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나는 장군이다(2)
정면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뒷모습은 눈에 익다.
원 팀 킬 작전에 들어가면서 아사드의 측면은 물론 뒷면까지 눈이 아프도록 익혔다.
남은 건 얼굴이다.
바로 그때였다. 도망자의 위기 본능 같은 것인가.
아사드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권총수의 눈은 아사드의 얼굴을 스캔하듯 훑어 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주머니속에서 아사드 사진이 있는 로얄 카드를 꺼내 확인했다.
맞다.
구레나룻과 콧수염을 기른 것만 빼면 완전히 일치한다.
‘아사드’
마침내 찾았다.
가슴이 뛴다.
미군과 프랑스를 포함한 연합군이 지난 십 년 동안 추적했지만 잡지 못했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부대장 아사드 준장이 분명했다.
철컥!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밤이 길면 꿈도 길어지는 법이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파팟!
돌연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가파른 비포장길 도로에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데 아사드가 막 차량 문을 열고 있었다.
수이이익!
불영보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여긴 뻐꾸기 제로, 아사드 발견, 2층 주택에서 서북쪽으로 1.5킬로 지점, 승용차를 이용해 도주 시도하고 있음!”
“여긴 둥지, 다시 말하라. 뻐꾸기 제로.”
중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타아앙!
권총수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권총을 발사했다.
퍼억!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승용차 뒷바퀴가 주저앉는다.
부우웅!
그러나 차는 움직였다.
권총수는 다시 두 손으로 권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파아악!
이번에는 왼쪽 앞바퀴가 주저앉으면서 차가 휘청 흔들렸다.
아무리 성능 좋은 차라고 해도 한쪽 방향 앞뒤 바퀴 두 개가 모두 펑크 나면 달린다는 것이 아주 불편해진다.
부우웅!
엔진소리가 크다.
차가 움직이면서 자꾸 왼쪽으로 돌아가려는 핸들을 붙잡아야 했고 그 바람에 차는 원활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뿌우웅!
전륜구동인 듯 앞 바퀴가 미친 듯 회전했고 급기야 길가 언덕에 박히고 말았다.
퍼어엉!
끄르르륵!
뒤로 후진이 쉽지 않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며 생기는 소리가 밤을 울렸다.
벌컹! 갑자기 운전석 문이 열리며 챙이 없는 모자 페즈를 쓴 마흔 후반 가량의 사내가 어둠속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탕탕!
총구가 좌우로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 아직 권총수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벌컹!
사내는 뒷문을 열어 아내와 두 아들을 내리도록 했다.
탕!
다시 어둠속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사내는 가족들을 데리고 수확이 끝난 밀밭을 가로질러 달아나기 시작했다.
뻐억!
아들 중 한 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휘익!
사내는 쓰러진 아이를 한손으로 끌어당겨 안더니 뒤쪽을 살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타탕!
다시 한 발을 발사한 뒤 앞을 보고 달리던 사내가 멈칫했다.
10여미터 앞에 사막색 얼룩무늬 군복 차림을 한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다.
“아빠!”
십이삼 세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놀라며 사내의 품을 파고들었다.
사내는 급히 달리느라 권총을 내려뜨리고 있고, 권총수는 겨누고 있다.
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지금 자세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엉어엉!”
급기야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진정 하거라. 너희를 쏘지 않을 거야.”
권총수는 왼손을 들어 아이를 진정시켰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냐. 남자답게 차분히.”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권총수를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탕!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권총수가 아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가 권총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권총수의 응사가 훨씬 빨랐다.
훅!
사내는 비명을 터뜨리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툭!
사내가 감싸 쥔 오른쪽 어깨가 금세 붉어졌다.
“여보!”
여자가 재빨리 사내를 부축하며 상처를 살폈다.
“피!”
여자는 흘리는 피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총 맞은 상처의 피는 칼 맞았을 때와 다르다.
좀체 지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잠깐 비켜 주시겠소?”
여자가 빙글 돌아섰는데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검정색 차도르를 쓴 여인.
권총수를 바라보는 두 눈이 차갑게 빛난다.
“날 죽여요. 누구도 내 남편을 죽일 수 없어요.”
“부인.”
“절대 못 데려가요.”
여자는 단호했다.
권총수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장군님.”
장군이란 호칭에 사내가 움찔했다.
“결자해지 하시죠. 우리가 원하는 건 장군님이지 가족이 아닙니다. 가족을 물리쳐 주십시오.”
그때 사사삭!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어둠속을 달려온 중대원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려 총구를 겨누었다.
차도르를 쓴 여인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는다.
“여보, 우리 모두 죽이고 가세요.”
“아일라.”
사내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없는데 우리가 살아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 권총으로 우릴 쏴주세요.”
“으아앙!”
또다시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핫산 뚝. 울지 말라니까?”
형이 버럭 소릴 질렀다.
“난 죽기 싫어.”
“조용이 해. 이 겁쟁이야.”
“메흐디, 소리 지르지 마라. 동생들은 모든 것이 무섭단다.”
사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큰 아이 메흐디를 내려다보았다.
“메흐디, 내 말 잘 듣거라. 이제 우리 집 가장은 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메흐디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네”
“힘들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워 자주 아빠를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건 꿈이다. 남자는 꿈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거다.”
“네! 메흐이의 대답이 흔들린다.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를 악물고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참고 있었다.
“아일라. 당신은 아주 현명한 여자요.”
자제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차갑고 냉정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스윽!
사내가 돌아섰다.
어둠 속에 수십 개의 총구가 사내를 겨누고 있었다.
“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부대장 아사드이오. 이 작전의 책임자가 누구요, 그와 얘기 하겠소.”
그때 라이트를 끈 지프 한 대가 올라오더니 멈췄다,
앞문이 열리고 중대장이 내렸는데 오른쪽 옆구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포위한 중대원들은 아차하면 벌집을 만들어 버릴 기세다.
특히 아사드에게 회복하기 힘든 살육을 당한 1소대원들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렁거렸다.
만약 중대장이 없고 이 자리에 1소대만 있었다면 아마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이 개자식, 목구멍에 30발들이 탄창 한 개를 모조리 박아주겠다’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하던 세르게이가 이를 갈았다.
토마스.
하키미.
저 먼 마케도니아에서 온 셀 이등병.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살고 싶다는 그들의 꿈은 고작 1년만에 꺾이고 말았다.
솔직히 같이 사망한 소대 선임들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별로 없다.
그러나 카스텔노다리에서 같이 뒹굴고 땀 흘렸던 훈련 4개월은 아직도 그들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저벅저벅!
중대장은 천천히 아사드를 향해 다가왔다.
중대장은 아사드와 3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음을 세웠다.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외인7중대 중대장 대위 튀랑입니다. 잠시 얼굴 확인을 하겠습니다.”
중대장은 볼펜 크기의 손전등을 켜더니 아사드 얼굴을 확인했다.
아사드는 덥수룩한 구레나룻을 길렀는데 반해 사진은 깨끗하게 면도를 한 얼굴이다.
한참을 살피고 있자 권총수가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맞습니다.”
확신하지 못하고 있던 중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눈에는 분명치 않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밤이다.
“귀를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권총수는 아사드에게 양해를 구한 뒤 양손으로 귀를 덮고 있는 구레나룻을 쓸어 올렸다.
멈칫!
중대장의 눈이 커졌다.
구레나룻을 걷어 올리자 귀가 정확히 드러났는데 특이하게도 보통 사람들보다 처져 있다.
애완견 비글처럼 양쪽 귀가 밑으로 축 늘어진 것이다.
수염이 귀 일부를 덮어버려 얼른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아사드 또한 자신의 그런 신체적 특징을 감추기 위해 구레나룻을 길렀을 것이다.
“지금 이시간부로 장군님은 전쟁 범죄자입니다. 저희 뜻에 따라 주셔야 합니다. 데려가.”
두 명의 무장 소대원이 다가왔다.
“여보!”
턱!
한 명의 병사가 아일리 앞을 막아섰다.
“비켜!”
달려드는 아일리를 병사는 사정없이 뿌리쳤다.
아일리는 힘없이 밭고랑에 처박혔고 핫산이 엄마를 외치며 달려갔다.
“메흐디, 엄마를 부탁한다.”
아사드가 이를 지그시 물었다.
메흐디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눈물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아사드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몸을 수색하겠습니다.”
병사 한 명이 아사드의 몸을 조사했다.
아사드 몸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촤르륵!
병사는 숙달된 동작으로 포승줄을 꺼내 아사드를 묶었다.
“가시죠.”
총을 어깨에 맨 두 병사가 양쪽에서 팔짱을 끼었다.
“아빠! 아빠!”
핫산이 울며 쫓아오려 하자 메흐디가 뺨을 때렸다.
쫙!
뺨을 맞은 핫산이 나동그라졌다.
척!
아사드의 발걸음이 다시 멈췄다.
“조용히 해. 울지마.”
메흐디의 차가운 외침에 아사드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사드는 병사들에 의해 지프로 끌려갔고 핫산은 아빠를 계속 외쳤다.
탁!
아사드가 지프 안으로 사라지고 부우웅! 차는 어둠속으로 떠났다.
* * *
알자지라 방송이 아침부터 떠들기 시작했다.
지난 십 년 동안 미군의 끈질긴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활개치며 연합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이라크 반군 지도자중 한 명인 아사드 준장이 생포됐다는 것이었다.
아사드는 언젠가부터 이라크를 넘어 이슬람의 영웅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CIA와 씰 팀이 추격에 나섰지만 항상 한 발 늦었다.
언젠가는 역습을 받아 미군 여섯 명이 숨을 거두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고 했다.
아사드는 이교도를 처단하는 알라의 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뉴스에 찍혀 나온 아사드의 얼굴과 육성 앞에 모두가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사드의 생포소식을 듣고 이렇게 통곡했다
‘지야드의 몰(沒)’
‘오 나의 전사들이여, 달아 날 곳은 결코 없다. 뒤에는 커다란 배를 삼키고도 남을 예브로 강(스페인에 있는 강)이 있고 앞은 우리의 목줄을 노리는 적이 있구나. 우린 숫자에서 뒤지고 장비에서 열세다. 하지만 우리에겐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신과 여기 한 자루 칼이 있구나.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반드시 이길 것이다’
서기 700여년전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린 이슬람의 대전사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최후 공격을 앞두고서 외쳤던 말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아사드를 당시 공격선봉에 섰던 지야드라고 믿었다.
믿음과 신뢰가 컸기에 아사드의 생포 소식은 중동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섰다.
BBC는 이슬람의 희망이 무너졌다는 표현으로 아사드의 체포 소식을 크게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