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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화 (45/651)

제45화: 지독한 함정(3)

총소리가 요란하다.

HK의 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AK가 압도적이다.

그건 밀리고 있으며 열세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진다.

적은 필사적으로 무너진 사원에 갇힌 소대원들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총알을 쏟아 붓는다.

반면 소대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적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드루룩!

갑자기 격렬한 HK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적이 나동그라졌다.

측면에서 공격해오는 돌발 상황에 적이 화들짝 놀랐다.

드드!

드르륵!

점사와 자동이 번갈아 터지며 한 명의 적이 다시 고꾸라졌다.

권총수의 사격은 매우 절제되어 있었다.

조금 전의 흥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이 냉혹하게 HK의 방아쇠를 당겼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적을 해치웠다.

“밀어, 물러서면 안돼. 계속 전진해야 돼.”

생존 소대원들의 헤드셋을 뚫고나오는 권총수의 목소리는 서릿발 같았다.

강대 약으로 나서면 함정에 빠진 소대원들이 불리하다.

모든 것을 적이 쥐거나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리하다고 움츠리면 적은 더욱 여유를 가지고 사냥을 하려들기에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맞서야 한다.

물론 이때는 죽어도 좋다는 근성과 외인부대다운 저돌성이 필요하다.

‘죽어도 적을 격파한다’

권총수는 소대원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외인부대 복무수칙중 한 대목을 외쳤다.

“외인부대는 물러서지 않는다!”

드르르르!

1분에 900발을 쏟아내는 권총수 HK가 측면에서 파고들자 적은 움찔했다.

혼자지만 측면 지원은 효과가 컸다.

적은 양쪽에서 합공을 받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그그그!

그륵!

용기를 얻은 듯 소대원들이 과감히 뛰쳐 나오면서 반군을 압박했다.

권총수는 끊임없이 엄폐물을 바꿔가며 측면에서 몰아세웠다.

한 곳에서 10초 이상을 머무르지 않고 번개처럼 여기저기로 이동하며 사격하는 권총수를 적은 쫓지 못했다.

드디어 적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권총수에 의해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워낙 빠른 장소이동과 정확한 사격에 당황한 것이다.

거기다 권총수의 등장에 사원에 갇힌 소대원들이 과감하게 치고나오자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쥐다.

고양이에게 달려들기 전에 적당히 물러나는 것이 좋다는 걸 아는 듯했다.

“총수야!”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는데 오민철이 어느새 저격총을 거치해 놓고 있었다.

도주하는 적을 잡으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HK를 놓고 재빨리 엎드렸다.

“저 새끼가 대가리 같은데.”

오민철이 어느 새 관측수로 돌아와 있었다.

짧은 머리를 한 평상복 차림의 사내에게 조준경이 고정되었다.

‘가장 튀지 않은 자를 노려라’

비정규군 즉, 민병대나 테러범, 지금처럼 군인들이지만 필요에 따라 복장을 바꾸는 반군들과의 교전에서 우두머리를 점찍기란 쉽지 않다.

정규군처럼 계급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땐 가장 특징 없는 자가 리더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있다.

2차 대전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데이터이다.

탕!

퍼억!

핏물이 뜨거운 창공으로 피어났다.

탕!

연달아 두 발이 총구를 떠났고 두 명의 적이 굴러 떨어졌다.

도망치던 적들이 일제히 바위와 움푹 패인 곳으로 몸을 숨겼다.

저격수 앞에서는 도망이 상수가 아니다.

일단 엎드리거나 엄폐물을 찾아 숨어야 한다.

권총수가 적을 붙잡아 놓고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소대원들은 무너진 사원 속에서 죽은 전우들과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탕!

잠시 조용해진 틈을 노리고 벌떡 일어나 도망치던 또 한 명의 적이 쓰러졌고 그 순간 적들이 동시에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동료 한 명을 희생양 삼아 저격수의 총을 그쪽으로 유도한 뒤 일제히 튄 것이다.

나름 최선의 방법이지만 대신 미끼는 먹힐 수밖에 없다.

권총수는 저격총을 접어 어깨에 멨다.

재빨리 무너진 사원을 향해 뛰어 갔는데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겨우 버티고 있는 사원 입구문을 지나 안으로 뛰어들었다.

누군가를 찾는 듯 부지런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기랄’

급기야 폭삭 주저앉은 사원 건물 더미를 여기저기 마구 파헤쳤다.

그러다 문득 재빨리 몸을 세우고 대력금강심법을 끌어올린다.

아직은 움직이면서 심법을 끌어올리는 수준에는 조금 미달해 있다.

‘있다’

좌측으로 20여미터 뛰어가더니 무너진 잔해를 드러냈다.

사원 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 옆으로 군복차림의 사내가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카야마. 나카야마!”

나카야마는 소대 통신병이댜.

“위생병, 위생병.”

권총수는 헤드셋에 대고 소리쳤다.

잠시 후 의약품 가방을 맨 태국출신 피아퐁이 달려왔는데 권총수는 흠칫했다.

피아퐁의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는데 상처가 큰 듯 핏물이 배어 있었다.

“피아퐁!”

훈련소 동기다

“난 괜찮아.”

피아퐁은 재빨리 나카야마 턱 밑 경동맥을 만지더니 재빨리 전투복 상의를 벗기고 허리띠를 푼 뒤 심폐소생술을 전개했다.

그 사이 권총수는 나카야마에게서 2미터 떨어진 곳에 묻혀 있는 소대 무전기를 찾아내 곧장 교신에 들어갔다.

“찰리 여긴 부라보 응답하라.”

응답이 없자 다시 호출했다.

“찰리 응답하라.”

“여긴 찰리 부라보 말하라”

“함정이었다. 사원이 폭발하고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상자가 적지 않다. 즉각 응급헬기를 보내달라. 내 말 들리는가 찰리?”

“부라보, 천천히 말하라 지금 함정에 빠졌다고 했는가?”

“그렇다. 소대장님이 다쳤고 사상자가 10여명이 넘는다. 즉각 의료 헬기를 보내달라.”

“오케이 알았다. 즉각 보내겠다.”

권총수는 무전 손수신기를 내리고 다른 부상자를 찾아 뛰었다.

비상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외출을 했거나 각자의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지휘부가 속속 여단 지하벙커로 들어섰다.

보병 제27여단장 머큐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단 예하 부대 지휘관들 역시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다.

부하 지휘관들을 바라보던 머큐리 준장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멎었다.

외인 제7중대장 튀랑 대위였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1소대를 직접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는 직속상관이다.

여기 모인 지휘관 모두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는 군인이지만 1소대의 희생에 대한 감정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다.

아무리 같은 친척이라고 해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보다 더 슬플수는 없는 것이다.

가장 가슴이 타들어가는 사람은 튀랑 대위일 것이기에 바라본 것이다.

여단 법규를 보면 씰 소속의 닉 대위 구출작전은 외인1소대에게 내려진 명령이지만 사원에 숨어 있는 아사드 준장에 대한 생포 작전은 여단직속 수색대대가 처리하는 것이 정상이다.

작전을 마치고 귀대하는 팀에게 다시 작전을 내리는 법은 거의 없다.

일단 그 부대는 들어오고 새로운 부대가 나가야 맞다.

“으음!”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자신의 지휘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워낙 신출귀몰한 아사드이다 보니 작전참모 니꼴라 중령의 말에 순간적으로 자기까지 흥분해 버린 것이다.

지휘관은 얼음처럼 내정해야 한다.

한순간의 경솔한 판단이 자칫 부대의 궤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튀랑대위에게 시선을 던졌다.

미안한 점이 또 있다.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밟지 않은 것이다.

니꼴라 중령의 보고를 받은 즉시 외인 7중대장인 튀랑 대위에게 전화하여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군대에도 상위법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한 민법과 형법보다 헌법이 우선하듯 말이다.

여단에서는 무조건 자신의 명령이 최우선 권위를 갖는다.

배속된 외인부대라고 해도 자신의 명령은 분명히 그들까지 통제한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이다.

인간적인 절차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 부대야 말로 강군이다.

“내 실수요.”

모인 지휘관들이 화들짝 놀란다.

“내 탓이야. 아사드를 잡겠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어요. 부관.”

“예 장군님!”

한쪽에 서 있는 중위가 대답했다.

“사실 그대로 사령부에 보고하라. 외인1소대는 닉 대위 구출작전을 벌이며 반군과 여러차례 교전을 하였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가 아주 높은 상황인데 다른 작전에 연이어 투입했다. 나의 판단 미스다.”

전장에서 지휘관의 오판은 계급 강등이나 지휘권 정지, 또는 군법에 의해 강제전역도 당할 수도 있다.

그걸 모를리 없는 머큐리 여단장의 발언은 참석자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굉장한 사건이다.

특히나 군인에게는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똑똑!

노크소리에 이어 하사 계급의 흑인이 들어섰다.

힘차게 경례를 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외인1소대 피해 상황이 지금 들어왔습니다. 사망 여덟명.”

“아!”

누군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는데 바로 7중대장 튀랑대위였다. 튀랑대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7중대에서 1소대는 정찰소대 임무와 특수작전에 동원되는 최정예이다.

7중대 에이스들인 것이다.

“부상자는 다섯입니다. 그중 두 명은 더 이상 군인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군의관의 보고입니다.”

척!

통신병이 경례를 하고 돌아나갔다.

* * *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살을 태울 것 같은 열기 속을 묵묵히 걸어가기만 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이미 헬기에 실려 부대로 떠났다.

소대장 맥그레인도 중상을 입었는데 군의관은 과연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잠시 휴식한다!”

부소대장 다리다 상사가 명령했다.

벨기에 출신으로 군 생활만 14년째이다.

권총수는 아카시아 나무가 만든 그늘에 앉아 소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낯익은 얼굴 몇이 안 보인다.

헝가리 출신 요세프와 루마니아 출신 무투가 사라졌다.

10명의 동기중 벌써 두 명이 떠난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망자는 자신을 포함한 풋내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등병들이 아닌 기존 소대원, 고참들이 많았다.

그건 전투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앞장을 설 수밖에 없고 선배가 앞장선다는 외인부대의 오랜 전통 때문일 것이다.

사원안으로 뛰어든 2분대 즉, 고참들 거의가 살아 나오지 못한 것이다.

툭!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를 쿡 찔렀다.

비렌드라는 얕지 않은 외상을 입었는데도 헬기를 거부하고 도보 복귀를 선택했다.

“괜찮아?”

머리 일부를 다쳐 붕대를 감았고 강력한 폭발 풍에 날아온 파편들이 장딴지와 옆구리를 찢어 버린 것이다.

비렌드라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과묵한 친구다.

소대의 여러 궂은일을 처리하고 특히 생활관 여기저기 고장 나거나 헐거워진 곳이 있으면 소리 소문 없이 고쳐 놓는다.

“휴식 끝 이동!”

일행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중대장 튀랑대위가 부대 정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차렷.”

소대원 모두가 걸음을 세웠다.

“경례!”

생존자 11명이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처억!

튀랑대위도 거수경례로 답한 뒤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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