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용병(mercenary) 스카우터(scouter)1
KTX가 순천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로 들어섰다.
마중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역을 빠져 나오는 순간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외인 7중대 1소대 정찰소대 저격수 권총수 이등병.”
오민철이었다.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다가갔다.
오민철의 고향은 순천에서 멀지 않은 벌교다.
어머님은 몸이 불편하여 서울 요양병원에 있으며 현재 벌교에는 아버지 혼자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타라!”
오민철이 끌고 나온 차는 2톤짜리 포터였는데 아주 낡아 보였다.
“가다가 바퀴 빠지는 건 아니지?”
“10년이 넘었을걸, 새로 한 대 사시라고 돈 보내 드리면 뭐하냐. 멀쩡한 차 왜 바꾸냐면서 싫대.”
부르릉!
시동만 걸었는데도 엉덩이가 들썩거릴 만큼 진동이 심했다.
“차는 승차감이 아니라 하차감이라는 건 알 것이고.”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역 주차장을 벗어난 트럭은 순식간에 차량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오민철은 시골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벌교 읍내에 있는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집에 가봤자 먹을 것도 없으니 여기서 속 채우고 들어가자.”
“아버님은?”
“동네 어른들과 같이 고창 선운사 놀러가셨어.”
“아이구 이게 누구야. 민철이 아냐?”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식당집 주인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랜만입니다. 창수 형님.”
“가만, 작년인가 가을걷이 끝나고 아버님께 들었지. 프랑스 뭐라고 했는데?”
“외인부대요.”
“응, 거기 지원해 갔다고 들었다. 정말 간 거야?”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 군대도 모자라서 프랑스군대까지 가냐? 그렇게 군대가 좋냐?”
“여기 꼬막 무침하고, 간자미 회 좀 주세요. 새 꼬막 말고 참 꼬막으로 주세요.”
“알았어 임마, 어련히 알아서 줄까.”
“총수야, 나 고등학교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민철아 모시고 방으로 들어가.”
두 사람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주를 먹어 불콰해진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휴가기간 동안 자신을 버리고 간 여자에 대해 추적을 했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찾아서 뭐하게?”
“모두 형 때문이야.”
“그럴 줄 알았다. 미안하다.”
권총수를 배려하지 못한 짧은 생각에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돌아섰으나 권총수 뒷모습이 그토록 처연하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형 혹시 설지라는 여배우 알아?”
“설지? 죽었을걸.”
오민철이 소주잔을 비우며 커어 하고 소리를 냈다.
“우리 초등학교 때 죽었을 거야. 엄청난 미인이어서 초딩들 사이에서까지 인기가 장난 아니었지. 가만 형님.”
오민철이 밖을 향해 소릴 질렀다.
“창수형님!”
반응이 없자 탁자 위에 붙은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창수라는 주인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뭘 줄까?”
“그게 아니고, 설지라는 유명 여배우 있잖아. 죽은 여자.”
“오설지, 걔 우리 동창이잖아. 여기서 학교 다닐 때도 진짜 이뻤다. 근데 왜?”
“나도 벌교 출신이라는 건 아는데 동네가 어디야?”
“여기 장좌리.”
“아직도 가족들은 여기서 사나?”
“어머니 살고 있잖아. 자식이라고는 오설지 걔 하난데 그렇게 죽자 무슨 낙으로 사냐면서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생존해 계십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물론이죠. 아직 정정합니다. 며칠 전에 아랫장터에서 봤습니다. 70이 조금 넘었는데도 곱더군요.”
권총수는 채워진 소주잔을 비웠다.
유일한 증거는 자신의 몸에서 프레땅이라는 향수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설지라는 배우가 프레땅 향수 광이었으며 그녀에 관한 기사는 당시 발행됐던 여러 여성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사용한 프레땅 향수가 자신의 몸에서 난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자꾸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척!
급기야 낡은 대문이 가로막고 있는 오설지의 부모님 집까지 찾아오고 말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스스로도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끌려가는 발걸음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대문을 살폈지만 벨이 없다.
스윽!
슬쩍 밀었는데 대문이 열렸고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성견이 되지 않는 중간 크기 정도 되는 누렁이 한 마리가 낯선 사람의 침입에 꼬리를 내리며 짖었다.
개짖는 소리에 닫혀있던 창호지를 바른 문이 열리고 칠십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요?”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이지만 찾아든 손님에 대한 경계의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였다.
권총수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권총수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건이 있어서 오긴 했으나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떤 식으로 대답하겠다는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좀 앉아요.”
권총수는 머뭇거리며 다가가 마루에 앉았다.
“처음 보는 분이네. 벌교 사람이오?”
“아닙니다.”
“그럼 그렇지. 벌교 사람이면 내가 알아볼 텐데, 어디서 왔소?”
할머니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 있는 적적함을 달래줄 대상이라도 만났다는 듯 위아래를 자주 훑었다.
연구분석하듯 살피던 할머니 표정이 슬며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허어!”
“왜 그러세요.”
“귀가 꼭 우리 설지 닮았네. 아니지, 코도 닮고 눈도 딱 설지네.”
권총수 얼굴에서 죽은 자신의 딸을 떠올린 것이 분명했다.
“따님이…?”
권총수는 재빨리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몇 살이나 잡쉈소?”
“스물두 살입니다.”
“우리 손자가 살았으면 22살인가 그럴텐데.”
꿀꺽!
권총수는 긴장했다.
오늘따라 22살 동갑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찌를 듯 파고드는 것일까.
“죄송하지만 손자분이 어떻게 떠나셨는지?”
“내 딸 말을 들으니 난산이었다고.”
“그럼 태어나자마자?”
“그렇지. 뱃속에서 이미 죽어 나왔다고 했어요.”
“혹시 사위는 누구신지요?”
“후우우!”
할머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몰라요. 챙피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삽니다. 그쪽 물이 조금 그렇기는 하다는데.”
그쪽 물이라고 하는 곳은 필시 연예계를 의미할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정상적이지 않은 남자와 스캔들을 갖고 있었다는 걸 넌지시 말해주고 있었다.
“따님이 뭐하시는 분이었는데요?”
“배우, 영화배우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이쁘다는 소릴 많이 들었고, 크면서 이놈 저놈 온 벌교 사내들이 기웃거렸지. 그러다 대학을 서울로 가더니 어느 날 배우가 됐다고 전화가 왔습디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온 동네사람들이 벌교에서 인물 났다고 난리를 피웠지.”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행복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파앗!
갑자기 뭔가 생각 난 듯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원장수녀로부터 받은 목걸이를 꺼냈다.
“혹시 이 목걸이 본 적 있습니까?”
할머니는 권총수의 손바닥에 있는 목걸이를 허릴 숙여 들여다보더니 기둥에 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탁!
전깃불이 켜지면서 목걸이를 주워들었다.
찰랑!
두 개의 십자가가 시계추마냥 흔들렸는데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이건!”
“왜 그러시죠.”
“우리 설지가 걸고 다닌 것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혹시 따님 사진 있습니까? 증명사진 말고 배우시절 사진 말입니다?”
“사진이야 많지요.”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이잉!
그때 전화가 걸려왔는데 오민철이었다.
“뭐해 임마. 안가?”
“조금만 기다려봐.”
“뭐하는데?”
“이따 가서 말할게. 조금만 더 기다려.”
할머니가 두꺼운 앨범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진즉 없애고 싶었지만 자식이 뭔지.”
하나뿐인 자식이니 더욱 가슴에서 지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빨리 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결코 빨리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평생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후회하고 서러워하며 사는 것이다.
예쁘다.
붉은 원피스를 걸친 여자아이가 젊은 엄마와 웃고 찍은 사진은 아마 초등학교 시절인 듯 보인다.
여자 아이는 크면서 더욱 미모가 도드라졌다.
멈칫!
앨범을 넘기던 권총수가 놀란다.
두 남녀가 황금의 종을 떠받들고 있는 트로피 한 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인데 뒤쪽으로 ‘대종상 여우 주연상’이란 글씨가 보였다.
그런데 권총수의 시선은 한곳에서 멈출지를 몰랐다.
여자는 가슴이 거의 드러난 검정색 드레스를 걸쳤는데 목에 걸린 목걸이다.
크기가 각기 다른 두 개의 십자가.
권총수는 앨범을 계속 넘겼고 이따금 목이 드러난 사진에는 어김없이 더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렸다.
“목걸이 사진 몇 장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요.”
권총수는 가장 잘 나온 십자가 목걸이 사진을 십여 장 찍은 뒤 일어섰다.
“저는 권총수라고 합니다. 나중 다시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벌교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디 살아요?”
“서울입니다.”
“그래요.”
권총수는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려 인사하고 집을 나왔다.
전혀 예정에 없던 사건을 추적하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보름의 휴가에서 이제 닷새 남았다.
비행기의 갑작스런 지연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제시간 귀대가 어려울 땐 충분히 배려가 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1분만 늦어도 영창이다.
규율만큼은 바늘 끝 만한 틈도 허락하지 않는 곳이 외인부대였다.
“어떻게 표는 끊었어?”
샤이닝 호텔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오민철이 나타났다.
“몇 시야?”
“내일 저녁 8시 대한항공”
“야 놀 것 없네. 출발할 때는 보름이 굉장히 길어 보였는데 순식간이구나.”
“커피 나왔잖아.”
조그만 전광판에 67번이라는 번호가 찍혔다.
오민철이 쥐고 있던 영수증 번호를 확인하더니 벌떡 일어나 김이 피어나는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후루룩!
오민철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수확 좀 있냐?”
“당시 더블 십자가 목걸이가 유행이었대. 물론 유행을 시킨 장본인은 배우 설지이고.”
권총수 손에 목걸이가 들렸다.
종로 금방 골목을 찾아가 목걸이에 알아보았다.
유행은 설지였지만 워낙 많은 팬들이 같은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건 목걸이 하나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러다 3차 대전 일어나는 것 아냐.”
굵직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 벽에 걸린 TV화면에서 이라크 모술을 폭격하는 전투기들 모습이 비쳤다.
“어, 저거 라팔 아냐.”
한 대의 전투기가 폭탄을 쏟아붓고 있었다.
화면이 전투기를 바짝 당길 때 권총수가 눈을 크게 떴다.
“틀림없어. F3!”
F3는 프랑스 주력 전투기인 라팔의 최신 버전이다.
F1과 F2는 그다지 썩 인기를 끌지 못했다.
가격대비 성능이 라이벌인 미군의 F-16만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계량을 이어 오다 F3에 들어서면서 유로 파이터나 F-16과 성능대비 가격이 엇비슷해졌다.
지금은 서남아시아 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 고객이다.
화면에서는 리포트 기자의 전달 내용이 자막이 되어 나왔다.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 제27 보병여단의 본격적인 모술 탈환작전 시작’
이어 자막이 또 다시 나타났다.
‘미군 22원정여단 또한 F15E의 파상적인 공중지원을 받으며 IS에 대한 본격적인 연합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어 IS의 반응에 대한 자막이 나왔다.
‘IS우두머리 알 바그다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순교의 각오로 맞서겠다’
전쟁중에도 병사의 휴가는 있다.
외인부대 복무규칙에 보면 특별한 사정이 벌어지지 않는 한 휴가는 평시 때와 마찬가지로 주어진다고 했다.
물론 예외 규정도 두었는데 상황에 따라 부대장 명의로 휴가중인 병사들에게 귀대를 명할 수 있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었다.
“왜 그래, 전화 안 받아?”
오민철은 외인7중대 행정관 미테랑 중사와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없다고 전장의 판도가 달라질 일은 없다.
그러나 동료 대원들이 염려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