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KAS(Kilo Alpha Services)2
그 시각 여단 정문으로 랭글러 지프 한 대가 들어섰다.
무장한 위병이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병사 면회를 왔소.”
“차는 저쪽 주차장에 세우시고 옆 건물로 들어가셔서 신청하면 됩니다.”
“고맙소.”
지프는 오른쪽 주차장으로 들어가 멈췄다.
좌우 앞문이 열리고 두 명의 백인이 내렸는데 깔끔한 정장차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조종사 선글라스를 꼈고 오른쪽 회색 양복을 걸친 사내의 손에 가죽 가방 하나가 들렸다.
면회실 문을 열고 들어선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했다.
면회를 하고 있는 병사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든 회색정장의 사내가 책상을 놓고 앉아 있는 면회실 행정병에게 물었다.
“면회실 아니오?”
“맞습니다. 만나고 싶은 병사의 소속을 말해 주십시오.”
“외인7중대 1소대 권총수 이등병과 오민철 이등병이오.”
행정병은 컴퓨터 키보드를 때리더니 전화기를 들었다.
“면회실입니다.”
그러면서 둘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잠시 듣고 있던 행정병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두 병사는 조금 전 헬기를 이용해 작전지역으로 떠났습니다.”
“면회가 어렵다는 것이오?”
“귀대 전까지는 불가합니다.”
두 백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작전 종료는?”
질문을 던져놓고 스스로 핏 웃고 말았다.
작전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행정병 또한 빙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슥!
가방을 든 사내가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이 명함을 권총수 이등병에게 전해 줄 수 있겠소?”
“전달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죠.”
“고맙소.”
“수고 하시오.”
두 사람은 행정병과 악수를 나눈 후 문을 열고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행정병은 가방을 든 사내가 건네주고 간 명함을 보았다.
“킬로 알파 서비스.”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병사 한 명이 들어섰다.
“뤼까. 이걸봐.”
뤼까라는 병사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혹시 아느냐는 듯 시선을 던진다.
명함을 보던 뤼까의 눈이 커진다.
“아는 모양이지?”
“누구에게 받은 거야?”
“조금전 나가는 두 사람 못 봤어, 그 사람들.”
“랭글러 지프에 오르던 두 사람?”
“지프는 모르겠고 그들이 주고 갔어.”
뤼까는 다시 한번 명함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미국에 아카데미가 있다면 영국에는 이곳 킬로 알파 서비스(KAS: Kilo Alpha Services)지.”
“민간 보안회사란 말이야?”
행정병도 아카데미는 아는 모양이었다.
“아카데미가 네이비 씰 위주로 선발하듯, KAS는 영국의 특수부대 SAS위주로 뽑지. 웬만한 SAS출신 전역자들 거의가 이곳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돼.”
행정병이 명함을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SAS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기관에서 두 사람의 면회를 왔다는건 스카웃 목적이 확실했다.
Speed:스피드(속도), Aggression: 어그레션(공격성), Surprise:서프라이스(기습)의 앞머리 세 글자를 따서 SAS로 불린다.
SAS를 딱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구상 모든 특수부대의 아버지, 이름하여 원조다.
미국을 대표하는 네이비 씰,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이스라엘의 매트칼 모두 SAS를 모방하여 창설되었다.
비록 근래에 들어 네이비 씰의 활약이 알려지고 이제는 한 수 아래라는 혹평까지 듣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위대한 특수부대임에는 분명했다.
민간 보안업체에 근무하는 외인부대 출신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근무지까지 찾아와 명함을 주고 가는 경우는 없었다.
* * *
헬기가 남쪽으로 기수를 트는 것이 적지인 모술로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조종사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끄러운 소음에 대화는 불가능했다.
“여긴 거스트(Gust)말하라 본부.”
조종사가 쓰고 있던 헤드셋으로 교신을 하기 시작했다.
“출발했습니다. 30분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파파파파!
헬기는 더욱 속도를 냈다.
작전지도를 놓고 여러 개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21번 국도를 통해 모술 서북부지역을 진입하려던 프랑스군 27여단 예하 34대대와 36대대, 그리고 외인7중대였다.
지금까지 세 차례 대대적인 공세를 퍼부었지만 박격포와 PKM, AK74 최신형으로 무장한 IS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추정된 IS 병력만 1,000여명.
외인 7중대장 튀랑대위 왼쪽 뺨에 거즈가 굳게 붙어 있었다.
천우신조였다.
총알이 5밀리만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IS에서 프랑스군 27여단이 언제든 밀고 들어 올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단단한 방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IS가 악착같이 21번 국도를 막으려는 이유는 뚫리면 자신들의 자금줄인 카오스 유정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고 있는 세 사람 34대대장과 36대대장, 그리고 외인 7중대장의 표정은 굳어있다.
여단 소속으로 모술 시내로 진입한 부대는 아직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급했다.
먼저 진입한다는 건 군인에게 엄청난 영광이고 명예이다.
그러나 지난 세 번의 공격을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 있는 놈들의 전투력이 만만찮소. 말이 IS지 내 생각에는 전직 군 출신들이 아닌가 싶소.”
IS의 요원 모집에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원유를 팔아 생긴 막대한 자금으로 차량과 주택, 심지어 여자까지 제공한다는 광고는 잠자던 전직 특수부대원들을 전쟁터로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중대장님! 거스트입니다.”
중대 통신병이 문을 열고 들어와 보고 했다.
튀랑대위가 재빨리 밖으로 나가 무전 송수신기를 잡았다.
“여긴 본부, 거스트 어딘가? 오케이. 수고했다.”
송수신기를 내리고 상황실로 들어선 튀랑대위가 말했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34,36 두 대대장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서 재빨리 상황실 입구로 고개를 돌렸는데 약간 열린 문틈 사이로 군홧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 졌고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요.”
34대대장이 입을 열어 말했다.
문이 열리면서 군장을 지고 M10백을 맨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섰다.
척!
두 사람은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어서 와라.”
튀랑 대위가 반색했다.
“휴가 복귀 신고합니다.”
두 사람은 무사히 1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면서 힘차게 경례했다.
“두 사람, 미안하다.”
중대장 얼굴에는 진정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어 작전회의에 같이 참여했다.
샘은 21번 도로에서 모술로 들어오는 앗스라 고개 초소에 나타났다.
미군 사막복 바지에 상의는 헐렁한 검정색 외투를 걸쳤으며 입가에는 말보로 레드 한 개비가 물려 있다.
샘이 나타나자 초소근무자들이 바짝 긴장했다.
샘에 대한 IS 대원들의 두려움은 크다.
미국인이면서 델타포스를 제대했다.
제대 후 민간 보안업체 마르크 반 바스켓 용병으로 활약하다 FBI에 쫓기게 된다.
아마존에서 목재를 생산하는 미국의 ‘피카스 목재’ 경비원으로 일하다 브라질 환경단체와 충돌했는데 그 와중에 세 명을 죽인 것이다.
FBI 지명 수배가 되자 아프리카로 숨어들었고, 어느 날 IS특수부대 ‘알무하아리불(불멸의 전사)’의 부대장이 되었다.
최고위층과 직접 통하는 막강 파워를 지녔으며 이곳 21번 도로와 인근으로 들어오는 프랑스27여단병력을 막는데 확실한 전략 전술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머잖아 적은 다시 온다. 내 말을 알겠나?”
“옛!”
10여명의 초소 경비병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샘은 벽에 걸린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했다.
“3중대 어떤가?”
“이상 없습니다.”
“4중대?”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습니다.”
“7,8중대 보고하라.”
“아직까지 평온합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절반을 잃는다. 내 말을 알겠나. 겁먹을 것 없다. 우린 반드시 이길 것이다.”
초소 좌우로 매복하고 있는 각 중대를 향해 비장한 결기를 보이며 송수신기를 내렸다.
불멸의 전사들은 거의가 군 출신들이다.
걔 중에는 자기나라 특수부대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다른 지원자들 보다 보수도 많이 받고 여자들도 미인들이다.
대우만큼이나 IS고위층은 상당한 믿음과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샘은 빼앗은 미군 험비를 타고 초소를 떠났다.
“어디로 갈까요?”
험비를 모는 백인 사내가 물었다.
그 역시 미국인으로 제24해병원정부대 출신 라일리였다.
이라크 전 개전초기에 출전했고 2008년 제대했다.
전쟁의 후유증은 컸다.
결국 사회적응에 실패했고 마약에 빠졌다.
그러다 IS의 모집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 온 것이다.
“카이르로 간다.”
부부붕!
험비는 크게 소리를 내며 달렸다.
아무리 튼튼한 둑도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거침없다.
지금 34대대와 36대대, 외인 7중대가 에워쌓고 있는 21번 도로 주변 10킬로는 철옹성이었다.
IS 입장에서는 카오스 유정을 지키기 위해 정예병력을 배치한 것이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햇볕이 쑥쑥 강해지면서 사방이 열기에 덮인다.
내리쬐는 햇빛을 막기 위해 부니헷을 쓴 일단의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묵직한 군장을 등에 지고 이동하는 군인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1소대다.
선두에서 부대를 이끄는 소대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만의 느낌일까.
소대원들 모두 어떤 자신감에 차 있는 듯 보인다.
지난 3번의 전투에서 어이없이 물러나야 했지만 다행스러운 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사를 잃으면 이겨도 불편하다.
어제까지 같이 숨 쉬며 농담하던 전우의 죽음은 생존 병사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어쨌든 권총수와 오민철이 돌아오면서 소대 분위기는 살아나고 있었다.
“나카야마.”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야 쪽바리.”
나카야마가 대꾸를 않자 버럭 소릴 질렀다.
“왜 불러 조센징?”
“이런 씨벌 놈이 뒤질라고.”
오민철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나카야마가 히죽 웃었다.
“말해.”
“너 어제 밤 꿈 잘 꾼 줄 알아. 어휴 이 쪽바리 새끼를.”
오민철은 주먹을 들었다가 내렸다.
“어떡하냐? 너 휴가 좆 됐다.”
다음 차례가 나카야마와 비렌드라였다.
그런데 작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휴가는 무한 연기된 것이다.
“미찌코가 목욕 재개하고 겁나 기다릴텐데, 흐흐흐!”
야릇한 표정을 지었는데 미치코는 나카야마 애인이다.
“크크큭!”
여기저기서 소대원들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카야마는 전혀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저 자식 괜찮아. 쪽바리만 아니면 친구로 사귀어 볼만한데.”
“사귀어, 우정에 무슨 국경이 있어?”
뒤를 걸어가는 권총수가 말했다.
“우정에 국경은 없지만 역사에 국경은 있지.”
“나카야마가 무슨 잘못이 있어. 조상들이 못 된거지.”
“잘못은 없지만 그냥 밉잖아. 총수야. 말 나온 김에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까?”
“전쟁터에서 무슨 개소리야.”
“개...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