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용병(mercenary) 스카우터(scouter)2
오민철은 지금 신호가 가고 있다는 듯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한참을 귀에 대고 기다리던 오민철이 미소를 지었다.
“오민철 이등병입니다.”
행정관인 모양이었다.
“뉴스를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별일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 하십시오.”
오민철이 전화를 내렸다.
“행정관님?”
권총수가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이라크 시간 새벽 1시부로 미군 22원정여단, 프랑스 27여단 모두에게 모술에 대한 대공세 명령이 떨어졌다는데. 백악관에서 더 이상 IS의 만행을 봐줄 수 없으니 끝장을 보자고 작정한 모양이야.”
“귀대에 대한 언급은 없어?”
“마지막 남은 휴가 잘 즐기고 오라는데.”
멈칫!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마지막!’
전장의 군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민감하다.
독실한 종교인들도 살고자 하는 본능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가끔은 미신적인 주술에 빠지기도 한다.
일어나자마자 아라비아숫자 13을 본다던가(서양 사람들에게 13은 동양사람의 4와 비슷한 의미)하면 불안해 한다.
13의 기원에 대한 설은 많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배반자 유다는 최후의 만찬에서 13번째 손님이었다’는 것과 예수의 13일 금요일 처형설이다.
기독교 사상이 득세하는 서양에서 13은 재수 없는 숫자인 셈이다.
권총수는 어떤 징크스나 특정한 날짜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무심결에 던지는 상대의 말투에 날을 세워 대처했다.
아침에 양치를 하는데 칫솔이 부러진다거나, 꿈에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나타나면 다음 날 무척 불편하다.
마지막 휴가 잘 보내라는 행정관의 말속에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 것이다.
그냥 며칠 남지 않은 휴가 즐겁게 보내고 오라는 뜻 말고는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젠장!’
권총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유람선이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한 번은 꼭 타보고 싶었던 유람선인데 막상 올라보니 지겨울 만큼 볼 것이 없다.
강 좌우로는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없는 체육공원이다.
땀 흘리고 운동을 한 뒤 어디서 쉬란 말인가.
땡볕에서 운동하고 땡볕에서 쉬라는 소리인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에도 숲은 조성되어 있었다.
“에이 입맛만 버렸다”
오민철이 볼 것도 없다면서 돈 아깝다고 투덜거렸다.
그나마 오후에 찾아간 용인 네버랜드가 가라앉은 마음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었다.
수많은 놀이기구 하며 맹수들이 몰려있는 사파리와 때마침 진행되던 네버랜드 창작 뮤지컬 ‘달빛 자르기’ 야외공연까지 공짜로 봤다.
달빛 자르기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을 상대로 칼을 휘둘렀던 무사 이혈도의 생애를 짧게 압축한 공연이었다.
어두운 밤에만 나타나 왜군들 목을 잘라 ‘달빛 자르기’라는 공포의 별명을 얻는다.
“화끈하다 진짜.”
오민철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촤촤!”
오민철은 점프를 하며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조금 전 배우의 동작을 흉내냈다.
“내가 그때 태어났다면 완전히 죽였을 텐데, 쪽바리 새끼들은 모조리 단칼에 보냈겠지. 나카야마 죽어랏.”
“형! 괜한 나카야마를 왜 죽여.”
“흐흐! 하긴 그 자식은 쪽바리 치고 착하지.”
오민철은 싱글벙글했다.
영화 시작하고 5분 안에 치고받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꺼버린다는 액션매니아 다웠다.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은 곧장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이라크 생활의 가장 불편한 점은 의류였다.
외인부대에서 팬티와 런닝을 포함한 속옷 지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라크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하루에도 많게는 서너 번씩 갈아입어야 한다.
지급된 정규 피복으로는 단 하루만 빨래를 밀려도 입을 속옷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구매를 해야 하는데 이라크 현지 물품은 조악하고 금방 낡아 헤진다.
부대 안에서 판매하는 건 비싸다.
두 사람은 팬티와 런닝과 양말을 포대자루에 넘치도록 담았다.
물론 소대원들에게 줄 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 두 사람은 커다란 캐리어에 포대 속 물건들을 눌러 담았다.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은 저녁을 먹기 위해 방을 나섰다.
호텔 근처 삼겹살집에 앉아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굴이 빨갛도록 마셨다.
“좋다.”
오민철이 오른팔을 의자 걸이에 올리며 말했다.
“또 들어가면 뺑이 치겠지만 오늘은 그냥 마시자. 자 건배.”
쨍!
둘은 소주잔을 부딪치고 단 숨에 비웠다.
“크흐! 쥑인다.”
소주병을 들어 권총수의 빈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도 채운다.
“형, 그게 뭔 소리였어? 훈련소에서 했던 나의 최종 목적지는 외인부대가 아니라고 했던 말?”
오민철은 상추에 삼겹살과 된장을 찍은 풋고추와 마늘을 올리더니 한 입에 밀어 넣었다.
“어딘데?”
“때가 되면 알게 된다. 아무튼 이 형만 잘 따라다녀 주머니에 쇠가 방실방실해 질테니까?”
오민철은 가르쳐 주지 않고 웃음만 지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건장한 백인 두 명이 들어섰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었기 때문에 식당의 손님이라고는 권총수와 오민철이 유일했는데 두 백인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정장차림을 한 두 백인이 빙긋 웃었다.
“뭐요?”
오민철이 입안 가득 삼겹살을 씹으며 도전적으로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옆에 앉아도 될까요?”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애들 뭐냐 하는 시선이었다.
“그러세요. 앉아요.”
권총수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주었다.
“이왕 앉은 것 편히 앉아요.”
두 백인은 부드럽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권총수 옆에 앉은 약간 마른체형의 사내가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밀었다.
명함을 받아 든 권총수의 눈이 찌푸려졌다.
명함의 글씨는 온통 영어였다
‘Academy Sales Director(아카데미 영업이사) Noa(노아)’
“뭔데 그래?”
오민철이 권총수 손에 들린 명함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아카데미 영업이사.”
홱!
갑자기 오민철의 두 눈이 커졌다.
“민간 보안회사 아카데미?”
“그렇습니다.”
노아라는 백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민철은 상당히 흥분해 보였다.
“아카데미는 또 뭐야?”
모르는 권총수가 물었다.
오민철은 권총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백인들을 다그치듯 물었다.
“블랙워터 그 아카데미란 말입니까?”
“맞습니다.”
오민철은 다시 살폈다.
명함을 쥔 오민철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거야. 내가 말했던 것 임마.”
“뭔 소린데?”
“조금 전 내게 물었잖아. 나의 최종목적지가 외인부대가 아니라는 것?”
“어딘데?”
“여기.”
오민철은 명함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블랙워터(Black Water)라는 간판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창립자는 에릭 프린스, 전직 네이비 씰 출신이다.
그를 부를 때마다 항상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전쟁 장사꾼’
처음에는 단순히 사격장과 레저생활에 목표를 둔 소규모 군사훈련센터를 운영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보안기업으로 세를 확장하다 2001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본격적인 전쟁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대한 네이비 씰 출신들을 불러모아 중요 시설 및 요인경호, 나아가 이라크 전쟁에까지 발을 담그면서 급속히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 CIA의 비공식 파트너가 되었다.
미국 정부나 미군이 나설 수 없는 음성적인 전쟁을 이들이 대신한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이 문제가 되고 소말리아와 남수단에서 수십 명의 반군포로를 총살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사 창립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다.
가까스로 폐업 위기를 넘긴 블랙워터는 같은 시장의 경쟁기업 트리플 캐노피와 합병을 하면서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수많은 민간전쟁 기업이 있지만 규모가 가장 크고 강력하다.
유일하게 전투기까지 보유한 회사로 5000명 이상의 특수부대 출신들을 고용해 일 년 매출만 오백억달러에 육박한다.
오민철이 소주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건 흥분한 감정을 나름대로 진정해 보려는 행동이었다.
권총수는 그런 오민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많고 덜렁대긴 해도 자기감정 컨트롤 하나 만큼은 굉장히 뛰어나다.
이름하여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그건 707이란 특수부대가 만들어준 훈련의 효과였다.
가슴은 뜨겁게, 그러나 머리는 차갑게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다.
흥분은 자신뿐만 아니라 팀을 몰락시킨다는 정신교육을 수시로 받아왔다.
그런 오민철이 호흡까지 거칠어진다.
“우린 두 분의 의무 복무 기간이 3년 가까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권총수가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회사는 두 분 만이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등 뛰어난 특수부대를 거느리고 있는 많은 국가들을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뛰어난 인력을 스카웃 하려는 목적이죠.”
“우리 역시 아카데미의 스카웃 대상이라는 거군요?”
“두 분처럼 뛰어난 군인을 외면한다는 건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는 의지 말고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아라는 사내가 지그시 웃는다.
권총수 역시 싱긋 웃음을 한번 말더니 상추쌈에 삼겹살을 올리고 통마늘과 함께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금방이라도 입이 터질 듯 좌우의 볼이 튀어 나왔다.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에 노아라는 사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계약?”
오민철의 눈동자가 흔들거린다.
“무슨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오. 우리에게 돈이라도 주겠다는 거요?”
“프로의 계약은 돈이 필수죠.”
“얼마를 생각하고 있소?”
권총수가 물었다.
“제대할 때까지 우린 두 분을 최대한 지원할 것입니다.”
“외인부대 소속의 군인인 우릴 민간기업에서 어떻게 지원한다는 거요?”
노아는 권총수를 빤히 보았다.
“우리는 전 세계 많은 특수부대 관계자들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왕성한 자금으로 특수부대 소속 관계자들을 포섭해 놓았다는 뜻이다.
“우리 외인부대에도 아카데미 자금이 투자되고 있는 모양이군.”
노아는 대답대신 가벼운 미소만 지었다.
“조금 전 계약금이라고 했는데 얼마를 생각하고 왔습니까?”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회사에서는 권총수 이등병에게 100만 달러, 오민철 이등병에게 100만 달러, 총 이백만 달러를 책정했습니다.”
일 인당 백만달러라는 말에 오민철이 더 이상 커졌다가는 찢어질 만큼 입을 크게 벌렸다.
그와는 반대로 권총수의 눈은 가늘어졌다.
그건 상대의 진의를 살피고 그 말속에 어떤 함정이나 위험한 내용이 담기지는 않았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까짓것 좋소. 합시다. 제대하고 아카데미로 가죠. 어차피 나의 최종목표는 외인부대가 아니라 민간 보안업체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혀엉!”
“내가 말했잖아. 외인부대를 끝으로 내 인생 종칠 생각 없다. 707과 외인부대 이력이면 용병시장에서 내 몸값이 어느 정도 대접받을 수 있다는 주판을 튕기고 뛰어들었다.”
오민철은 급해 보였다.
혹시라도 상대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봐 당장 사인을 할 기세였다.
“진정해 형.”
권총수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조금 전까지 영어로 나누던 대화를 한국어로 바꾸자 노아의 눈이 흔들린다.
자신들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모양이다.
“야, 백만달러면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 알아. 임마 대충 잡아도 12억이야. 12억을 벌려면 머리 좋아 삼성 들어간 새끼들도 몇 년을 벌어야 하는지 알아?”
오민철은 12억이란 돈에 함몰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네 의견을 존중했는데 이번은 날 막을 생각하지 마라. 이 한큐를 노리고 외인부대 왔으니까? 오케이, 지금 하죠.”
오민철이 노아를 바라보았다.
“형 마음대로 해. 난 갈 테니까.”
권총수가 물수건으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줌마 여기 얼마에요?”
“7만 5천원입니다.”
“야 총수야.”
오민철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권총수를 다급히 불렀으나 대꾸도 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