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9화 (59/651)

제59화: 지옥의 피 바람(2)

IS입장에서 보면 야지디족은 분명 이교도들이다.

적(敵)임은 틀림없지만 성폭행은 어떤 이유와 명분을 들이대도 야만의 극치다.

상층부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하고 젊은 이슬람 청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가난한 젊은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소외계층의 청년들, 나아가 그로 인해 사회와 관습에 분노를 품고 있는 남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여자를 선물로 주고 마음껏 유린할 수 있는 자격을 신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다.

까아악!

아아!

어둠속에서 신음은 끝없이 들려온다.

툭!

길게 타버린 담뱃재가 떨어졌다.

‘적을 적으로 보지 않는 건 용서이다’

한 사내가 떠오른다.

고글을 쓰고 뜨거운 열기와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사막색 천으로 복면을 한 사내.

유난히 챙이 넓은 부니헷을 눌러 쓰고 M10으로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눈빛도 보지 못했고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목소리뿐이다.

그런데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 사내 앞에서 옴짝 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낭랑한 목소리가 결코 많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는데 온 몸에서 풍기는 차분한 위엄은 뭘까‘

‘적을 적으로 보지 않는 건 용서이다’

아미르는 다시 한 번 권총수의 말을 떠올리며 필터만 남은 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후우!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 길게 심호흡을 한 아미르는 메카가 있는 남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알라 훔마 쌀리 알라 무함마드 와알라 말리 무함마드, 카마 쌀라이타 알라 이브라힘 와알라 알리 이브라힘 인나카 하미둠 마지드 말라 훔마 바르카 알라 무함마드 와알라 알라 무함마드.

카마 바리크타 알라 이브라힘 와알라 알리 이브라힘 인나카 하미둠 마지드’

‘오 하느님이시여 무함마드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무함마드 가족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께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것처럼 진실로 당신은 가장 영광되신 분이시며 가장 영예로운 분이십니다. 오 하느님이시여 무함마드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무함마드 가족에게도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 가족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던 것처럼 진실로 당신은 가장 영광된 분이시며 가장 영예로운 분이십니다’

아미르는 입으로 신이 창조한 땅에 두 번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저들의 행동은 결코 신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아미르는 다시 한 번 비명이 난무하는 어둠속 계곡을 주시하더니 종적을 감췄다.

권총수는 동쪽을 향해 섰고, 오민철은 숙영지를 등지고 서쪽을 살폈다.

그러다 목을 한 바퀴 돌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금빛 모래를 뿌려 놓은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보육원 하늘도 밤이면 셀 수 없는 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곳 사막의 별들만큼은 화려하지 못했다.

‘자식’

유병칠이 떠올랐다.

세 번이나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장 한 번이 없었다.

사느라 바빠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떠남으로 앓던이가 빠졌는데 그 앓던이가 다시 편지로 접근하자 몸서리를 치며 답장을 거부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서른 안에 기어이 집을 사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유병칠이었다.

‘넌 꿈을 이룰거야’

가벼운 미소를 짓던 권총수가 갑자기 눈썹을 꿈틀 거렸다.

‘이건!’

두 귀를 세운다.

‘소리’

그건 야조의 날개 짓도 야생 낙타가 나무뿌리를 뜯는 소리도 아니었다.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진이 일어나듯 지축을 울리는 따위의 굉음이 아닌 미미한 진동은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가끔 투툭 하는 것을 보면 어두운 산길을 달리는 발길이 돌부리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1킬로’

밤에 듣는 소리는 낮의 세배다.

거기에 일 갑자 가까운 내공이 전신의 오감을 지배하면서 더욱 먼 거리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한 명이 뛰어오고 있다’

권총수는 재빨리 반대편에 있는 오민철에게 무전을 보냈다.

‘재칼, 여긴 드골’

‘드골 뭔가?’

‘사람이 오고 있다. 지원 바란다’

‘몇 명인가?’

‘아직은 한명으로 추정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즉시 지원하겠다‘

작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어둠속에서 오민철이 나타났다.

두 눈을 빛내며 손에 든 HK416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 했다.

‘확실해?’

권총수에 대한 신뢰와 인정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듯 묻는다.

권총수는 가벼운 웃음을 지은 뒤 스스스!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친 숨소리가 주위를 울린다.

사내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근처 지리를 잘 아는 듯 갈래 길이 나오는데도 방향전환에 망설임이 없었다.

“아미르!”

달리던 사내는 소스라치며 멈춰섰다.

왼쪽으로 10여미터 떨어진 바위 앞에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사내다.

도무지 잊으려고 해도 잊혀 지지 않는 사내.

“시간이 없소, 가브리엘 부대 북동쪽 17킬로 파리움 계곡, 아침 6시면 모든 축제가 끝날 것이오”

권총수는 재빨리 왼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30분이다.

“축제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축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결코 축제가 아닌 지옥이오.”

권총수는 땀을 흘리며 서 있는 아미르를 바라보았다.

당신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시선이었다.

아미르는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잠시 깊은 눈으로 권총수를 보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앗 쌀라 말라이쿰(당신에게 신의 평화가 있기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미르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의심의 시선을 던졌지만 자신의 의견이 선의라는 어떠한 설명이나 물증도 제시하지 않고 떠나 버린 아미르.

‘알겠다. 내가 자신을 믿은 만큼 나 또한 자신을 믿어달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아미르가 사라진 어둠을 향해 중얼거렸다.

“와 알라이쿰 쌀람(당신에게도 신의 평화가 있기를)”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숙영지의 텐트는 깨끗하게 철거 되었고 위장하는데 사용했던 나뭇가지와 풀도 사방으로 뿌려지며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도박이다.

만약 아미르의 정보가 함정이라면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한다.

대원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은 장소였다.

현재 신자르산에 퍼져 있는 IS본대는 ‘가브리엘’부대로 50여명 규모이다.

모두 9군데서 작은 중대규모로 활동하는데 한데 뭉치지 않는 이유는 미군의 종합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각자 독립된 부대로 활동을 하지만 본대 가브리엘의 통제를 받는다.

미군이 건네준 정보는 가브리엘 부대가 있는 곳은 20킬로 떨어진 베드칸이다.

그런데 지금 아미르는 거기가 아니라 17킬로 밖에 있는 파리움 계곡이라고 했다.

소대원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충돌이 있었다.

백 프로 함정이라는 사람과 아미르를 믿어보자는 쪽인데 결정의 몫은 소대장에게 있다.

“출발!”

소대장이 명령을 내렸고 더 이상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안도할 점은 권총수가 앞서 갔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온힘을 다해 달리는 속도보다 수 배 빠른 그가 미리 파리움 계곡을 정찰하겠다는 것이었다.

불영보를 익힌 후 가장 먼 거리를 달려왔다 .

막판에 약간 내공이 소모되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40분 만에 주파한 것에 권총수는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스윽!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은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귓가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계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정상적인 남녀 관계가 아니다.

그건 변태적 성행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질러대는 몸부림이었다.

슥!

지니고 있던 야간조준경을 눈에 붙였다.

불빛 하나 없는 계곡이다.

집도 없고 텐트도 없다.

파팟!

계속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는데 계곡을 이룬 절벽 아래로 동굴들이 있었다.

소리는 그 동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군의 무인기와 위성이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동굴을 주둔지로 정하면 결코 사진에 찍힐 일이 없다.

“음”

크고 작은 동굴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여단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보에 의하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동굴이 흔하긴 하다.

그렇지만 후세인의 종교적 정치적 핍박을 피해 도망 온 시아파 성직자들이 은둔의 장소로 이용하기 위해 직접 굴을 파 놓은 것도 상당하다고 했다.

권총수는 혹시나 하며 소대 무전기를 이용해 소대장과 교신을 시도했지만 먹통이다.

소대는 아직 무전기의 교신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빨리 온다고 야간이고 산길이라는 것을 계산하면 2시간은 족히 넘길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저격총은 오민철에게 맡겼고 그가 갖고 있던 HK416을 휴대했다.

최대한 기다려 볼 수밖에 없지만 혹시도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남녀 모두 아편에 취해 있다.

저들이 환각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아미르는 말해주었다.

소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취해 정신을 못 차려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스으으!

권총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산을 내려갔는데 한번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 올수록 여자들의 비명을 커졌고 사내들의 광기 담긴 웃음소리도 퍼져 나온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크고 작은 동굴이 지천이다.

계곡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가장 가까운 동굴을 향해 접근했다.

안력을 돋우어 살폈지만 지키는 경계병이나 부비트랩 같은 위험물은 보이지 않는다.

‘맙소사!’

동굴로 들어선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땅 밑으로 16만㎞ 정도 내려가면 있다는 아비지옥(阿鼻地獄)도 이보다는 못할 것 같았다.

여기저기 촛불을 켜 놓고 십여 명의 사내들이 이십 여명의 야지디족 여인들을 겁탈 하고 있었다.

알몸의 여인들은 이리저리 쫓기며 도망쳤지만 제한된 장소에서의 피신은 한계성을 드러냈다.

일부러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여자들을 묶지 않고 풀어 놓은 듯 보였다.

사내들은 도망치는 여자를 잡아 강제로 겁탈을 자행했고 반항하는 여자는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몇 곳의 동굴을 더 살펴본 권총수의 얼굴에 분노의 열기가 피어 올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내들은 여자들을 상대로 쾌락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당장 모조리 갈겨 버리고 싶다.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다.

당장 쳐들어가 가슴에 칼을 박고, 살을 찢으며 머리통을 산산이 깨버리고 싶은 충동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욱!

끝내 권총수는 토하고 말았다.

비위 좋은 놈이란 말을 듣고 자랐지만 더 이상 속이 뒤틀려 참을 수가 없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스윽 닦은 뒤 길게 숨을 내 쉬며 대력금강심법을 끌어 올렸다.

끓어 오른 울화가 가라 앉는다.

‘아직은 아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이다.

혼자서는 결코 저들을 상대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야지디족의 여자들은 성노리개이기도 하지만 인질이 될 수 있다.

권총수는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여자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계곡을 나왔다.

“여긴 드골 재칼 응답하라”

갑자기 소대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

권총수는 불영보로 순식간에 현장을 멀리 벗어난 뒤 교신에 응답했다.

“드골!”

“재칼, 내 말 들리는가?”

“말하라 드골.”

“어딘가?”

“파리움 계곡이다 이상.”

“상황을 말하라.”

“최악입니다. 지옥입니다.”

권총수는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현재 위치는 어딥니까?”

“목표 1킬로전이다.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빨라야 50분, 늦으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대 예상을 앞지르는 놀라운 속도였다.

소대장이 교신을 하면서 헐떡거렸다.

‘설마 야간 구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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