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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3화 (53/651)

제53화: 나는 장군이다(3)

아사드는 27여단 헌병대로 넘겨졌고 간단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입을 열지 못했다.

적지 않은 고문이 가해졌지만 그의 입은 자물쇠처럼 굳게 잠가져 있었다.

체포 일주일이 되었고 여전히 아무런 소득이 없을 때 군부대에 정장을 한 일단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아사드를 데리고 나와 포드 익스플로러에 태웠다.

두 대의 포드 익스플로러가 외인7중대 앞을 지날 때 아사드가 입을 열었다.

“차 좀 세워 주겠소?”

운전하던 사내가 조수석에 앉은 리더를 돌아보았다.

“세우게!”

끼이익!

아사드는 외인7중대 막사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다.

“부탁 하나 합시다. 외인1중대 권총수라는 군인이 있을 것이오. 잠깐 내가 보자 한다고 전해주시오.”

차 안의 사내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조수석 리더가 말했다.

“기별해주게.”

딸칵! 회색 정장을 한 사내가 내리더니 외인7중대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의 모습이 막사 안으로 사라지고 10여분 정도 지나 권총수가 나타났다.

회색 정장의 사내를 따라온 권총수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사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권총수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고맙소.”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당신과 함께).”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장군님과 함께).”

부우웅!

두 대의 익스플로러는 출발했다.

권총수는 사라지는 익스플로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널 찾은 거야?”

오민철이 막대 사탕 한 개를 물고 다가왔다.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대원들이 적지 않게 죽었는데도 가족을 살려준 것이 못내 고마운 모양이겠지 뭐.”

권총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막사로 걸어갔다.

“CIA?”

“걔네들 아니면 감히 누가 미군도 아닌 프랑스 군부대를 쑤시고 다니겠어.”

“CIA에 들어가면 죽일텐데.”

오민철은 입맛을 다셨다.

* * *

여단장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푸르나 고개 작전 실패로 대기발령 소리까지 흘러나왔던 고위층에서 쉬지 않는 칭찬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사드를 잡기만 하면 이라크 반군의 괴멸도 가능하다는 것이 백악관의 생각이었다.

네이비 씰도 몇 번을 허탕 치면서 체면을 구겼고 영국의 정예 SAS 역시 아사드가 있다고 알려진 동굴을 습격했다가 오히려 3명의 대원을 잃는 피해를 당했다.

미국 영국 모두 이를 갈며 아사드를 쫓았지만 최후의 사냥꾼은 프랑스군이 된 것이다.

프랑스 속담에 손님이 오면 주인이 빛난다고 했다.

여기서 손님은 권총수다.

그가 외인부대로 들어왔고 해외파병이 되었으며 자기가 이끄는 27여단으로 배속되어 온 것이다.

귀한 손님, 능력 있는 손님이라는 건 카스텔노다리 훈련소 성적으로 증명됐다.

거기에 군대 훈련의 끝판이라는 스나이퍼 스쿨까지 최우수 성적으로 마쳤기에 이번 원 팀 킬 작전에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성공했다.

자신의 승부수가 통한 것이다.

실패를 모르며 승승장구했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동기들중 진급이 제일 빨랐다.

그런데 푸르나 고개 작전 실패로 군인생활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옷을 벗느냐 아니면 프랑스 육군참모총장의 꿈을 향해 계속 달리느냐.

‘위기일 때 날개를 펴라’

나폴레옹의 말을 떠올렸다.

즉 생사의 칼을 뽑아든 것이다.

만약 권총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더 이상 군인으로 어떤 꿈을 꾼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원 공격 실패에 이어 외인부대 창건이래 가장 뛰어난 저격수를 허망하게 잃었다는 책임은 엄청나게 혹독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총수는 지금 뭐하는가?”

외인 7중대로 전화를 걸었는데 통신병이 받는다.

“뭐? 조금 전 훈련을 나갔단 말인가? 오늘 토요일 아닌가?”

잠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여단장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연합군 지도부의 끙끙 앓고 있던 이를 뽑는 엄청난 공을 세웠다.

포상 계획에 대한 미국과 프랑스 정부의 결제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훈련이라니.

여단장은 풀어 놓은 권총을 차고 문을 열고 나갔다.

900미터 밖에 세워진 표적 이마를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정탄!”

관측수 오민철이 분명하게 말했다.

“다음은 800, 위치는 심장 준비된 사수로부터 저격 개시.”

조준경을 통해 800미터 표적을 살폈다.

조준선이 정확히 심장에 닿고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성이 울리고 오민철은 관측경으로 표적을 살폈다.

“정탄!”

툭!

다섯 발들이 빈 탄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탄창교환!”

“또 쏠라고? 벌써 오십 발 당겼어.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면 안 되겠냐?”

자동소총 50발은 잠깐이다.

하지만 저격수의 50발은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을 소모한다.

오늘따라 섭씨 49도에 육박하는 기온은 길리슈트를 걸친 오민철을 찜쪄 먹을 것 같았다.

“하나만 더 비우고.”

“진짜. 딱 하나다. 거짓말하면 백달러.”

“빨리 주기나 해.”

오민철이 투덜대며 탄창을 건네주었다.

끼륵!

노리쇠를 당기자 조금 전 쐈던 탄피가 튕겨 나온다.

탄창을 집어넣고 노리쇠를 전진시킨 권총수를 향해 오민철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900 속사?”

“오케이

“사수 준비됐으면 900, 위치는 명치, 이마, 심장, 다시 명치 이마 순으로 사격개시.”

탕!

끼륵!

타앙!

오민철의 관측경을 이용해 900미터 표적을 살폈다.

타앙!

2초 간격으로 총성이 울렸고 다섯 발 모두 순서대로 제 위치를 분명하게 뚫었다.

“사격 끝, 약실확인!”

권총수는 노리쇠를 당긴 뒤 전진시키고 빈 방아쇠를 당겼다.

딱!

같은 동작을 두 번 더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진짜 덥다!”

길리슈트를 벗은 오민철이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흠칫!

오민철이 햇빛 차단을 위해 쓴 부니헷을 벗다말고 두 눈이 커졌다.

권총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총수야.”

“몇 발 더 당기자고?”

권총수는 오민철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안 더워?”

“그럭저럭.”

“진짜?”

그제서야 오민철을 바라보던 권총수가 담담하게 웃었다.

“좀 가르쳐 주라. 농담 아냐”

“나중에 얘기해.”

“뭘 나중에 얘기해? 나 지금 심각해. 최선을 다할게.”

“내 제자가 되겠다고?”

“제자 잘할 자신 있어.”

권총수의 두 눈이 확인하듯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오민철은 혹시라도 권총수의 마음을 건드릴까봐 온 힘을 두 눈에 집중하고 쏘아보았다.

금방 레이저 정도는 쏟아낼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쉽지 않을 텐데.”

“난 할 수 있어.”

“고통 스러울거야.”

“괜찮아.”

슥!

권총수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자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이 라이터를 켰다.

딸칵!

“땡큐!”

권총수는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이며 말했다.

“제자의 길이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해. 중국영화 봤지. 무술이 뛰어난 고수를 사부로 모시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는 제자들 말이야.”

“나도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니까.”

“못 할텐데.”

“한다니까. 믿어줘.”

“좋아. 이 넓은 외인부대에서 배달의 민족이라고는 형과 나 둘 뿐인데 지나치게 거절하는 것도 인정머리 없어 보이겠지.”

“그렇지.”

“좋아. 사제지간의 예는 나중 정식으로 갖추기로 하고 지금은 한 가지만 말할게. 욕심을 버려.”

“버리겠어.”

“그럼 됐어, 그만 가자고.”

권총수가 M10을 담은 가방을 어께에 메려고 하자 오민철이 재빨리 가로챈다.

“내가 메야지.”

왼쪽에는 관측경을 비롯한 관측수 장비가 든 가방과 HK416을 멨고 오른쪽에는 M10 백을 멨다.

M10백에는 양각대 조준경, 그리고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다섯 발들이 탄창 두 개가 항상 비치되어 있다.

거기에 길리슈트까지 포함하면 대략 10킬로에 근접한다.

하지만 오민철은 군소리 없이 당당하게 가방을 멨다.

나란히 걷는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른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메지 않은 홀가분한 상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나무에 열린 과일처럼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총수야.”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상금은 어떻게 되는 거냐?”

“무슨 상금?”

“아사드 목에 걸린 200만 달러.”

“으음!”

권총수기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아.”

“우리가 잡았잖아. 아니 네가 잡았지.”

오민철이 재빨리 말을 고쳤다.

권총수가 걸음을 세우고 돌아보았다.

“줄까?”

“무슨 소리야. 잡거나 결정적인 제보를 한 사람에게 200만 달러를 주겠다고 로얄 카드까지 작성된 인물인데.”

“내 얘긴 우린 일반인이 아닌 군인이잖아. 군인에게 준다는 말은 없잖아.”

“그런게 어딨어.”

오민철이 버럭 화를 냈다.

“안주기만 해봐.”

오민철은 금방이라도 뭔 일 저지를 기세였다.

군인이다.

규정을 들먹이며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바로 그때 권총수 눈이 짧게 빛나더니 오민철의 어깨에 걸린 M10가방을 낚아챘다.

“내가 멘다니까?”

권총수가 M10 가방을 멨을 때 커브 길을 돌아 지프 한 대가 나타났다.

부우웅!

“뭐야. 여단장.”

오민철이 놀라며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권총수는 어느 새 피우던 담배를 끄고 부동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저 여우 같은 새끼’

왜 자신이 메고 있던 M10가방을 빼앗아 갔는지 그 이유가 드러났다.

청력이 뛰어난 권총수는 자신보다 먼저 여단장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자기 일은 반드시 자신이 한다는 외인부대 규율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지프가 멈추고 여단장이 내리자 오민철은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쉬어!”

그제 서야 오민철이 손을 내렸는데 여단장이 미소를 머금는다.

“고생들이 많구나.”

“아닙니다.”

권총수는 가재미 눈을 하여 여단장을 살폈다.

갑자기 경상북도 안동이라는 도시가 떠올랐다.

‘맞아. 하회탈!’

여단장의 얼굴에 웃음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안동교구로 봉사활동 갔을 당시 봤던 하회탈이다.

푸르나 고개 작전 실패로 궁지에 몰렸다가 아사드를 잡음으로써 인생이 다시 폈다.

슥!

“감사합니다.”

여단장은 두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다.

“영광입니다!”

딸칵!

손수 불까지 붙여주고 자신도 한 개비 피워 물었다.

“아직 상부에서 너희들에 대한 포상 내용이 내려오지 않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오리라 본다.”

“궁금한 것 한 가지 물어도 됩니까?”

여단장은 권총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라 권총수.”

“상금 줍니까. 아사드 준장을 잡거니 체포하는데 결정적 제보를 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200만 달러 말입니다.”

꿀꺽!

권총수와 오민철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잖아도 상금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조금 전 상금에 대한 유권해석이 내려왔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프랑스 육군 문양이 찍힌 편지봉투 한 개를 꺼내주었다.

편지를 받은 권총수는 안의 내용물을 꺼내 펼쳤다.

편지 내용을 읽어가던 권총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런 씨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뱉으려던 권총수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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