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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8화 (68/651)

제68화: KAS(Kilo Alpha Services)1

칸나리란 사내가 다가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라이터를 찾는 듯 주머니를 더듬다 손이 허리 쪽으로 슬그머니 돌아갔다.

휙!

느리게 돌아가던 손이 번개처럼 빨라지며 허리 뒤에 숨겨놓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칸나리란 사내가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권총수는 세스나를 탈 때 부터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생사현관이 타통된 지금 권총수의 감각은 거의 동물수준에 육박하고 있었다.

투란은 자신들에게 무척 부드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권총수의 본능은 부드러움 속에 깃들어 있는 음산한 기운을 감지했다.

일테면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음을 감지 한 것이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만약 어떤 사건이 생긴다면 비행기가 아닌 자신들을 국경 너머까지 태우고 가게 될 인물로부터 시작될 것을 짐작했고, 그래서 돌멩이 두 개를 주워든 것이다.

타악!

권총이 뽑혀 앞으로 나올 때 돌멩이 한 개가 칸나리의 손등을 찍었다.

“어흑!”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권총을 떨어뜨린 칸나리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쌌다.

주르르륵!

오른손을 감싼 왼 손가락 사이를 흐른 핏물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뼈가 부러졌음을 의미했고 상상을 초월한 고통은 근육과 신경까지 끊어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놀란 사람은 투란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되어 칸나리가 권총을 떨어뜨리고 신음을 흘리는지 모른다.

저벅저벅!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더니 떨어진 권총을 주워들었다.

“HK45.”

양손으로 권총을 잡고 한발을 당겼다.

탕!

총알이 발사되고 탄피 한 발이 뛰어 나온다.

탕!

타아앙!

서너발을 연거푸 당겼다.

스윽!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손에 들린 총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총인데.”

총은 명품인데 사용처가 빛을 바래게 한다는 의미였다.

“우릴 빙다리 핫바지로 본 모양이군.”

딸칵!

권총수가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IS를 지원하기 위해 오는 사람,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민간 보안업체 용병들, 가끔은 갑작스런 항공편 단절로 육로를 이용해 들어가야 하는 이라크 주재 외국 상사원들을 상대로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군.”

칸나리는 피를 멈추기 위해 손목 부근을 왼손으로 감쌌지만 역부족이었다.

투투툭!

시간이 흐를수록 피는 더욱 흘렀다.

알바르(번개) 택시는 터키 국경 도시 바트만에서 이라크 국경까지 태워다 준다. 기존 차체에 나름 철판을 덧대 방탄 기능을 높인 성능 좋은 지프를 이용해 영업하며 보통 한 사람당 미화 200달러를 받는다.

중요한 건 200달러를 받고 제대로 데려다 주면 문제가 없는데 적지 않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육로로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의 충실한 운송수단이었다.

하지만 욕심이 커지면서 강도, 살인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넓은 사막에 묻어 버리면 쥐도 새도 모르고 항공정찰로 수색해도 알아내지 못 한다.

탕!

갑자기 권총이 발사되었다.

오민철까지 칸나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틈을 노려 투란이 경비행기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경비행기에 숨겨 놓은 자동소총을 가지러 가기 위해 게처럼 옆걸음으로 움직이다 권총수에게 걸린 것이다.

퍽!

이마에 권총을 맞은 투란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칸나리의 표정이 굳는다.

히죽!

권총수가 미소를 짓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칸나리란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사막에 엎어졌다.

“총수야?”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오민철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전쟁중에 일어난 사고가 아닌 일반인을 상대로 벌인 살인은 처음이었다.

“어쩌지.”

신분이 발각되면 엄청난 파장이 밀려올 것이다.

“형 삭초제근이라는 말 알아?”

“알지. 화근이 될 것은 미리 뿌리부터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 아냐.”

707 근무시절 교관들이나 선배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다.

적지에서 값싼 동정심이나 인간애는 자칫 큰 화를 부른다면서 웬만하면 손에 사정을 두지 말라는 의미다.

“얘들 살려줘 봤자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이 짓거리 할 친구들이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켤 것이고, 없애 버리는게 나아.”

권총수는 죽은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터키와 우리 부대가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우리 둘 뿐 아니라 소대원들도 자주 이용하는데 뭔 일 생길 줄 어떻게 알아.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오민철은 더듬거렸다.

권총수의 행동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뭐해 안 타?”

어느새 권총수가 서버번의 핸들을 잡고 있었다.

오민철이 조수석에 올랐고 차가 출발했다.

권총수는 입에 말보로 레드를 물고서 핸들을 잡았다.

“오랜만에 잡아 보는군.”

권총수가 목소리를 깔며 웃더니 라디오를 켰다.

아랍어 방송이 흘러나왔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대충은 알아듣는다.

“총수야, 그 자식들이 총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

“투란이란 놈을 처음 만날 때부터 간파했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바라보는 눈은 살기를 담았더라고, 아 요놈 봐라 하며 그때부터 경계를 했지.”

“그것도 대력금강심법 덕이냐?”

“그렇지. 아참 어떻게 됐어? 심법 외웠어?”

“그게.”

오민철이 더듬거렸다.

한 달 전에 구결을 적어 주고 외울 것을 주문했다.

“뭐야? 아직도 못 외웠다는 거야?”

“잘 안 된다. 내 머리가 나쁘긴 해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외우거든, 그런데 대력금강심법 구결은 뭐가 뭔지 헷갈리고.”

“군인정신이 어떤 정신이야?”

“제정신이 아닌 걸 군인정신이라고 하지.”

“바로 그거야.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는 절대 외울 수 없어.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돌아가라고. 내 말뜻 알겠어.”

“기어코 외우고 말거야.”

“외우지 못하면 전혀 진도를 나갈 수가 없어.”

“생각 난 김에 외워야겠다.”

오민철이 핸드폰을 꺼내 보며 대력금강심법의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차량들이 밀려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 국경검문소가 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서버번을 적당한 곳에 버리고 작은 트럭을 빌려 타고 있었다.

계속 끌고 가다 같은 패거리들 눈에 죽은 칸나리 차량이라는 것이 목격이라도 되면 의외로 골치 아플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트럭운전사 지브랄티는 ‘페윌리’라는 우리나라 시골 읍내 정도 되는 곳에 살고 있었다.

지역에서 만든 양탄자를 국경 너머 터키에 내다 파는 무역상이었다.

이라크에서는 잘 팔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터키에서 파는 가격의 절반도 받아 내지 못한다.

국경을 넘어 왕복 200킬로를 다니다 보면 위험요소는 있으나 워낙 이익의 차이가 커서 포기할 수 없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러시아제 기관총 PKM이 설치되어 있다.

AK로 무장한 군인들이 통과하는 차량과 화물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씩 전진하던 트럭이 마침내 섰다.

지브랄티가 유리를 내리며 미소 띤 얼굴을 했다.

“앗 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검문 군인 역시 지브랄티를 아는 까닭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옆좌석에 있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발견하고 표정이 변한다.

그때 지브랄티는 두 사람에게 받은 휴가증을 건네주었다.

휴가증을 받아 살피던 검문 군인이 인식표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목에 걸고 있던 외인부대 인식표를 벗어 주었고 군인은 인식표에 찍힌 외인부대 마크를 확인하더니 씨익 웃으며 건네준다.

“수고하시오.”

권총수가 거수경례를 하자 이라크 군인 역시 경례를 받아 주었다.

부우웅!

트럭은 여유롭게 검문소를 지났다.

후세인을 반대했던 사람들이라고 자국에 들어와 있는 미군이나 프랑스, 캐나다, 영국군에게 호의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독재자 후세인과 그 추종세력을 몰아내고, IS를 물리치기 위해 들어온 군대지만 이른바 이교도들이다.

이라크 정부 허락도 받지 않고,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거리를 활보하고 자국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에 분노한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슬람 여인들을 바라보는 야릇한 그들의 시선은 당장 패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뿐인가. 일부 군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를 현지 주민들에게 전파하려다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지브랄티도 그런 이라크 국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권총수와 오민철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비록 외인부대원이지만 감정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폐월리에 트럭이 도착했다.

“앗 쌀라 말라이쿰.”

“앗 쌀라 말라이쿰.”

서로가 악수를 나누고 환한 얼굴로 헤어졌다.

부우웅!

두 사람은 사라지는 트럭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저기 가서 뭣 좀 먹고 가자.”

페월리에서 아르빌에 있는 부대까지는 20킬로가 조금 넘는다.

도로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1시간이면 충분히 들어 갈수 있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둘은 흙벽돌로 만들어진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판에 걸린 것처럼 산탕(양 갈비탕)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새콤한 맛만 뺀다면 우리의 갈비탕과 비슷하여 둘은 자주 먹었다.

“두 그릇 주세요.”

흰색의 둥근 페즈를 쓴 사내가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저것 봐!”

오민철이 구석에 걸린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복면을 한 IS가 커다란 트럭 뒤에 세 구의 시신을 매달아 끌고 다녔다.

주위 시민들이 ‘IS는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를 외쳤고 트럭에 타고 있던 IS대원들이 AK를 쏘며 뭐라고 떠들고 소릴 질렀다.

“학!”

오민철이 깜짝 놀랐다.

화면이 당겨지며 끌려 다니는 시신이 클로즈업 됐는데 외인부대 군복이었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외인부대 군복이라는 것에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굳어버렸다.

둘은 산탕을 먹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타고 부대로 향했다.

정문에서 내려 휴가증을 제출하자 통과 허락이 떨어졌다.

부대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쯤 여단의 주력부대인 수색대대를 비롯한 모든 병력이 모술에 진입하기 위해 IS와 거센 충돌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귀대 신고를 할 사람이라고는 유일한 중대 대기병력인 행정관 라파엘 중사뿐이었다.

둘은 라파엘 중사에게 휴가 복귀 신고를 했다.

“잘 다녀왔나?”

라파엘 중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예!”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입대 이후 첫 휴가였지?”

“그렇습니다.”

“이등병 권총수, 행정관님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라.”

“오면서 알자지라 방송을 봤습니다.”

식당에서 봤던 뉴스 화면을 말하자 행정관 얼굴에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맞다. 외인부대원 셋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을 맞았다. 우리 3소대원이다.”

“네엣?! 누굽니까?”

“발튼, 파올라, 제니스 세 사람이다. 모술 서북쪽 21번 도로 인근에서 작전을 벌이다 본대와 떨어져 고립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현재 조사중이긴 하지만 무전교신에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물론 절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셋 모두 동구권 출신들로 외인부대 3년차 선임들이다.

발튼과 파올라는 혼인을 했으며, 제니스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드물게도 카톨릭 수사 출신이다.

띠리리릭!

그때 책상위에 올려진 전화기 벨이 울렸다.

군 통신 전화다.

“외인 7중대 라파엘 행정관입니다.”

잠시 듣고 있던 라파엘 중사가 힘차게 소리쳤다.

“예! 예! 지금 막 귀대 했습니다. 출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라파엘이 전화를 끊더니 입을 열었다.

“비상이다. 즉각 출동 준비해라.”

“지금요?”

“10분 내로 전투군장을 갖추고 벙커 앞으로 와라.”

“옛!”

두 사람은 곧장 1소대로 향해 뛰어갔다.

두두두두!

헬기 한 대가 벙커 앞 주기장으로 내려앉았다.

라파엘 중사는 군장 차림에 M10이 들어 있는 백을 매고 오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귀대 날짜는 내일까지이다. 즉 아직은 너희 둘은 전투병사가 아닌 휴가병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작전명령이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괜찮습니다.”

“행운을 빈다.”

두 사람은 라파엘 행정관과 악수를 한 뒤 헬기에 올랐다.

헬기는 곧장 떠오르더니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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