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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0화 (50/651)

제50화: 밟힌 꼬리(2)

그때 베이지색 푸조 한 대가 덜덜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휙!

권총수는 재빨리 차량 앞을 막아서며 백달러짜리 지폐를 흔들었다.

태워주면 백달러를 주겠다는 사인인데 기사는 선뜻 동요하지 않았다.

밤이면 무법천지일 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

심심찮게 테러가 일어나고 총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자야 할 때가 많았다.

슥!

권총수는 할 수 없이 백달러 지폐한 장을 더 뽑아 흔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골목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엑스트레일은 아직 시선에 있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권총수는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 200달러를 건네주었다.

“저기 닛산 엑스트레일을 쫓아가 주시오.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50달러를 추가로 주겠소.”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권총수도 큰소리로 말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사내는 속도를 높였다.

엑스트레일은 대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200달러도 횡재인데 추가 보너스로 50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사내는 어금니를 물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쓰기 나름이지만 250달러면 세 식구가 반 년은 배부르게 지낼 수 있다.

부우웅!

차는 금세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진입했다.

멀리 엑스트레일이 달리고 있었다.

“아!”

그때 뭔가 생각났다는 듯 권총수가 신음을 터뜨리더니 윗주머니에서 몇 장의 카드를 꺼냈다.

중요 수배자들의 사진이 실린 로얄카드였다. 그 사이에 로얄카드가 아닌 다른 종이 한 장을 뽑아냈다.

‘이 자가 틀림없다’

카드속에는 사진이 아닌 범죄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작성한 몽타쥬 한 장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반란군의 우두머리 아사드 준장이 푸르나 고갯길 사원 수도사로 위장해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신고한 마제드 압둘라였다.

식당에서 나와 일제 엑스트레일에 올라탄 사내는 압둘라가 틀림없었다.

“형, 압둘라를 찾았어.”

재빨리 오민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확실해?”

압둘라를 찾았다는 말에 오민철의 목소리가 떨린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 뱉어내는 살기가 담긴 음성이다.

권총수는 일단 다에이 감시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엑스트레일은 아르빌 외곽으로 빠지는 듯 하더니 조용한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이어 외따로 떨어진 담장 높은 2층 주택 앞에 멈췄다.

차가 도착하고 10여 초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그그!

육중한 철문이 안으로부터 열렸고 엑스트레일이 사라졌다.

쾅!

대문은 소리를 내며 다시 닫혔다.

권총수는 이층 주택과 20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춘 푸조에서 내렸다.

50달러 보너스까지 챙긴 사내는 평화가 그대와 함께라는 뜻을 가진 앗 쌀라 말라이 쿰을 대여섯 번 큰 소리로 외치며 떠났다.

권총수는 윗주머니에서 직경 5센티미터 정도 되는 공작원용 망원경을 꺼냈다.

1킬로 거리 밖에서 움직이는 병아리까지 정확하게 살필 수 있다.

담장이 높은데다 자신이 서 있는 지대가 낮아 주택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담장 위로 보이는 2층은 뚜렷하게 이목을 끄는 구조나 모양은 없었다.

한참동안 집을 살핀 권총수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해 냈다.

첫째 집을 감싸고 있는 담장이었는데 콘크리트로 쌓았고 높이는 약 4미터 정도로 보인다.

농촌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담장들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이라크 사람들의 주택이다.

그런데 눈에 띌 만큼 높다.

이층 창문도 기이했다.

공작용 망원경으로도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일반 창문은 거리와 태양빛의 위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물론 공작원용 망원경으로는 웬만히 선팅 된 창문은 그냥 관통한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떤 특정 물질을 발랐거나 특수 도금된 유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가장 이해못할 것이 하나 있었다.

이층 발코니다.

일반적으로 2층 발코니는 추락을 대비한 1미터 전후의 안전펜스를 친다.

그런데 지금 집은 안전펜스 대신 시멘트로 창문 높이까지 쌓아 버렸다.

벽돌을 쌓고 외벽에 시멘트를 발랐으며 그 위로 회색 페인트를 칠했는데 색깔이 선명했다.

그건 외벽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 쌓았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망원경을 이용해 근처 다른 집들을 살폈다.

아르빌에서는 제일 부촌으로 불리는 살라3번가답게 허름한 집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주위와 2층 주택은 확실히 구별되었다.

사람이 사는 거주지라기보다는 음습한 기운이 풍기는 회색의 주택.

팟!

권총수가 재빨리 망원경을 2층집 대문 앞으로 고정했다.

차종을 알 수 없는 승용차가 대문 앞에 멈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둘, 운전자까지 포함해 셋”

뒷좌석에 무슬림 복장을 한 두 아이가 장난치고 있었다.

대략 십이삼세 정도로 되어 보인다.

곧 대문이 열렸고 차는 안으로 사라졌다.

지이잉!

그때 진동이 울려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데 오민철이다.

“어딘데, 여기 다리앞이야.”

이쪽에 집중하기 위해 오민철을 불렀다.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올리브나무 몇 그루가 있어. 거기야.”

전화를 끊고 계속 2층집을 살피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오민철이 나타났다.

“어딘데?”

권총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망원경을 넘겨주었다.

오민철은 망원경으로 회색주택을 살폈다.

“사람이 살긴 하는 거야?”

오민철은 정적이 감도는 주택을 보며 중얼 거렸다.

“뭔놈의 담장이 저렇게 높아. 족히 4,5미터는 되겠는데, 어쭈구리 2층 발코니는 새로 담을 쌓은 것 같은데.”

오민철이 한참을 더 살피더니 눈에서 망원경을 뗐다.

“일단 보고해야 하지 않겠냐. 그 자식이 들어갔다면 정말 수상하잖아.”

오민철이 말한 그 자식은 마제드 압둘라를 의미했다.

두 사람은 물론이고 외인1소대 모두 압둘라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속임수에 넘어간 니꼴라 작전참모의 경솔함을 탓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외인1소대를 함정으로 끌어들인건 압둘라였다.

아사드 보다 압둘라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것이다.

권총수는 원거리 촬영용 카메라를 꺼내 이층 주택을 찍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돌면서 찍은 사진을 곧장 중대장에게 전송했다.

중무장한 50여명의 병력이 두 대의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위장크림으로 얼굴을 가렸고 마지막으로 중대장 튀랑 대위가 올라왔다.

중대장은 맨 앞자리에 앉더니 흘긋 손목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면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각 소대 보고!”

“2소대 이상무!”

“3소대 이상무!”

“1소대는 이상 없나?”

“이상무!”

아랍에미레이트에 있는 외인부대사령부로 후송된 맥그레인 소위를 대신해 소대장이 된 다리다 상사가 대답했다.

7중대중 4소대를 제외한 3개 소대 모두가 출동한 것이다.

“좋아 출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떠들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

버스는 실내등을 끈 상태였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작전이나 훈련을 나갈 땐 수송트럭이나 신형 장갑차 그리핀을 이용해 움직인다.

그런데 왜 일반 버스를 타고 어딜 가는 걸까?

부대 근처에는 적지 않은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는 아사드의 첩자가 되어 27여단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할 것이다.

군용 트럭이 야간에 이동한다면 백프로 의심할 것이다.

부대 이동을 어떻게 진행해야 사방에 깔린 아사드 세포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권총수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버스로 이동하면 주의를 끌지 않을 것입니다’

시내 작전이기 때문에 군용트럭이나 수송 장갑차가 움직이면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곧장 부대 이동 소식이 아사드 귀에 들어갈 것이다.

버스는 부대에서 근무하는 이라크 군무원들 출퇴근용이다.

출퇴근으로 이용되는 버스에 완전무장한 병력이 숨죽이고 있다는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남다른 친구야’

중대장은 나직하게 중얼 거렸다.

권총수는 다른 중대원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카스텔노다리 훈련 4개월의 성적도 그렇고 6개월의 혹독한 스나이퍼 교육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권총수에 대한 신상정보는 프랑스 육군본부에까지 올라갔다.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이 뭐 대단한 일이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단 사령부에서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떻게 움직여야 아사드에 충성하는 세포들 눈을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헬기 이동을 주장한 사람, 트럭을 이용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니꼴라 중령은 장갑차로 이동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적의 감시망에서 안전할 것이라고는 힘주어 말하지 못했다.

아무리 현대적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기습에 대한 이쪽의 움직임이 노출되면 사실상 성공하기 어렵다.

고민 끝에 누군가가 비행기를 이용해 정리하자고 했다.

폭격기를 이용해 불바다를 만들어 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했지만 여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폭격기에 희생되면 시체가 찢기거나 불길에 타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사드에 대한 신원 확인이 어려워진다.

그때 권총수로부터 상황보고를 위한 전화가 걸려왔다.

2층 주택에 대한 경과보고를 받고 난 중대장은 한숨을 쉬며 지금 들키지 않고 부대를 이동시키는 방법을 놓고 2시간째 토론 중이라는 말을 넋두리처럼 뱉었다.

말을 듣고 난 권총수가 대수롭지 않게 버스를 이용한 작전 안을 제시했다.

얘기를 전해 들은 여단장은 그 자리에서 오케이 사인을 냈다.

버스안은 조용했다

“비렌드라.”

히말라야 사나이 비렌드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중대장님!”

“권총수 이등병 장비는 빠짐없이 잘 챙겼나?”

“예 그렇습니다.”

비렌드라가 묵직한 카키색 가방 한 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골프가방처럼 길었는데 M10 저격총과 장비 일체가 들어 있었다.

“관측수 장비도 이상 없겠지.”

“걱정마십시오.”

이번에도 같은 모양의 가방을 들어 보였다.

관측수가 갖춰야 할 장비들이 들어 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조용히 부대정문을 빠져 나갔다.

시내를 통과 할 때는 라이트를 켰지만 외곽으로 나오는 순간 버스는 라이트를 껐다.

운전병이 열화상 쌍안식 망원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여분을 달린 버스가 멈추었다.

덜컹!

버스 앞문이 열리고 무장군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군인들은 재빨리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미 출발하기 전 각 소대별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에 대한 지침을 전달 받았다.

그때 어둠속에서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타났다.

중대장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별일 있나?”

“없습니다.”

“즉시 작전 위치로.”

그때 비렌드라가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고마워.”

권총수가 미소를 짓자 비렌드라가 손을 들었다.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권총수도 히죽 웃으며 인사를 보냈다

“앗쌀라 말라이쿰.”

오민철도 가방을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낮에 봐두었단 자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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