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나는 장군이다(1)
권총수는 그냥 뛰는데 오민철은 야시경을 쓰고 있었다.
별빛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속을 주저 없이 달려가는 권총수를 보며 오민철은 마른 침을 삼킨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장비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권총수는 거침이 없다.
“여기지.”
앞서 언덕을 오르던 권총수가 걸음을 세웠다.
오민철은 재빨리 열상장비를 벗어보았다.
“후훕”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깜깜할 뿐이다.
더욱 놀랄 일은 다음에 있었다.
탁!
처처척!
대낮인 듯 가방을 열어 M10을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격수라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자신의 총을 분해 결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면에 총을 설치하는 건 분해 조립과 다르다
땅바닥이 분명하게 보이고 확인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자리에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무조건 바닥에 총을 거치한다고 해서 저격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면의 경사도에 따라 저격률은 달라질 수 있다.
한마디로 명당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낮에 분명하게 봐뒀는데 권총수는 야간 장비도 끼지 않고 그 자리에 설치한 것이다.
훌쩍!
한 손을 바닥에 짚고 가볍게 엎드리더니 적외선 스코프를 바라보았다.
끼리릭!
거리와 화면의 밝기를 조절한다.
“200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것 같은데.”
계속 거리를 조정했다.
“230.”
오민철이 엎드려 눈에 관측경을 붙이고 짧게 말했다.
“탄창!”
오민철이 재빨리 다섯 발들이 탄창을 건네주었다.
딸깍!
노리쇠를 당기고 탄창을 끼우고 거칠게 앞으로 밀었다.
철컥!
노리쇠가 전진하면서 약실에 한발이 물려 들어간다.
“여기는 뻐꾸기 제로, 뻐꾸기 둥지 응답하라”
“여긴 뻐꾸기 둥지, 뻐꾸기 제로 말하라.”
“뻐꾸기 제로 사냥 준비 끝, 반복한다 뻐꾸기 제로 사냥준비 끝 이상.”
“알겠다 이상.”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조준경을 통해 주택을 살핀 뒤 숨을 죽였다.
중대장의 눈이 빛났다.
이미 이층 주택과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 10여 차례 진입작전을 연습했다.
또한 지난 사흘간 무인 드론까지 띄워 촬영했는데 아사드가 은신해 있는 집일 가능성이 80퍼센트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뻐꾸기 1 공격 준비 완료.”
“뻐꾸기 2 공격 준비 완료.”
“뻐꾸기 3 공격 준비 완료.”
소대별 무전이 들어왔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1분, 모든 뻐꾸기들은 공격을 실행한다. 뻐꾸기 공격개시.”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사다리가 놓여지고 정문 공격조인 1소대가 4미터 높이의 담장을 넘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들어선 1소대원중 비렌드라가 굳게 닫힌 집 현관문에 폭탄을 설치하고 뒤로 물러났다.
펑!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지면서 현관문이 날아갔다.
와장창!
휙!
엎드려 있던 비렌드라가 벌떡 일어나더니 현관 안쪽으로 뭔가를 던져 넣었다.
번쩍!
파아아!
번개가 친 듯 순간적으로 온 집안이 환해졌다.
섬광탄이다.
드르륵!
가장 먼저 뛰어든 비렌드라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안방 문을 열고 튀어나오던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두두두두!
비렌드라는 열린 안방문을 향해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쿠쿵!
집이 무너질 듯한 소리가 들린데 이어 드르르륵! 방안으로 뛰어 들어 무차별 난사했다.
네 명의 사내가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 야시경에 포착된다.
비렌드라는 혹여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을 위해 네 사내들을 뒤집어 일일이 생사를 확인했다.
나머지 1소대원들은 화장실, 부엌, 작은 방으로 치고 들어갔다.
드르륵!
보이는 건 무조건 갈겼다.
‘굳이 생포에 미련을 두지마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생포를 의식하다가는 이쪽에서 많은 피해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에 중대장은 방아쇠를 아끼지 말라고 했다.
세르게이는 HK416을 움켜쥐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콰쾅!
머리 위 2층에서 수류탄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비명과 외침이 터져 나왔다.
드르르르!
탕탕!
옥상으로 진입한 2소대와 적들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꿀꺽!
숨이 막힌다.
복도 끝 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숫자는 모르지만 죽음의 안개 같은 기운이 스멀스멀 뻗어 나오고 있었다.
탕!
두두두두!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방안에서 AK든 군복차림의 사내가 뛰어나왔는데 세르게이 반응이 좀 더 빨랐다.
하지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던 사내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사내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서도 10여발을 더 쏜 뒤 멈췄다.
휙!
세르게이는 번개처럼 총구를 내밀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다.
바닥에는 낡은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얇은 카시미론 이불과 베개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세르게이 눈이 좁혀 졌다.
베개가 5개다
그런데 방에서 나온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베개 숫자로만 계산한다면 이 방에서는 모두 다섯이 잠을 잤다는 얘기가 된다.
한 명은 죽었으므로 나머지 4명이 더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혼자 자면서 쓸데없는 4개의 빈 베개를 놓을 리는 없었다.
세르게이 시선이 좌우 벽을 쏘아보았다.
벽인 듯 하지만 어딘가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현역시절 모스크바 군구소속 중장 마린브렌코가 쿠데타를 모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작전에 나선 적이 있었다.
모스크바 군부는 푸틴 총리의 친위대라고 할 만큼 철저히 그를 위해 움직인다.
관사 경계병들과 총격전을 벌인 뒤 모두를 사살하고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마린브렌코와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경계병들과의 총격전이 벌어지기 전에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
즉 총소리를 듣고 도망쳤다면 아직 집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 지휘관의 판단이었다.
먼동이 터올 때까지 수색을 했지만 마린브렌코와 가족들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집 밖으로 도망친 흔적도 없었다.
거의 검거에 실패할 때 쯤 마린브렌코와 가족이 숨어 있는 장소를 찾아낸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세르게이였다.
하나 뿐인 딸의 방 책장에 비밀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책이 꽂혀 있는 평범한 책장이었다.
얼떨결에 눈에 익은 소설책을 발견하고 뽑으려는데 너무 빼곡하게 꽂혀 빠져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두 손으로 책 틈을 벌리고 뽑기 위해 힘을 쓰던중 서재가 뒤로 밀리면서 시계처럼 팽그르르 돌아가 버렸다.
그 뒤에 작은 문이 있고 그곳에 마린브렌코와 가족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콱!
콰아악!
혹시 이곳 벽도 서재처럼 밀리는 장치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손으로 벽을 밀어 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 혼자서 베개 다섯 개를 놓고 잔다는 건 듣도 보지도 못했다.
휘익!
총구로 카페트를 걷어냈다
“맙소사!”
방바닥에 찢어진 흰색의 천 조각이 장판에 눌려 있었다.
재빨리 뒤로 물러난 세르게이 눈이 빛났다.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분명했다.
급히 내려가다 문이 닫히면서 옷 조각이 찢어진 것이 분명했다.
드르륵!
일단 바닥을 향해 십여 발을 갈겼다.
시멘트나 흙으로 된 바닥이라면 총알이 박히거나 튕겨 나와야 정상인데 모두 뚫고 들어갔다.
더듬거리며 틈새를 찾아낸 세르게이는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덜컹!
하는 소리를 내며 사방 1미터 크기 정도 되는 나무로 된 뚜껑이 열렸다.
‘사다리’
나무 사다리가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권총수는 계속 총을 좌우로 돌리면서 조준경을 이용해 주택의 주위를 살폈다.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콩을 볶듯 울리는 총소리는 예상보다 적의 인원이 많다는 뜻이다.
“뻐꾸기 둥지, 여긴 뻐꾸기1.”
뻐꾸기 1이면 1소대를 의미한다.
“세르게이야.”
권총수는 목소리까지 구분하여 말해주었다.
“1층 방에서 지하 통로 발견, 1층 방에서 지하통로 발견.”
“뻐꾸기 1은 즉시 추적하라. 놓쳐서는 안된다. 뻐꾸기 1은 즉시 통로를 따라 추적하라.”
중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아직까지 아사드를 잡았다는 보고는 없다.
만약 집안에 아사드가 있었다면 지하통로를 이용해 달아난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비밀 통로 같은 건 없었잖아.”
혹시 있을지 모를 외부로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철저히 집 근처를 수색했지만 의심스런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탁!
권총수는 총의 양각대를 접었다.
이제는 저격보다는 도망쳤을 가능성이 큰 아사드를 찾아야 한다.
저격수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정찰과 추격이다.
삼각대를 걷었다.
조준경에 눈을 맞춘 채 총을 좌우로 돌리며 혹시 의심스런 표적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오민철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본격적으로 관측경을 돌렸다.
이라크는 부족한 전력으로 인해 자주 전기가 자주 끊긴다.
특히 심야 시간대에는 갑작스런 비상사태를 대비해 아르빌 시에서 일부러 전기 송출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지금이 그런 듯 온 사방이 불빛 한 점 없었다.
단전인지 고의 중단인지 알 수 없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불빛이 없는 밤.
누구에게 유리할까.
도망자일까 추적일까.
당연히 도망자가 유리하다.
어둡다는 건 몸을 숨기는 최고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어?!”
180도, 좌우 수평 각도까지 총을 돌리며 주택 인근을 살피던 권총수가 멈칫했다.
“왼쪽 10시 방향.”
“어엇.”
재빨리 야간 관측경을 왼쪽으로 돌려 살피던 오민철이 놀라는 소리를 했다.
“사람.”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모두 넷.
까만 화면은 주위 지형을 나타내고 백색 화면은 몸에 열을 지닌 동물이 움직이고 있을 때 나타난다.
즉 네 사람이 지금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사드 신체 사이즈가?”
권총수가 네 사람을 관찰하면서 물었다.
“신장187센티, 체중 83킬로, 체중은 10년전 얘기니까 믿을 것 없다고.”
키가 월등히 큰 사람과 조금 작은 사람, 그리고 아이들로 보이는 두 사람.
권총수 눈앞으로 2층 주택으로 들어가던 승용차가 떠올랐다.
특히 뒷좌석에 앉아 장난치던 두 아이의 모습이 눈에 어른 거렸다.
“아사드일까?”
“일단 무전부터 치자고, 이 밤에 불도 켜지 않고 저렇게 허겁지겁 가는 걸 보면 수상하잖아.”
“거린 멀어.”
2층 주택에서 네 사람과의 거리는 500미터 가량 떨어졌다.
야간에 500미터 거리는 대낮 1킬로 이상이다.
더욱이 근처 지형에 익숙하다면 잡을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본대에 맡기면 잡을 확률보다 놓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벌떡!
갑자기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부탁해.”
“어디가?”
쉬익!
권총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으로서는 도주자가 아사드인지 아닌지였다.
스윽!
스스슥!
미치도록 놀랍다.
불영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2,3미터를 휙휙 지나가 버린다. 잠깐사이에 언덕을 내려갔고 물이 말라붙은 작은 개천을 건너갔다.
두 눈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보인다.
그런데 셋이다.
분명 넷이었다.
멈칫하던 권총수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187센티의 장신 사내의 품에 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건 도망자가 아사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아들이 힘들다고 하자 부모로서 당연히 끌어안은 것이다.
스르르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불영보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 졌고 이제 뒷모습까지 구별이 가능한 거리로 좁혀졌다.
화악!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