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우리는 간다(1)
25명이 떠나 절반이 채 안되는 11명이 돌아왔다.
물론 생존 가능한 부상자가 3명 있긴 하지만 제 발로 나갈 때처럼 들어온 이는 11명 뿐이다.
“왔구나!”
“이등병 권총수!”
권총수는 중대장이 내미는 손을 쥐며 힘차게 말했다.
“이등병 오민철!”
“그래!”
중대장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했는데 갈수록 어금니를 세차게 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어떤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르몽드지에 이번 사건이 보도 될 것이다.
사회부 기자들이 밤새 경찰서 앞 마당에 진을 치고 있듯 종군 기자들 또한 작전이 없는 날이면 여단 사령부 주위를 쉬지 않고 살피고 얼씬 거린다.
신문에 낼 만 한 사건 없나 눈에 불을 켜는 그들이 이런 호재(?)를 놓칠리 없다.
1년 전에도 적이 설치한 함정에 빠져 10명이 죽는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또다시 1년 만에 이런 끔찍한 참사를 당하자 중대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 * *
‘물론 신고자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한계는 있다. 신고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름과 연락처뿐이다. 신고자가 작심하고 자신을 숨기려 든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신고자 ’마제드 압둘라‘의 연락처, 집 주소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아사드 준장에 대한 미군의 추적은 올해로 벌써 십년이다. 잡기는 해야겠고, 잡히지는 않는다. 급기야 그의 체포에 무려 2계급 특진이란 포상이 걸리다 보니 신고자에 대한 의심이나 뒷조사가 부실해졌다.
잡으려는 욕심이 강하다 보면 자칫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서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2계급 특진 포상령을 거둬들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경고했다.
그런데 끝내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르몽드지의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는 신랄했다.
한 마디로 과도한 경쟁, 특진에 대한 욕망이 불러온 예견된 참사라는 것이었다.
르몽드지 뿐만이 아니었다.
뉴욕 타임즈를 포함한 BBC등 권위 있는 언론들이 이번 작전에 대해 다뤘는데 그들의 평가는 약속이나 한 듯 똑 같았다.
‘과욕이 부른 죽음’
군인에게 2계급 특진은 로또 당첨과 비교될만 한 치명적인 포상이다.
군인에게 계급보다 더 황홀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포상은 영광과 몰락을 가져 올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수상을 하는 자에게는 행복한 일이지만 경쟁이 지나치다 보면 이번 일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손실을 가져온다.
* * *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벌인 무리한 작전이었다.
기습의 기본 즉, 시야의 장애가 있는 어둠을 이용한 작전을 전개해야 했었다.
만약을 대비한 포병이나 항공 지원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실패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조명되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의견은 적을 너무 가볍게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반군이라고 하면 보잘 것 없는 장비, 기껏해야 러시아제 PKM이 최고의 화력이라며 비아냥에 가깝게 무시를 하다 보니 신중함이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권총수, 왜 한마디도 하지 않나?”
1시간여 토론이 있었는데도 권총수는 아직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튀랑대위는 물론 다른 소대원 모두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저격수이니 어느 누구보다도 이번 작전 실패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으로 알고 있다.”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닉 대위 구출작전중 우린 아사드 장군 부하들과 두 번에 걸친 교전이 있었고 약 50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꿀꺽!
튀랑대위가 마른 침을 삼켰다.
“추격대가 파를산에서 몰살했고, 두 번째 닉 대위가 은신하고 있던 마을 작전에서 20여명 가까이 죽었습니다.”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여단 사령부로부터 푸르나 고갯길에 세워진 사원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죠.”
갑자기 회의실이 조용해졌는데 자신들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권총수는 무슨 말을 하기 위해 모두가 아는 사실을 다시 재탕하듯 말하는 걸까.
“설마 아사드의 복수라는 건가?”
중대장의 눈이 빛났다.
“사원에 자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여단 사령부에 알려지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를 급파할 것이라는 걸 그는 계산한 게 분명합니다.”
“으음!”
옆에 앉은 세르게이가 신음을 뱉었다.
“허면 신고자인 마제드 압둘라와 아사드는 어떤 관계란 말인가?”
“반군 세포겠죠.”
“세포?”
“이곳 여단 사령부의 움직임을 수시로 아사드에게 보고하는 놈 말입니다. 아사드는 자신이 사원에 있다는 거짓 정보를 압둘라에게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푸르나 근처를 지나고 있는 우리가 동원되리란 계산을 한거죠. 그의 복수 상대는 우리니까 우리를 죽이고 싶었던 겁니다.”
“말 되는데!”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많은 부하들이 죽어갔는데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도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겠죠. 무능한 지휘관을 믿고 따를 부하는 그다지 많지 않을 테니까요. 실추된 명예와 자신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복수, 그것도 부하들을 죽인 우리 1소대를 제대로 몰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중대장은 물론 다른 간부들까지도 권총수의 추론에 분명한 동조를 보였다.
적의 덫에 걸렸다는 건 인정하지만 외인1소대를 공격하기 위한 치밀한 복수극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권총수의 분석은 곧바로 여단본부로 보고되었다.
여단장과 작전참모 니꼴라 중령, 그리고 7중대장 튀랑대위가 마주 앉았다.
튀랑대위는 권총수의 분석을 서류로 만들어 제출했다.
A4용지 두 장 분량 밖에 되지 않은 적은양인데도 여단장은 읽고 또 읽었다.
“으음!”
여단장이 보고서를 탁자위에 놓자 니꼴라 중령이 재빨리 가져가 읽었는데 표정이 몇 차례 변했다.
“어떻소?”
여단장이 니꼴라 중령을 향해 물었다.
니꼴라 중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매우 날카로운 분석이라는 거요.”
“권총수의 주장대로라면 아사드는 무척 치밀하고 두뇌회전이 빠른 인물이군요.”
니꼴라 중령의 말투에서 약간의 비아냥이 풍긴다.
권총수가 아사드를 너무 높이 평가 하는 것에 비위가 상한 모양이었다.
“1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빈 라덴을 제외하고 미군의 추적을 이토록 완전히 따돌리고 있는 인물은 빈 라덴, 그리고 아사드 말고는 없습니다.”
중대장 튀랑대위가 끼어들었다.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하면 경찰이 무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쫓기는 자가 매우 영특하다고 봐야한다. 물론 저의 얘기가 아닌 파리 경시청 뽕떼우 청장이 했던 말입니다.”
“미군이나 우리 프랑스군 모두 무능하다?”
니꼴라 중령이 중대장을 쏘아 보았다.
“첨단 과학 장비를 동원하고서도 오랫동안 잡지 못하고 있다는건 무능 말고는 다른 원인이 있다고 말할수는 없죠.”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중대장 생각을 들어봅시다.”
니꼴라 중령이 차갑게 노려본다.
상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욱이 타 부대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그 부대 지휘관으로부터 양해와 협조를 구해야한다.
비록 여단장이 오케이 사인을 냈지만 통화가 끝난 후 자신에게 전화 한 통 정도는 하는게 맞다.
자신은 1소대가 작전중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이지만 외출하지 않고 부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귀대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여단 상황실에 어떻게 된 건지 연락을 취했다가 그때 처음 들었다.
직속상관이 자신이 지휘하는 소대원들이 다른 작전에 투입 되었는데도 몇 시간 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끓어올랐다.
더욱이 절반이 희생당했다는 소식에는 할 말을 잃었다.
“작전은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만 펼쳐지고 전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의란 사의(私義)가 모여 이뤄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의?”
여단장의 눈이 빛났다.
중대장은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결코 객관적이고 이성적일 수만은 없죠.”
“무슨 뜻인가?”
“복수는 복수로 맞서야 합니다.”
“아사드를 기어이 잡자는 것 같은데 방벙이 있단 말이오?”
“원 팀 킬(one team kill)입니다.”
여단장 니꼴라 중령 모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원 팀 킬(one team kill)의 역사는 2차 대전으로 올라간다.
소련과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스탈린그라드는 200만명 이상 숨진 곳으로 알려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일에 소련이 밀렸다.
파상적인 독일군의 공세에 소련군은 지리멸렬했다.
소련 군부는 고심 끝에 한 가지 기발한 계획을 세웠다.
원 팀 킬(one team kill),
팀은 팀이지만 분대나 소대 단위가 아닌 기껏해야 한두 명의 인원을 움직여 적의 예봉을 꺾는 것이었다.
적의 사기에 물을 끼얹고 전투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휘관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제거 표적도 책상 앞에서 무전기나 전화로 명령을 내리는 장군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하들과 사선을 넘나드는 중간 지휘관, 소대장 중대장 급이었다.
장군들은 신변을 지키는 호위대가 있어 접근이 어렵지만 소대장 중대장들은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더욱이 서로의 숨결을 뜨겁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전장에서의 우정이란 어떤 세상에서 맺어진 인연보다 강인하다.
소대장 중대장들은 병사들과 전혀 거리를 두지 않고 부대끼는 것이다.
한두 명이 팀을 이룬 암살 작전에 독일군은 크게 당황했다.
특히 항상 옆에 있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을 같이 뛰어다니던 소대장 중대장의 죽음은 병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
전세는 그렇게 역전이 되었고 독일은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물론 원 팀 킬 작전 때문에 독일이 무너진 건 아니다.
단지 기세등등했던 독일군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건 분명했다는 것이 당시 소련군 지도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조용했다.
중대장 튀랑의 제안은 확실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군인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 복장으로 작전을 실행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미군의 씰 만 보더라도 작전의 성격이나 특성에 따라 일반인 복장을 할 때가 적지 않다.
튀랑 대위가 제안한 원팀 킬 시스템의 단점은 만약 작전을 벌이다 위험에 빠져도 지원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전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위험에 빠져도 지원이 불가능하다.
원 팀 킬의 성패는 비밀유지다.
지휘관 말고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수도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나마 낫다.
당시는 적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잠복, 또는 변장하여 치는 일이 쉬웠다.
하지만 지금 아사드의 행방을 아는 이는 미국도 프랑스도 모른다.
그를 잡기 위해 사십여 차례 작전을 전개했으나 백 프로 허탕만 쳤다.
바닷가에서 바늘 한 개 찾기와 같은 일이다.
오히려 바늘은 바닷가에서 떨어뜨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 쉬울지도 모른다.
아사드가 있는 곳은 지금으로서는 추정하기도 힘들다.
“누굴 보낼 생각인가?”
여단장이 묻자 중대장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권총수입니다.”
“튀랑대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니꼴라 중령이 버럭 소릴 질렀다.
“권총수 이등병이 지금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그 따위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거요? 그는 저격수요. 그것도 카옌 저격수 스쿨이 창설 된 이래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단 말이오.”
“아시겠지만 저격수는 위장과 관측을 포함한 여러 가지 정보수집 과정을 배웁니다. 오랫동안 엎드리고, 이틀을 걸려 1킬로를 이동하는 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그래서 이보다 더 훈련이 잘된 공작원은 없다는 것이 군의 판단입니다. 참고로 미군은 해병대나 네이비 씰 저격수에게 공작원 임무를 수행케 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는 건 아실 겁니다.”
“그렇지만.”
니꼴라가 따지려고 들 때 여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격수야 말로 가장 뛰어난 공작원이라는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니 뭐 그렇다 치고, 대위.”
여단장이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외인 7중대가 27여단에 배속되어 내 명령을 받고는 있지만 난 항상 대위의 의견을 깊이 참고했소.”
“알고 있습니다.”
“저격수 한 명 키워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들어가는지는 알 테고, 지금 권총수는 나 뿐 만 아니라 프랑스 군 전체가 관심을 갖고 있을 만큼 뛰어난 친구요. 그런 발군의 능력자를 공작원으로 투입한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엄청 위험하다.
아슬아슬할 일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