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화 (42/651)

제42화: 구출(5)

AK다.

M17 권총과 AK교전을 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상황밖에 떠올릴 것이 없었다.

닉 대위다.

은신해 있다 발각되자 먼저 발포를 하고 재차 숨었다.

이어 적들이 추격해 오면서 AK를 난사한 것이다.

“뛰어!”

맥그레인이 소리쳤고 소대원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추고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권총수는 따로 움직였다.

이미 마을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민철의 눈은 만약 상황이 벌어지면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부터 살피고 있었다.

저격하는데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는 작전지대보다 위치가 높은 것이 좋다.

오민철이 지목한 장소는 마을 앞에 있는 모스크(mosque)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스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작은 집이었다.

다만 지붕이 돔 모양을 했고 사원형태를 갖추려다 보니 일반 민가보다 높았다.

다다닥!

사원 문은 열려 있었다.

둘은 번개처럼 원형의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잠깐 사이에 지붕으로 올라섰다.

마을이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타탁!

총을 설치하는 권총수의 동작은 빠르고 정확했다.

“26초.”

저격수들은 가끔 자신이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설치하는 시간을 관측수에게 말한다.

절차적 보고이다.

관측수는 출전할 때마다 저격수에 대한 여러 가지를 체크하여 중대장에게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총기 설치와 해체, 그리고 이동이다.

그 모든 동작은 빠를수록 좋다.

지휘관은 관측수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며 저격수의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지 아니면 게을러지고 있는지는 살피는 것이다.

오민철은 엎드려 관측경으로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뭐 보여?”

“아직!”

철컥!

탄창을 끼고 뒤로 당긴 노리쇠를 앞으로 밀었다.

약실에 실탄 한 발이 들어갔을 것이다.

권총수의 눈이 조준경에 붙었다.

드르르륵!

드륵!

탕!

잠시 조용하던 마을에 다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AK가 지배하는 소리 속에 가끔씩 들리는 M17 권총소리.

그건 헤비급 권투 선수에게 달려드는 플라이급 선수의 몸부림 같았다.

“저기, 11시 방향!”

오민철의 말에 따라 권총수는 총구를 11시 방향으로 돌렸다.

평상복과 군복 차림의 사내 7명이 담벼락이 반쯤 무너진 집안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조준경을 집안에 맞추고 살펴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뭐지?”

오민철도 뭔가 찾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관측경을 움직였다.

투투투투!

바로그때 AK와 전혀 다른 총소리가 있었다.

퍽!

쿵!

담벼락 뒤에서 AK를 갈기던 사내들 중 두 명이 나동그라졌다.

사내들은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소대원들이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 사내들의 신분도 정확하지 않고 적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라고는 손에 쥔 AK 뿐이다.

AK를 들었다고 무조건 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연합군사령부에서 내려온 지휘명령서 제7항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급적 AK와 PKM 사용은 자제할 것’

작전을 벌이다 보면 적으로 위장해야 할 때가 있고, 그래서 AK나 PKM기관총을 휴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극도의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전쟁터에서 총기는 복장과 함께 피아를 구분하는 가장 분명한 신분증이다.

“컥!”

“으악!”

또 다시 두 사내가 엎어졌다.

“골목 오른쪽 터번 쓴 놈.”

총구가 움직인다.

오민철이 정한 표적은 일단 그 자를 우두머리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관측수 의견을 1차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탕!

푸아아!

500여미터 떨어진 거리지만 이마가 으스러지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 앞에 엎드린 놈.”

스으으!

총구가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강력한 총성이 울렸다.

타앙!

총성이 메아리치고 엎드린 사내가 쥐고 있던 AK를 떨어뜨리며 뒤집어 진다.

두두두두두!

바로그때 굵직한 총성이 퍼졌다.

“PKM 소리.”

오민철이 놀라 소리치며 관측경을 좌우로 돌렸다.

기관총이 분명하다면 서둘러 처치해야 한다.

저격수가 제거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중 하나가 적의 중화기다.

중화기를 찾아내는 건 관측수의 임무다.

“으음!”

PKM에 맞아 소대원 한 명이 고꾸라지고 있었는데 조준경에 눈을 맞춘 권총수가 신음을 삼켰다.

처음으로 동료가 죽는 걸 본다.

훈련과 실전은 다르다.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목덜미를 지나간다.

“마을 뒤 언덕, 닉 대위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집에서 1시 방향으로 50미터.”

스으으!

총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있다.

작은 언덕 바위에서 PKM이 불을 토한다.

“거리 600!”

오민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타아앙!

기관총을 잡은 사내가 벌러덩 뒤로 넘어지더니 언덕을 굴러 떨어졌다.

“스나이퍼어어어!”

귀청을 찢는 듯한 총소리를 뚫고 터져 나오는 공포에 찬 외침에 만만찮게 반격하던 적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대응사격을 하며 물러나는 수비형 퇴각이 아니라 그냥 냅다 뛴 것이다.

넷!

소대원들이 도망치는 적을 향해 HK416을 갈겼으나 S자로 도망치는 적을 쉽사리 제압하지 못했다.

반군들이어서 인지 도주하는데도 훈련이 잘되어 있다.

탕!

퍼억!

맨 앞장서서 달려가는 적의 뒷머리가 터지며 엎어졌다.

선두 동료가 나동그라지자 뒤의 셋은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이어 포복으로 20여미터 떨어진 언덕을 향해 기어갔다.

언덕 뒤로는 숲이 우거진 산이 시작된다.

언덕만 오르면 살 수 있다고 판단한 행동들이었다.

탕!

푸억!

엎드린 사내의 목이 지면으로 꺾이면서 꼼짝하지 않았다.

생존자는 둘.

벌떡!

갑자기 엎드린 사내들이 일어나 소대를 향해 AK를 난사했다.

살아 돌아가기 틀렸다고 판단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컥!

핑그르르!

소대원들의 집중 사격을 받고 두 사내는 고꾸라졌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소대원들 역시 만약을 대비한 주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철수 하겠습니다!”

권총수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조정간은 안전에 놓고 조준경만 분리한 뒤 어깨에 메고 돔 지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형 계단을 내려오던 권총수는 멈칫했다.

흰색의 터번을 높이 말아 두른 비쩍 마른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신성한 사원에서 살인을 행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신성 모독이다.

사원은 알라가 현현(顯現, advent)해 있는 집이며 이곳에서 만큼은 세상의 어떤 원한과 미움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알라...알라후.”

오민철이 연장자로서 이라크식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말을 맺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권총수는 두 손을 모았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쏘리.”

두 사람은 재빨리 사원을 뛰어 나왔다.

맥그레인은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사상자 둘 발생, 헬기 지원 바람, 알파 여긴 부라보 내말 들리는가.”

“부라보 내용을 접수했다. 즉시 헬기와 의료진을 보내겠다. 이상.”

소대장 맥그레인은 통신병 나카야마에게 송수신기를 건네주고 쓰러진 두 대원에게 걸어갔다.

방글라데시아에서 온 파블렌카 일등병은 PKM에 당했고, 이집트에서 온 라슐 일등병은 AK에 맞았는데 복부 관통상이다.

태국출신 위생병 피아퐁이 지혈을 하고 있지만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그때 권총수와 오민철이 빠르게 뛰어왔다.

멈칫!

권총수는 죽은 방글라데시아 출신의 파블렌카 일등병의 시신을 보며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총수!”

고개를 돌리자 파블렌카였다.

“왜 형?”

파블렌카는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담배 하나만.”

“여깄어.”

권총수는 망설임 없이 한 개비를 건네주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담배가 떨어져서 말이야.”

파블렌카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시선을 돌린다.

담배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파블렌카는 담배를 사지 않는다.

고향 방글라데시아에는 부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여섯 식구가 파블렌카의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파블렌카는 부대에서 제공해주는 끼니 말고는 군것질은 거의 않는다.

물론 담배를 전혀 사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한 푼이라도 더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참는 것이다.

꿈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파블렌카는 환하게 웃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 사장님이잖아.”

하며 놀리기도 했는데 모든 것이 끝났다.

‘파블렌카’

문득 시신이지만 담배 한 개비 물려주고 싶다.

“소대장님!”

그때 브라질 출신 오스카르가 다가와 잠깐 와봐야겠다고 했다.

소대장은 오스카르를 따라 담벼락이 허물어진 집으로 들어섰다.

소대원들이 헛간을 포위하고 있었다.

“왜 진입하지 않고 있는데? 안에 닉 대위 없어?”

반군으로부터 그 만큼 무차별한 공격을 받을 사람은 닉 대위 뿐이라는 것이 소대장의 판단이었다.

그러므로 반쯤 열린 헛간에 닉 대위가 있을 것이다.

“있긴 한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대장 멕그레인은 문을 확 밀치고 들어갔다.

삐걱!

안으로 들어선 맥그레인이 소스라쳤다.

그늘진 헛간 구석은 암흑속 동굴 같았다.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짐승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앉아 있었다.

불같은 눈을 하고 비굴해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을 휘감고 있었다.

사내의 권총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마치 동상이 되어 버린 듯 입구를 겨누고 있었는데 맥그레인이 말했다.

“난 아르빌에 주둔중인 외인7중대 소속 맥그레인 소위라고 합니다. 이제 대위님은 우리 손에 구출 되셨습니다. 그만 권총을 내리시죠.”

하지만 닉 대위는 권총을 내리지 않았다.

“대위님, 우린 대위님을 구출하기 위해 온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 군인들입니다. 안심하시고 총을 내리시죠.”

여전히 닉 대위는 총을 거두지 않았다.

맥그레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국가가 다르고 소속이 틀리지만 계급으로 따지면 분명한 상관이다.

더구나 같은 목적 즉, 중동의 평화라는 인류애 아래 뭉친 연합군소속이니 엄격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죽었습니다!”

맥그레인은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뒤에 권총수가 서 있었다.

“숨을 쉬지 않습니다.”

권총수는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닉 대위의 권총을 잡았다.

놓지 않는다.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기 때문에 펴지지 않는 것이었다.

투툭!

힘주어 손가락을 펴고 권총을 잡은 권총수는 탄창을 꺼내 확인했지만 비었다.

공중으로 총구를 올려 방아쇠를 당겼지만 노리쇠가 약실 때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마지막까지 투항하지 않고 꼿꼿하게 적에 맞선 닉 대위의 모습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스으윽!

권총수는 여전히 권총을 겨누는 자세로 있는 닉 대위의 팔을 내려주었다.

헬기 한 대가 마을 상공에 나타났다.

구급헬기였다.

마을 앞 공터에 자욱한 먼지를 피워내며 내려앉았고 소대원들은 죽은 파블렌카와 닉 대위, 그리고 몰핀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라슐을 태웠다

군의관과 간호장교는 곧장 라슐 치료에 들어갔으며 헬기는 다시 떠올라 권총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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