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70화 (70/651)

제70화: 킬(Kill)1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앞서가는 권총수의 등을 한동안 노려보던 오민철은 이를 깨물었다.

‘대력금강심법을 완전히 배우기 전까지는 참아야 한다’

솟구치는 분노를 삭히며 걸어갔다.

1소대는 논둑길을 따라 이동했다.

치지직!

문득 통신병 나카야마가 송수신기를 귀에 댄다.

“여기는 천사장, 천사 응답하라.”

“여긴 천사. 무슨 일인가?”

“현재 위치를 말하라.”

재빨리 소대장이 다가왔고 송수신기를 받아 쥐었다.

“카이르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남서쪽 3킬로 지점을 통과하고 있으며 30분 정도면 작전지역에 도착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

“무전기를 개방하고 상시 명령에 대기하라.”

“잘 알겠다. 이상.”

소대장은 송수신기를 나카야마에게 건네주었다.

푹푹 찐다.

강수가 적은 중동지역이지만 지난 5년 이래 최악의 가뭄이라는 뉴스가 연일 보도 되고 있었다.

작은 미풍이라도 간간이 불던 바람이 오늘따라 완전히 침묵이다.

공기도 없는 진공관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사주 경계.”

소대장의 무전이 떨어지자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막색 군복을 걸친 소대원들이 순식간에 은폐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소대장은 통신병 나카야마로부터 쌍안경을 넘겨받아 20미터 앞에 있는 대추야자나무 아래로 기어갔다.

대추야자나무를 은폐물 삼아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능선을 살폈다.

능선이랄 것도 없는 작은 언덕 정도의 규모이지만 길게 뻗어 내려와 있었다.

능선 너머가 모술이다.

“바글바글 하군.”

쌍안경으로 적정을 살피던 소대장이 중얼 거렸다.

소대장의 쌍안경이 좌우로 움직였다.

“육안으로 확인된 참호가 셋.”

사사삭!

통신병 나카야마가 재빨리 수첩에 받아 적었다.

“병력 19명, 화기 PKM 2정.”

소대장의 적정 관찰은 계속 이어졌다.

“맙소사. M2.”

M2란 소리에 사주 경계를 하고 있던 소대원 모두가 깜짝 놀란다.

정확한 명칭은 M2HB, 흔히 캘리버 50으로도 불린다.

생산년도는 1933년이지만 파생과 개량을 거듭하며 아직도 미군의 전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쏜다기 보다는 쏟아 붓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무자비한 중기관총이다.

분당 600여발을 쏟아내고 유효사거리가 2킬로 가까이 되는 미군 보병중화기가 IS 수중에 있다.

IS 수중에 M2가 들어갔다는 건 최소한 1개 소대 병력 정도의 미군을 죽이고 노획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M2는 소대 단위의 중화기이기 때문이다.

“민철, 거리 체크.”

오민철이 다가와 관측경을 꺼내 전방을 살폈다.

“직선거리 980입니다.”

1킬로가 채 안 된다.

이쪽과 저쪽 980미터 사이에는 꾸불꾸불한 논두렁을 가진 논이 있었다.

논두렁 군데군데 버드나무와 호두나무가 서 있었다.

논두렁의 나무들은 일하는 농부들이 잠시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 사막 그늘 목(陰木)들의 특성은 위로는 잎이 무성한데 반해 지면에서 상당한 높이까지는 가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공중감시로 부터는 어느 정도 보호를 받지만 지상감시는 피하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소대장은 능선과 이쪽 언덕 사이에 펼쳐진 논을 살피며 접근할 방법을 생각하는 듯 했다

논은 툭 터진 개활지다.

적과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논을 통과한다는 건 자살행위다.

모술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능선이지만 지금까지 두 번의 공격이 모두 실패로 끝날 만큼 저항이 강력했다.

일단 모술 시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전황은 연합군쪽의 일방적인 우위로 흐를 것이다.

IS는 전투기가 없다.

반면 연합군은 공중화력에서 압도적이다.

공중에서 쏟아내고 지상에서 훑어 버리면 의외로 모술 장악이 쉬울 것이라는 게 연합군 참모본부의 판단이다.

“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듯 소대장의 입술을 비집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회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20킬로 가까이 돌게 된다.

우회한다고 하여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21번 국도를 중요시 여긴다면 웬만한 곳에는 여러 형태의 매복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권총수의 음성이 소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하도록.”

“슬로우 포복입니다. 일명 퍼스시션(position).”

“제자리 포복?”

“그렇습니다. 현재 시간이 오전 10시2분입니다. 오후 4시를 목표로 다가가는 거죠.”

“980미터를 6시간 동안 포복으로 접근하자는 건가?”

“앞으로 갈수록 더워질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열이 끓어올라 공기가 이글이글 불타오르면 관측병의 시선도 따라 흔들리죠. 지열은 관측병의 시선을 쉽게 피로에 지치게 만들 겁니다. 조금만 오래 쏘아보면 착시가 일어나고 눈에 피로감을 느끼겠죠. 초점을 잡지 못하고 시선이 흐리멍덩해집니다. 그때를 이용해 퍼스시션 포복으로 다가간다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붙은 퍼스시션 크라우(crawl:포복) 훈련은 스나이퍼 스쿨에서 배운 것이다.

느리게, 한참 느리게...

사람인지 지형인지 구분 못할 정도로 느리게 접근해가는 이동 방식이다.

워낙 느린데다 주위 지형과 잘 어울리는 모양으로 몸의 형태를 바꾸기 때문에 좀체 발각되지 않는다.

지금 같은 대낮에 이글거리는 해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모두 들었나?”

소대장의 목소리에 결의가 엿보인다.

그건 권총수의 계획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포복이란 자체가 굉장한 체력을 소모시키는데다 팔꿈치와 무릎 부상은 필연적이다.

이미 카스텔로다리 훈련소에서 전투복이 닳도록 했던 포복이다.

교관들은 전장에서 사격을 잘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포복이 능숙할수록 생존율이 높다고 했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외인부대의 역사를 보면 포복에 의한 극적생존과 작전성공 실화가 적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미군 교범에도 포복의 중요성에 대한 기록이 어떤 병과보다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980미터를 6시간에 주파한다. 거의 대가리 처박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누군가 혼잣말을 중얼 거렸는데 내뱉은 호흡이 힘겹다.

50도에 육박하는 태양 볕이면 바위나 시멘트가 아닌 흙일지라도 후끈거린다.

오랜 가뭄으로 말라붙은 논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었고 이글거리는 해는 땅을 거의 구워 놓았다.

“개인 간격 20미터, 자세는 낮은 포복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후 4시를 전후해 교전 거리 150미터까지 접근한다.”

사실 교전거리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2차 대전에서는 서로가 얼굴 확인이 가능할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갈수록 소총의 성능이 좋아지고, 스코프라는 또 하나의 첨단기기가 태어나면서 이제는 200미터 이상, 원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대치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기습하여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려면 100미터 내외까지는 다가가야 한다.

기습하는 쪽에서는 가까울수록 좋다.

더욱이 돌격소총 중 으뜸으로 치는 HK416의 화력은 근접전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더욱이 숫적 열세인데다 적은 참호 속에 들어가 있다.

150미터는 여러 상황을 계산해 나온 거리일 것이다.

한 방.

단 한 번 기습으로 확실히 궤멸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까워야 하는데 소대장은 150미터에 오늘 운명을 걸고 있었다.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달라붙어 언덕을 내려간다.

20여 미터 정도 되는 언덕을 내려가는 소대원들 모두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소대 무전기를 통해 벌써부터 작은 신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른 감봉(사막에서 자라는 일년생 풀)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길리슈트를 걸친 권총수와 오민철은 말라죽은 감봉사이에 최대한 몸을 낮췄다.

주위에 마땅히 엄폐할 만한 바위나 구덩이가 없다.

결국 마른 감봉을 이용해 최대한 위장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젠장!”

옆에 엎드린 오민철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마른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단번에 저격 위치가 드러날 가능성은 적어 보였으나 은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꾸 걸린다.

그야말로 재수 없는 총알이라도 한 방 정면으로 온다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다.

언덕 아래쪽으로 작은 바위 몇 개가 있지만 경사가 40도 가까워 아무리 땅을 판다고 해도 총구는 논바닥을 겨눌 것이다.

“이동사격을 합시다!”

야간 저격 때처럼 총을 쏘고 재빨리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다.

근처에 가시나무 넝쿨과 마른 풀들이 듬성듬성 쌓여 있어 이동만 잘하면 해볼 만 했다.

“괜찮겠어?”

“방법이 없잖아.”

권총수가 조준경 배율을 조정하고 있을 때 무전이 걸려왔다.

“적의 상황은 어떤가?”

고개를 들 수는 있으나 능선 중턱에 진을 치고 있는 적을 보려면 고개를 한 참 올려야 한다.

그건 위험하다.

자신들은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적정은 저격팀에게 맡긴다.

“변화 없습니다.”

관측수인 오민철이 대답했다.

“한 놈은 하품까지 합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적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민철의 표정이 비장했다.

조준경 속으로 한 사내가 보인다.

M2를 거머쥐고 있는 복면 사내.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관총 좌우로 두 개의 철판을 세워 달았다.

마치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새다.

철판을 박스 형태로 만들어 덮어씌운 것이다.

나름 M2사수가 운명처럼 갖고 있는 지나친 상반신 노출을 상당히 가리는데 성공해 보였다.

“저기 봐. 3시 방향.”

권총수는 총구를 돌렸다.

조준경속에 두 사내가 들어온다.

미군 사막복 바지에 헐렁한 검정색 외투를 걸친 백인사내와 그를 안내하는 듯 자세를 낮추고 따르는 대머리의 무슬림 남자.

“가만!”

권총수가 빛나는 눈으로 사막 복 바지를 입은 사내를 살피더니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그 놈 같은데?”

“누구?”

“칼잡이.”

“블랙 데블(Black Devil)?”

“잘봐 봐. 그놈이 맞아.”

오민철이 숨을 죽이며 살폈다.

한순간 오민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 맞는데, 틀림없어. 칼잡이 맞아.”

두 사람은 더욱 신중하게 살폈다.

‘칼잡이(a butcher)’, 서방 언론에 따라 도살자, 학살자, 사막의 사탄 등 약간의 호칭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칼잡이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나면 피가 흐른다.

전장 속에서 목숨 걸고 구호 활동을 하는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회원들의 목을 잘랐고, 레바논 국영 TV 기자를 철창 속에 가둔 뒤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였다.

포로로 잡힌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을 대검으로 자르면서 전 세계인들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복면에 가려 있어서 그의 정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졌다.

분명한 건 항상 영어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조금씩 영어발음과 행동거지를 분석하고 용의자를 좁혀 들어가던 CIA는 그가 델타포스를 나온 미국 출신 샘이라고 발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