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화 (49/651)

제49화: 밟힌 꼬리(1)

피륵!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거지는가 싶더니 어금니를 깨물었다.

“우웃!”

급기야 입술을 뚫고 비명 가까운 신음을 토했다.

“뭐지.”

갑작스럽게 진기가 통제되지 않는다.

대력금강심법의 요결을 따라 호흡을 이용한 운기조식은 항상 평화로웠고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갑자기 장문혈을 나온 진기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어 버렸다.

‘막아야 한다’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걸린다.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주르륵!

권총수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주화입마는 곧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기혈 역류로 인해 경락이 뒤틀리고 일부 혈도가 폐쇄되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쉬이이이!

진기의 흐름은 갈수록 빨라졌다.

“으으흠!”

전신 공력을 끌어 올려 통제되지 않는 진기를 잡아 보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진기는 어머어마한 속도로 줄달음질 쳤다.

‘아!’

눈앞으로 과거의 삶이 떠올랐다.

평생을 남의 주머니만 노리며 살아간 추잡하고 초라한 인생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인생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자칫 장애인이 되어 더 험난한 여정을 만날지도 모른다.

콰아앙!

한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몸속에서 마치 LPG가스통 한 개가 터지는 것 같은 굉장한 소리가 났다.

“크훅!”

충격에 상체가 뒤로 벌렁 넘어갔다.

운기조식중에 자세 이탈이나 변화는 치명적이다.

기경 팔맥을 지나가는 수많은 진기들이 신체가 움직이므로 인해 흐름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기조식을 할 때 결가부좌 하는 것이다.

물론 내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결가부좌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운기가 가능하지만 지금 권총수는 그런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등이 바닥에 닿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등이 바닥과 거의 수평이 될 만큼 뉘어졌다.

‘꺼으으으!’

권총수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온힘을 다해 상체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 생의 성패가 달린 순간이다.

금방 바닥에 닿을 듯 눕혀진 상체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어떻게 얻은 새 인생인가.

다시는 전생과 같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 외인부대에 뛰어들었고 아직까지는 순탄하게 나아가고 있다.

벌써 통장에 삼천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있다.

스나이퍼 스쿨 교육기간 6개월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것이다.

태어나 통장에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담아보긴 처음이었다.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끄으응!

기적처럼 상체를 세우고 재빨리 운기를 시작했다.

“어!”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탄성을 토했다.

조금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진기가 아니라 강물이다.

마치 도도한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묵직한 기운이 온몸을 휩쓸었다.

몸속을 흘러가는 산악 같은 양의 진기에 은근히 겁까지 난다.

진기가 너무 센 것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긴장 속에서도 일말의 안심이 되는 건 강인하고 웅장한 진기인데도 자신의 통제에 철저히 순응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현상에 어리둥절해 하던 권총수의 감긴 눈이 떨린다.

‘그것이다. 생사현관이 뚫린 것이다’

평소라면 임맥과 독맥을 흘러가던 진기가 어느 한순간 멈추면서 되돌아온다.

힘의 한계, 진기가 온몸을 자유자재로 다니지 못한다는 건은 힘을 사용해야 하는 무사에게는 크나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임독 양맥이 뚫려 있다면 막힘없이 흘러 두 진기는 하나가 되고 가공할 위력을 보인다.

도가에서는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하고 불가에서는 생사불관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도가의 이름을 사용한다.

인간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

몸속의 본신진기(내공)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사현관이 뚫리면 임맥과 독맥이 소통하면서 진기는 전신을 돌며 피로해진 몸을 빠르게 회복시킨다.

생사현관이 뚫리면 좀체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총수야.”

눈을 뜨자 옆방에서 자고 있던 오민철이 반바지 차림으로 서 있었다.

“왜 그러는데? 뭔 일 있냐?”

“안자?”

“놀래서 나왔지 임마. 쾅 하면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난 RPG가 날아 온줄 알았어.”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그만 가서 자.”

“말해봐 임마. 사람 놀래켜 놓고?”

“생사현관이 뚫렸어.”

“생사현관?”

권총수는 생사현관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얘기를 듣고 난 오민철의 얼굴은 밋밋했다.

내공을 연마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술집 쌀라아문에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타났다.

열흘만이다.

이번에도 권총수는 술집을 가득 메운 많은 군인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앗쌀람 알라이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앗쌀라 알라이쿰!”

이제 완벽한 무슬림이다.

“오 다에이.”

이곳저곳 앉아 있는 낯익은 군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로 돌아오던 권총수가 막 문을 밀고 들어서는 다에이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다에이도 인사를 건네며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오늘은 일행을 데리고 왔다.

맥주를 마시는 듯 하지만 거의 넘기지 않는다.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붓거나 아니면 입에 담고 있다 화장실 핑계를 대고 간 뒤 그곳에 버린다.

“혀엉!”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실업자가 술집 출입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벌써 네 번째인데.”

“누구얘기 하는 거야?”

“더욱 중요한 건 그는 맥주를 시켰지만 아직까지 단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어. 우리처럼 마시는 척 하면서 다시 뱉어냈고 슬며시 바닥에 흘리기도 하더라고.”

확!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다에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어떡해.”

오민철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거두었다.

“형 문제 하나 낼 테니까 맞춰봐. 다음 중 다에이가 여기를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를 고르시오. 1번, 취직이 안돼 너무 괴로워 온다. 2번 술을 겁나 좋아하기 때문에 온다. 3번 미군이나 프랑스 군인들의 인간성에 끌려온다. 4번 심심해서 온다.”

오민철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1번, 취직이 안돼 너무 괴로워 온다.”

오민철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라크 실업률은 17프로야. 인구의 22.5프로는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지. 만약 답이 1번이라면 이 술집에는 이라크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해.”

“그럼 2번? 술에 환장하면 자주 찾아 올수도 있잖아.”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너 지금 이 형 또 무시하려고 그러지?”

“술이 금지된 이라크야. 물론 법으로 막아 놓지 않았지만 코란은 술을 방탕을 부르는 음식으로 규정했어. 먹지 말라는 거야. 그런 환경에서 술을 좋아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잖아.”

“그럼 정답이 몇 번이라는 거야? 게이도 아닌 놈이 프랑스 군인들에게 반해 올리는 없고, 심심해서 온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되고.”

오민철은 병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하며 슬쩍 다에이를 바라보았다.

다에이는 동행한 남자와 뭔가 심각한 얘길 나누는 듯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다에이와 사내가 술집을 나왔다.

둘은 얼굴을 가까이 대고 2분여 얘기를 주고받더니 각자 헤어졌다.

“실수하면 안돼.”

“너 나 잘해.”

맞은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권총수와 오민철이 흩어졌다.

오민철은 다에이를 미행했고 권총수는 사내를 따라갔다.

사내는 아르빌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들어갔다.

자주 뒤를 살피는 것이 혹시도 있을지 모를 미행자를 감시하는 행동이었다.

권총수는 사람들 틈에 섞여 걸어갔다.

공공선사가 남긴 내용중에 잠영술(潛影術)이라는 것이 있었다.

강력한 내공으로 신체를 주위 색깔 속으로 잠기게 하는 것인데 권총수는 아직 그런 경지까지 오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생사현관이 뚫렸으므로 향후 내공은 지금까지와는 판이 다르게 성장할 것이다.

분명한건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오감(五感)이 달라졌다.

귀가 밝아졌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미세한 냄새도 놓치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더욱 멀리 보게 되었으며, 음식 맛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장 놀라운 건 촉각이었다.

살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을 알 수 있고,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접근하는 사람이면 몸이 알아차렸다.

피식!

사내를 뒤쫓던 권총수는 실소를 지었다.

사내는 시장을 지나 다시 대로로 나온 것이다.

시장을 선택한 건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혹시도 모를 미행자를 복잡한 시장을 이용해 따돌리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사내는 대로를 무단횡단하여 좁은 뒷골목으로 빠졌다.

골목은 차 두 대 정도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는데 작은 가게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더니 잉어 볶음밥 집으로 들어갔다.

불린 쌀에 당근 양파 감자 콩 등을 넣고 뼈를 발라낸 이라크 서민들의 음식중 하나이다.

잉어 살과 밥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의외로 담백하여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다.

권총수는 잠시 망설였다.

느낌이지만 사내는 잉어 볶음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권총수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식당이 훤히 보이는 맞은편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일달러짜리 지폐를 내밀고 나즈문 아이스크림을 샀다.

거스름 돈을 받고서 대추야자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그늘에 기대어 쪽쪽 소리나게 빨았다.

식당은 제법 손님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현지인들이었고 차를 타고 온 사람도 보였는데 흔히 말하는 맛집인 모양이었다.

툭!

나즈문을 다 먹고 빨대를 빨고 있는데 들어갔던 사내가 나왔다.

권총수는 다시 사내를 미행하려다 멈칫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내를 계속 쫓아야 할지 아니면 식당 감시로 작전을 바꿔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좋다!’

권총수는 계속 식당을 살피기로 결정했다.

사내가 찾아갔다는 건 일단 직위가 높다고 판단해야 한다.

아무나 집안에서 보고 받지 않는다.

지이잉!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오민철이다.

“어디냐?”

“사마라 식당.”

권총수는 자신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물었다.

“형은?”

“이 친구 집으로 들어가 안 나오는데 철수할까?”

“좀 더 기다려봐.”

오민철은 권총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많은 707 특수부대 출신이다.

그러나 원 팀 킬 작전은 권총수가 주동한다.

즉 권총수의 지시를 오민철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팟!

오민철과 통화중 일 때 식당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형 끊어.”

권총수는 사내를 바라보았는데 낯이 익다.

‘어디서 봤지.’

끼이익!

그때 골목 위쪽으로부터 낡은 닛산 구형 엑스트레일 한 대가 내려와 사내 앞에서 멈췄다.

사내가 올라타자 엑스트레일이 떠난다.

차량이동에 대한 대비가 없었고 더욱이 대로가 아닌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택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서 차량을 쫓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 차량을 따라갈 정도의 경공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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