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지독한 함정(2)
맥그레인이 소대원들을 쭈욱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아사드, 여단 본부로부터 그가 여기 푸르나 고개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은신해 있다는 연락이 왔다. 곧장 출동하여 체포하라는 명령이다.”
“체포?”
“가급적이다. 안되면 제거해야겠지. 놈의 머릿속에 든 반군에 대한 정보가 아깝긴 해도 말이야.”
“일단 저 등성이를 넘는다.”
맥그레인은 오른쪽으로 쭈욱 이어가는 작은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전방경계 세르게이 콜레르, 후방 경계 피아퐁, 바라프, 요세프.”
첨병으로 두 명을 세웠고 후방 경계병으로 세 명이다.
외인부대 훈련교범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지목을 받은 대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앞뒤 모두 본대와 너무 간격 벌어지지 않게 관리 잘하라고.”
“예!”
무전기를 통해 대답들이 들려왔다.
구름 한 점 없다.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어가는 태양은 사방 천지에 아지랑이를 만들어 놓았다.
밑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열이 금세라도 구울 듯 했다.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푸르나 고개로 가는 17번 지방도로가 나타났다.
맥그레이는 곧장 길이 아닌 산을 타며 사원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왼편으로 17번 도로를 놓고 나란히 산의 측면을 따라 접근하기 시작했다.
탁탁!
여기저기서 새 탄창 깔아 끼우는 소리가 들렸다.
“탄창확인 안 해?”
오민철이 물었다.
권총수는 탄창을 꺼내 오민철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작전이 종료되면 몇 발이 남았든 상관 않고 반드시 새 탄창으로 바꿔 끼워 놓는다.
이동 중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므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듬성듬성 서 있는 전나무와 크고 작은 바위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사원으로 접근했다
스윽!
맥그레이가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낸 뒤 쌍안경으로 산등성이를 보았다.
돌로 축조된 200백년 된 사원이라고 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저격수 위치로.”
저격수는 본대의 공격을 용이롭게 만들어 주기 위해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옆으로 빠져 나갔다.
산은 높지 않았다.
푸르나 고개가 해발 145미터이고 사원에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다.
두 사람은 정상에서 30미터 정도 내려온 두 개의 바위 사위에 자리를 잡았다.
두 개의 바위가 1미터 간격으로 갈라져 마주보고 있어 저격 장소로는 좋았지만 문제는 위장이었다.
나무는 없고 거의 바위였기 때문에 이번에 가지고 온 초록색 길리슈트 가지고는 완전한 은신이 어렵다
‘위장만 완벽해도 저격수의 능력 70프로는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
총을 거치한 권총수가 불편한 듯 자신의 길리슈트를 살피자 오민철이 물었다.
“신경쓰여?”
“차라리 벗는게 더 낫겠는데.”
전투복은 사막색이고 길리슈트는 초록색이다.
사실 길리슈트는 작전지역 지형지물을 고려해 선택한다.
사막색과 초록색 두 개를 모두 가지고 다니면 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지만 그건 어렵다.
섭씨 45도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이라크에서 열전도율은 낮지만 내부 열이 외부로 방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길리슈트를 입고 잠복한다는 건 고문이다.
무거운 저격총과 부가장비, 거기에 길리슈트를 2벌씩 갖고 다닌다면 아마 작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칠 것이다.
“에이!”
권총수는 길리슈트를 벗어 백에 담아 놓고 그냥 엎드렸다.
어쩔 수 없이 오민철도 벗어야 했다.
색이 다른 두 물체가 나란히 있으면 더 빨리 적에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행동통일 하듯 색도 통일해야 그나마 낫다.
“거리 700”
관측경으로 사원을 살피던 오민철이 말했다.
드르르!
권총수가 거리조절에 나섰다.
“풍속 정온!”
바람이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현재 기온 44도.”
달궈진 총열과 뜨거운 공기가 날아가는 총알에 미칠 차이를 계산한다.
“소대 위치?”
오민철은 재빨리 관측경을 왼쪽방향으로 돌렸다.
“거의 공격선까지 다가왔어.”
권총수는 저격거리를 조정하면서 총구를 왼쪽으로 돌렸다.
조준경 속으로 움직이는 군인들이 보인다.
바위와 나무 등을 엄폐물 삼아 사원으로 접근 하고 있었는데 소대원들도 사원까지는 대략 200미터 정도 남았다.
기습 효과를 얻으려면 50미터 이내로 들어가야 한다.
“누가 나오는데?”
조준경으로 사원을 보던 권총수가 중얼 거렸다.
오민철은 재빨리 관측경을 돌렸다.
그러더니 윗주머니에 넣어둔 로얄카드를 꺼내 관측경속의 사내와 카드의 사진이 동일한지를 비교했다.
“아니지?”
자신이 없다.
이라크에 와서 느낀 점 하나는 웬만해서는 사람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놈이 그놈 같다.
조금 전에 지나갔던 놈이 또 지나가는 것 같은 혼란에 당황했었다.
거의가 덥수룩한 수염을 한데다 터번까지 써버리면 구별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나 워낙 거리가 멀어 분명치 않았다.
“아니잖아!”
권총수가 잘라 말했다.
총에 달린 조준경이 관측수의 관측경보다 배율이 더 낮다.
관측수의 관측경 배율이 더 높은 건 눈곱만한 것도 놓치지 말고 찾아내 저격수에게 가르쳐주라는 뜻이다.
투툭!
오민철이 조준경을 조정하는 권총수를 보았다.
훈련소 들어갈 때 받았던 권총수의 양쪽 눈 시력은 2.0이었다.
자신도 2.0이다.
그런데 지금 관측경으로 보는 자신 보다 더 확신에 찬 대답을 하는 건 뭘까
“아니라고?”
“코 밑에 사마귀가 있어.”
아사드 얼굴 어디에도 사마귀는 없다.
“이제 보니 눈도 짝눈이군.”
오민철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관측경에 들이댔지만 코밑에 붙은 점과 짝눈임은 확인 할 수 없었다.
“확실해?”
권총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호흡을 조절하여 대력금강심법을 끌어 올린다.
대력금강심법은 생각(想)과 보는(視)것과 소리(聽)까지 완벽하게 틀어막아 버린다.
무상(無想)과 무념(無念).
몸과 마음이 조준경에 집중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만큼은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 누구를 죽이는지, 총을 쏘는 건지, 총소리가 큰지 작은지 일체 모른다.
알려고도 할 필요는 없다.
들숨과 날숨이 실낱처럼 가늘어지더니 권총수의 모든 감각은 대력금강심법속에 묻혔다.
처음에는 저격에 대력금강심법을 접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틈 날 때마다 사격자세를 취하면서 심법을 끌어 올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는 총을 거치하고 엎드리면 완전한 공(空)이 된다.
이를 공공선사는 천심통(天心通)이라고 말했다.
대력금강심법의 핵심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신심일여(身心一如)였다.
공공선사는 신심일여를 얻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 달마이후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직 깨우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권총수는 대력금강심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어떤가?”
맥그레인으로부터 이곳 위에서 보는 사원의 모습에 대한 질문이 날아왔다.
“수도사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발견됐지만 아사드는 아닙니다.”
“다른 건?”
“평온합니다.”
오민철이 대답했다.
권총수의 총구가 소리없이 움직였다.
혹시 어떤 함정이나 매복은 없는지 살피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겉으로는 어떤 위험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사원 문이 열리고 코 밑에 사마귀가 있는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아니 저 자식은 왜 자꾸 들락날락 거리는 거야.”
오민철은 사내가 무척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사원 앞마당을 산책하듯 왔다 갔다 했는데 마치 깨달음을 얻고자 용맹정진하던 스님이 갑자기 절벽처럼 막아선 화두 앞에 길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 같았다.
소대원들은 사원을 에워 쌓았다.
무전기에서는 소대장 맥그레인의 지시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고 권총수는 총구를 사원 정문에 고정하고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1분대 진입!”
맥그레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8명의 대원들이 사원으로 뛰어들었다.
왔다갔다 하던 사내는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을 발견하고 재빨리 양손을 들어 올렸다.
대원 중 한명이 사내를 땅바닥에 엎드리게 해 놓고 몸을 수색했다.
다다닥!
그 사이 나머지 대원들이 사원 안으로 뛰어 들었다.
권총수는 조준경을 통해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흘긋 왼손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았다.
들어간지 1분이 지났다.
기습작전에서 1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관측경으로 살피던 오민철도 이상하다는 듯 중얼 거렸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산을 뒤흔들었다.
쾅!
콰가가강!
폭발이 일어나면서 창문들이 터져 날아갔고 돔 지붕에 균열이 생겼다.
쿠콰콰쾅!
2차 폭발이 이어졌다.
지붕과 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직선거리로 700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고막이 울릴 만큼 폭발은 어마어마했다.
“이런!”
권총수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보다 더 완벽한 함정은 있을 수 없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고 더구나 이슬람 사원이라는 것은 절대 이런 일을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든다.
아무리 정치나 종교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알라에게 기도하는 사원은 절대성역이라는 것이었다.
이라크 반군도, 텔레반도,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IS도 똑같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사원은 그들이 믿는 알라의 집이고 그곳은 세상의 어떤 욕망과 원한, 이해도 있을 수 없는 오로지 평화만 가득 찬 곳이다.
미군을 포함한 모든 연합군에게 내려진 절대 준칙 하나가 있다.
‘사원은 침탈하지 마라’
어쩔 수 없는 필요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가급적 최대한 예의를 갖춰 행동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미군이 사원을 무장 침입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이라크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고 연합군 사령관은 재빨리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수습되곤 했었다.
그런데 자신들 손으로 사원을 폭파한 것이다.
권총수는 순간적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저 거대한 폭발에서 가공할 원한과 불타는 적개심을 느낀 것이다.
단순히 침략자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복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권총수는 발만 동동 구를 뿐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저격수는 절대 마음대로 이탈하거나 움직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함정을 제작했다면 필시 어딘가에서 나머지 생존자를 사냥하기 위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드르륵!
바로 그 순간 콩을 볶는 것 같은 총소리가 메아리 쳤다.
AK소리다.
권총수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총구를 돌렸다.
오른쪽 능선에서 3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소대원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며 접근해왔다.
싸악!
권총수가 그쪽으로 총구를 돌리자 오민철이 재빨리 가로막았다.
“비켜!”
“정신 차려, 전쟁이 장난인줄 알아.”
“비키라니까.”
“관측수는 저격을 지원하는 협조자이면서 저격수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 방아쇠 당기면 안돼.”
“왜 안돼?”
“몇 명을 죽일 수 있겠냐. 많아야 두 명 세 명? 놈들의 최고 타겟은 저격수인 너야. 네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필사적으로 쫓아 올 거야. 당장 총부터 걷어.”
저격수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특화된 병사가 아니다.
정확성으로 적의 수뇌나 중화기 사수 따위를 제거하여 아군의 공격을 유리하게 이끌고 상대에게는 극도의 공포심을 조장하는데 최고의 가치를 둔다.
권총수는 이를 물고 M10을 거뒀다.
“이리 줘!”
오민철은 지퍼가 채워진 저격총 가방을 빼앗듯 하여 자신의 등에 짊어졌다.
저격 총을 메고 있다면 백 프로 저격수다
오민철은 지금 최악의 경우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즉 자신이 저격수라는 걸 스스로 노출 시키려는 것이다.
위치가 노출된 저격수는 생존을 보장 못한다.
저격수 한 명을 죽이기 위해 근처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건물에 있으면 항공기나 포병의 지원을 받아 건물을 무너뜨려 버린다.
“뭘 봐. 일단 가까이 가서 상황을 본 뒤 결정하자!”
탁!
오민철의 HK416을 권총수가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