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대공세(3)
샘은 무전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표정이 밝았다.
지금 막 불멸의 전사 5중대로부터 어제 밤 자신이 직접 설치 해놓은 부비트랩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탱크도 날릴 수 있다고 자부할 만큼 C4를 싹싹 긁어모아 설치 한 것이다.
부비트랩이 터졌다는 건 제대로 걸렸다고 봐야 한다.
복싱에서 비켜 맞아도 KO라는 말이 있듯 설혹 지나가다가 터졌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좋아!”
미소를 지으며 무전 송수신기를 통신병에게 넘겼다.
쿠쿠쿠!
파파팍!
잠시 멈췄던 전투는 다시 시작되었고 샘은 수시로 걸려오는 전황에 귀를 기울이며 지시를 내렸다.
죽은 사람은 없다.
중상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있지만 걷지 못할 소대원은 없었다.
소대장 포함 9명 모두가 나뒹굴고 있는 각자의 소총을 챙겨 들고 이동을 시작했다.
하나같이 피를 흘리고 있어 마치 흡혈귀 부대 같았다.
깊이 십미터가 넘게 패인 구덩이를 바라보는 소대원들의 표정이 차갑다.
스스슥!
산개하여 빠르게 움직였다.
70미터 전방에 1미터 높이의 참호가 목격되었고 능선을 향해 밀고 올라오는 34대대 병력과 전차대대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는 IS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접근.”
소대장은 더 가까운 거리로 다가섰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사격에 의한 사망률은 높아진다.
수풀 사이를 소리없이 지나가는 뱀처럼 소대원들의 움직임은 신속했고 빨랐다.
거리는 50미터까지 좁혀졌다.
워낙 34대대와 전차대대가 밀고 올라오다보니 측면 경계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산이 흔들릴 만큼 강했던 조금 전의 폭발 소리로 외인 1소대가 치명타를 입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정지!”
소대장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예상대로 있다.
전혀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다.
전방에 모래포대를 쌓아올린 진지가 있었는데 PKM1정과 AK로 무장한 IS대원 세 명이 있었다.
“제로, 내말 들리나.”
“제로, 잘 들립니다.”
“그곳에서 보이지 않나? 진지가 구축되어 있고 세 명이 지킨다.”
“진지 일부만 보일 뿐 표적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등성이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내려온 8부 능선쯤에 있는 진지이기 때문에 왼쪽 모술 시내에 총을 거치하고 있는 권총수의 눈에는 잡히지 않고 있었다.
어떤 부대도 등성이에 저지선을 구축 하지는 않는다.
조금 아래로 내려와 공격과 방어 진지를 쌓는데 그 이유는 능선은 꼭대기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항공감시에 노출된다.
“세르게이, 비렌드라, 오스카르 소음기 장착!”
소대장의 지명을 받은 사람 셋이 재빨리 총구에 소음기를 끼우기 시작했다.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끄럽긴 하지만 지척에서 총성이 울리면 노출될 수가 있었다.
아직은 노출될 때가 아니다.
“표적은 왼쪽부터 조금 전 호명 순으로 사살한다.”
세르게이가 맨 왼쪽 사내를, 비렌드라는 가운데, 오스카르가 맨 오른쪽 표적이라는 뜻이다.
지휘관이 표적을 정해주지 않으면 자칫 한 표적에 두발이 들어갈 수 있고 공격당하지 않은 적으로부터 반격을 받을 수 있다.
“보고!”
“1표적 사격 준비 끝!”
“2표적 사격 준비 끝!”
“3표적 사격 준비 끝!”
소대장의 목소리가 소대원들의 헤드셋을 뚫었다.
“사격 개시!”
퍼푹!
퍼퍼퍼푹!
권총 소음기 보다는 컸지만 소음기가 없을 때 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셋 모두 고개를 떨구며 앞으로 엎어졌다.
“바라프, 도도프 진지 확보.”
체코와 루마니아에서 온 동유럽의 두 사내가 빠르게 진지를 향해 달려갔다.
휘익!
동시에 뛰어들어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상 무.”
그제 서야 소대원들이 다가왔다.
“도도프 하사 PKM 사수.”
“예!”
도도프가 재빨리 거치된 PKM을 들었다.
“나머지 사격위치로.”
소대원들 모두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한 순간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
“눈 앞에 보이는 적은 모조리 사살한다. 사격 개시.”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시끄러운 총성이 산을 울렸다.
두두두두!
드르륵!
작정하고 쏟아낸 PKM과 HK416은 봇물터진 물처럼 총알을 쏟아냈다.
8부 능선쯤에 참호를 파놓고 34대대와 교전을 벌이던 IS대원들이 나동그라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역습이자 기습이었다.
엄청난 폭발음이 있었고 경계병을 두었기 때문에 측면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PKM까지 지원되었기 때문에 1개 소대 병력이라면 제압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냥 쏘는게 아니라 정확한 조준사격이었다.
순식간에 10여명의 IS대원이 사살됐고 RPG를 휴대한 두 명의 사내가 발사기와 같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소대장은 재빨리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천사, 천사장 들리는가.”
“천사장이다. 말하라. 천사.”
“적 5중대 측면 무너뜨렸다. 반복한다 적 5중대 옆구리를 터뜨렸다. 이상.”
“대단하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는 말고 적당한 위치에서 교전하라.”
“잘 알았다.”
측면 지원의 위력은 컸다.
소문이 퍼진 듯 일부 IS대원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오고 옆에서 오는 적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는 후퇴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는 없다.
전차 대대 탱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멸의 전사 5중대는 7대가 투입 되었는데 다섯 대인 것을 보면 2대는 파괴된 것으로 보였다.
파죽지세.
무너진 둑은 결코 다시 막아질 수 없다.
쿠쿠쿠!
다섯 대의 탱크는 굉음을 내며 밀고 올라왔고 1소대는 후퇴하는 IS를 쫓기 시작했다.
퍼퍼엉!
탱크는 IS가 파놓은 참호를 무너뜨리며 등성이로 올라섰다.
마침내 모술 시내가 보인다.
잔뜩 벼르고 있었다.
등성이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후퇴하는 IS다.
“저기, 어깨에 RPG발사체 메고 있는 놈.”
탕!
이미 발견했다는 듯 오민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고 발사체를 매고 있던 사내의 목이 꺾이는 모습이 관측경에 잡혔다.
“11시 방향, AK74.”
스윽!
총구가 돌아갔다.
오민철이 AK74를 들고 있는 검은 구레나룻의 사내를 지목했다.
AK74는 AK버전중 신형에 해당된다.
그가 지휘관인지 아닌지 행색으로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를 지목한 것은 오랜 특수부대 경험에서 얻은 본능일 뿐이었다.
타앙!
방아쇠가 당겨지고 구레나룻의 사내가 엎어졌다.
순간 주위에 있던 IS대원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맞았어. 높은 놈이야. 일반 대원이라면 이런 급박한 상황에 몰려들 리가 없어.”
오민철은 자신의 판단이 맞은 것에 고무된 듯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12시, 군복입은 놈.”
탕!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고 군복입은 사내가 고꾸라졌다.
멈칫!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떨어지는 석양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나는 섬광 하나가 있었다.
“지금 뭐야?”
오민철도 스치듯 사라진 섬광을 발견한 듯 싶었다.
“반사광 아냐?”
오민철이 물었다.
“제대로 봤어!”
반사광이라면 누군가 조준경이나 망원렌즈가 딸린 병기로 이쪽을 조준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해가 등 뒤에 있기 때문에 반사광일 가능성은 90프로 이상이라고 판단한 권총수는 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오민철도 다급히 움직였다.
빨리 찾아야 한다.
반사광이 정면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건 자신들의 위치가 간파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저깄다.”
오민철이 소릴 질렀다.
“12시에서 1시 사이, 오른쪽 각도 40도.”
스윽!
총구가 움직였다.
“RPG야.”
탕!
권총수는 총구를 틀자마자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한 조준이라기보다는 조준선에 들어왔다는 느낌과 동시에 당겨 버렸는데 일단 격중은 되지 않더라도 근처에 피탄이 되면 상대는 위축된다.
즉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먼저 공격한 것이다.
“맞은 것 같은데.”
오민철이 눈을 부릅떴다.
“빗맞았어.”
사내는 움직이고 있었다.
총에 맞은 충격으로 땅에 떨어뜨린 발사체를 다시 어깨에 올렸다.
타아아앙!
M10의 삼각대가 한차례 떨면서 1,300 미터 거리에 있는 RPG를 휴대한 IS대원이 나동그라졌다.
탕!
타타탕!
속사가 시작되었다.
주로 기관총을 포함한 중화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 표적이 되었다.
등 뒤에서 저격이 이뤄지고 앞에서는 탱크를 앞세운 34대대가 밀고 올라오며 측면에서는 1소대가 친다.
IS 퇴각은 빨라졌다.
더욱이 후방에서 쉬지 않고 날아온 포병대대의 120밀리 박격포는 IS를 혼란에 빠뜨렸다.
알자지라 방송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프랑스 제27보병여단이 모술 서북쪽 21번 국도의 저지선을 뚫고 시내로 진격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술 동남부를 공격하고 있는 미군 제22원정여단은 아직까지 모술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27여단이 진입하고 난 이틀 후에 미군도 들어섰지만 미군과 프랑스군의 본의 아닌 비교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라크 전 하면 미군을 떠 올린다.
그들은 우세한 화력과 첨단 장비를 앞세워 어느 전쟁이든 항상 승리를 쟁취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실전경험이 많은 군대.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미군의 전쟁능력은 절대적이었으나 프랑스 27여단으로 인해 탄탄한 지위가 조금씩 흔들렸다.
아사드 이라크 반군대장을 사로잡은 것도 프랑스 외인부대였고 야디지족 여인들을 구출하고 신자르 지역에서 활동하는 IS 일백여 명을 사살한 이도 외인7중대였다.
그리고 이번 모술진입도 미군보다 프랑스군이 한발 앞선 것이다.
프랑스가 앞선 모술 탈환은 국제질서에 묘한 흐름을 가져왔다.
이틀 전 열린 G7(주요7개국 모임)에서 프랑스 대통령이 가장 활기찬 모습으로 다른 나라 정상들과 회담을 가졌고 외신기자들로부터 제일 많은 질문을 받았다.
'IS격퇴전에서 프랑스군의 무공(武功)이 미군을 압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군은 인류 평화를 위해 언제나 앞장 설 것입니다”
‘외인부대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데?’
“그들도 자랑스런 프랑스 군대입니다”
‘사막의 흑새라는 외인부대 소속의 저격수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사막의 여우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사막의 흑새라는 얘긴 처음 듣습니다”
하면서 권총수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그에 반해 미국 대통령을 향한 기자들의 질문은 예리했다.
‘미군이 옛날 만 못하다?’
“미군은 오늘도 천하제일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황을 보면 미군은 프랑스군에 비해 현저히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어느 전쟁에서든 항상 승리했고 언제든지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이겼단 말인가?’
미국의 가장 뼈아픈 부분을 건드리자 미국 대통령은 ‘당신과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 * *
들어서기가 어려웠을 뿐 들어선 이후는 그야 말로 파죽지세였다.
미군도 프랑스군도 경쟁이라도 하듯 IS를 몰아 붙였다.
그리고 모술 진입 보름째 되던 날 34대대와 외인1소대는 IS가 장악하고 있던 카오스 유정을 빼앗는다.
“저걸 무슨 수로 끄냐?”
IS는 후퇴하면서 유정 곳곳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 바람에 시커먼 연기가 치솟으며 대낮인데도 사방이 어두워졌다.
십여 개의 유정에서 솟은 불길은 수십 미터 길이로 타올랐는데 잠시 전황이 소강상태이어서 모두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기름에 불이 붙으면 물로 끄면 안 된다고 하던데.”
“노우, 큰일 나.”
히말라야 사나이 비렌드라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