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화려한 휴가(3)
경비실은 1층 주차장 입구에 있었다.
보육원에서 19년을 살았으면서도 성당 경비실은 단 한 번도 들어와 본적이 없었다.
“왜 그렇게 서 있어? 앉아.”
“예!”
한쪽으로 착은 철제 책상이 있고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안쪽에는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기구와 냉장고가 보였고 벽에는 에어컨이 커버에 씌워진 채 걸려 있었다.
경비 아저씨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비타민 음료수 한 병을 꺼냈다.
“마셔라. 낮에 원장 수녀님이 아는 자매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한 박스 주고 가셨다.”
딱!
권총수는 마개를 따고 반쯤 마셨다.
“총수가 올해 몇 살이지?”
“스물셋에 들어섰습니다. 만으로는 여전히 스물하나죠.”
“총수야!”
경비 아저씨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쉽게 입을 열어 묻지 못하고 말을 빙빙 돌렸다.
“뭘 알고 싶은데요. 괜찮아요. 말썽꾸러기 권총수가 욕먹는 것 두려워 합니까.”
히죽!
권총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욕이 아니라.”
“괜찮다니까요.”
“병칠이 말이야.”
“유병칠이요?”
“원장 수녀님께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병칠이를 만났는데.”
“그 자식 어디 산대요?”
“그건 잘 모르겠고 원장 수녀님께서 너에 대해서 물어봤나보더라. 잘 있냐고 말이다. 그러자 병칠이가 그 사기꾼 새끼를 왜 내게 물어보냐며 버럭 화를 내더란다.”
권총수는 대수롭잖다는 듯 빙긋 웃었다
“자식, 나 걔 한테 사기 친 것 없는데. 거짓말은 한적 있어도….”
“뭐라고 했다더라. 프랑스에 있는 무슨 군대에 간다고 떠났다면서 아마 두 번 다시 널 보기 힘들 것이라고 했나보더라.”
경비 아저씨의 말인 즉 정말로 프랑스에 갔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자신이 기억하기에 노향 보육원이 생긴 이래 권총수처럼 이틀이 멀다 않고 사고를 치는 아이는 없었다.
워낙 미운 짓을 많이 한 탓일까.
모두가 겉으로는 웃었으나 돌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나중에 시설을 나올 때 많은 선생들과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처음으로 미운 정도 정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앓던 이가 빠진 듯 모두가 환하고 기쁜 얼굴을 할 줄 알았는데 원장 수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잘 살거라 바오로’
‘힘들면 기도하는 것 잊지 말고’
빨리 19살이 되어 독립해 나가기를 바랬던 아이, 독립해 나가면 금방이라도 사고를 치고 교도소를 들어갈 것 같던 권총수를 향해 원장 수녀는 양손으로 손 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참고 또 참고, 알겠지 바오로’
그런 권총수였기 때문에 병칠이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안부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병칠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부는 묻지 않고 권총수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화가 났었을 수도 있다.
경비 아저씨가 수화기를 들고 번호 한 개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듯 잠시 기다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예!예! 원장 수녀님 바오로가 왔습니다. 총수 녀석이 왔다니까요. 헛헛, 아닙니다. 내려오실 것 없이 제가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내려 오시겠다는 걸 막았어. 우리가 올라가자.”
권총수는 경비 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성당 뒤쪽에 세워진 2층 건물이 바로 보육원이다.
아이들은 잠들었는지 조용했다.
경비 아저씨가 원장수녀의 방문을 노크했다.
안으로부터 문이 열렸고 자색 베일(veil)을 쓴 원장수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오! 바오로!”
원장 수녀는 경비아저씨 뒤에 서 있는 권총수를 발견하고 성호경을 그었다.
일흔이 넘은 원장수녀는 우두커니 서 있는 권총수를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바오로 손 좀 보자꾸나.”
권총수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원장수녀 안나의 주름살 가득한 손이 권총수의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따뜻하구나. 따뜻해야지. 앉거라. 배다 형제님. 미숫가루 있는데 얼음 넣어 시원하게 좀 타주시겠어요. 바오로가 워낙 미숫가루를 좋아해서.”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먹어!”
원장수녀는 눈을 흘겼고 권총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투투툭!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원장수녀는 계속 묵주를 돌리고 있었다.
권총수는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떠날 당시 그대로다.
조그만 십자가와 성모상, 그리고 잠잘 때 입는 알록달록한 원피스 잠옷이 전부였다.
“아픈 곳은 없니?”
“예!”
“얼굴이 새카맣구나.”
권총수는 씨익웃어 넘겼다.
“요한이 얘기로는 외인부대 지원한다고 프랑스로 갔다던데?”
요한은 유병칠의 세례명이다
“맞습니다.”
“군인이란 말이냐?”
“프랑스 외인부대 군인입니다.”
권총수는 외인부대에 관해 짤막한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이라크 아르빌에서 전쟁중이라는 말은 뺐다.
“오오 성모님, 우리 바오로를 지켜주어 감사합니다.”
원장 수녀는 또 다시 성호경을 그으며 눈을 감았다.
“마시거라!”
세례명 배다, 경비 아저씨가 자그마한 밥그릇에 탄 미숫가루를 내 놓았다.
“감사합니다!”
“원장수녀님과 얘기 나눠. 난 가봐야 겠어.”
경비 아저씨가 나가고 방안에는 둘 만 남았다.
후루룩!
권총수는 달짝지근한 미숫가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니?”
“맛있습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휴가 나왔다고 했지?”
“예!”
“그렇구나. 막상 휴가를 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던 게로구나.”
원장수녀 답게 단번에 간파한다.
권총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갈 곳이 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한 번 찾아뵈어야 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오지 않았다.
“원장 수녀님!”
“그래!”
“날 이곳에 맡긴 사람이 누굽니까?”
뚝!
묵주를 돌리던 오른손이 멈췄다.
권총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베이비 박스에 담겨 버려졌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디죠? 베이비 박스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는 그 개신교회 말입니다?”
“엄마를 찾고 싶나보구나?”
히죽!
권총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아니구요. 갑자기 어떤 여자인지 얼굴 한 번 봤으면 해서요.”
“바오로.”
권총수는 담담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원장수녀의 눈에 비치는 건 웃음이 아니라 차가운 냉기였다.
“언젠가 신문을 본적이 있는데 아이를 버린 부모의 70프로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식을 팽개친 것이 아니라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마땅히 휴가기간 동안 할 일도 없고 날 버린 여자가 누군지 알아봐야 겠습니다.”
원장 수녀는 눈을 감아 버렸다.
권총수 역시도 같이 눈을 감았다.
같이 따라서 눈을 감아 버린 건 한 가지 이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버린 여자에 대한 단서를 내놓지 않으면 꼼짝하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베이비 박스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를 아이와 같이 넣은 부모도 있고, 아무런 흔적도 없이 달랑 아이만 던져놓고 사라진 부모도 많다고 했다.
가끔은 보육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어디에 가면 아기가 있으니 잘 부탁한다는 부모도 있다.
어쨌든 아이를 버린 부모라면 도긴개긴 이지만 그래도 전자의 경우는 일말의 양심이라도 조금 남았다고 봐야 했다.
권총수라는 이름과 3월1일이 생일이라는 건 보육원 작품이 아니라 버린 여자가 지은 것이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이십 여분 정도 눈을 감고 묵주를 돌리던 원장수녀가 눈을 떴다.
“성인이 되었으니 뿌리를 찾으려는 건 당연하겠지. 바오로, 한 가지를 기억하거라. 베이비 박스는 물론 길거리에 아이를 버린 부모들 대부분이 나중 아이가 컸더라도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버릴 때 추적의 단서가 될 만 한 건 잘 남기지 않는단다.”
“날 낳은 여자도 그랬습니까?”
원장수녀는 돌아섰다.
성모상이 올려진 작은 탁자의 서랍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탁!
돌아서서 권총수 앞에 조그만 목걸이 한 개를 내놓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증명하듯 금목걸이인데도 약간 색이 바랬다.
권총수가 이게 뭐냐고 바라보았다.
“네가 어른이 되어 여길 떠나는 날 주어야겠다고 보관하고 있었는데 깜빡했구나.”
싸라락!
권총수는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찰랑!
십자가, 그런데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두 개중 하나는 컸고 작은 십자가는 왼쪽에 걸려있었는데 이름하여 더블 크로스 목걸이다
한눈에 여성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자세히 보자 줄은 18K였다.
십자가 역시 18K로 보였는데 큰 것이 두 돈 정도, 작은 건 한 돈이 채 못 될 듯 싶다.
“누구 것입니까?”
“바오로 네 목에 걸려 있었다”
“내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엄마가 걸어줬겠지.”
권총수는 목걸이에서 어떤 특징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더블 십자가라는 것만 빼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목걸이였다
“바오로, 지금까지 내가 키워 내보낸 아이들이 1,000명이 넘는단다. 그중에서 부모가 뒤늦게라도 후회를 하여 찾으러 온 경우는 딱 한 번 뿐이었다. 나중 성인이 되어 부모를 찾은 아이가 20여명 되었고, 찾긴 찾았지만 부모가 만나기를 원치 않은 경우가 30여건 정도 된다.”
권총수는 슬쩍 웃었다.
원장수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찾아 나섰다가 상처만 받을까 염려되어하는 말이었다.
“난 상처 같은 건 안 받아요.”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오로!”
원장수녀가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셨다. 그런데 난 솔직히 이곳 아이들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런 말 들어봤니.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말이다. 그건 틀린 말이다.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내가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것이군요.”
“참고 또 참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까지 대줘라. 알겠습니다. 왼뺨까지 더 때리라고 대주지는 못하겠지만 한 대 맞았다고 두 대 세 대 때리지는 않겠습니다.”
권총수는 원장수녀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보육원은 고요했다.
성당을 나서려는데 경비 아저씨가 뛰어 나왔다.
“가려고?”
“건강하세요.”
“잘 살아. 이 악물고 살라고.”
“걱정 마세요.”
권총수는 천천히 개천 길을 따라 내려갔다.
호텔 방에 들어온 권총수는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마감 뉴스를 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한 개를 꺼냈다.
딱!
소파에 앉아 마개를 딴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 전화가 울렸다.
오민철이었다.
“뭐하냐?”
술 한 잔 한듯 매우 젖은 목소리다.
“뉴스 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낮에 공항 입국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가슴 한쪽에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오민철은 가족애를 시위라도 하듯 부모 형제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권총수가 마중 나올 사람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권총수가 전혀 서운한 기색 않고 환히 웃어주었다는 것이지만 여전히 불편한 모양이다.
“피곤해 그만 끊어.”
“잘 자고 내일 보자.”
“일부러 날 위해 가족들과 시간 등질 것 없어. 나도 내일부터 바빠.”
“무슨 일인데?”
“그럴 일이 있어. 끊어.”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리던 권총수 눈이 커졌다.
‘오늘 오후 4시 20분쯤 서부전선 육군 모 부대 소속 장병 13명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현장에서 여덟 명이 숨지고 다섯 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공용화기 사격장 보수공사를 하고 있던 우리 군을 향해 북한군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NSC(국가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고, 여야는 앞다퉈 강력한 항의 성명을 발표했으며 군은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며 보복을 다짐했다.
어릴 때부터 보면 휴전선 충돌은 잊을만 하면 일어난다.
더구나 지금 한국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로 시끌벅적했다.
어른들 말을 빌리면 묘하게 북한은 남한에 선거가 있는 해에는 꼭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