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양귀비(2)
하루가 멀다 않고 알자지라 방송과 CNN을 통해 나오는 민간인을 향한 IS의 참수소식에 전 세계는 분노했다.
심지어 이슬람권 국가중 가장 보수적이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의 정치인들조차도 IS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뉴스가 CNN화면을 채웠다.
보름 전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활동하던 프랑스출신 여의사 웨이린과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지 소속 남자기자 모렝이 참수 당하는 장면이었다.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떠는 두 남녀의 목을 대검으로 자르는 화면은 결코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IS는 두 사람을 잡고 프랑스군 철수를 요구했다.
철수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면서 피해자들의 가족과 프랑스 정부를 위협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테러범들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양측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생사의 대치를 했고 결국 사건은 파국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사건 후 프랑스 의회는 만장일치로 IS와 전쟁을 선언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누구도 프랑스 국민을 죽일 권리와 자격은 없으며 이건 분명한 침략행위라고 선언했다.
의회 결의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IS와 일전을 불사 한 것이다.
이라크 북부에 있는 신자르산 서쪽 나디콘 계곡에 H215M ZNRJ 병력수송 헬기 두 대가 날아 내리고 있었다.
대형 수송헬기가 만드는 먼지가 토네이도처럼 솟구쳐 올랐고 완전군장을 한 군인 40여명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외인 7중대 1소대와 2소대였다.
권총수가 속한 1소대는 2소대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은 11명 밖에 되지 않지만 이번 작전의 중심에 있었다.
어제 밤 아랍에미레이트에 주둔하고 있는 제13외인 여단장 필리쁘 준장까지 참여하는 작전 회의가 여단벙커에서 열렸다
외인 7중대는 27보병여단에 배속된 부대이지만 원 소속은 UAE에 있는 제13외인여단이다.
머큐리 27여단장과 필리쁘 13외인 여단장, 그리고 니꼴라 27여단 작전참모와 외인 7중대장 튀랑 대위, 그리고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서 급히 날아온 전술장교 뿌노아 대령까지 모두 다섯 명이다.
뿌노아 대령은 국회의 결의서와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편지를 전달했다.
말이 편지일 뿐 IS에 의해 참수된 여의사 웨이린과 르몽드 기자 모렝의 죽음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가하라는 명령서였다.
작전에 대한 많은 방법이 토론되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한 네 명 모두가 여단 병력을 전부 동원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 외인 7중대장 튀랑 대위 혼자 고개를 갸우뚱 했다.
모두가 상관들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여단규모의 공격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반대는 못하고 이마를 찌푸린 채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튀랑 대위를 향해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온 13외인여단장 필리쁘가 말했다.
“대위, 이 자리는 계급을 논하는 곳이 아니야. 프랑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면 어떤 보복을 당하는지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작전을 세우는 것일세.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게. 우린 자네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수용할 걸세.”
모든 시선이 쏠린다.
적지 않은 전투 경험이 있고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전장의 베테랑이지만 두 명의 여단장과 마주한 자리는 확실히 불편했다
“저의 판단으로 여단 규모의 공격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어째서?”
기다렸다는 듯 여단 작전참모 니꼴라 중령이 눈을 빛낸다.
“우리 쪽의 대대적 공세가 있으리라는 걸 신자르산에 주둔하고 있는 IS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니꼴라 중령이 다그치듯 말했다.
“그렇지만 예상하고 있다고 하여 우리가 패한다는 논리는 들이대지 말게.”
“물론이죠, 전쟁은 절대 수학공식처럼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1+1은 2가 아닌 제로(0)일수도 있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래서?”
듣고 있던 머규리 여단장이 결론이 뭐냐는 듯 묻는다.
“우린 미군에서 제공해준 정보만을 갖고 있습니다.”
“불쾌한 일이지만 지구상에서 미국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나라는 없네.”
백프로 믿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미국의 정보 신뢰지수는 A등급 이죠. 하지만 작전은 우리가 합니다. 일이 잘못되면 죽는 건 우리 병사들입니다.”
“우리 손으로도 어느 정도 정보를 확보 한 후에 작전을 벌이자는 건가?”
“프랑스의 위엄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죽는 건 상관없지만 자칫 기세 좋게 덤볐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튀랑 대위 자네는 아주 묘한 취미를 갖고 있어. 그게 뭔지 아나? 어떤 일을 시도 해보기도 전에 김을 뺀다는 거야. 지금 온 프랑스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IS타도를 외치고 있네. 이럴 땐 우리군도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하네. 때라는 것이 있지.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어도 존경 받지 못하네.”
“전쟁을 존경 받기 위해 합니까?”
“이봐.”
“됐어.”
머큐리 여단장이 손을 들어 니꼴라 중령의 말을 막았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제 생각을 말한다면 튀랑 대위의 말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대중의 심리를 잘 알죠. 그 대표적인 것이 국회가 소집 되자마자 30분도 되지 않아 만장일치로 보복을 천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대통령 또한 혹시라도 유권자들의 비난을 받을까 신속하게 국회의 결의를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한술 더 떠 당장이라도 IS와 전면전을 벌일 듯 강력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전쟁도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신중해야 하죠.”
13외인여단장인 필리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7중대가 신자르산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직접 정탐하고 필요하면 작전을 벌여 적의 화력과 인원, 부대 편성을 파악해 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자르산에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야지디족 3000여 명이 IS에 의해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 미군으로부터 건네받은 정보였다.
헬기가 떠나고 정적을 찾은 나디콘 계곡에 고요가 찾아왔다.
한 장의 지도가 펼쳐졌다.
지도에는 정 삼각형을 만드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고 세 개의 점을 포위 하듯 다섯 개의 검은 사각형의 점이 있었다.
붉은 삼각점과 검은색 사각 점을 보는 중대장의 눈이 빛난다.
이번 작전은 중대장이 직접 지휘 한다.
작전지도를 접어 옆에 있는 중대 통신병에게 건네주고 널리 퍼져 경계에 들어가 있는 중대원들을 훑어보았다.
슥!
헤드셋을 입 쪽으로 꺾어 붙인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명했다시피 이번 작전은 필요하면 공격도 해야겠지만 정찰과 정탐을 우선한다. IS가 집결해 있는 위치를 우리 두 눈으로 다시 한 번 직접 확인하고, 병력 규모와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포위된 야지다족 상태는 어떤지를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이다.”
권총수는 오민철과 뿌리를 드러낸 채 서 있는 전나무 그늘에 엎드려 있었다.
“돌발 상황이아니라면 결코 발포하지 마라. 모든 건 내가 직접 지시하겠다. 1,2 소대장.”
1소대장 맥그레인은 아랍에미레이트에 있는 프랑스 제77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그를 대신한 현 소대장 다리다 상사와 2소대장 야릭이 다가왔다.
중대장은 두 사람에 몇 가지를 지시했다.
설명을 들을 두 사람은 중대장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자기 소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1소대 이동.”
경계를 하고 있던 1소대원들이 일어나 다리다 상사를 따라 계곡 안쪽으로 사라졌다.
소대원들은 주위를 수시로 살폈다.
다행스러운 건 산에 나무들이 거의 없어 시야가 큰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길은 오르막이었다.
경사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울퉁불퉁한 자갈돌이 많이 깔려 있어 발자국 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소리와 냄새는 작전의 성패를 좌우 하는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그중 소리는 가장 분명하게 나의 위치를 적에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대원들 모두 군홧발에 밟히는 자갈돌 소리를 무척 거슬려 했다.
“이 놈의 산에는 새도 안사나 왜 이렇게 조용해.”
터질 것 같은 긴장에 무전기를 지고 가는 소대통신병 나카야마가 투덜거렸다.
집결지를 떠난 지 1시간 만에 디나르 고갯길에 올라섰다.
멈칫!
고개 너머에 십여 가구의 민가가 보였다.
다리다 소대장이 재빨리 작전지도를 펼쳤다.
붉은 청색이 깃발을 보며 중얼 거렸다.
“디나르 마을이군.”
소대장 다리다가 헤드셋을 당기며 입을 열었다.
“미군이 제공한 정보를 보면 디나르 마을주민은 모조리 IS에 의해 몰살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특히 전번 반군 작전을 떠올리며 부비트랩에 유의한다. 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놈들이다.”
헤드셋을 볼 쪽으로 당겨 붙이고 다리다 상사가 앞장을 선다.
20년의 군 생활의 베테랑이다.
얼마든지 행정으로 돌아설 기회가 있었으나 군인은 전장에 있을 때만이 그 가치가 빛난다면서 20년 동안 프랑스가 개입한 분쟁지역에 빠지지 않는 다리다 상사였다
사막 색 길리슈트를 걸치고 마른 가시나무 덤불사이로 작은 총구 하나가 슬그머니 나와 있었다.
주위 마른 숲과 완전히 일치되어 두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위장은 완벽했다.
권총수는 조준경을 이용해 살폈고 오민철은 관측경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수색하면서 수시로 소대에 상황을 보고했다.
저격수는 어떤 작전에서든지 부대 중심에 있다.
저격은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필요하면 깊숙이 잠입하여 적의 동태를 아군에 전달하고, 심지어 2차 대전당시 소련의 산악강습사단 저격수 ‘라노마프’는 변복을 하고 독일군 탱크부대에 침투하여 통신 암호 해독 첩을 탈취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로 인해 독일군의 무전 교신을 훤히 읽어냈고 즉시 궤멸시켰다.
지금 권총수가 해야 할 가장 큰 임무는 매복의 징후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별일 없는 것 같은데.”
오민철이 관측경으로 마을을 살피며 말했다.
권총수 역시 꺼림칙 한 건 발견하지 못한 듯 잠시 조준경에서 눈을 뗐다.
“경계할 만한 징후는 없습니다.”
헤드셋을 통해 보고했다.
“불어오는 바람도 의심해야 하는 곳이 전쟁터이지.”
소대장 다리다 상사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흠칫!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별 생각 없이 듣는다면 그저 평범한 말일 뿐이다.
하지만 생각하고 곱씹어 볼수록 가슴을 싸아하니 식히는 냉정한 지식이기도 했다.
백전노장이라고 부르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다리다 상사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교육이 아닐 수 없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소대원 전원의 입술이 바짝 말라 버렸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싶다.
누군가는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난 것처럼 온 몸의 입안이 바짝 마른다고도 했다.
200미터 정도 되는 디나르 마을을 통과하는데 마치 길고도 험한 지옥을 빠져나온 기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총수와 오민철이 합류하면서 소대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 1킬로쯤 이동했을 때 무전기가 지직 거렸다.
통신병 나카야마는 재빨리 송수신기를 귀에 대고 교신을 시작했다.
“소대장님!”
나카야마가 다리다 상사를 불렀다.
“본대입니다.”
이번 작전에서 본대는 중대장이 동행하고 있는 2소대이다.
“뮤슬리, 여긴 까술레”
뮤슬리 까술레 모두 전투식량 이름인데 중대장 튀랑대위가 결정한 이번작전의 무전 호출 암호였다.
“뮤슬리 지원 바란다. 뮤슬리 우린 지금 적의 매복에 걸렸다.”
다리다 상사는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까술레 자세히 말하라.”
“현재 위치, 늑대의 언덕 서북능사면, 적의 인원은 40명 정도, 무장정도 AK와 PKM, ASG-40, 반복한다. 지원바람, 지원바람.”
촥!
소대장은 번개처럼 지도를 펼치더니 각도기와 나침판을 들이댔다.
“동북쪽 3킬로, 지금부터 급속행군을 실시한다.”
말이 행군이지 거의 뛰는 속도다.
더구나 지금처럼 아군이 위험에 빠졌을 때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야 한다.
외인부대 급속행군은 시간당 8킬로다.
2킬로면 15분에 주파한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중요한 건 도로 조건이다.
지금처럼 길이 없는 산길을 걷는다면 2킬로라고 해도 15분이 아니라 30분도 소요될 수 있었다.
보병의 지원은 오로지 두 발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