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화 (56/651)

제56화: 양귀비(3)

학학학!

거친 숨소리가 산을 울리고 여기저기서 발길에 채인 돌멩이가 계곡을 굴렀다.

“소대장님!”

다리다 상사가 고개를 들어 오른쪽 선두에서 뛰어가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무전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다리다 상사는 멈칫했다.

그 생각을 못했다.

권총수는 평범하지 않다.

군대에서, 그것도 전장에서 개별행동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늦을수록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것이고 더욱이 권총수는 저격수이다.

“좋다. 허락한다.”

헤드셋을 통해 허락 명령을 내리고 다시 고개를 쳐든 다리다 상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버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오른쪽 1시 방향에서 자신과 무전을 주고받던 권총수가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교신이 끝나고 길어야 2초, 3초 지났을 짧은 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재빨리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없다.

꿀꺽!

다리다 상사는 침을 삼켰다.

중국영화 속에 경공술이라고 하여 허공을 날아가는 기술이 있었다.

사람이 공중을 날아가는 건 헐리우드에서는 이미 당연시 되는 흐름이다.

혹자는 영화나 소설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처음 영화 속에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승용차가 나타났을 때 대중들은 그저 신기했고 영화려니 했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은 실제가 되어 곧 하늘을 나는 택시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인간도 제트 엔진을 이용하긴 하지만 허공을 날아간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선뜻 현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뭘 그까짓 걸 가지고 놀라십니까?”

세르게이가 돌아본다.

입가에 웃음기까지 담고 말했다.

“총수는 발만 빠른 것이 아니고 힘도 셉니다. 부대 휴게실에 있는 모래 재털이도 가볍게 들어 올립니다.”

다리다 상사는 눈을 크게 떴다.

대리석 받침대 위로 철판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그 안에 사막에서 퍼온 모래를 가득 채웠다.

한 번도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으나 200킬로는 족히 나갈 것이다.

다리다 상사의 표정이 굳었다.

쉭!

휘이이!

더 빨라졌다.

한걸음을 떼었는데도 몸이 3미터 정도 스윽 날아간다.

한 달 전만 해도 2미터 남짓 했는데 그 사이 1미터는 더 나아갔다.

공중으로 새처럼 날아가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나무와 바위들이 휙휙 뒤로 지나간다.

잠깐 사이에 산등성이 두 개를 넘었다.

드드드드!

퍼퍼펑!

요란한 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앞서 들린 소리는 PKM이고 두 번 째로 파고든 소리는 라시아제 유탄발사기 ASG-40이다.’

PKM과 ASG-40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보병 분 소대 단위에서는 최고의 중화기였다.

상대가 정규 군대도 아니고 IS인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봐야 했다.

스으으으!

세 번째 산등상이에 올랐을 때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맞은편 산중턱에서 검정색 질바드(jilbad: 망토처럼 생긴 장옷)을 걸친 IS 대원들이 산 아래 계곡에 있는 2소대를 향해 미친 듯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칼이든 총이든 전쟁에서 지형적 위치는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위에서 내려 보는 쪽이 올려다보는 상대에 비해 무조건 유리한 것이다.

퍽!

권총수는 재빨리 엎드렸다.

매고 있던 가방을 열어 M10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완전 분해하여 조립하는데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탁!

터터탁!

몇 번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삼각대까지 완전히 거치됐다.

길리슈트를 걸친 시간도 없다.

찰칵!

노리쇠를 당긴 뒤 5발 들이 탄창을 끼우고 다시 전진시켰다.

착!

권총수는 조준경에 눈을 붙이며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저격 순위라는 것이 있다.

무조건 적이 있다고 쏘는 것이 아니다.

제1 타겟은 지휘관이다.

제아무리 훈련이 잘된 부대일지라도 지휘관이 죽으면 사기는 꺾이고 전력이 급전직하 한다.

두 번째는 통신병이다.

통신병을 제압함으로써 본대 또는 지원부대와의 교신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중화기 사수이다.

스으으!

총구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계급장이 있는 군복을 걸친 것도 아니고 복장 대부분이 질바드 차림이거나 통이 넓은 헐렁한 바지인 샬와(shalwar)를 입고 있어 쉽게 찾아 낼 수가 없었다.

슥!

일단 중화기 사수부터 날리기로 했다.

총구가 고정됐다.

러시아제 유탄발사기 ASG-40이다.

보병부대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기능 장비로 직사화기인 총에 비해 엄폐물 뒤에 숨어 있는 적을 잡는 곡사형태의 공격이 가능하며 살상 반경이 좋아 몹시 위협적이다.

탕!

첫발이 날아갔다

조준경 속으로 유탄발사기를 쥐고 있던 IS 대원의 머리가 부서졌다.

타앙!

연이어 또 한발이 날아갔고 이번에는 PKM을 쥐고 총알을 쏟아 붓던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갑작스럽게 두 명의 중화기 공격수가 쓰러지자 IS쪽에서 멈칫했다.

탕!

타아앙!

3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또 다시 두 명의 IS대원이 나동그라지자 스나이퍼라는 외침이 계곡을 메아리쳤다.

적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철컥!

탁!

노리쇠를 당겼다 미는 동작이 갈수록 빨라졌다.

터-앙!

총소리가 연이어 울리면서 도주하던 IS대원들이 땅바닥에 엎드렸고 일부는 옆에 있는 바위뒤로 숨기 위해 필사적이다.

저격수 앞에서는 어떤 동작도 취해서는 안 된다.

저격수가 무서운 건 움직임 자체가 곧 죽음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2소대가 추격을 시작했다.

권총수가 나타났다는 것을 간파 한 것이다.

순식간에 전장의 주도권은 이쪽으로 넘어왔다.

IS는 지형적으로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저격수로 인해 마음 놓고 움직이거나 사격을 할 수가 없다.

저격수 한명이 얼마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닌 지를 지금 보여주고 있었다.

때마침 그때 1소대원들이 도착했고 다리다 상사는 무전으로 곧장 우회하여 퇴로를 막겠다고 했다.

1소대가 신속히 자리를 떠났고 오민철은 권총수에게 길리슈트를 입혔다.

자신도 길리슈트를 걸치고 엎드리더니 관측경을 눈에 붙였다.

“오른쪽 1시.”

스윽!

총구가 오른쪽 1시 방향으로 옮겨졌고 탕! 하는 소리가 울렸다.

도망치던 IS 대원이 나뒹굴었다.

타악!

노리쇠를 잡아당기자 탄피 한 개가 튕겨 나왔다.

언제까지 엎드려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 죽겠지만 일단 벗어나야 했다.

후다다닥!

IS대원들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더니 뛰기 시작했다.

한 두 명씩 움직여봤자 오히려 저격수 밥이 될 뿐이라는 걸 간파한 집단행동이었다.

밑에서부터 2소대가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서둘러 도망치지 않으면 저격수와 치고 올라오는 2소대에게 포위된다.

전장에서의 포위는 몰살이다.

퍽!

퍼퍽!

보지 않아도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었다.

부하들이 저격총에 맞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소리다.

이상하다

AK소총을 맞으면 가끔씩 비명을 지르며 죽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된건 지 저격 총을 맞으면 단 한마디 말도 뱉지 못하고 죽는다.

원통함도, 분함도, 성 냄도 없는 고요한 표정으로 죽는다.

그래서 저격수가 공포스러운 것이다.

마침내 산등성이를 넘어 저격권을 벗어났다고 여길 때였다.

두두두두!

꿈속에서 조차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맞은편, 그것도 20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많은 총알들이 날아왔다.

잔뜩 숨죽여 기다린 모양이었다.

어찌나 무차별 갈기는지 대응 사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IS대원들이 나자빠졌다.

풀썩!

픽!

산은 순식간에 시체가 나뒹구는 참혹한 도살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드르르르르!

타타탕!

콩을 볶는들 이 보다 더 시끄러울까.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우박일지라도 이만큼 요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털썩!

빡!

HK416의 총알이 지나간 자리는 붉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사격중지!”

차가운 음성이 산등성이를 울렸고 일제히 총소리가 멎었다.

스윽!

커다란 바위 뒤에서 한사람의 머리가 솟구쳤다.

1소대장 다리다 상사였다.

다리다 상사는 질펀하게 널브러진 시신들을 쭉 한 번 훑어보았다.

“소대 사망 확인!”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1소대원들이 몸을 드러냈다.

잔뜩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시신들을 향해 다가기 시작했다.

살았는데도 죽은 척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물귀신 작전 즉, 혼자 갈수는 없다고 마음먹고 숨죽이고 있다가 확인을 위해 다가오면 벼락처럼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그런 총에 당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빛은 여차하면 갈길 태세다.

한 명 한 명 총구를 가슴에 대고 죽었는지 죽은 척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소대장님”

브라질 출신 오스카르가 외쳐 불렀다.

다리다 상사가 다가갔는데 훤칠한 키에 회색 점퍼, 그리고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있는 인물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위생병!”

태국 출신의 피아퐁이 달려왔다.

심장을 살피고 맥박을 재던 피아퐁이 고개를 흔들었다.

가망이 없다는 뜻이다.

“출혈 과다로 맥박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쇼크사 할 것입니다.”

“몇 마디 나눠 볼 수 있나?”

“예!”

피아퐁은 곧장 몰핀 주사 한 방을 사내의 팔뚝에 꽂았다.

사내는 가짓말처럼 호흡이 부드러워 졌고 눈에 생기가 돌더니 초점을 잡는다.

“이름이 뭔가? 소속은?”

다리다가 내려 다 보았다.

사내는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는데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히죽!

사내가 웃음을 지었다.

여기가 어디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빠졌는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뻑 큐!”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미국인이군.”

미 국무부 발표에 의하면 IS에 자원한 미국인은 약 300명 정도라고 말했다.

거의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 중반인데 대부분이 집도 주고 여자까지 맺어 준다는 말에 속아 자원한 듯 보인다고 했다.

“집도 받고 결혼도 했나?”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

그 한마디를 더듬거리며 뱉더니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산등성이가 시끄러워 졌다.

매복 공격을 받은 2소대가 추격 해 올라 온 것이다.

2소대원들은 이미 사망 확인이 끝났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IS 대원들의 시신을 총구로 찌르며 조사 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라도 나부끼는 날엔 살았다고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2소대원들을 바라보던 다리다 상사의 눈이 좁혀졌다.

몇몇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척!

다리다 상사는 다가오는 튀랑 중대장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그자가 우두머리인가?”

조금 전 숨을 거둔 미국인을 보며 물었다.

“확인 하지는 못했습니다.”

중대장은 죽은 미국인을 뚫어져라 보았다.

잠시 노려보듯 하더니 고개를 들어 2소대원들을 살핀다. 중대장의 얼굴이 굳어진다.

여섯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읍!”

중대장은 숨을 멈췄다.

스물다섯 명중 8명이면 3분의 1이란 커다란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소수의 병력이 다수를 상대하거나 보잘 것 없는 무기로 중화기로 무장한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매복만한 작전도 없다.

매복에 대한 대비책은 없다.

유일한 방법은 걸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숨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징후는 존재한다.

사람이 숨어 있으므로 인해 근처 새소리가 사라지기도 하고, 운이 따르면 바람결에 숨어 있는 사람의 채취가 실려 오기도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드물다.

특히 매복은 사람의 시각이 가장 무기력해지는 야간에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거푸 숨을 내쉬는 중대장의 얼굴 곳곳에 설마 대 낮에 매복이 있으랴 하며 방심한 후회가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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