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킬(Kill)3
PKM이라는 기관총이 지닌 최대 장점은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외형은 매우 단촐해 보이지만 3,4만발을 퍼부어도 거뜬하다.
미군은 그날 처음으로 PKM의 위력을 보았다.
테러범들의 총, 싸구려 기관총으로 인식하고 있던 PKM 2정이 쏟아내는 결기 넘치는 공격 앞에 무려 세 시간을 고전했다.
팔루자 측면을 공격하기로 한 7중대가 무려 3시간 동안 9명을 잃어가며 아스살 고개에서 발이 묶임으로 인해 팔루자를 탈환하는 작전명 ‘유령의 분노’는 미군에 참혹한 교훈을 남겼다.
‘그동안 우린 PKM을 너무 우습게 봤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해병 중장 다니엘의 말이다.
그는 7중대가 팔루자에 한 시간만 빨리 들어왔다라면 미군의 피해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면서 PKM이란 기관총을 존중했다.
권총수 역시 다니엘 중장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PKM 만큼 뛰어난 기관총은 없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명중률도 좋지만 전장에서 고장률이 낮다는 것만큼 더 위력적인 건 없다.
탕!
펄쩍!
사냥꾼의 총을 맞은 노루가 공중으로 뛰어 오르듯 한 사내가 오른손을 감싸며 뛰어 올랐다.
타아앙!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두 번째 총탄으로 사내의 머리를 부서 버렸다.
총을 맞으면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거나 아니면 벌떡 일어나는 습성을 보인다.
권총수는 사내의 머리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여 준비하고 있다 2탄으로 숨통을 끊어 버린 것이다.
“12시 방향, 수직으로 30미터.”
관측하고 있던 오민철이 다급하게 말했다.
M10의 총구가 슬그머니 위로 솟는다.
12시 방향 수직으로 30미터란 말은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12시 방향을 따라 직선거리 30미터 지점에 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찾았군.”
IS 대원 한명이 러시아제 RUU-213 무전기를 메고 도주하고 있었다.
영하 30도의 혹한에도 작동이 멈추지 않고 미군 무전기보다 5킬로가 가벼워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각국의 주문이 넘친다.
산을 오르는 자세, 즉 머리를 앞으로 숙이다 보니 가장 분명한 표적인 머리 부분이 잡히지 않는다.
저격수는 원샷 원킬이다.
부상이 아니라 한방에 죽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통신병의 자세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가장 확실한 머리 조준이 어렵다.
유일한 건 엉덩이부터 시작 되는 하체였다.
하체는 단번에 숨을 끊을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아니다.
쓰러져서도 무전은 할 수 있는 것이다.
통신병을 잡으려는 건 지원병력을 오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었다.
스윽!
어쩔 생각이냐는 듯 오민철이 돌아보았는데 권총수는 열심히 조준경을 조작하고 있었다.
“거리 1,030미터?”
다시 한 번 확인하라는 의미다.
오민철이 재빨리 관측경에 눈을 댔다.
“오케이 1,030.”
타아아앙!
M10 총구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맙소사!”
관측경으로 표적 상태를 살피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콰쾅!
하는 소리가 1킬로 밖에까지 들렸는데 총알이 무전기를 뚫고 들어가자 폭발해 버린 것이다.
“야, 어떻게 된거야?”
“스나이퍼 스쿨에서 배웠지. 지구상의 모든 무전기는 충격에 약하다. 밧데리가 들어간 부위를 때리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약 1200도의 열로 인해 폭발한다.”
권총수의 손이 바빠졌다.
저격수를 피하기 위해 엎드려 있던 IS대원들이 일어나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격수도 걱정이지만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치고 올라오는 소대원들에게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탕!
타아앙!
노리쇠를 당겼다 밀어내는 권총수의 손동작이 정신없다.
“탄창교체!”
권총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민철이 5발이 들어 있는 탄창을 건네주었다.
탄창을 끼우고 후퇴시킨 노리쇠를 밀었다.
탕!
또다시 M10이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적이 도주한다고 하여 적당한 선에서 추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번 작전은 IS의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모술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즉, 끝까지 따라 붙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시내로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내에서는 산이나 강을 끼고 벌이는 야전과 다르기 때문에 방어선이란 개념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방어선을 친다고 해도 건물들이 집결 되어 있기 때문에 양쪽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싸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럴 때는 화력 좋은 쪽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드륵!
두두두두!
소대원들은 차분했다.
나무와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추격하며 쏟아 붓는 사격에 적은 계속 나뒹굴었다.
멀리 모술 시내가 보인다.
넉넉잡아 1킬로쯤 될 것 같았다.
도주하는 적은 5명으로 줄었다.
탕!
드륵!
적의 숫자가 적고, 도망치기에 급급해 보인다고 해서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거나 거리를 좁히겠다고 100미터 달리듯 쫓아가는 소대원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적이 강하든 약하든 나만의 페이스를 지켜야 한다는 외인부대의 전투철학이 돋보였다.
추격도 유지해야 할 거리가 있다.
멀어도 놓치지만 가까워도 이쪽이 당할 수가 있다.
두룩!
두루룩!
적은 도망을 치는 와중에도 가끔씩 돌아서서 반격을 가했다.
쫓는 쪽을 더디게 만들려는 위협사격일 뿐 이쪽을 물리치겠다는 목적을 둔 공격은 아니었다.
한편 마른 풀 더미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결합된 저격 부속물을 해체 하지 않고 M10을 어깨에 멨다.
작전이 진행중일 때는 총을 분해하지 않고 언제든지 상황이 발생하면 저격할 수 있는 상태로 이동해야 한다.
물론 총을 담은 백은 관측수 몫이다.
오민철 역시 그런 규칙을 잘 알기 때문에 불만이나 짜증스런 기색은 없다.
둘은 빠르게 이동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므로 훤히 노출 되는 이런 개활지를 지날 때는 무조건 에스(S)자로 뛰어야 한다.
“먼저 가.”
권총수가 자신과 보조를 맞추려 하다 보니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괜찮아. 신경쓰지 말라고.”
나 보다 저격수다.
무조건 관측수는 저격수를 위해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
네가 더 중요하므로 앞서 가라는 재촉에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그래.”
스ㅡ슥!
권총수가 달린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달리기와 틀렸다.
권총수 말에 의하면 보법이라고 했는데 한 걸음 뛸 때마다 3,4미터씩 쭉쭉 나갔다.
고무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잡아당길 때는 천천히 늘어나지만 손을 놓는 순간 고무줄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간다.
스윽!
쏙!
떼는 발걸음은 늘어날 때의 고무줄처럼 느리다.
하지만 한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새 저만치 가버린다.
순식간 1킬로 가까운 농경지를 통과해 버렸다.
오민철은 자신이 지금 위험한 개활지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채 넋을 놓았다.
두 눈이 꿈을 꾸듯 몽롱해졌다.
‘반드시 배워야 해’
뜨거운 욕구가 샘솟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결을 외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생각하자 눈앞이 아찔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었다.
‘안되면 되게하라’
다다다다!
오민철은 상체를 최대한 낮추며 달리기 시작했다.
IS가 파 놓은 참호의 깊이는 1미터 30 센티 정도였다.
십여 구의 시신이 참호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산을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등성이에 오르자 뿌연 먼지 속에 덮인 모술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라크에서는 IS의 마지막 거점 도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등성이 아래로부터 HK416과 AK소리가 치열하게 엉키고 있었다.
다시 저격 장소를 잡기 위해 주위를 살필 때 권총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들려?”
오민철은 귀를 세웠다.
“뭔 소리?”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헬기 소리야.”
헬기란 말에 오민철은 더욱 귀를 쫑긋 세웠다.
여전히 총소리 말고는 귀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권총수는 모든 감각을 바짝 끌어 올렸다.
프랑스군의 타이거 공격헬기의 소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군 아파치 쪽은 더욱 아니었다.
“일단 숨고 보자.”
권총수는 커다란 바위 뒤로 몸을 숨겼고 오민철은 조금은 떨떠름한 얼굴로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도대체 무슨 헬기가 온다는 건가.
프랑스 군 공격헬기 편대는 여단 수색대대가 치고 있는 21번 국도 오른쪽 티그리스 유역을 지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귓가에 들리는 헬기 소리는 적기, 최소한 아군기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파팟!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이제 서야 귓가에 헬기가 내는 프로펠러 소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타이거 소리도 아니다.
가젤 다용도 로터소리도 아니었기에 슬며시 바위 끝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
멀리 뜨겁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태양을 뚫고 한 대의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Mi-24 하인드야.”
권총수가 M10에 설치된 조준경을 보며 놀란다.
구소련이 개발한 다목적용 헬기이다.
지상의 전차나 장갑차를 공격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병력수송도 가능했다.
한때 ‘사탄의 마차’로 불리며 소말리아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에서 위력을 발휘했고 급기야 IS손에도 들어갔다는 말만 들었는데 진짜 나타난 것이다.
웬만한 기관포에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장갑은 위력을 더욱 배가 시켰다.
두두두두!
지상을 향해 12.7밀리 4연장 게틀링포가 무자비하게 총알을 쏟아낸다.
“우리 소대 치러왔어.”
오른쪽으로 4킬로 떨어진 34대대를 치기 위해 가는줄 알았다.
소대병력이라고 해봤자 11명밖에 되지 않고 위력적인 장비도 없었기에 공중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두우우우우!
차라리 쏟아붓는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전이 날아왔다.
“저격병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한다 저격병을 노리는 것이 확실하다.”
예나 지금이나 저격병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화력이라도 아끼지 않고 쏟아 붓는다.
콰콰쾅!
S24로켓포가 무자비하게 내려찍었다.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나면서 소대장은 대원들의 안전을 파악하기 위해 계속 무전을 교신했다.
“부상자 있나?”
“이상 무.”
이상무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직 희생되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지만 워낙 공격력이 뛰어나고 무장 상태가 살벌한 헬기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뭣하려고?”
삼각대를 접는 권총수가 바위 끝에 슬쩍 M10을 거치했다.
“무슨 수로 저런 괴물을 피해. 이대로 있다가는 당할 수 밖에 없어.”
오민철이 잽싸게 M10을 끌어 내리려 했다.
“좀 기다려 보자.”
“안돼, 우리 소대 전멸 할 수 있어. 미사일까지 퍼붓는 저런 무자비한 공격 앞에 고작 11명의 보병이 무슨 수로 살아난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저건 하인드야. 장갑이 견고하여 M10에 뚫리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
권총수는 조준경을 조율하더니 움직이는 헬기를 따라 총구를 이동했다.
연료통은 안 된다.
거긴 장갑이 더 튼튼하다.
공격헬기의 약점은 한 곳 뿐이다.
로터(Rotor : 회전날개)다.
그러나 메인 로터가 아닌 꼬리 날개 즉, 테일 로터를 노려야 한다.
헬기를 노리는 저격 과목이 있다.
그러나 교범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써 있다.
‘가급적 피할 것’
오민철이 물었다.
“누구? 조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