때 무전기에 있는 초록색의 작은 점멸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야간 경계근무 때 무전은 소리가 아니라 깨알 같은 작은 불빛이다.
무전기를 들어 체크하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무전기에서 강한 잡음이 흘러나왔는데 복잡한 아랍어가 들렸다.
상황실로부터 내려온 아군 교신이 아니었다.
권총수는 송수신기를 귀에 대고 자동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리는 무전에 집중했다.
아랍어에 대해서는 더듬거리며 대화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 무전 아냐?”
오민철이 물었다.
권총수는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항공기나 선박이 아닌 이상 전 세계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파수는 없다.
더욱이 전장의 군대에서는 더욱 엄격한 비밀로 취급되는 것이 무전 주파수이다.
군용 무전은 주파수대역이 짧거나 정해져 있다.
좀체 제3자에게 흘러나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으로 인해 가끔 내 주파수 대역에 다른 무전교신이 섞일 때가 있다.
음어나 암호를 사용하는 건 그럴 가능성을 대비한 것이다.
“바우와바, 바우와바.”
“바우와바가 무슨 뜻?”
조용한 까닭에 오민철의 귀에도 들렸다.
권총수가 조용히 하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바우와바 마드라싸, 반복한다 마우와봐 마드라싸.”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으나 몇 번 반복되므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권총수는 알아차렸다.
뚝!
무전이 사라졌다.
갑자기 섞여 들어왔으니 나가는 것도 느닷없다.
“뭔데 그래?”
권총수는 야시경을 벗더니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바우와바는 우리말로 대문을 말해.”
“열고 들어가는 대문?”
“그리고 마드라싸는 학교란 말인데.”
“대문과 학교.”
오민철이 두 단어를 조합해보려는 듯 중얼 거렸다.
권총수는 잔뜩 이마를 찌푸렸다.
대문은 주로 무슬림 테러단체들이 직위가 높은 간부들을 지칭할 때 많이 쓰는 자기들끼리의 은어였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오민철은 권총수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으므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탁!
권총수가 무전기를 켰다.
“라떼르(지구), 라떼르 여긴 모나미(친구).”
중대 호출 부호는 수시로 바뀌는데 오늘은 본대 호출은 지구이며, 외인1소대는 친구였다.
“여긴 본대, 말하라 외인 1소대.”
“섞여 들어온 무전이 있습니다. 대문이 학교로 들어갔다는 것 같은데 분석 좀 해주십시오.”
“대문이 학교로 들어갔다는 건가.”
“바우와바 마드라싸.”
“대기.”
무전기를 켠 채 기다렸다.
오민철은 흘긋 권총수를 살피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다.
‘뭔가 감지한 것이 분명하다’
권총수는 이제 인간의 차원을 벗어나고 있었다.
가장 분명한 예로 저격이 달라 진 것이다.
실력에 대력금강심법이 더해지면서 경이적인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한 달 전 모술 진입 공격 때 보여준 1,300미터 저격은 압권이었고 가공할 능력이었다.
물론 2킬로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한 기록도 있으나 직접 보지 않았으니 믿지 않는다.
그러나 1,300은 엄청난 거리이다.
그런데다 귀도 밝아졌고, 후각은 거의 개 수준이다.
“친구 여긴 지구.”
“말하라 지구.”
“분석 실패, 분석 실패, 단 친구가 있는 곳에서 동남쪽 3킬로 지점에 학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잘 알겠다 이상.”
중대본부로부터 조금 전 무전 교신 내용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고 판단한 권총수는 교신을 끊었다.
“교대 온다.”
오민철이 다가오는 다음 근무자를 보며 반색했다.
비렌드라와 루마니아 출신이자 부소대장인 도도프 하사였다.
“봉봉(사탕)”
오민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비주(보석)!”
상대가 정확히 암구호를 답하자 총을 거두었다.
“수고 하십시오.”
“수고들 많았다!”
도도프 하사가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 소대장님!”
권총수가 도도프를 불렀다.
“부대이탈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대이탈?”
권총수는 조금 전 중대본부와 나눴던 무전 교신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혼자 학교를 가보겠다는 건가. 단순한 직감 하나를 믿고, 안 된다. 곧장 복귀하도록.”
부소대장은 소대장 부재시 그의 권한을 넘겨받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욱이 권총수는 저격수이다.
중대나 대대급 부대에 한두 명씩 있는 흔한 저격수가 아닌 외인부대의 상징이고, 프랑스 육군의 간판이 되어 있다.
권총수에 대한 정보는 프랑스 육군 2급 기밀로 취급되고 있었다.
“명령이다. 일체 개인행동을 불허한다.”
“예!”
권총수는 거수 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다음 날 기상하자마자 놀라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어제 밤 중대본부와 교신중 주고 받았던 3킬로 밖 학교에서 오늘 새벽 03시10분 미군 실팀의 작전이 있었다.
학교에 미군이 쫓고 있는 불멸의 전사인 알무하아리불의 부대장 샘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미군이 들어갔을 때 샘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 발 늦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오민철이 식사를 하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뭔가 느낌이 온 듯 혼자서라도 그 학교를 찾아가려고 했으나 부소대장 도도프 하사로부터 제지당했다.
“우리가 갔으면 잡았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오민철은 슬쩍 자신까지 끼워 넣었다.
그러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부소대장 도도프 하사를 바라보았다.
도도프는 묵묵히 식사에 열중할 뿐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교전 보름이 넘어가면서 모술 시내가 조금씩 미군과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기 시작했다.
밀리는 IS는 갈수록 흉포해졌다.
닥치는 대로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여성들은 끌고가 성폭행하고 반항하면 대검으로 목을 잘라 버렸다.
모술 시민들은 IS의 만행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던 차에 시리아 전투기들이 IS에게서 도망쳐 국경을 넘어 온 민간인들을 폭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리아 정부는 자신들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CNN과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까지 폭격에 부모를 잃고 우는 십여세 소년의 사진을 연일 내 보내면서 세계가 분노했다.
미국은 당장 안보리 상임위를 소집해 시리아 정부에 대한 제제를 의결하려 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이 외면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궁서설묘(窮鼠齧猫).
막다른 곳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
IS가 그러했다.
모술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IS는 어쩔 수 없이 시리아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시리아에서 가만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자국 영토 침범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탱크를 앞세워 국경을 봉쇄하자 가운데 낀 IS는 그야말로 이판사판으로 나왔다.
닥치는 대로 죽였다.
또한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마치 2차 대전 가미카제 특공대가 비행기를 몰고 미군 함정을 향해 신주불멸(神州不滅: 천황이 일본을 다스리는 것은 신의 뜻이며 신의 나라인 일본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을 외치며 뛰어들던 것처럼 옥쇄작전으로 나왔다.
스스로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달려들고, 포로로 잡은 민간인들에게 폭탄조끼를 입힌 뒤 미군과 프랑스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특히 프랑스 군에 대한 자살공격은 집요하기까지 했다.
특히 외인부대의 피해가 가장 컸다.
수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했다.
민간인이 다가 온다.
이쪽에서는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내준다.
그리고 꽝 터진다.
자살 공격에 동원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한 남자는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철저히 무선장치를 이용해 폭파시키는 수법을 썼다.
아무리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해도 막상 폭탄조끼를 터뜨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머뭇거리거나 하면 자칫 들통 날수가 있었으므로 스위치는 자신들이 눌렀다.
속수무책이다.
보름 동안 싸우며 발생한 희생자 보다 단 사흘 동안 희생된 병사의 숫자가 더 많았다.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은 연일 IS의 잔인함을 비난하며 프랑스군은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배수의 진.
오갈 데 없는 IS는 이판사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2소대 3소대에서 지난 사흘 동안 사망한 사람은 9명이나 되었다.
그중 데미지를 가장 크게 입었던 것이 30대 젊은 부부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민간인 차림의 부부가 살려달라고 달려왔고 3소대는 엄호 사격을 하며 세 사람의 탈출을 도왔다.
꽝!
살려놓은 부부가 인계되는 순간 두르고 있던 폭탄이 터진 것이다.
아홉 살짜리 아이를 인질로 삼고 부모를 위협한 것이다.
도대체 왜 집요할 만큼 외인부대만을 공격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