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지옥의 피 바람(2)
쌍안식 야시경을 썼다고 해도 한밤중에 험준한 산길을 달린다는 건 위험하다.
야간에 행군을 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상이 발목염좌와 무릎 연골 파열이다.
그런데 구보를 했다면 부상자가 발생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더불어 30킬로가 넘는 군장까지 짊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인력 충원 부족으로 외인소대 25명 숫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11명이라면, 구보는 주간도 아닌 야간에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이동수단이었다.
한명이라도 환자가 생긴다면 25명인 상황에서 1명 빠지는 것과 11명일 때 1명 빠지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그런데도 구보를 강행한 소대장의 무리수는 뭘까.
필시 경험일 것이다.
백전노장이랄 수 있는 소대장은 오늘 작전의 성패가 시간에 있다는 것을 오랜 기간 전장을 다니면서 체득한 감각으로 간파한 것이다.
전장만큼 경험이 지식을 앞서는 곳도 없다.
아무리 아편에 취해 있다고 해고 아침이 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신을 차리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날이 밝는다는 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러기 전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치겠다는 생각으로 소대장은 도박을 한 것이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어둠속에서 소대장을 비롯한 소대원들이 나타난 것이다.
슥!
소대장은 도착하자마자 손목시계를 봤다.
5시10분.
한 식단 정도 지나면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1시간 안에 종결하지 못하면 수적으로 불리한 1소대가 당할 확률이 높다.
“일단 직접 보시죠.”
설명보다는 눈으로 확인할 때 좀 더 좋은 공격방법이 만들어진다.
“먼저 군장을 벗는다.”
소대원들은 각자 지고 있던 군장을 벗어 눈에 잘 띄지 않을 곳에 숨기고 나뭇가지를 꺾어 덮었다.
“탄창 150발씩 확인”
각자 30발들이 탄창을 확인하고 나머지 네 개는 두 개씩 나눠 탄알 집에 넣은 다음 전술형 조끼에 부착된 스트랩(찍찍이)에 붙였다.
“대검 확인!”
“이상 무!”
“이상 무!”
“출발!”
모두가 군장을 벗고 제식소총을 포함한 단독군장으로 이동했지만 유일하게 권총수와 오민철은 자신들의 장비에서 단 한 개도 떼어놓지 않았다.
저격수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깍!
아아아아!
동굴이 가까워지면서 여자들의 비명과 사내들의 음탕한 웃음소리가 들려나왔다.
화악!
첫 번째 동굴 입구에서 안을 살피던 소대원들 모두 충격을 받은 듯 얼어 붙었다.
“저런 씹새끼들을.”
오민철이 버럭 소릴 치며 튀어 나갈 듯 했다.
707특수부대 출신이 누가 막는다고 튀어나가지 않고 막지 않는다고 하여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냉철함은 기본소양으로 갖고 있다.
다만 너무 분노한 것이다.
“어때?”
소대장의 시선이 권총수에게 멎는다.
권총수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 선임들이 적지 않다.
또한 모두가 군 생활을 한번 씩 경험한 노련한 대원들인데 굳이 그들을 향해 묻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대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계급만큼 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선임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오민철은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권총수가 머뭇거리자 세르게이가 말했다.
“총수, 말해. 우리 소대는 작전에 관해서 만큼은 널 캡틴으로 인정하기로 했어.”
“게이 형.”
“맞아, 정말이야. 지금 총수가 소대장님께 의견을 내놓는다고 하여 누구도 주제 넘는다고 생각 하지 않아.”
이번에는 히말라야의 눈 사나이 비렌드라가 거들었다.
씨익!
권총수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보다시피 잘못하면 놈들은 여자를 인질로 잡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작전이 훌륭하다고 해도 많은 인질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으면 그 가치는 빛나지 않습니다.”
권총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총은 안 됩니다.”
“허면?”
무전기를 등에 매고 있는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다.
“제가 대충 확인 한 바 다섯개의 동굴에 50여명 정도가 있습니다. 어느 한 동굴에서라도 총소리가 울리면 여자들은 죽습니다.”
“무성무기를 쓰자는 건가?”
“방법이 없습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총을 놔두고 무성무기를 쓴다는 건 이쪽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인원이 충분하다면 각 동굴별로 들어가 동시에 갈겨 버리면 끝나지만 적은 이쪽보다 4배가 훨씬 넘는 숫자다.
결정적인 건 총소리가 울려 퍼지면 아무리 아편에 취해 있다고 해도 총을 잡을 것이고 그때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다.
IS대원들을 죽인들 납치된 야지디족 여자들에 대한 피해가 크면 성공한 작전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오히려 무리한 작전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소대장은 잠시 눈을 좁혔다.
앞 뒤 상황을 재는 듯 보인다.
“좋다 편의적으로 이곳을 A동굴로 호칭한다. A동굴은 권총수 이등병, 오민철 이등병, 지휘권은 권총수.”
오민철의 눈빛이 떨린다.
비록 저격수를 지원하는 관측수이지만 일반작전에서 권총수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섭섭한 모양이다.
“동굴 B는 세르게이 이등병, 피아퐁 이등병, 도도프 하사, 지휘는 도도프 하사, 동굴C는 오스카르 이등병 비렌드라 이등병, 노바크 상병, 지휘는 노바크 상병.”
소대장이 남은 소대원들을 돌아보았다.
“D 동굴은 나와 나카야마 이등병, 바라프 이등병이다.”
나카야마는 통신병이기도 하므로 항상 소대장 곁에 있어야 한다.
소대장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지금 시간 05시30분, 05시 35분에 작전 개시한다. 동굴 안이기 때문에 무전교신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비상시에는 밖으로 뛰쳐나와 세발의 총성을 울릴 것, 총성이 울리면 무조건 모든 걸 멈추고 밖으로 뛰어나온다. 이상, 각 위치로.”
소대원들이 지정받은 동굴을 찾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형!”
권총수가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형이 해, 지휘.”
오민철이 피식 웃었다.
“봤냐?”
서운해 했던 자신의 모습을 들켰다고 여긴 듯 했다.
“총수야, 군대는 무조건 명령이야. 그 명령이 존중되지 않으면 그 부대는 모래알이고, 형이 나이도 많고 군대 경험도 풍부하긴 해도 지휘자는 너야.”
“낯 뜨겁게!”
권총수는 피식웃더니 주변에서 탁구공만한 돌멩이 십여개를 주워 탄알 집에 넣었다.
오민철은 대검을 손에 쥐었다.
이제 작전개시 명령만 떨어지면 된다.
잔득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동굴을 노려보고 있을 때 무전이 왔다.
“작전개시. 작전개시!”
소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동굴로 들어섰다.
동굴은 급한 경사를 이루었는데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미끄러지거나 잘못 디뎌 넘어지거나 하면 크게 다칠 것 같았다.
“형!”
두 사람은 큼지막한 바위 뒤에 숨어 여기저기 여자들을 끌어안고 섹스를 즐기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열일곱 명.”
홱!
오민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처음 형이라고 불렀을 때는 잘못들었나 싶어 넘어갔지만 지금은 분명 이상했다.
평소의 목소리와 달랐을 뿐 아니라 아주 작았는데 묘하게도 똑똑하게 들린 것이다.
“검정색 터번 쓴 놈 있지, 그 놈을 중심으로 왼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오른쪽은 형이 정리해.”
오민철로부터 가타부타 대답이 없자 권총수가 돌아보았다.
오민철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권총수 입술이 조금도 달싹거리지 않았다.
말을 하게 되면 입술은 반드시 어떤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굳게 물려 있다.
“에이, 난 또.”
권총수는 오민철이 왜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빙긋 웃었다.
“전음입밀이라고 있어. 작전 끝나고 얘기 해줄게.”
두 사람은 조심하여 동굴을 내려갔고 평평한 바닥에 도착했다.
겁탈하는 사내들이나 당하는 여자 모두 아편에 취해 몸부림 쳤다.
표현할 길이 없다.
사람이 아니다.
결코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떤 짐승도 이토록 추잡한 성관계는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관계를 갖는 남녀는 찾아 볼 수가 없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광란의 성폭력이 이뤄지고 있다.
스윽!
권총수가 먼저 나아갔다.
푹!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자를 눕혀 놓고 허리를 움직이는 사내의 입을 막으면서 뒷덜미에 대검을 박았다.
뿌거걱!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사내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밑에 깔린 여자는 죽은 사내를 끌어안고 몸부림 쳤는데 눈동자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편 중독자에게서 볼 수 있는 눈이다.
오른쪽 키 작은 남자가 여자 배위에 올라가지는 않고 쭈그린채 괴소를 흘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다가선 권총수는 순간적으로 눈을 돌려 버렸다.
차마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내는 여자의 그곳에 팔둑 만 한 나무토막 한 개를 쑤셔 넣고 있었다.
우두둑!
권총수의 양손이 사내의 머리를 감싸더니 무지막지하게 돌려 버렸다.
사내의 목은 한 바퀴 반을 돌아 얼굴이 등 뒤에 있었다.
털썩!
사내는 죽었으나 여자는 여전히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편을 했는데도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 정도면 고통이 굉장하다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나무 토막을 뽑아 던져 버렸다.
“아아아!”
고통이 조금 가시는 듯 여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한 숨을 쉰다.
“인샬라(알라의 뜻으로, 그러나 ‘이 일이 어쩔 수가 없었다’는 의미도 있음)”
권총수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종유석 옆으로 다가갔다.
한 사내가 두 여자를 나란히 엎드려놓았다.
사내는 왼쪽 여자의 등 위로 올라가 허리를 움직였고, 옆에 있는 여자는 오른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이름하여 애널섹스다.
팍!
사내의 등 뒤로 다가가 입을 막으며 얼굴을 뒤로 당겼다.
싸아악!
대검이 사내의 목을 지나갔다.
콸콸콸!
엄청난 피가 여자의 등으로 쏟아졌다.
“개자식!”
권총수는 왼손에 묻은 피를 벗어 놓은 남자의 옷에 닦으며 중얼 거렸다.
탕!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이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10여미터 떨어진 측면에서 알몸의 사내가 AK를 들고 넘어졌다.
타아앙...앙...앙!
동굴속이어서 바깥에서처럼 한번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총소리는 파도치듯 계속 메아리쳤다.
메아리는 IS 대원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촤라라락!
권총수는 탄알 집에 담아온 자갈돌을 꺼내 던졌다.
슈슈슉!
슈슉!
돌멩이를 적엽비화 수법으로 날린 것이다.
퍽!
끄윽!
총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일어나 한쪽에 놓아둔 AK를 향해 걸어가던 세 명의 사내가 엎어졌다.
휘익!
연이어 오른손에 있던 대검이 날아갔다.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바위에 세워 놓은 총을 잡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푸우욱!
대검이 먼저 사내의 명문혈에 깊숙이 박혔다.
천천히 다가간 권총수는 등에 꼽힌 대검을 뽑아들었다.
권총수는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탕!
비틀 거리며 AK를 집어든 사내의 머리가 터지며 나동그라진다.
드르륵!
자동소총 소리에 몸을 돌렸다.
오민철이 두 명의 사내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알몸의 두 사내는 온 몸이 벌집이 되어 넘어졌다.
오민철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서 주위를 훑었다.
“열 일곱 이었지.”
오민철은 죽은 사내들을 세기 시작했다.
“한 놈, 두 놈.”
일일이 총구로 들춰가며 센다.
“여덟!”
그러면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아홉!”
“확실해?”
“확실해!”
열 일곱 명이 있었으므로 모조리 제거한 셈이다
두 사람은 혹시나 하는 우려를 하며 동굴 곳곳을 수색했지만 더 이상 남자는 없었다.
여자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지독하게 처 먹였군.”
오민철이 이를 갈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