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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2화 (62/651)

제62화: 화려한 휴가(2)

오민철은 707에서 보낸 7년의 군생활 보다 외인부대에서의 1년 6개월이 훨씬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면서 씨익 웃었다.

7년보다 1년 6개월이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건 한국 사람이 아닌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동료라는 것 때문 일수도 있겠지만 필시 전쟁이라는 것이 더 큰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이론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여자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과 전쟁을 겪어 보지 않고서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2차 대전 기갑사단장이었던 드골이 최후의 격전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뱉은 말이다.

특히 오민철은 특수부대에 몸을 담았고 해외 파병의 경험도 있다.

UAE 파병은 거의 전쟁수준이었다.

하지만 외인부대원이 되어 치러본 전쟁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봤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지만 외인부대에 몸을 담은 지금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훈련이 빡세도 전쟁이 될 수는 없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가 멈추면서 사람들이 짐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났다.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 줄지어 선 사람들을 따라 하기(下機)연결 통로로 들어섰다.

간단한 입국심사가 끝나고 문이 열렸다.

마중을 나온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는 승객들을 바라보았는데 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민철아.”

“큰 누님!”

쉰 가량의 뚱뚱한 여자가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오민철을 끌어안았다.

“민철아아아!”

또 한명의 여자가 달려왔고 오민철은 큰 누님을 밀어내고 외쳤다.

“작은 누님!”

와락!

“처남!”

“큰 매형!”

“처남!”

“둘째 매형!”

온 가족이 나온 모양이었다.

누님들은 오민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외인부대는 먹는 것도 잘 나온다면서 왜 이렇게 말랐냐. 아픈 곳은 없냐면서 몸을 살폈다 그러다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엄마아!”

오민철의 조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할머니 한분을 휠체어에 태워 다가왔다. 오민철은 달려가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야말로 눈물의 상봉이었다.

워낙 시끄러운 상봉에 주위 사람들이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왔기에 공항이 들썩 거릴 만큼 요란한 것일까 하는 시선들이다.

권총수는 그냥 갈까 하다 기다리기로 했다.

오민철의 요란한 가족 상봉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본다는 것이 멋쩍긴 했지만 말은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오민철은 조카들과도 일일이 끌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그러다 권총수가 생각 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총수야!”

오민철은 권총수의 손을 잡고 끌고 가더니 인사를 시켰다.

“같이 근무하는 후배야. 총수야 인사해. 우리 가족들.”

권총수는 가볍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권총수입니다.”

“우리 민철이와 단짝이라는 사람인가 보네. 반가워요.”

권총수는 누님들과 매형, 그리고 휠체어를 탄 어머니에게까지 인사를 했다.

“총수씨는 마중 나온 사람 없어요?”

뚱뚱한 오민철의 큰 누나가 물었다.

“아, 예!”

“전쟁터에서 아들이 돌아왔는데 아무도 안 나오다니!”

“말도 안돼!”

오민철의 누님들과 매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오민철이 재빨리 나서 권총수를 보며 말했다.

“총수야. 오늘은 일단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내일 전화할게.”

“그래 그럼.”

권총수는 오민철의 가족들을 향해 허리를 구부려 인사했다.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권총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런 젠장!’

권총수는 눈을 깜빡 거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다.

오민철의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유 모를 열기가 등골을 휘어 감았다.

거기에 믿을 수 없게도 두 눈을 채우는 눈물이라니.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권총수는 걸음을 빨리하여 청사를 걸어갔다.

권총수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재밌군’

한 번도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가족에 대해 고민을 한다거나 관심 따위가 아예 없었다.

매우 차갑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말까지 들으며 성장했던 권총수에게 가족은 현실성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관심없는 정체였다.

권총수는 늘어선 택시위에 올라탔다.

“적선동 갑시다.”

“예에!”

장거리 손님에 기분이 좋은 듯 기사는 힘차게 대답하고 악셀을 밟았다.

부우웅!

택시는 공항을 빠져나와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족’

택시를 타고 가는데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권총수는 비아냥 거리며 웃었다.

‘어이가 없군’

택시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권총수는 당황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유병칠과 살던 집을 찾아갔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사 온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대답했다.

“오래 됐죠. 재작년 11월 달에 왔으니까.”

재작년 11월이면 외인부대에서 막 훈련을 받고 있을 때이다.

“실례했습니다.”

권총수는 꾸벅 한 뒤 골목으로 걸어 나왔다.

남자에게 혹시 유병칠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프랑스로 떠난 지 한 달 만에 이사를 갔다는 건 두 번 다시 자신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싫다고 떠난 사람은 잡지 않는 법이다.

“어, 총수 형 아냐.”

한참을 터벅터벅 골목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는데 한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너 모진이 아냐?”

다가오는 청년은 PC방 아르바이트 생 김모진이었다.

“으와, 형 프랑스로 날랐다는 말은 들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아직도 아르바이트 하냐?”

“졸업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해야지, 말 좀 해봐. 외인부대 들어 간 거 맞아?”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 나왔다.”

“진짜?”

김모진의 눈이 커졌다.

믿겨지지 않는 듯 위 아래를 훑어본다.

휴가 나왔다면서 왜 군복을 입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의 시선이었다.

“쪽팔리게 무슨 군복이냐.”

“군복이 뭐가 쪽팔려. 더군다나 외인부대 군복은 굉장히 멋있던데.”

그러면서 눈을 좁혀 뜨고 살핀다.

김모진의 기억 속 권총수는 내 쉬는 숨소리까지도 뺑끼(거짓말)였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군복 대신 목에 걸고 나온 인식표를 보여 주었다.

“됐냐?”

“어디 어디!”

김모진은 집어넣으려 들자 재빨리 막는다.

권총수는 아예 벗어 주었다.

이리저리 인식표를 살피던 김모진의 눈이 커졌다.

“허걱!”

인정한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권총수를 살폈다.

“완전 새카맣구만”

검게 탄 권총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이제 3학년 올라가지?”

“응!”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해서 남 안준다.”

“헐!”

김모진은 소스라쳤다.

권총수 입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자신이 아는 권총수는 재미없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죽을래.”

다다다다!

김모진은 십여 미터를 득달같이 피해 도망쳤다.

“형 어디가?”

권총수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집에 가지 어딜 가긴 임마.”

“집이 어디 있다고?”

뚝!

권총수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섰다.

“형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김모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 집이 왜 없어. 있어 자식아. 또 보자.”

권총수는 다시 걸어갔다.

한참을 서서 걸어가는 권총수를 바라보던 김모진이 중얼거렸다.

“집이 어디 있다는 거야. 보육원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김 모진은 고개를 갸웃 하며 돌아섰다.

며칠 전 비가 내린 듯 개천에 물이 제법 흐르고 있었다.

개천의 상류는 북한산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금세 불어났다가 그치면 수량이 줄어들면서 시궁창으로 변한다.

깨끗한 물보다 이상하게도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개천이 더 좋았다.

‘심보가 시궁창이니 당연히 시궁창이 좋을 수밖에’

자신에게 두들겨 맞은 아이의 엄마가 보육원까지 좇아와 던진 말이다.

권총수는 개천을 따라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코 끝에 익숙한 향기가 닿는다.

고개를 들자 예상대로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항상 소풍을 갔었다.

뚝!

권총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오른쪽으로 짙은 회색의 3층 건물이 서 있었고 입구에는 고개를 다소곳 숙이고 있는 흰 옷의 여인이 있었다.

성모상이다.

‘천주교 노향 성당, 노향 보육원’

이라고 쓰인 동판이 담벼락에 박혀 있었다.

노향 보육원이 권총수의 집이다. 보육원을 떠나 자립한 형들이 가끔 명절날 찾아오기도 하지만 거의 드물다.

대부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웃으며 떠나고, 일부 교사들은 눈물까지 흘리는데 왜 한번 등을 돌리면 다시는 얼씬 거리지 않을까.

권총수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건 지독히도 비참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건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잔인한 멍에 인 것이다.

시설 출신들은 과거를 잊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런데 여길 다시 찾아오므로 겨우 나아가던 상처가 다시 터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식!

권총수는 실소를 지었다.

휴가 출발할 때부터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결코 보육원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손 톱 만큼도 없었다.

보육원의 보자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공항 입국장을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원흉은 오민철이다.

온 가족이 총 출동하여 울고 웃으며 치는 난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야릇한 충격이었다.

가족!

영원히 남의 얘기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꼬여 버린 것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권총수는 성당 뒤로 서 있는 또 하나의 2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가, 말어.’

괜히 낯이 뜨거워진다.

오기 싫었다.

누구보다도 힘들게 19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권총수 자신도 힘들었고, 지도하는 교사들도 진저리를 칠 만큼 사고뭉치였다.

사랑은 교사의 말을 잘들을 때 나타난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걸핏하면 친구를 때리고 파출소에 붙잡혀 들어가는 권총수를 향해 한 교사는 ‘너 네 엄마가 누군지 몰라도 참 현명하다’라는 악담을 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말썽쟁이가 될 줄 알고 버렸는지 너희 엄마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천하의 권총수가 그 따위 표현에 상처 받고 우울해질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히죽 웃어 주었다.

“누구시죠?”

성당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대로다.

성당도 그대로고 경비 아저씨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율리오 아저씨.”

성모상 앞에 켜진 작은 가로등 불빛으로는 권총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

권총수는 피식 웃으며 정확한 얼굴이 드러나도록 가로등을 바라보고 섰다.

“어!”

경비 아저씨가 눈을 크게 떴다.

“바오로?”

자신의 세례명이다.

“진짜 총수?”

“잘 지내셨어요?”

“그대로구나. 하나도 안변했어.”

사고치고 들어오는 자신을 항상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저씨였다.

그렇다고 여느 사람들처럼 그러면 못쓴다, 맘 고쳐먹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먼발치에서 쳐다볼 뿐이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고, 우선 들어가자.”

경비 아저씨가 권총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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