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구출작전(3)
경사도가 60도 이상은 될 듯 한데도 오민철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자신의 군장에 관측수 장비까지 족히 40킬로를 넘을 무게인데도 꼿꼿하게 산을 오른다.
자신의 체력이면 충분하리라 자신하고 체력훈련을 게을리 한 탓에 호된 고생을 한 이후 오민철은 달라졌다.
다른 대원들과 달리 틈나는 대로 개인 훈련을 이어갔다.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 사막을 쉬지 않고 달렸고, 30킬로짜리 타이어를 미친 듯 끌고 다녔다.
지켜보던 동기들 모두 지금처럼 오민철이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걸 본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민철 하면 카스텔노다리 훈련소 동기들은 말 많고 안하무인인 놈으로 인식했다.
입에서 거품을 물고 뛰는 훈련병들 사이에서 혼자 목청을 높인다는 건 그 만큼 체력이 남아돌고 힘들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떠드는 건 변함없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자기관리에 엄격했다.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 줄기가 뻗어 내려온 작은 줄기의 산봉우리다.
인근에 티그리스강이 흘러 산은 우거졌으나 울퉁불퉁한 석회암과 이판암이 덮은 산길은 무척 험난했다.
해가 중천에 이를 때쯤에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소대원들이 맥그레인을 중심으로 몰려들었으나 누구도 밝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소대장 맥그레인의 형형한 눈빛이 산을 내려다본다.
인기척에 날개짓을 하는 산새 몇 마리 말고는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올랐으면 내려가야겠죠.”
권총수의 말에 맥그레인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도망자는 무조건 멀리가야 한다는 본능에 사로잡힙니다.”
“계속 앞으로 갔을 것이란 건가?”
“길을 잃은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간다는 거죠.”
소대원들의 눈이 빛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를 찾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한다는 본능 때문입니다.”
저격수 훈련에서 도피 및 탈출 훈련이 있다.
중대, 또는 대대 그 이상의 본대와 떨어지거나 고립되었을 때, 또한 적의 분리작전(저격수를 발견하면 적은 본대와 저격수를 갈라놓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전개한다)에 빠져 고립되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두 가지 탈출로가 있다.
저격수 답게 완벽한 위장으로 적의 수색대가 철수 할 때까지 은신해 있던가 아니면 끝없이 앞으로 가는 것이다.
아이가 아닌 어른도 위기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앞으로 간다.
실제 카옌 스나이퍼 스쿨에서 5일 동안 굶주리면서 이동, 관측, 통신, 정밀사격, 독도법, 정보수집, 심지어 공작원들의 임무인 암살훈련을 받을 때였다.
5일 동안 잠 한숨 못자고 물 한 모금, 끼니까지 지원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 처하다 보니 저격 훈련병들중 상당수가 어느 한쪽을 향해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그건 목적의식이 아닌 앞을 보고 가려고 하는 인간의 기초적 본성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섰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건너편은 이라크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농촌 풍경이었다.
밭고랑 사이로 다섯 명의 여자들이 밭에서 뭔가를 심고 있었고, 마을 앞에서는 대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모습이 조준경에 들어온다.
파팟!
갑자기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흐흡!
가슴을 펴고 코로 불어오는 바람을 최대한 빨아 당겼는데 어떤 냄새를 맡는 듯 보였다.
‘땀 냄새’
“왜?”
오민철이 다가왔다.
“냄새 안 납니까?”
“무슨 냄새?”
벌름벌름!
오민철이 소리나게 숨을 들이마셨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뜨거운 바람뿐인데.”
“천천히 들이 마셔봐. 향기를 맡기 위해 꽃에 코를 가까이 댈 때처럼 부드럽게.”
오민철은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표정에 변화가 없는 걸보면 여전히 바람속에 섞인 냄새를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어떤 냄새인데?”
오민철은 권총수가 뭔가를 맡았다고 확신했다.
권총수는 자신과 틀리다.
동물적 감각의 소유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능력의 배경에는 대력금강심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오민철은 다시 한 번 콧구멍을 최대한 넓혔지만 눅눅하고 습한 바람만 느껴질 뿐이다.
“어!”
권총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형은 이 소리 안 들리지?”
돌 구르는 소리였다.
누군가 산을 내려가다 돌멩이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다시 조준경을 눈에 가져다 붙였다.
산 아래를 천천히 훑어보던 권총수의 동작이 한순간 멈칫했다.
한곳에 조준경을 고정하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소대장 맥그레인을 돌아보았다.
“소대장님 적입니다.”
적이란 말에 엎드려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소대원 모두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맥그레인은 조준경이 아닌 자신이 갖고 있는 쌍안경을 눈에 댔다.
“산 아래쪽 1시 방향, 키 큰 전나무 보이죠?”
흠칫!
맥그레인이 놀란다.
슥!
소대장은 잠시 눈에서 쌍안경을 뗐다가 다시 붙이고 한참을 살폈다.
“열여덟!”
“열여덟!”
맥그레인이 말을 뱉자마자 권총수 또한 자신이 센 숫자를 말했다.
둘 모두 열여덟으로 확인했다는 건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했다.
“이라크 반군 같지는 않고?”
이라크 군에서 총구를 거꾸로 돌리고 뛰쳐나온 반군은 정부군과 똑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산 아래를 수색하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IS로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미군 제22원정대와 프랑스 27보병여단이 그들의 남하를 막기 위해 아르빌에 진을 쳤다.
아직 미 정보당국과 프랑스 군 정보부는 IS가 활동하는 곳은 이라크내에서는 모술뿐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반군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권총수의 말에 소대장 맥그레인은 쌍안경으로 다시 한 번 살핀다.
“열여덟 명중 군복 차림이 10명이고 나머지는 무슬림복장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발을 보십시오.”
맥그레인이 재빨리 쌍안경으로 재차 살핀다.
“민간인 복장의 사내들도 전투화를 신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군복을 벗었다는 건가?”
“소대장님께서는 작전중 10명의 군인과 8명의 민간인을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누구냐고 물으면 저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민간인인데 혹시라도 이라크 반군에게 걸릴까 무서워 절반 정도는 군복을 걸쳤다고 말입니다.”
“정규군을 만나면?”
“역시 같은 대답이겠죠. 적당히 후세인을 욕하면서 살기 위해 군복을 입었다고.”
맥그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 충분한 얘기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저들의 정체 확인이 가장 시급한 일인데.”
“제가 가죠?”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행동을 보고 정체를 파악한다는 건 위험하다.
미군과 연계하여 이라크 반군과 싸우는 이라크 민병대도 적지 않다.
거의가 후세인 치하에서 정치와 종교적 이유로 끌려가 죽거나 고문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권총수는 저격수다.
소대원중 가장 보호되고 지켜져야 할 제1의 안전대상이다.
그러나 맥그레인의 눈은 흔들렸다.
자신은 아직 직접 본적은 없지만 소대원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능력에 대해 수군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걷는데 소리가 나질 않는다니까요.’
‘야간 사격을 하는데 어떻게 총알의 90퍼센트를 표적에 집어 넣냐구요’
저격수와 야간사격 잘하는 건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똑같은 사격을 하는데도 명중률이 높다는 건 어둠속에서 어느 정도 표적을 본다는 뜻이다.
저격수이기 때문에 일반 병사들 보다는 분명 뛰어나다.
그러나 무려 90퍼센트를 쏟아 넣는다는 건 야간 시력이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해석해야 한다.
과학을 맹신하지만 군대에 들어오면서 그 틀이 깨졌다.
과학으로 해석되지 않는 현상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다.
그중 한 명이 권총수였다.
“좋아!”
소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권총수는 재빨리 등에 매고 있던 M10을 내려놓고 권총만 손에 쥐고 산을 내려갔다.
“공격 대형으로!”
일제히 좌우로 몸을 숨겼다.
“이동!”
무전기가 울리고 소대원들이 은밀하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빨랐다.
이라크의 산은 한국의 산과 달리 석회암 특유의 울퉁불퉁함과 크고 작은 절벽을 곳곳에 만들고 있다.
즉 발자국 소리를 좀 더 낼 수 있는 지형인 것이다.
하지만 권총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산양처럼 험준한 바위를 가볍게 뛰어내리고, 살짝 넘으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처억!
권총수는 바위 뒤에 숨어 사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열여덟 명 맞다.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려 불영보를 펼쳤다.
스으으!
소리가 없다.
분명히 발바닥이 바위를 짚는데도 들리는 충격음이 없다.
10여미터를 더 내려가 멈췄다.
거리는 40미터가 채 안 된다.
‘반군이다’
권총수는 확신을 했다.
그 이유는 그들 모두가 어디인가로 이동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자를 쫓는 추격자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다.
바로그때 누군가 짤막하게 소리쳤다.
“여깁니다.”
순간 반군들이 우르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몰려갔다.
두 개의 바위가 한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피다.
바위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문지르자 가루가 진다.
피가 아직 축축한 가루라는 건 여길 떠난 지 길어봤자 한 나절은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상을 입었으니 잘하면 오늘 안에 따라 잡을 수 있다.
리더로 보이는 콧수염이 수북한 네쿠남이 입을 비틀며 말했다.
“질긴 놈이군. 가자!”
반군들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권총수의 보고를 받은 맥그레인은 즉시 사격 자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저격수가 자리를 잡기만 하면 공격이 시작할 것이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정해준 바위에 납작 엎드려 M10을 거치했다.
마치 인공으로 만든 요새처럼 두 개의 바위가 V 자로 엇갈려 있다.
그 가운데 틈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조준경을 부착한 권총수가 거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저놈이 대가리 같은데.”
관측경으로 살피던 오민철이 속삭였다.
“저격 준비 끝!”
권총수는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사격!”
소대장 맥그레인의 목소리가 차갑다.
탕!
첫발은 저격수가 울린다.
그건 공격이며 신호이기도 했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소대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드르륵!
탕탕!
관측경으로 살피던 오민철이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 나이스 킬.”
우두머리 네쿠남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트특!
권총수는 노리쇠를 당겼다 밀며 총구를 좌측으로 움직였다.
저격수의 첫째 표적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 같은 경우 적의 우두머리다.
두 번째는 공용화기 사수를 날려야 한다.
한 사내가 미친 듯 산 위쪽을 향해 갈긴다.
PKM이다.
러시아가 만들어 전 세계 테러조직과 반군단체에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기관총이었다.
워낙 튼튼하여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직도 세계 최고의 기관총이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드르르륵!
사내는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풍향 SE(남동풍) 풍속 0.8m/s 거의 정온.”
원래 정온(calm)의 기준은 0.2m/s(1knot) 이하일 때이지만 저격에서, 특히 이런 산속에서는 0.9이하면 정온,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것으로 계산한다.
꼭대기에서는 제법 바람이 불었지만 숲속으로 들어오자 바람은 거의 없다.
“온도 섭씨 45도.”
관측수의 말에 조준경의 상하 클립과 좌우클립을 연이어 조정했다.
투툭!
정확히 십자선 사이에 PKM사수의 머리를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퍼어억!
사내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지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스나이퍼!”
누군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