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지옥의 피 바람(1)
신자르산에 사는 야지다족은 IS입장에서는 용서 할 수 없는 이교도 들이다.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를 포함해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불교등 다양한 종파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선교를 빙자해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종교는 산불과 같다.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끝없이 번져 가며 어떤 것으로도 가로막지 못한다.
눈엣 가시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절대 살려둘 수가 없었다.
가옥을 불태우고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죽였다.
야지다족 사람들의 주업인 아편 농사까지도 불태우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남아 마약조직에서 IS 고위층으로 한 가지 제의가 들어 온 것이다.
아편을 태우지 말고 자신들에게 팔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돈은 놀랍게도 웬만한 중대급 부대가 무장 하는데 필요한 병기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의 거액이었다.
‘아편을 태우지 마라. 돈이다’
IS의 아편 수확은 그렇게 시작 된 것이다.
요즘 신자르산에서 활동하는 IS 대원들 거의가 야지다족이 지어 놓은 아편을 수확 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대 역시 요즘 아편을 수확하느라 바쁘다.
빠악!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난다.
학창시절부터 따랐던 친구이며 최측근인 샤하브 머리가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자 정도의 위력을 가진 개인화기는 저격 총뿐이다.
저격수까지 갖춰진 완전한 덫에 빠졌다.
11명이라는 보고에 PKM을 중심으로 20명만 데리고 가면 충분히 궤멸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아!”
이런 패배는 처음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한들 이보다 더 허망할까.
멈칫!
자살을 위해 총구를 돌리는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자신의 AK를 후려쳤다.
총은 힘없이 저만큼 날아 가버렸다.
우두머리 사내 아미르는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사막 색 부니햇을 썼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을 천으로 가렸으며 검정색 고글을 끼고 있었다.
‘M10’
아미르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이 핀란드에서 만들어낸 최신 저격소총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사내가 히죽 웃는다.
“날 만드신 이는 하느님 알라이시니라. 그리하여 알라의 허락 없이 목숨을 끊는 건 큰 죄이다.”
사내는 쿠란의 한 대목을 낭송하듯 말했다.
철컥!
사내는 겨누던 총을 거두더니 어깨에 맨 채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미르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M10을 메고 있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산인데.”
사내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이토록 곱고 수려한 산에서 어떻게 그런 무자비한 민간인 살육을 벌일 수 있냐는 꾸지람 같기도 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군인들이 나타났다.
“이 친구 혼자남은 건가.”
다리다 소대장이 아미르를 향해 말했고 소대원들은 널려진 주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망!”
“사망!”
생존자가 없다는 보고는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딸칵!
다리다 상사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아미르에게 건넸다.
주춤!
받을지 말지 잠깐 망설이는 듯 했다.
잠시 다리다 상사를 빤히 바라보다니 아미르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 세게 빨아 들였다.
소대원 일부는 사방으로 퍼져 경계를 섰다.
다리다 상사 역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당긴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후우!
시합이라도 하듯 프랑스 담배 골루아즈의 푸른 연기가 신자르산 숲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름이 뭐요?”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소대장 다리다였다.
“아미르.”
“아미르, 황태자?”
맞냐는 듯 다리다 상사가 돌아보았다.
아미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지었죠.”
아미르는 아라비어로 황태자, 또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 따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런 깊은 이름을 지어준 건 필시 사회적으로 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정말로 이슬람국가가 만들어 질수 있다고 보시오?”
아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욱!
소대장은 담배를 바위에 비벼 끄고 꽁초는 주머니에 넣었다.
“행운을 비오.”
바위에서 내려온 소대장이 헤드셋을 당겼다.
“이동!”
사방에서 경계를 하고 있던 소대원들이 일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멈칫!
예상 못한 상황에 놀란 듯 아미르의 눈이 커졌다.
살아 날수 없다고 생각했다.
골루아즈 담배 한 개비는 산자가 죽기 직전의 사형수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행운을 빈다면서 떠나버리는 이 상황은 뭔가.
“잠깐!”
아미르는 바위에서 일어났다.
소대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소대원들을 훑어보던 아미르의 시선이 M10을 매고 있는 권총수에게 멎었다.
“혹시 나한테 할 말이 있었던 것 아니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글쎄.”
“해보시오. 듣고 싶소.”
“무슨 말을 할까요?”
“아무 얘기라도 좋소. 이상하게 당신과는 말이 통할 것 같아서 말이오.”
“군인은 입이 아닌 총으로만 말하는 법이라고 배웠죠.”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날 살려 준다는 것입니까?”
“우리 소대장님께서는 결코 적을 살려 보내지 않습니다.”
아미르는 멈칫했다.
그건 자신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을 적으로 보지 않는 건 용서이다’
쿠란에 나온 말이었기에 아미르의 표정이 굳는다.
“알라훔 인니이 아쓰타그피락 와투웁”
아미르가 탄식하듯 중얼 거렸고 돌아 내려가려던 권총수의 발길이 멈췄다.
옆에 있던 오민철이 무슨 뜻이냐는 듯 돌아보았다.
권총수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가버리면 난 당신들에게 큰 빚을 지는 셈이오. 쿠란은 결코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라는 뜻이라고 말을 해주고 아미르를 쳐다보았다
“굳이 빚을 갚고 싶거든 나중 누군가를 죽일 때 한번 쯤 오늘 일을 떠올려 주면 고맙겠소.”
그 말을 남기고 권총수 일행은 떠났다.
아미르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행군은 계속 되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표정들이 무거웠다.
심지어 일부 소대원은 뭔가 못마땅한 듯 자꾸 소대장을 흘긋 거렸다.
부하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듯 소대장은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앞서 걷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듯 했다.
소대장 얼굴에 얘기를 할까 말까 하는 망설임이 출렁거린다.
‘전쟁에서 머리싸움이라니’
불안하기 그지 없다.
자신이 보건데 아미르는 신자르산에 들어와 있는 IS중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로 보였다.
거물일수도 있는 그런 대상을 살려준 것이다.
물론 아미르를 살려준 건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열 아홉명의 IS를 제거한 뒤 권총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화전양면(和戰兩面)의 전술을 한번 써보자.
그래서 어떤(和)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권총수의 의견을 듣고 난 소대장은 마음이 움직였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한 번 시도해 볼만 하다고 판단했다.
모든 건 권총수가 세운 시나리오였고 지금까지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기대했던 소득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불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대원중 누군가가 IS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인물로 보인자를 살려줬다고 부대에 찌르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곧장 헌병대 조사를 받을 것이다.
잘못하면 적과 내통한 중범죄로 처형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을 너무 간단히 벌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후회가 밀려 왔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콱!
다시 이를 물었다.
‘잘 될 거야. 당연히 잘 될거야’
하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권총수의 말을 계속 되새겼다.
‘위험한 승부일수록 판돈은 큰 법이죠’
권총수는 자신있다는 듯 웃었다.
피식!
급기야 소대장도 실소를 지었다.
후회해도 소용 없는 것이다.
해가 떨어지면서 숙영지를 정하고 텐트를 쳤다.
오늘 밤 하루 묵을 곳이다.
목적지인 메드칸 까지는 20킬로 정도 남았다.
서둘러 이동하면 새벽녘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이미 두 차례 치열한 전투를 겪은 터여서 피로해 있다.
누적된 피로로 인한 전투력 저하는 예상하지 못한 교전이 일어나거나 소규모 도발 앞에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본대와 교신을 했는데 중대장은 다리다 소대장의 의사를 받아 들였다.
중대장 자신의 생각도 소대장과 같이 무리한 행군 보다는 안전한 곳에서 하룻밤 쉬고 새벽 일찍 출발하는 것이 병사들 사기양양에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뭇가지와 주위 풀을 뜯어 텐트를 덮어 위장했다.
“이 정도면 귀신도 모르겠지?”
오민철은 확실히 달랐다.
다른 텐트들은 나뭇가지와 풀을 뜯어 무덤 봉처럼 수북하게 덮었다.
그러나 오민철은 최대한 주위 나무와 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텐트를 숨겼다.
다른 사람들의 텐트는 멀리서는 몰라도 근처로 지나가다 보면 발견 될 수도 있어 보였으나 오민철이 친 텐트는 묘했다.
엉성한 듯 보이면서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소대장은 주위 동료들에게 자랑하듯 떠벌리는 오민철을 보며 빙긋 웃었다.
‘볼수록 놀라운 군인이다’
지나친 농담으로 가끔 대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만 뺀다면 모자란 곳이 없다.
“집합!”
소대장의 목소리가 개인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모두 소대장 텐트 앞에 섰다.
“근무는 10시부터 두 시간씩 선다. 암구호는 문어(問語)는 재칼이며 답어(答語)는 드골이다. 혹 문어와 답어가 바뀌어도 상관없다. 질문?”
“없습니다.”
“10시 이후부터는 이동병력 없다. 각자 텐트로.”
모두 각자가 쳐놓은 텐트로 사라졌다.
2인1조의 A텐트다.
훈련일 경우는 소대별 텐트를 사용하지만 실전에는 무조건 A텐트로 분산한다.
한곳에 모여 있다는 건 재수 없이 포탄 한발만 맞으면 몰살당하기 때문이다.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웠다.
“딱 한잔만 했으면 좋겠다.”
오민철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중얼 거린다.
“조금만 참아. 곧 외출 나가니까 내가 나가서 실컷 사줄게.”
“너 막걸리 좋아하냐?”
“좋지.”
“몇 가지 마셔봤어? 막걸리도 브랜드 마다 맛이 다르잖아.”
“난 오로지 장수(長壽).”
“짜식, 너 막걸리 맛 아는구나.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는 서울 장수 막걸리야. 옛날 현역 때 부대 회식하면 장수 막걸리 사기 위해 서울까지 나왔다니까. 텁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말끔하지도 않는 오묘 한 어중간의 맛.”
“물이 좋아 그럴까?”
“물 좋기로 따지면 지방 막걸리가 훨씬 맛있어야지.”
두 사람은 맛있는 막걸리 베스트 10을 선정하기로 하고 방방곡곡에 있는 막걸리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 * *
밤이 되면 모두가 광기에 함몰된다.
스스로들 축제라고 떠벌린다.
만약 축제가 이러한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축제는 지옥의 아수라장일 것이다.
악!
아아아!
여자들에게 생아편을 먹인다.
생아편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독하고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몰핀이 아편의 20프로라면 100프로 아편은 아찔한 농도인 것이다.
딸칵!
아미르는 작은 산봉우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불빛 한 점 흘러나오지 않는 캄캄한 계곡의 동굴에서는 지금 짐승도 부끄러워 할 잔인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IS에게 여성은 전리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리품은 싸워 이긴 쪽이 마땅히 가져야 할 소득이라는 것이다.
아아아악!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저토록 비명소리가 어둠을 갈기갈기 찢는 것일까.
얼마 전 IS최상층부로부터 작은 책자 한권이 왔다.
‘신의 새로운 약속’
이라고 쓰인 그 책에는 IS 최상층부에서 작성한 새로운 교리 몇 가지가 들어 있었다.
‘성전(聖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슬람의 아들들에게는 전리품 즉, 적의 여성을 취할 권한이 있다.
사고 파는 금전적 거래도 가능하며 적의 여성과 관계를 하는 것은 신에게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 믿음의 표시다.
여인과 관계하기 전 기도하고, 끝나고 나서도 감사의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적의 여인과 성관계는 거룩하며 신을 위한 우리의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