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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7화 (47/651)

제47화: 우리는 간다(2)

누군가 전장에서 감정이입은 화를 자초할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한 만큼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곳 또한 전장이다.

무너지고 물러나기만 하면 사기와 전투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전쟁도 승부인 것이다.

“아사드가 잡히지 않는 한 그는 끝없이 우릴 괴롭힐 것입니다. 미군 제22원정 여단이 왜 아사드 체포에 적극적이지 않는지 아십니까? 미군 피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아사드가 굳이 우리 27여단을 괴롭히는 데에는 어떤 계산이 깔려 있단 말이오?”

여단장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는 적을 하나만 두고 싶은 겁니다. 가뜩이나 쫓기는 입장에서 두 개의 적을 만들 이유가 없죠. 보다시피 22원정 여단은 피해가 없으니 아사드 추적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여단장의 표정이 굳었다.

근래 들어 22원정 여단이 아사드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없다.

반면 27여단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 명 두 명 죽은 것이 올해만 벌써 20명이 넘는다.

거기다 이번에는 1소대가 크게 당한 것이다.

“외인7중대에 대한 모든 작전권은 당신에게도 있소.”

중대장이 멈칫했다.

지휘권이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여단장이다.

그런데 중대장이 결정할 문제라는 건 무슨 뜻일까.

당신이 노우 하면 보내지 않겠다는 뜻인데 나중 권총수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에서 약간 측면으로 비켜 나보겠다는 계산이다.

중대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여단장은 위기에 몰려있다.

전쟁중에는 함부로 장수를 교체하지는 않지만 상부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건 분명했다.

외인 소대는 두 번째 당했다.

1년 전에는 매복에 걸렸고 이번 역시 함정에 걸려들었다.

도합 두 번에 걸친 피해는 사망자만 스무 명이다.

1831년 외인부대가 창설되고 예하부대, 그것도 중대단위에서 20명이 사망하는 사건은 제7외인중대가 처음이라고 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

옷을 벗어도 이 사건은 자신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맴돌 것이다.

튀랑대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1863년 당쥬 대위는 65명의 외인부대원을 데리고 1200명의 멕시코 군에 맞섰다.

더구나 그는 전쟁 통에 왼손을 잃어 의수를 끼고 싸워 오늘날 외인부대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존재는 초라하다.

군인은 전장에서 빛날 때 대접을 받는다.

진급도, 훈장도 무공을 세울 때 품에 안기는 것이다.

부하들을 잃은 지휘관은 설자리가 없다.

자신이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직속부하들이므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절대 없다.

중대는 조용했다.

휴일인 탓에 일부는 책을 보기도 했고 몇은 자신의 세탁물을 햇볕 좋은 바깥 줄에 널고 있었다.

“권총수는 어딨나?”

중대장이 생활관에 들어섰다.

“사격장입니다!”

“휴일인데?”

중대장의 눈이 커졌다.

지프 한 대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튀랑 대위가 내렸는데 왼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보인다.

튀랑 대위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언덕을 올라갔다.

탕!

강렬한 총소리가 울렸다.

공용화기 사격장이다.

기관총과 RPG 사격 연습장인 관계로 개인화기 사격장보다 훨씬 크고 거리가 멀었다.

사격장 끝에 갈색의 희뿌연 뢰스(loess: 사막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작은 산봉우리 형태의 크고 작은 덩어리)가 보였는데 높이가 20여미터 쯤 되었다.

튀랑대위는 들고 온 쌍안경을 눈에 붙였다.

뢰스까지의 거리는 900미터이다.

몇 미터 사격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리를 표기를 해놓은 팻말을 훑는다.

500은 없다.

600도 없다

700은 있다.

그리고 800과 900미터에 표적이 있었다.

쌍안경 조리개를 조절하여 표적들을 좀 더 가까이 당겨 확인하기 시작했다.

멈칫!

쌍안경으로 표적을 살피던 튀랑 대위가 어깨를 떨었다.

동양의학에서는 인체에는 모두 삼백예순다섯 개의 크고 작은 급소(急所:Vital Point)가 있다고 했다.

그중 잘못 타격을 당하면 즉사할 수 있는 곳을 사혈(死穴)이라 부르며 특히 열여덟 개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했다.

2.5센티가 조금 넘는 2유로(2600원 정도) 동전 크기만 한 원형의 색종이 아홉 개가 표적 곳곳에 붙어 있다.

한눈에 봐도 이른바 치명적인 급소임을 알 수 있었는데 색종이 마다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800, 900미터의 표적 역시 똑같았다.

“음!”

튀랑 대위는 쌍안경을 떼고 몇 번 눈을 깜박인 뒤 다시 살폈다.

700, 800, 900미터 표적에 붙은 색종이는 모두 27개.

색종이가 붙어 있지 않는 부위에는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건 표적마다 붙여 놓은 아홉 개의 색종이 말고는 빗나간 총알이 없다는 뜻이었다.

튀랑 대위는 쌍안경을 손에 들고 주위를 살폈다.

사격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수풀이 무성하다.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들의 위장 훈련을 시키기 위해 일부러 부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잡초와 넝쿨식물과 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다.

틈나는 대로 물을 뿌리고 비료까지 준 덕에 초목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어딘가에 있을 권총수를 찾아보았다.

없다.

벌써 20분째 찾아보려고 했으나 육안으로는 불가능했다.

총소리 때문에 위치를 짐작은 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튀랑 대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푸르다.

그러나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워낙 강렬하여 한 번도 이라크 하늘이 맑고 푸르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푸르다’

고향 로제르의 가을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주 서쪽에 있는 고원의 땅 로제르.

파란 하늘과 점점이 떠다니는 흰 구름, 오늘만큼은 여기가 고향 같았다.

훈련을 훼방하면 안 된다.

끝나길 기다려 주는 것이 예의다.

탕!

타타탕!

어느새 훈련이 막바지에 다다랐는지 총소리가 자동으로 놓고 갈기듯 빨라졌다.

지켜보고 있던 튀랑 대위는 재빨리 쌍안경을 얼굴로 끌어 올렸다.

“오오!”

튀랑 대위는 소스라쳤다

총알이 700, 800, 900을 번갈아 가며 연달아 때리고 있었다.

‘저격수가 속사라니’

생전 듣도 보지도 못한 일이다.

총알은 급소 위치에 붙여 놓은 색종이를 오차 없이 뚫어 버렸다.

‘저격수 실력의 20프로는 운이다’

2차 대전 최고의 저격수로 불리는 바실리 자이코프가 했던 말이다.

바로 앞에서 바람이 분다고 수백 미터 떨어진 표적 근처에서도 바람이 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표적이 있는 곳에서는 바람이 거꾸로 불수도 있고, 무풍지대일 수도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사수가 위치한 이곳에는 바람 한 점 없지만 900미터 떨어진 표적은 뻥 뚫린 사막에 있다.

바람이 불수 있는 것이다.

거리가 멀면 미풍에도 총알은 영향을 받는다.

더욱이 딱딱한 뢰스지대는 모래보다 훨씬 지열이 세차게 끓어오른다.

탕!

마지막 총성이 울리며 조용해졌다.

탁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안전검사를 하는 듯 보인다.

돌연 풀숲이 꿈틀 거리더니 길리슈트와 근처 수풀로 온몸을 덮어쓴 권총수와 오민철이 일어났다.

“에이, 인간 오민철이 외인부대 와서 개 꼬인다 진짜”

“그만 좀 해.”

“어떻게 그만 해. 생각해봐, 말이 되냐고 이게.”

“아니 휴일날 개인 훈련 할 수도 있는 거지 드럽게 말 많네.”

“드럽게? 야 권총수 너 많이 컸다. 뒤질래.”

“형, 훈련해서 남 줘, 공부해서 남 주냐고?”

“이놈의 주둥이를 그냥.”

“치킨 한 마리 살 테니까 화 풀어.”

“하나뿐인 동포가 날 가지고 노는구나. 어 중대장님!”

돌아서던 오민철이 튀랑 대위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수고들이 많다. 저쪽 그늘에서 담배 하나씩 피우지.”

중대장이 아카시아 나무 그늘로 걸어갔다.

두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는데 프랑스 것이 아닌 말보로 레드였다.

후욱!

담배를 깊게 들이던 권총수가 움찔했다.

목구멍이 탁 막히면서 눈앞으로 약간의 현기증이 피어난다.

하지만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느낌과 밖으로 뿜어낼 때의 조금의 텁텁함은 기존의 담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특별한 맛이었다.

“조금 전 속사가 맞나?”

중대장이 물었다.

권총수는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속사라기보다는.”

“저격수가 하나의 표적을 정리하고 다른 표적을 잡기까지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

“빠를수록 좋다고 배웠을 뿐 시간은 없습니다. 저격수는 정확성이 우선일 뿐입니다.”

“시계를 보지는 않았지만 탄과 탄 사이의 시간이 2초를 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1초대를 목표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붉은 사막을 바라보며 얘기를 하던 중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빨리 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은 자명한터,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권총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날 저격수이면서도 동료들이 죽어 가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없어 무척 불편했습니다.”

“그날이면 푸르나 고개에 있는 사원 공격 때를 말하는군.”

“다수의 적이 소대원들을 공격하는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저격수라는 위치가 교전이 아닌 적의 핵심을 무너뜨리는 것이지만 어쨌든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건 너의 탓이 아니다.”

물론 아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대원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 지닌 임무를 떠나 무척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그 날 이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저격수가 전황의 판도를 바꿀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는 동료들이 죽는 걸 지켜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지켜보는 일이 없는 전쟁을 위해서는 저격수이지만 속사가 필요했다.

속사 훈련은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장거리 사격에서 속사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스나이퍼 스쿨에서 배웠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남들이 없는 놀라운 능력 한 가지가 있었다.

대력금강심법이었다.

(心合一體心), 마음을 모으고 몸을 일치하여 생각을 집중하면

(風視天地觀), 바람을 보고 하늘을 보며 천지를 뚫는다.

자신이 속사 훈련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분명한 구절이다.

혼연일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가장 걸림돌은 총소리였다.

M10의 소리는 HK416과 차이가 크다.

아무리 심법을 이용해 몸과 마음을 집중했다고 해도 타앙! 하는 소리와 강력한 반동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흔들어 버렸다.

고요와 집중이 흐트러지면 좋은 사격이 될 수 없다.

그럴 경우 다시 마음을 안정시키며 총과 하나가 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몸이 터득한 실력으로는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단발 사격 밖에는 되지 않는다.

속사는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이 흔들리지 않고 반동과 총소리가 제아무리 커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대력금강심법에 의지하는 반복훈련’

눈이 아닌 마음으로 표적을 보는 사격술.

대력금강심법에는 분명히 속사를 가능케 해주는 구결이 있었다.

‘까짓것!’

안되면 말더라도 일단 도전은 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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