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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화 (54/651)

제54화: 양귀비(1)

급기야 편지를 든 권총수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귀부대의 요청에 대한 답신. 상금은 현역군인이 아닌 일반인을 상대로 결정적 정보를 얻고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전중인 군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줘봐.”

오민철이 권총수 손에 있는 편지를 가져가 읽기 시작했다.

“뭔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홧김에 뱉은 한국말이었기 때문에 여단장은 알아듣지 못했다.

“디질뻔 했는데.”

그러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오민철이 화들짝 놀라며 여단장 눈치를 살폈다.

뜻은 모르지만 표정에서 불만을 읽어 낸 듯 여단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게 군대다. 나도 무척 섭섭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규정인데 어쩔 도리가 없군.”

“아닙니다.”

권총수는 금세 표정을 고치고 대답했다.

* * *

프랑스 육군으로부터 포상에 대한 공문이 내려왔다.

권총수는 ‘오피시에(Officier)’훈장이 내려왔고 오민철에게는 ‘슈발리에(Chevalier)’가 주어졌다.

프랑스 훈장은 우리와 조금 차이가 있다.

시민과 군에 대한 구별 없이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거나 빛낸 사람에게는 다섯 등급의 훈장을 수여한다.

오피시에는 한국군으로 비교하면 충무공훈장쯤이고, 슈발리에는 화랑무공훈장 정도이다.

더구나 비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명예 훈장이다.

상을 받은 두 사람 모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여단장과 티 타임을 가졌지만 전혀 즐겁지 않은 얼굴이었고 속에서는 부아가 쉬지 않고 치밀어 올랐다.

일 계급 특진도 없고, 그렇다고 호봉이 오르지도 않았다.

“뭐야 씨발 이거.”

여단장실을 나온 오민철의 입에서 끝내 욕설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왼쪽 가슴에 달린 초록색 별모양의 훈장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진짜 어이가 없네.”

오민철은 흥분하여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좆도 아니잖아. 오민철이 훈장을 떼어내더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려보았다.

“한국 훈장이면 전당포에라도 맡기는데 이건 젠장.”

그러면서 한쪽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권총수를 바라본다.

“너 훈장은 어딨어?”

조금 전까지 달려 있던 훈장이 보이지 않았다.

스윽!

오민철이 권총수의 아랫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훈장을 끄집어냈다.

“흐흐흐! 빨리도 넣었구나. 야 중대장님 오신다. 얼른 달아.”

오민철은 재빨리 권총수의 가슴에 달아주고 자신도 달았다.

“가지!”

지프가 왔고 두 사람은 뒷좌석에 올랐다.

부우웅

지프는 외인중대를 향해 출발했다.

“섭섭한가?”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중대장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나도 불편하다. 이번 작전의 공은 표현할 방법이 없을 만큼 크다. 그런데 어떡하겠냐. 프랑스 법이 그러한데.”

“아, 프랑스 괜찮은 나라인줄 알았는데.”

오민철이 투덜거렸다.

“뻔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군인은 명예로 죽고 사는 사람들 아니냐. 진심으로 축하하고 너희 둘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

중대장은 진심을 담아 말했으나 두 사람의 표정은 좀체 밝아질 줄 몰랐다.

축구 경기가 열렸다.

소대별 경기였는데 우승팀에게는 일주일의 외출이 주어진다.

전시 상태가 아니라면 외박과 휴가에 대한 포상이 주어지지만 언제 작전명령이 하달될 지 알수 없어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외출만 가능하다.

물론 일과시간 내의 외출이니 오후 다섯시까지는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

그게 그거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군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문안에 있는 것보다는 문밖이 훨씬 좋다.

‘그래도 난 나갈 거야’

보스니아 내전에 투입된 어느 외인부대 병사는 무공에 대한 포상으로 하루 외출을 받았다.

사실 상황이 워낙 엄중해 부대 밖은 무척 위험했다.

그래서 외출은 가급적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나가는 병사들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권총이라도 휴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경찰이 아닌 군인의 총은 전쟁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의 염려를 뿌리치며 나갔던 그 외인부대 병사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나가는 것.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밖을 나가고 싶은 것이 군인이다.

18살이 지나고 시설을 나왔다.

유병칠과 방을 얻어 본격적인 자립생활을 시작할 때 우연히 공을 차고 내려오는 지역 조기축구회원들을 보았다. 나름 지역 사람들을 사귀어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에 조기축구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그야말로 열렬히 환영했다.

아버지를 따라 공을 차러 나온 학생들은 있었지만 정식 회원으로서는 권총수가 제일 막내였다.

조기축구라고 하여 대충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곳에도 감독이 있었고 4-3-3, 4-2-4, 3-5-2 하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전술이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록 실력은 국가대표나 프로축구 선수에 이르지 못하지만 이빨 하나 만큼은 EPL이나 라리가 못지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모르는게 없었다.

심지어 고교 때까지 공을 찼던 선수출신의 회원에게 축구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의 축구지식이 전혀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운동장에서는 개발(犬足)이지만 입 만큼은 확실히 프로수준인 회원들이 수두룩한 곳이 조기축구회였다.

군대축구. 휴가 나온 친구들이 거품을 물고 떠들던 군대축구를 직접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 인원 보충이 되지 않은 1소대는 소대장까지 포함해 겨우 열한 명이었다.

이번에도 오민철의 이빨이 좌중을 휘어잡았다.

브라질 출신 오스카르가 물 만난 고기처럼 수비와 공격 위치를 정하고 나름 전술을 설명하자 듣고 있던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질렀다.

“지랄한다. 야이 씨뱅아. 무슨 군대축구에 말이 필요해. 죽공이라고 알아?”

“죽공?”

소대장까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오민철을 보았다.

“죽어도 공격, 그냥 적진을 향해 거품 물고 공격하는 거야.”

“형 무식한 소리 그만하고 오스카르 말 좀 들어보자고.”

권총수가 짜증을 냈다.

‘뭐, 무식?!’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파르르!

오민철은 분노를 참느라 두 눈을 떨었다.

참아야 한다.

권총수에 대력금강심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수모와 고난이 닥쳐도 인내해야 한다.

권총수는 지금 불가사의한 괴물로 자라고 있었다.

좀비가 나타나도 결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온몸이 눈부실 만큼 강해지고 있었다.

그 강함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수고와 서러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형 거기서 뭐해. 무식하다고 해서 삐쳤어. 말이 그렇지 내가 더 무식했으면 무식했지 형이 더 무식한 것 아니잖아.”

“그만해라.”

“형은 공격이야. 센터포드라고 들어봤지. 중앙공격수.”

“내가?”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형의 파워 있는 플레이, 특히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 야수적인 성질이야 말로 중앙 공격수로 제격이래.”

굳어 있던 오민철의 인상이 조금 펴졌다.

오스카라가 다가왔다.

“2소대 수비가 얘들이야. 덩치가 좋긴 하지만 결코 민철을 막지 못할 거라고 확신해.”

오스카라는 종이에 쓰인 2소대 수비 명단을 보여 주었다.

“덩치로 공 차냐 임마.”

오민철은 목을 한번 돌린 뒤 연병장으로 뛰어 나갔다.

2소대쪽에서는 응원구호도 나왔지만 전인원이 선수로 나온 1소대는 조용했다.

“나 있다.”

중대장이 1소대를 응원해주겠다며 손을 들어 보였다.

주심은 3소대 소대장이 맡았고 선심은 4소대에서 지켰다.

“다치지 않게 플레이해라. 비록 지금은 물리쳐야 할 적이지만 우리는 같은 전우들이다. 승부도 좋지만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예!”

1소대 선수들이 둥그렇게 모였다.

“제일 연장자인 민철이 한마디 하지.”

나카야마가 말했다.

“콱 그냥,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오민철이 노려본다.

“그래 한마디 해.”

권총수가 거들자 오민철은 못이긴 척 입을 열었다.

“바깥에서 축구를 11명이 만들어내는 땀의 하모니, 거짓이 없는 가장 인간적 스포츠라고 극찬하지만 군대서는 모두 개소리다. 군대서 축구는 강인한 체력과 부대 단결력을 발전시키려는 목적 말고는 없다. 더욱 중요한 건 승패다. 전쟁에서 패배란 곧 죽음이다. 이상.”

오민철의 비장한 표정에 모두가 흠칫하며 놀란다.

“페어플레이 그런 건 잔디 위에서 차는 놈들 얘기고 우린 무조건 이기면 돼.”

각자 위치를 찾아섰다.

권총수는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삐이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1소대의 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툭!

오민철이 아래로 내려 주고 권총수가 공을 잡았다.

권총수는 상대 중앙 공격수가 달려오자 길게 차 낼 듯 하더니 살짝 꺾어 속아 넘겼다.

투툭!

앞으로 툭툭 치고 나오던 권총수가 말했다.

“형 뛰어.”

뻥!

권총수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오민철을 보며 길게 차주었다.

공은 수비의 키를 넘어 뛰어드는 오민철에게 정확히 연결되었다.

콰아앙!

바로 그때 엄청난 굉음이 부대를 흔들었다.

쾅!

콰아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엎드렸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공병대와 수색대 근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쿠쿵!

포격은 계속 이어졌다.

애애애앵!

긴급 비상을 알리는 싸이렌이 터졌고 중대장이 외쳤다.

“전 중대 전투준비!”

후다닥!

일순간 연병장에 있던 외인7중대 병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완전군장 차림으로 중대 앞 벙커에 집결했다.

쿵!

쿠쿵!

포성은 계속 울렸고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박격포 소리 같은데.”

“2B25.”

그때 세르게이가 중얼거렸다.

러시아 2B25 박격포라는 것이다.

구경은 미군 81밀리와 같지만 파괴력은 좀 더 강하다고 했다.

그때 중대장이 중대 통신병과 같이 들어왔다.

“이라크 반군의 공격이다. 아마 아사드 준장의 체포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생각되며 지금 발사 장소로 관측된 곳으로 무장헬기 3대가 이륙했다”

가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연합군부대를 향해 휴대용 로켓을 발사하는데 그와 차이 없는 일회성 공격이라는 뜻이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더 이상 박격포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비상은 해제된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고 수송대 트럭 두 대가 파괴되었다는 여단의 발표가 있었다.

* * *

누군가는 그들의 만행을 유태인을 학살했던 히틀러의 광기에 비교하기도 했다.

인간사냥.

이라크 북부 신자르산 인근에 모여 사는 야지디족을 향한 그들의 살육에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어 인간이길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납치된 여성은 IS의 성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성 노예시장에 다시 800에 1000달러를 받고 판다.

일주일전 CNN은 한 가지 충격적인 화면을 내보냈다.

IS에 끌려갔다가 풀려난 어린아이와 노약자가 있었는데 그중 아홉 살 먹은 한 여자 이이의 배가 유난히 불렀다.

여자 아이는 곧장 난민 수용소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에게 넘겨졌는데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임신이다’

여자 아이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 의사의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못했다.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것이다.

아이는 또박또박 의사가 내민 종이에 자신이 겪은 일을 써 내려갔고 내용을 읽은 관계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건장한 IS 대원 세 명에게 밤낮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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