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8화 (48/651)

제48화: 우리는 간다(3)

길이 있기에 자다가도 일어나 무한반복 훈련을 했다.

몸부림 치듯 매달린 덕분인지 사흘 전부터 적응이 시작되고 있었다.

총소리와 반동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작아졌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대력금강심법속으로 몸과 마음, 그리고 표적을 완전히 밀어 넣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원 팀 킬이란 말을 들어 보았나?”

“네”

권총수와 오민철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민철은 특수부대 출신이므로 전략 전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고 쳐도 권총수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격수는 퍼펙션(perfection: 완전무결)해야 한다. 군인이 가져야 할 모든 능력을 완벽하고 최고조로 습득하는 것’

저격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발군의 기량을 지녀야 한다고 스나이퍼 스쿨에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그러면서 군을 제대한 저격수가 정보부 블랙요원으로 활동했던 대여섯 건의 사례를 말해주었다.

과거가 아닌 현대에 와서도 저격수를 비밀 공작원으로 운용하는 부대가 있다고 했는데 네이비 씰과 쌍벽을 이루는 델타포스였다.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데는 방아쇠를 당기는 양성전쟁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고받는 음성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이라크 반군과의 지금 벌이고 있는 전쟁도 음성전쟁이랄 수 있다.

꼭 도시의 쇼핑센터나 사람이 밀집한 곳에 들어가 민간인을 상대로 총을 난사하는 것만이 테러는 아니다.

반군 입장에서는 첨단 장비에서 밀리다 보니 게릴라 전술이나 이곳저곳에 폭탄을 던지고 인질극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쪽에서도 같은 방법 즉, 음성전쟁으로 나가야 한다.

원 팀 킬.

“알고 있으니 한결 얘기가 수월해지겠군. 너희 두 사람, 원 팀 킬로 움직여도 좋다는 여단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순간 아카시아 나무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다.

* * *

아르빌은 이라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주민 대부분이 자치독립을 주장하는 쿠르드인이지만 의외로 거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IS가 80킬로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인근 모술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관계로 곳곳에 무장병력이 진주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미 제22원정여단과, 프랑스 제27보병여단이 탄탄한 방어벽이 되어주고 있지만 긴장까지 걷어 낼 수는 없었다.

이라크는 공식적으로 술 판매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지역에 퍼진 소수부족들의 문화차이에 의해 조금은 다르다.

그중 쿠르드족은 술 문화에 관대하고, 더구나 미군과 프랑스군이 아르빌에 주둔하면서 서구의 바 형태의 술집 십여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일반인도 있지만 손님들 거의가 미군이거나 프랑스 27보병연대 군인들이다.

사복차림으로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군복을 벗지 않은 채로 맥주를 즐겼는데 특이한 점은 모두가 병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군은 M4, 프랑스 군인들은 HK416이다.

사실 프랑스군이 자국산 제식소총 F1을 버리고 독일 헤클러 운트 코흐(Heckler& Koch)사의 416을 수입한 건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독일로부터 10만정을 작년 말에 들여와 가장 우선적으로 해외에 파병된 부대에 지급했다.

미군 몇 명이 HK416을 메고 있는 프랑스 군을 부러운 눈으로 본다.

20,000발을 쏴도 잔고장 하나 없는 HK416, 모래가 들어가고 물속에 담갔다 꺼내도 전혀 고장이 없다.

소총계의 구찌 즉, 명품으로 불린다.

그에 반해 M4는 15,000발만 쏘면 노리쇠를 포함해 중요 부속 몇 가지를 교체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소총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M4A1이 저질이라는 건 아니다.

3,4만발을 쏴도 끄덕 없을 때가 있다.

즉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어쨌든 네이비 씰을 포함해 특수부대 병력만 사용하는 HK416을 프랑스 평범한 보병이 메고 다니자 입맛을 다셨다.

두 사람은 버드 아이스 한 병씩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와 이제는 이곳 술집 ‘쌀라아문(평화)’의 단골이다.

사막 색 풍성한 장옷(원피스처럼 생긴 옷, 다쉬다쉬)를 걸쳤고, 머리에는 흰색에 붉은 체크가 들어간 꾸트라(마리에 쓰는 천)를 썼고 새끼줄 같은 끈(이깔)으로 묶었다.

사장 야카르탄은 둘 모두 동남아계로 보았다.

그렇게 본 이유는 복장만을 놓고 보면 흐트러짐 없는 독실한 이슬람신자이지만 술을 마시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아니면 말레이시아 쪽 무슬림들 사이에 술이 파고든 지는 오래다.

둘 중 키가 조금 작은 사내는 가끔씩 지나가는 미군과 프랑스 군인들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거수경례를 했다.

손가락 두 개의 거수경례는 대개 안면이 있는 사이일 때 즐겨 건네는 인사법이다.

지난 보름가까이 계속 가게를 찾아오면서 몇몇 군인들과는 자연스럽게 구면이 된 것이다

“다에이.”

키 작은 사내가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며 오른손을 쳐들었다.

구레나룻가 풍성한 서른 후반 가까운 이라크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다에이로 불리는 사내가 멈칫하더니 손을 들어 아는 척 하는 사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소친안.”

“요 며칠 뜸하기에 술과 작별한 한 줄 알았네.”

소친안이란 키 작은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에이에게 다가갔다.

소친안은 주인을 향해 버드 아이스 한 병을 주문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 일자리는 구했나?”

“아직!”

“서둘지 말게, 나도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을 명목으로 많은 기업들이 들어왔다.

전기, 통신, 석유, 건설등 대부분이 미국회사들이지만 영국과 프랑스, 한국과 일본의 몇몇 기업도 작은 규모지만 활동 중이다.

소친안과 동료 탄쳉호는 아르빌 지역의 상하수도 관로를 공사하고 있는 프랑스 오를레앙 건설사 직원이다.

말레이시아계 프랑스인인 셈이다.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소친안은 다에이를 향해 친근한 웃음을 지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네! 잘 마시겠네.”

다에이는 소친안이 사주고 간 맥주를 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우리 사이에.”

마음에 두지 말라고 손을 들어 보인 뒤 소친안은 자리로 돌아왔다.

“왜 할 말 있어?”

자리에 앉은 소친안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탄쳉호를 향해 물었다

탄쳉호가 입술을 비틀었다.

“할 말이 없다.”

“왜 또 시비야? 내가 뭘 어쨌다고?”

소친안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정말 대단하다. 존경한다.”

탄쳉호를 쏘아 보던 소친안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읽은 듯 피식 실소를 지었다.

“나도 친화력 갑이라고 듣는데 넌 나 보다 한 수 위다.”

탄쳉호로 변장한 오민철은 소친안으로 위장한 권총수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원 팀 킬이 되어 함께 움직인지 벌써 보름여가 지났다.

잠도 부대에서 자지 않고 아르빌 서쪽 외곽에 있는 프랑스 건설회사 오를레앙 아파트에서 묵는다. 두 사람은 서류상으로도 완벽한 오를레앙의 정식 관리 직원이다.

그 간 오민철이 가장 놀란 건 권총수의 기억력이었는데 자신은 이제 겨우 중대원들 얼굴 정도를 구별했다.

무슬림 복장은 사람 얼굴을 더욱 헷갈리게 한다.

터번이나 페즈, 케피야 같은 모자를 써버리면 웬만해서는 구별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권총수는 한 번 본 사람은 정확히 기억했고 이름까지 줄줄 외웠다.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한번 봤다고 아는 체를 한다는 것 이었다.

보통 사람들 중 몇이나 술집에서 스치듯 한 번 본 사람을 다시 기억하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아는체 할 수 있을까.

할 수도 있지만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농담을 던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격수가 갖춰야 할 조건중 DE라는 것이 있다

디텍션(detection: 탐지)과 익스플로레이션(exploration:탐색)이다

풍향과 풍속은 지형과 지물로 인해 바뀌고, 풍향과 풍속은 지형과 지물로 인해 틀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를 탐지하고 지형을 탐색하는 것이야 말로 풍속을 알고 풍향을 간파하여 명중률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탐지와 탐색은 스나이퍼 스쿨에서 혹독하게 배웠다.

그런데다 근래 들어 대력금강심법이 급격히 증진하면서 한 번 본 건 복사하듯 머리에 기억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곡차곡 머릿속에 저장될 뿐만 아니라 리와인더(rewinder)까지 가능했다.

자신이 지나간 길가의 모든 건물과 사람을 집에 가서 복습하듯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능력이 갖춰지다 보니 권총수의 시선에 살짝이라도 걸리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 한다.

‘금룡소억술(擒龍召憶術)’

대력금강심법 소혼편(召魂篇)에 나오는 술공(術功)중 하나였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뇌는 지나온 모든 걸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꺼내는 것이다.

기억을 꺼내고 혼을 불러 혹시 자신이 모르고 그냥 흘려버린 건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수고!”

권총수는 계산을 하고 돌아섰다.

“오오! 프랭크!”

계산을 마치고 돌아나가던 권총수가 막 술집을 들어서던 덩치 큰 미군과 끌어안았다.

“소친안, 벌써 가는건가?”

“우린 군인이 아니어서 말이야.”

내일 출근을 위해서 그만 가야 한다는 뜻이다.

“또 보자고.”

탁!

둘은 손바닥을 부딪히며 지나쳤다.

술집 쌀라아문이 보이는 조그만 가게 앞에 권총수와 오민철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나즈문’이라는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었는데 오민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묘하군.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또?”

“별을 보니 갑자기 시가 나오려고 하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한산 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오민철은 하늘의 별을 보며 계속 중얼 거렸다.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다니. 키햐 장군님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의 애를 끊나니.”

“남의 애를 끊다니 자식아.”

“나의 애를 끊나니.”

“너 내기 할래, 틀린 사람 백달러.”

“오케이.”

“하아! 이 형이 오늘 또 이렇게 백달러를 버는구나.”

“그런데 어디서 알아볼 건데?”

“어디서 알아보긴 어디서 알아봐 자식아.”

오민철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더니 네이버 검색을 시작했다.

“형, 머나먼 이국 땅에서 네이버 검색도 할 줄 알아?”

“백달러나 준비해 임마.”

한참을 지지고 볶던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찾았다! 흐흐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장군님의 시를 이라크에서 읽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는구나.”

오민철은 흐뭇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며 읽기 시작했다.

“잘 들어 새끼야. 카악”

오민철이 목에 힘을 주며 가래침을 뱉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

“왜 읽다 마는데?”

“아 씨발 이거 언제 바뀌었어.”

“장군님 시가 무슨 도로 교통법이야. 바뀌고 말게 하게. 백달러 내놔.”

“분명히 남의 애를 끊다니 인데.”

“그건 옛날 개그콘서트 맹구 코너에 나왔던 거야. 맹구가 읊은 거라고.”

“아닌데.”

“돈 내놔.”

오민철은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백달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아 씨팔, 더러워서, 니기미, 재수없어.”

“내기에서 졌으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야지.”

“내기가 스포츠냐?”

“됐고.”

탁!

번개처럼 오민철의 손에 쥐어진 지폐를 낚아챘다.

“오우 벤저민 프랭클린.”

권총수는 백달러짜리 지폐에 입을 맞추고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 * *

불이 꺼졌고 권총수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오민철은 이미 골아떨어진 듯 했다.

오늘따라 경락을 흘러가는 내공이 좋다.

권총수는 대력금강심법이 가르치는 대로 내공을 이끌어 갔다.

대력금강심법의 요체는 호흡(呼吸)이다.

호흡을 이용해 내공을 일으키고 증진시키며 얻는(得)것이다.

‘자(慈)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때 얻어지는 사랑이다.

비(悲)는 아픔이 아닌 괴로움을 줄여주는 마음이며, 희(喜)는 내가 아닌 타인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사(捨)는 원한과 증오를 버리는 포용이며 이 넷이 하나를 이룰 때 고요해지고(靜) 궁극에는 공(空)에 들어선 뒤, 마침내 해(解)가 되고 탈(脫)을 얻는다’

움찔!

고요한 상태로 운기를 하던 권총수의 몸이 짧은 파동을 일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