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화려한 휴가(1)
남은 건 다른 동굴이다.
이쪽에서 낸 총소리로 인해 다른 소대원들이 위험에 노출됐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재빨리 동굴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오민철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다른 팀들에게 뭔 일이 생기면 자기 탓이다.
베테랑답지 못하게 세 번째 사내를 죽이면서 음성을 허용하고 말았다.
입을 막고 목에 대검을 박아야 하는데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다 보니 입을 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검을 박은 것이다.
“크윽!”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메아리가 되어 동굴을 울렸고, 그 바람에 1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사내가 돌아보았다.
솔직히 우습게 봤다.
오민철이 생각하는 IS는 한 마디로 군인도 아니었다.
괜히 복면을 하고 늘어뜨린 검은 장포에서 섬뜩한 느낌만 유발하는 겁쟁이들이었다.
종군 기자의 목을 자르고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의 의사의 목을 잘라 장대에 걸고 괜한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행동 할 수 없는 잔인함으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고 있을 뿐 군인으로서는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군인들과 달리 체계적이고 분명한 훈련을 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경시한 측면이 있었고 결국 먼저 입을 막고 무성무기로 급소를 공격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순서를 잊은 것이다.
바깥은 조용했다.
멀리서 조금씩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여긴 A 동굴 응답하라.”
조심스럽게 교신을 시도했다.
“여긴 A, B C D 내말 들리는가?”
“여긴 D.”
“여긴 C.”
“B 잘 들린다.”
권총수가 돌아섰다.
오민철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송신자의 말은 들을 수 있지만 수신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소대 무전이고 모두가 헤드셋을 끼고 있어 오고 가는 내용을 모를 수는 없다.
그러나 오민철은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들어 무전기를 꺼버렸다.
“응답 없어?”
“있어.”
“진짜?”
“교신이 되는 걸 보니 모두 작전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모양이야.”
“아 젠장, 십 년 감수했네.”
오민철은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옆에 있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여명에 눌려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았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수부대 707출신이다.
전역을 한지 4년 가까이 흘렀으나 707출신이라는 자부심은 결코 버리지 않았다.
타고난 외향적 성격 탓에 너무 나댄다는 소대원들의 눈치를 받긴 하지만 자신만의 결의 하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
소대원들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외인부대원들은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자신의 일거 수 일 투족을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신경 쓰이는 인물이 스페츠나츠를 나온 세르게이였다.
네이비 씰이 미군을 대표한다면 스페츠나츠는 러시아군의 최정예다.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세르게이 역시 오민철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혹독하게 관리한다.
중대장을 비롯해 그 윗선의 지휘관들도 자신과 세르게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러시아의 스페츠나츠는 크고 작은 테러 진압에 동원되면서 잘 알려졌지만 707은 거의 무명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런 탓에 처음에는 주위 시선이 세르게이에게 몰렸다.
하지만 지금은 소대원들은 물론 간부들 조차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총소리로 작전이 피로 얼룩져버렸다면 707은 돌이킬 수 없는 명예훼손을 입는다.
“형 울어? 어쭈구리 진짜 울잖아.”
“시끄러 임마.”
오민철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인원 확인!”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얼굴을 확인했고 인원 보충이 끝날 때가지 부소대장이 된 루마니아 출신 하사 도도프가 이상 없다고 보고했다.
“저기!”
나카야마가 깜짝 놀란다.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는데 소대원 모두 표정이 변했다.
여자들이 동굴에서 하나 둘씩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몸이다.
나중 알게 됐지만 IS에서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여자들의 옷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대원들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소대장님 본대 호출입니다.”
본대라면 중대장이 움직이고 있는 2소대를 가리킨다.
“여긴 뮤슬리.”
“내 말 잘 들리나?”
“감도 좋다. 이상.”
“현재 위치를 말하라.”
“작전 P지역이다.”
그러면서 소대장은 이곳 사정을 말해주었다.
“오 맙소사!”
무전기속으로 중대장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장 여자들이 입을 옷과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반복합니다. 여자들이 입을 옷과 먹을 것을 지원해 주십시오.”
“알았으니 대기하라.”
소대장은 송수신기를 나카야마에게 넘겨주었다.
잠시 대기하라는 건 필시 여단본부에 이곳 상황을 보고하여 여자들 옷과 음식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려는 것이다.
여자들 숫자는 81명 정도 되었다.
알몸으로 서 있는 81명의 여자를 바라보는 권총수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
“여긴 지옥이야.”
“인간이 얼마만큼 나빠질 수 있는지, 말이 안 나온다. 야 그거 뭐냐?”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그거 있잖아.”
“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더러운 놈인지, 아니면 착한 갓난이로 태어났다가 후천적 영향으로 악마가 되는걸 뭐라고 하잖아.”
“성선설 성악설 그거?”
“오 케이. IS 이 자식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가봐. 인간을 탈을 쓰고 어떻게.”
오민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대장님,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습니까?”
작전중에는 무조건 금연이다.
담배 냄새와 연기는 적에게 이쪽을 노출시키는 위험한 물건이다.
“좋다!”
소대장은 크게 숨을 쉬었다.
오민철이 단순이 담배가 피우고 싶어 요청한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을 도저히 그냥은 볼 수가 없어 담배로라도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수송헬기 한 대가 계곡 상공에 나타났다.
마땅히 착륙할 장소가 없는 탓에 헬기는 10여미터 상공에서 호버링(Hovering)을 하며 싣고 온 옷가지들과 전투식량을 떨어뜨렸다.
기다리고 있던 여자들은 옷을 주워 각자의 몸을 가렸고 전투식량으로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소대는 여자들을 호위하며 장장 40여 킬로에 이르는 난민 캠프로 이동을 시켰다.
훈련된 군인들이 아닌 여자들의 이동이었기에 무척 더디고 수시로 환자가 발생했다.
급기야 캠프 도착 10여 킬로 전부터는 주저앉아 버리는 여자들이 속출했고 소대원들이 부축하거나 업고 가야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터키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자크호 난민촌에 도착했을 때는 파리움 계곡을 떠난 지 열흘만이었다.
난민캠프에서 진주하며 야지디족의 참상을 취재하고 있던 각국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외인1소대가 IS에게 끌려가 성착취를 당하고 있던 야지디족 여인 81명을 구출해 자크호 캠프로 이동 중이라고 발표했었다.
기자들은 야지디족 여인들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질문을 퍼부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충격에 사로잡힌 여자들은 말을 잃은 듯 몽유병 환자처럼 앞만 보고 걸어갔다.
야지디족 여인들과 인터뷰에 실패하자 기자들은 1소대를 에워쌓았다.
“구출 경위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신자르산 곳곳에는 IS에 의해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 하고 있는 야지디족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대장 다리사 상사는 딱 한마디 뱉었다.
“우린 전쟁을 하는 군인이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프랑스 정부에게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1소대의 야지디족 여인들 구출작전이 전 세계로 타전되면서 외인부대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끊이지 않았다.
‘참 군인의 모습이다’
‘군인의 총은 사람을 죽이는 것 만이 아닌, 이처럼 인간을 살리는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
‘단순히 구출만 한 것이 아니라 난민 캠프까지 안전하게 이주시킨 외인부대에게서 뜨거운 평화를 보았다’
쏟아지는 찬사에 프랑스 정부는 야지디족 구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조치를 내린다.
전쟁이란 단어가 워낙 흉포하고 잔인한 탓일까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평화는 유난히 돋보이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끝없이 칭찬을 만들어 낸다.
외인부대 지원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BBC는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이 전장에서 빛났다고 연일 떠들었다.
부대를 떠난지 27일 만에 돌아왔다.
부대 입구를 들어서자 여단 군악대가 힘차게 외인부대 군가를 연주했다.
‘외인부대는 전쟁터로 나간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조상들의 전통을 계승하네.
우리는 옛 외인부대원들과 함께 전쟁터로 진군하네.
우리는 외인부대원들이다
옛 외인부대 베테랑들, 내일 우리는 깃발을 들어 올릴 것이다.
군악대를 선봉으로 세우고 승자로서 진군할 것이다.
우리는 단 한가지의 무기도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악마가 우리와 함께 진군한다.
하하하하, 우리 외인부대 옛 부대원들이여 저곳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을 뒤 따르자 ’
군악대의 환영에 소대원들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켜켜이 쌓인 피로가 사라지고 굳센 결의가 다시 한 번 가슴을 태웠다.
군인은 전장에서 죽을 때 제일 빛난다는 나폴레옹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수고했소.”
“감사합니다.”
중대장이 여단장과 악수를 나눴다.
“상사!”
탁!
다리다 소대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훌륭했소.”
이어 차례대로 여단장은 악수를 했고 권총수와 마주섰다.
“중국의 사자성어에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있더군.”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다.
쓸데없이 몇 마디 덧붙이면 오히려 사족이 되고 의미가 퇴색 될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군계일학,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 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다른 소대원들 모두가 닭이라는 뜻은 아니다.
권총수의 능력이 그만큼 돋보였다는 칭찬일 뿐이었다.
* * *
보름이라는 휴가를 받았다.
두 명씩 조를 이루는 릴레이식 휴가다.
두 사람이 나갔다 귀대하면 다시 두 사람이 떠나는 형태였다.
국적이 같은 권총수와 오민철은 한 조가 되었고 가장 먼저 휴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외인부대에 입대한지 1년 6개월 만에 첫 휴가를 얻어 세상 속으로 걸어 나왔다.
둘은 아르빌에서 미군 수송기를 이용해 바그다드로 향했다.
바그다드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거기서 대한항공을 이용해 인천 공항으로 가는 노선을 택했다.
“야, 저기 바다 보인다.”
1년 6개월을 보낸 외인부대에서 보다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수십배 많다.
그런데도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서해 바다가 왜 그렇게 반가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