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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71화 (71/651)

제71화: 킬(Kill)2

급기야 미국 정부는 핏줄의 진한 감성까지 이용해 그를 변화시켜 보려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작은 농장을 하는 늙은 아버지가 나서 이제 그만 살인을 멈춰줄 것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샘이라고, 그 놈.”

권총수가 헤드셋에 대고 교신을 시도했다.

“소대장님.”

“말하라 총수.”

“샘이 나타났습니다. 사막의 칼잡이 그 살인자 말입니다.”

“틀림없나.”

“완전하게 확인 됐습니다. 저격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무런 응답이 없다.

“저격 하겠습니다.”

“불가하다.”

“놈은 인류 공동의 적입니다. 백악관은 누구든 그를 발견하면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결코 살인죄 따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목표는 정해져 있다. 반복한다. 우리 타겟은 샘이 아니다.”

소대장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건 권총수 더러 냉철해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작전계획에서 벗어나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한순간 선택이 잘못되면 그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수많은 생명이 화를 당하기 때문이다.

“총수!”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욱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총수에게 샘이란 사내는 한 가지 모습으로 집약된다.

미국 USA 투데이 여기자 아밀리아의 목을 자르던 화면이었다.

살려달라고 애걸하며 사시나무 떨 듯 하던 아밀리아의 머리채를 잡고 대검으로 목을 잘랐다.

백악관을 향해 이것은 선전포고라면서 잘려진 그녀의 머리를 들고 웃음 짓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아미타불’

자신도 모르게 불호가 흘러나왔다.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면서 마음은 어느새 평정을 찾은 것이다.

샘은 뭔가를 지시하면서 10여분 정도 머무르다 떠났다.

오민철이 샘을 배웅하고 돌아선 대머리 사내를 한참 살피더니 물어왔다.

“엔트리 정했어?”

엔트리란 죽일 순서를 정했느냐는 뜻이다.

저격수와 관측수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이럴 때는 무조건 현장의 책임자인 저격수 생각이 존중된다.

권총수로부터 반응이 없자 오민철이 돌아보았다.

권총수는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는데 고민이 깊은 모양이다.

공식적인 순서는 아니지만 지휘관이 제1타겟이다.

통신병, 중화기 사수 순으로 이어지지만 작전형태와 여러 가지 주변 여건에 의해 표적의 우선순위는 바뀔 수 있다.

“자꾸 거슬리는데.”

“M2?”

오민철이 단번에 짚어 내는 걸 보면 그 역시 캘리버 50이 꺼림칙한 모양이다.

워낙 화력이 좋은 무기이다.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대공화기로도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을 만큼 파괴력이 넘친다.

“2번은?”

“통신병이 안보여.”

사실 오민철도 통신병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 의심가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9시 방향 PKM을 세 번째로 넣고, 1시 방향 PKM이 네 번째.”

“지휘관은?”

“다섯 번째.”

다섯 번째란 상황에 따라서는 저격 엔트리에서 제외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평소와 달리 왜 지휘관 저격을 한 참 후순위에 놓을까.

“왜 그런 눈으로 봐.”

권총수가 오민철을 돌아봤다.

“골 아프게 생각 하지마.”

권총수는 지휘관을 뒷 순번으로 밀어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IS와 대여섯 차례 교전을 벌였다.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들에게 지휘관이란 일반 군부대와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전체적인 지휘권은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부하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추궁까지 하는 걸 목격했다.

물론 모든 IS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일부였지만 그건 많은 것을 시사했다.

연합군에 맞서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긴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충성심과 사명감, 상관에 대한 복종심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죽이는데 목적을 둘 뿐이었다.

강한 부대는 군기와 명령체계가 엄격하게 잡혀 있다.

그런면에서 IS에서 지휘관의 생사는 전투력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보고.”

다시 소대장의 무전이 들어왔다.

“적의 움직임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다 샘이 떠났다는 얘기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웬만한 상황에서도 감정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만큼 충분히 훈련된 소대원들이지만 자꾸 샘을 입에 담다 보면 누군가 욱 할 수도 있다.

놀라면서 주위 돌멩이나 풀포기를 건드려 먼지라도 피어 올린다면 치명적이다.

해가 조금씩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새 소리 하나 없는 고요가 전장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살육의 방아쇠를 아직은 당기지 않고 있었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 있는 자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죽은 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오후 3시31분이었다.

교전거리 150미터 인근에 도착한 듯 보인다.

“장난 아니구만”

관측경으로 소대원들을 살피던 오민철이 감탄했다.

너무 느리게 가는 바람에 소대원들을 찾아 살피는데 적지 않은 애를 먹고 있었다.

더구나 옷에 땀이 배면서 흙이 달라붙어 완벽한 위장이 되었다.

잠시 시선을 놓치면 찾는데 워낙 느리기까지 해 두 눈을 부릅뜨고 살피지 않으면 얼른 체크가 되지 않는다.

꿀꺽!

꿀꺼어억!

목이 마른 모양이다.

무전기를 통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작전이 작전이다 보니 물도 마실 수 없다.

소대장 다리다 상사의 얼굴은 누런 흙먼지로 가득했다.

땀이 흐르고 그 위로 흙먼지가 쌓이고 다시 땀이 흐르고 흙먼지가 쌓이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나의 누런 벽돌로 보일 지경이었다.

아마 깜빡이는 눈만 아니라면 사막에 자주 나타난다는 호박귀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슥!

왼손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거리를 살피기 위한 것인데 159미터라는 숫자가 보인다.

9미터를 더 이동해야 했다.

쓰억!

20여 센티 움직이고 한참동안 꼼짝을 하지 않는다.

오른쪽 뺨을 지면에 대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익어 버릴 듯 뜨겁다.

좌우 뺨을 교대로 지면에 대는데 점차 쓰라려 온 것이 화상을 입은 듯 싶다.

“도착!”

가장 먼저 오스카르의 목소리가 무전기에 울렸다.

“세르게이 도착!”

“비렌드라 도착!”

도착한 소대원들의 무전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150’

이란 숫자가 시계에 찍히며 소대장은 한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외인부대에 뛰어 든지 20년이 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전쟁과 작전을 나갔으나 980미터를 6시간동안 포복으로 이동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불현 듯 권총수가 떠올랐다.

스나이퍼 스쿨에서 300미터를 이동하는데 36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고 말을 했었다.

980미터를 6시간 동안 이동하는데도 체력이 소진되고 갈증에 목구멍이 찢어질 듯 하고, 얼굴은 화상까지 입었다.

그런데 섭씨 34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우림속에서 300미터 36시간이란 얼마나 잔혹할까.

열대 우림은 사막과 달리 온갖 곤충 특히, 맹독을 지닌 파충류가 우글거린다.

그런 곳에서 36시간동안 포복을 했다는 말에 군인 특유의 과장이 섞인 이른바 설레발이라고 폄하했다.

그런데 열대우림은 아니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해본 느린 이동, 그것도 포복을 이용한 오늘 접근은 살인적이었다.

“저격 팀 보고!”

소대장이 무전을 보냈다.

30도 정도 되는 산등성이 아래에 납작 엎드렸다.

적들은 아직 자신들의 턱 밑에 저승사자들이 다가와 있다는 걸 모르는 듯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웃는 소리도 들린다.

권총수는 상황을 조준경에 드러난 그대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잡담을 하고 웃는다는 보고에 소대장은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6시간 고문에 가까운 포복을 한 보람을 느끼기 시작 한 것이다.

“11시 방향 PKM, 1시 방향 PKM, 12시 방향 M2.”

모든 건 소대장을 중심에 놓고 봤을 때이다.

“인원 변동 있습니다. 다섯 명의 소총수가 더 늘었습니다.”

출발 전 확인시에는 19명이었다.

다섯 명이 늘어났다는 건 이곳 방어를 더 강하게 구축했다는 의미라고 봐야 한다.

하긴 정규군 소대병력 밖에 되지 않는데 기관총 2정에 중기관총인 캘리버 50까지 배치했다는 건 IS측에서 확실히 21번 국도를 방어하겠다는 의지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투준비.”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격은 저격수의 신호에 맞춘다.”

“알겠습니다.”

“네!”

“네!”

소대장의 명령을 충분히 전달 받았다는 것을 한 명 한 명 분명히 대답해주어야 한다.

적은 인원이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티끌만큼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사분란 해야 한다.

단 한명이라도 작전의 목표와 의도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첫탄 표적 M2.”

오민철이 권총수의 동작을 보며 무전기로 전달했다.

“액션!”

소대장 명령이다.

“저격 3초전.”

그때부터는 소대원들 모두가 마음속으로 3초를 센다.

방아쇠에 걸린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가 굽혀진다.

타아앙!

정확히 오후4시,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퍼억!

총알은 M2 사수를 보호하는 철판의 빈 공간, 한 가운데를 파고들어갔다.

앉은 자세에서 총을 쥐고 있던 사내는 채 20센티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으로 날아온 총알에 날아갔다.

총성과 함께 소대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했다.

드륵!

드드드드!

HK416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컥!

으윽!

갑작스런 기습에 상체가 노출된 세 명의 IS대원이 참호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우당탕!

퍼퍽!

한 구의 시신이 치고 올라가는 소대원들 발 앞으로 굴러왔는데 목구멍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빠아앙!

또 한 발의 충성이 울리며 왼1시 방향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던 사내가 조는 사람처럼 앞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제서야 비로소 누군가 스나이퍼라고 외쳤다.

뚝!

미친 듯이 총을 갈기던 IS대원들이 사라졌다.

스나이퍼란 말에 본능적으로 숨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다시 사격이 시작되었다.

하나 참호 밖으로 총만 나왔을 뿐 단 한사람의 얼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아멘 사격.

아멘 사격의 원조는 미군이다.

월남전에서 ‘주여 저를 살리고 적을 죽여 주소서’ 기도를 하며 참호 밖으로 총만 내놓고 갈겼다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눈을 감고 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굉장한 운이 나쁘지 않는 한 맞는 사람은 거의 없다.

투쟁적이고, 이교도들을 향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달려들던 뉴스 속 IS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본능은 어떻게 다스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저격수다.

아무리 배짱이 좋다고 해도 저격수 앞에서 고개 빳빳하게 들고 방아쇠를 당길 사람은 없다.

M2와 PKM 1정을 제거했다.

남은 것은 1시 방향의 PKM인데 총을 잡는 사수의 머리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오른손만 꺼내 방아쇠를 당긴다.

꿈틀!

권총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방아쇠를 쥔 오른손 일부가 보이긴 하지만 980미터라는 거리가 부담스럽다.

표적은 작고 거리는 멀다.

그것도 종(縱)표적이 아닌 횡(橫) 표적이다.

손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으면 표적의 면이 넓어져 훨씬 낫지만 가로로 뻗쳐있어 방아쇠를 잡고 있는 손의 면적이 너무 좁다.

탕!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

이라크 전쟁 때 기관총 한 정 때문에 미군 9명이 전사한 기록이 있다.

바그다드를 함락하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할 팔루자.

미 해병 26원정부대 산하 88대대 7중대는 팔루자를 들어가는 아스살 고개를 넘고 있었다.

개전 초기 반짝 저항하던 이라크 군은 거의 싸움을 포기한 듯 했고, 미군은 큰 위험 없이 빠르게 바그다드로 진군하고 있었다.

드르륵!

묵직한 기관총소리가 울리면서 앞서 가던 중대장 리먼 대위가 쓰러졌다.

‘매복이다’

이라크 군이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두두두두!

작정하고 기다린 듯 퍼붓는 PKM 앞에 서너 명의 미군이 방아쇠도 당겨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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