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3화 (43/651)

제43화: 지독한 함정(1)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빨랐다면...

모두가 아쉬워하며 닉 대위가 죽었던 헛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귀한다!”

맥그레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로운 소대 첨병이 된 세르게이가 앞으로 나섰다.

한편 일요일 그 시각, 보병 제 27여단 소속 작전참모 니꼴라 중령을 포함한 일부 간부들과 여단 본부 병사 백여 명은 휴일을 맞아 부대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아르빌 외곽 동쪽에 있는 타우랑 마을에서 대민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드러난 적보다 숨은 적에 입은 피해가 더 크다’

이라크 국민들의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에 대한 시선은 무척 차가웠다.

이쪽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낌새를 보이면 곧바로 이라크 반군이나 테러단체, IS등에 수시로 알려준다.

얼마 전에는 보급품 수령 나가는 트럭이 급조폭발물에(IED)에 당하여 세 명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지역 주민 중 누군가 트럭 한 대가 부대 밖으로 나갔다고 밀고한 것이다.

민심을 잡기 위한 노력은 다각도로 진행됐고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대민지원을 나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 주민들의 시선이 호의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언젠가는 닫힌 가슴이 열릴 날이 있겠지.

의료지원에서부터 도로건설, 허물어진 담장 쌓기, 집안 창문 수리등을 해주며 오늘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중령님!”

니꼴라 중령이 병사들과 무너진 담장을 쌓고 있을 때 작전분석실장 미셀 대위가 다가왔다.

“이리와요.”

미셀 대위는 10여미터 떨어져 서 있는 비쩍 마른 사내를 향해 손짓을 했다.

사내는 어디서 다쳤는지 무릎에 피멍이 들었고 낡은 슬리퍼, 그나마도 짝짝이를 신고 있었다.

사내는 조금은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주춤 다가왔다.

“걱정 말고 말해요. 편하게 얘기하면 됩니다.”

“뭘 말하라는 거요?”

니꼴라 중령이 미셀 대위를 향해 물었다.

“로얄 카드에 올라있는 이 지역 반군 우두머리인 아사드 준장 말입니다.”

미셀 대위는 전투복 윗주머니에서 아사드 준장 얼굴 사진이 박힌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조금 전 앗꾸굼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사드 장군을 봤다는 겁니다.”

니꼴라 중령이 삽질을 하기 위해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로얄카드(Royal card).

미군주도로 후세인 아래서 고위직을 지냈으며, 반미, 반서방에 앞장선 정치인과 고위 군관계자, 테러단체 우두머리들을 체포하기 위해 명단을 작성하며 만든 사진이다.

52장의 트럼프 카드처럼 만들어 그림대신 그들의 사진을 넣었다.

그들 목에는 거액의 상금이 걸렸다.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이는 9.11 테러 배후 빈라덴이다.

미군은 그의 목에 2,500만 달러를 걸었고 액수는 수배자의 정치적 지위와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아사드 준장 목에 걸린 현상금은 200만 달러.

사실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 측에서 아사드 때문에 적지 않은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사드에게 희생된 연합군 쪽 희생자는 일백여 명에 이른다.

워낙 신출귀몰한데다 빼어난 전략가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에 능수능란했다.

오죽하면 IS가 장악하고 있는 모술이나 시리아 국경선 쪽으로 빠져나가라.

이라크 밖으로 보내주겠다.

원하면 길까지 시원하게 터주겠다는 말이 나돌 만큼 아사드는 이제 은연중 연합군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후세인 측근들과 반미를 외치는 정치인들 상당수는 오래전 이라크를 빠져나가 외부에서 테러와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데 아사드는 정반대였다.

악착같이 이라크 내에서 머물며 연합군을 괴롭힌다.

200만 달러라는 상금은 빅히트 상품이 되었다.

이라크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애국자는 아니다.

그들 중에는 애국도 중요하지만 당장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더욱이 원하면 이라크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까지 시켜 주겠다는 말에 전화가 봇물 터졌다.

많을 때는 하루에 일백여 통이 걸려 오기도 했고, 심지어 부대까지 찾아와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200만 달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아사드였어요.”

아사드를 봤다는 신고 전화가 거의 없는 요즘 작전참모 니꼴라 중령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사내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강조하려는 듯 주머니에서 구겨진 아사드 준장의 얼굴이 담긴 카드를 꺼냈다.

“이 사람이라니까요. 거짓말이면 내게 신의 재앙이 떨어질거요.”

사내는 다부지게 말했다.

“마을이 어디요?”

“앗꾸굼.”

“앗꾸굼, 거긴 아르빌과 모술 중간 지점에 있는 제법 큰 동네 아닌가? 동네에 있더란 말인가?”

“아뇨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푸르나라는 고개에 작은 사원이 하나 있습니다.”

“푸르나라면 17번 국도가 통과하는 해발 145 고개잖아.”

“그렇습니다. 그곳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위장해 있는 모양입니다.”

미셀 대위가 설명했다.

작전참모답게 지역 내 있는 특별한 지형과 지물에 대해 모르는 곳이 없다.

푸르나 고갯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무척 아름답다.

이라크에서는 보기 드물게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 놓은 것 같은 판상절리를 볼 수 있다.

고갯길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높이 약 30미터, 길이 100미터 정도되는 절리는 그곳을 지나는 사람에게 잠시라도 전쟁의 참상을 잊게 만든다.

그런 절리 위에 작은 모스크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니꼴라 중령은 미소를 지었다.

“알았습니다. 연락처 주시고 돌아가 계세요.”

사내는 진짜라고 몇 번을 강조한 뒤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마제드 압둘라’

압둘라는 돌아서는 순간까지도 틀림없다고 핏대를 올렸다.

“알았어. 알았어요.”

니꼴라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지는 압둘라는 보고 있던 니꼴라 중령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접니다.”

상대는 보병 제27여단장 머큐리 준장이었다.

니꼴라 중령은 사내로부터 받은 제보를 설명했다.

여단의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니꼴라 중령이다.

옛날로 말하면 책사요, 군사인 셈이다.

물론 결재 사인은 여단장 몫이지만 니꼴라 중령의 영향력은 작전을 실행함에 있어 절대적이다.

전화를 끊었다.

“미셀 작전분석실장!”

“예, 참모님!”

“지금 비상을 걸어 출동시키면 푸르나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소?”

“운송 수단이 뭐냐에 따라서.”

“공중은 안돼요. 우리 간다고 떠들 일 없잖아. 놈이 거느리고 있을 병력을 계산한다면 적어도 백 명은 출전해야 돼.”

“VBCI로 가도 요란하기는 마찬가지 일겁니다.”

VBCI는 병력 수송용 장갑차다.

백 명이 움직이려면 최소한 10대는 가야 하는데 수송용 장갑차 열 대가 달리면 지진이다.

니꼴라 중령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르빌 사람들 대다수가 아사드 편이다.

같은 이라크인으로서의 인지상정인 것이다.

수송헬기와 장갑차가 뜨면 누군가 반드시 귀띔을 할 것이 뻔했다.

사실 몇 차례 분명한 정보라고 판단하여 출동했지만 그때마다 항상 한 발 늦었다.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누군가, 물론 아르빌 주민이겠지만 이쪽의 움직임을 아사드에게 전해 버리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쪽에 외인7중대에서 작전 중이죠.”

“1시간 전 종료됐습니다.”

“귀대중인 그들을 보낸다면 쥐도 새도 모르겠군.”

“그렇긴 합니다만 아사드가 몇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있는지, 무장한 화력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아서 작전나간 1소대병력으로는 무리일 듯….”

“전쟁을 쪽수로 합니까? 통신병!”

무전기를 등에 메고 있던 일등병이 재빨리 달려왔다.

“작전나간 외인7중대 1소대 호출해.”

통신병이 재빨리 송수신기를 들고 호출에 들어갔다.

“부라보, 여긴 알파 응답하라.”

찌익 소리만 날 뿐 조용하자 다시 말했다.

“부라보 여긴 알파, 들리면 응답하라.”

“여긴 부라보 알파 뭔가?”

“교신입니다.”

일등병 계급을 한 통신병이 재빨리 무선 송수신기를 니꼴라 중령에게 건네주었다.

미셀 대위는 어금니를 물었다.

인간은 동물이다.

야수처럼 발달하거나 예민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도 육감, 본능 따위가 존재한다.

이라크에서만 3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제 포성과 총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깊은 잠에 빠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미군 몇 명이 작전중 사망했고, 외출 나간 프랑스군이 무장 민병대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런 뉴스와 현장 속에서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변해가고 있었다.

갈수록 신체 감각이 칼처럼 다듬어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행동발달심리학 박사 에드월 교수는 동물의 본성 즉, 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인간이 조금씩 야수화 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뭐지’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마치 뒤를 닦지 않는 듯 한 껄끄러움이 등줄기를 훑는다.

외인1소대와 교신하는 니꼴라 중령을 바라보는 미셀 대위의 눈이 촛불처럼 흔들린다.

그건 불안함이었다.

소대의 이동은 빨랐다.

오늘 안으로 부대에 들어가겠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휴식 시간도 줄여가며 급속행군을 했다.

시간당 8킬로 정도는 이동하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 충분히 부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권총수는 생각했다.

“어제 통장에 월급 들어왔더라.”

오민철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헐!”

“왜?”

“작전 중에 월급 통장 조회를 해?”

“누굴 위해 우리가 이 고생하는데? 다 쩐 때문아냐 임마.”

휴대폰 사용에 대한 특별한 제재는 없다.

그러나 작전 중, 또는 훈련시에는 일체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는 감봉 조치되고 1개월 영창이다.

오민철은 아슬아슬하게 탈법과 합법 사이를 넘나들었다.

작전중에는 핸드폰을 꺼 놓는다고 하지만 깜빡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것도 낮이 아닌 야간작전에 벨이라도 울려 버리면 끝인 것이다.

진동으로 해놔도 야간에는 크게 들린다.

무음이어도 빛이 생긴다.

오민철의 근무 위반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걸리는 걸 보지 못했다.

워낙 군경험이 풍부한 탓인지 웬만한 간부들은 가지고 놀았다.

소대에서 오민철에게 지어준 별명이 007이다.

“행군 정지!”

갑자기 소대장 맥그레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타다닥!

네 명의 경계팀이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맥그레인에게 몰려들었다.

“일정이 변경됐다.”

“변경?”

오민철이 눈을 가늘게 만들어 맥그레인을 살피듯 본다.

자칭 눈치 9단이고 통밥 10단이다.

오민철은 이미 소대장 얼굴에서 뭔가 좋지 않은 그림자를 찾아 낸 것이 분명했다.

촤락!

맥그레인은 작전지도를 펼치더니 한곳을 짚었다.

“여기, 이곳.”

불쑥 올라간 등고선과 옅은 밤색, 그 한가운데를 뚫고 가는 검정색 선 하나.

옅은 밤색은 적당한 높이의 산을 뜻하고 검정색 선은 도로였다.

“푸르나 고개?”

오민철이 묻듯 지도를 읽는다.

“지도상으로는 여기서 남쪽으로 4킬로가 조금 안된다.”

“타겟은요?”

권총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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