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구출작전(2)
소대장 맥그레인은 적외선 망원경을 이용해 멀리 있는 마을을 살폈다.
불빛 하나 흘러나오지 않는 전형적인 이라크 시골 마을이다.
전기가 부족해서 불을 켜지 않기도 하지만 흘러나온 불빛이 자칫 미군이나 아니면 반군, 특히 내가 수니파인데 시아파 반군이 찾아오거나 아니면 거꾸로 시아파인데 수니파 반군들이 들이 닥치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당하기 때문에 밤에 불을 켜 놓은 집은 좀체 찾아볼 수 없다
“이동!”
소대원들은 다시 일어나 마을을 향해 접근했다.
육안으로도 마을이 보일 만큼 가깝다.
어둠뿐이다.
숨 막히는 고요와 정적이 오히려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오스카르, 셀 두 사람 정찰.”
맥그레인의 지시를 받은 오스카르 이등병과 셀 일등병이 자세를 낮추고 마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산개한 소대원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잔뜩 마을을 노려보았다.
한편 권총수는 어느새 M10을 거치해 놓고 조준경 조율에 들어가 있었다.
관측수 오민철이 선택한 저격 장소는 조그만 돌무덤 아래였다.
저격 장소를 정하는 것도 관측수 임무이다.
돌무덤은 누가 봐도 저격수의 엄폐장소로는 적절했다.
생각이 일치한다는 건 그 만큼 위험하다는 반증인데 굳이 돌무덤 아래를 고집한 오민철의 생각은 뭘까.
놀라운 건 권총수였다.
왜?
라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준경 조율을 끝내고 오히려 오민철을 향해 방긋 웃기까지 했다.
그건 오민철의 결정이 주위 지형과 지물을 볼 때 매우 좋다는 의미였다.
돌무덤 옆으로 누렇게 말라버린 옥수수 밭이 있었다.
총소리가 나면 누가 봐도 옥수수 밭을 의심할 것이라는게 오민철의 계산이었다.
돌무덤은 노출된 장소이긴 하지만 옆에 옥수수 밭이 있으므로 인해 오히려 안전하다.
마른 옥수수 밭이 있다면, 그것도 야간이라면 저격수 열이면 열 모두 밭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최고의 위장은 적의 총알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암석 사이가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감춰주는 풀밭이다.’
저격수 교관 중 한 명인 뒤고개 상사가 한 말이다.
저격수에 대한 교육은 크게 아메리칸 스타일과 러시안 플레이로 나뉜다.
뒤고개 상사는 둘 사이의 교범을 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저격거리와 총기에서 차이가 있을 뿐 훈련은 거의 같다.
즉 제대로 저격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옥수수 밭에 숨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돌무덤을 저격 장소로 결정한건 이유가 있다.
야간 저격은 총알이 뿜어내는 불빛으로 저격수 위치가 노출된다.
그러다 보니 한 발을 쏘고 재빨리 이동해야 한다.
총알이 날아온 곳을 향해 적의 모든 화력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 해병 제1원정대가 이라크 팔루자에서 공화국 수비대와 맞섰다.
지금까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허술한 작전체계에 비춰 쉽게 점령되리라는 것이 미군 고위층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가전은 길어졌고 특히 미군병사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라크 저격수에 미해병대원 15명이 숨진 것이다.
저격수로 인해 제2원정대는 순간적으로 공황에 빠지고 말았다.
중요한 건 이라크 저격수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해병 지휘부는 저격수가 은신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5층 짜리 건물과 4층짜리 학교 간물을 포격으로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물론 이라크 저격수가 두 건물 안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단지 두 건물이 붕괴된 이후 더 이상 이라크 저격수에 대한 미군의 피해는 없었다는 것이다.
저격수는 그런 존재다.
전투기를 동원해서라도 있을만한 지역 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옥수수 밭으로 적의 공격이 집중되면 불이 붙을 것이 뻔하고 은폐효과 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해 질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돌무덤은 다르다.
웬만한 포격에도 은신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대추야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모두가 총구를 마을로 향한 채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
잠시 후 응답이 왔다.
“없다. 아무도 없다.”
“무슨 말인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짐승도 없다. 급히 떠난 흔적이 보인다.”
“여유를 갖고 다시 보고하라.”
소대장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여유를 갖고 다시 보고하라는 건 한 번 더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냥 팀 대기.”
저격수에게 내리는 지시였다.
아직 적진에 대한 상황파악이 끝나지 않고 표적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기다리라는 뜻이다.
권총수도 적진에 들어간 정찰병들이 보내온 무전을 받아 마을 상황을 알고 있지만 소대장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지시를 내림으로 강력한 통제와 철저히 명령을 따르라는 의지가 담겼다.
다른 사람들 보다 저격수 조준경의 시야가 넓고 길다.
그러므로 소대원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격수 시야에 적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저격수는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다.
적이 곧장 아군을 치고 들어올 만큼 보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일단 처리하고 보는 것이다.
“이상 없습니다.”
10분 정도 지나 정찰병들로부터 다시 무전이 왔고 맥그레인은 이동지시를 내렸다.
소대원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적이 떠난 빈자리는 매우 위험하다.
적은 결코 둥지를 평화롭게 놔두지 않고 떠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함정을 파 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름하여 부비트랩.
부비트랩은 얼마만큼 위장을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상식을 깨는 설치가 제대로 성공한다.
역사가 깊은 만큼 부비트랩의 수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소련군이 아프카니스탄을 공격 했을 때 일이다.
소련군 제20보병여단 소속 제5독립중대가 카불을 향해 진격중 한 개의 표지판을 발견했다.
‘카불 150킬로’
작전 지도를 봐도 거리는 표지판과 비슷했다.
단지 방향이 약간 의문스러웠으나 아무런 의심 없이 제5중대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진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건 무서운 함정이었다.
텔레반이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표지판 방향을 돌려 세워놨고 앗 소리 못하고 빠져들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가다 지뢰와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급조폭발물)에 걸려들어 절반 가까이가 희생되고 말았다.
부비트랩은 사람이 건드릴 만한 모든 것에 설치한다.
그러나 국제법으로 음식물, 물, 시신에 설치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반군과 IS는 수차례 법을 위반하고 미군 시신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쾅!
퍼어엉!
조용한 마을에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며 지붕이 내려앉고 대문이 날아갔다.
다행이라면 외인부대 정찰소대 답게 굉장한 인내력과 집요한 수색으로 설치된 부비트랩을 거의 찾아내 파괴했다는 것이었다.
* * *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마을 수색을 종료하고 맥그레인은 곧장 중대본부로 무전을 띄웠다.
반군지도자인 아사드 준장의 행방은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미군의 보복을 피해 모두 떠난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작전은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마을 이곳저곳에서 씰 팀 시신으로 보이는 미군들이 있었으나 로얄카드에 있는 사진의 주인공인 닉 대위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는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펄펄 끓는 더위 속에 오늘이 6일째, 아무리 특수훈련을 받은 씰 대원이라고 하지만 견딜 수 있을까”
나카야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수색은 헛수고라는 약간의 불만이 담긴 말이었다.
‘살고 싶으면 멀리가라’
교전 장소에서 멀어질수록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문제는 뛰어난 병사일수록 자신을 구해줄 구조대에게 일정한 신호를 남긴다는 것이었다.
씰 팀의 소대장 정도 되면 뭔가 남겼을 것 이라는게 맥그레인의 판단이었다.
마침내 핏자국을 찾았다.
아주 점점이 찍혔고 양이 적다.
그건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기 위해 상처부위를 단단히 동여 멨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핏자국을 남겼다는 건 부상 정도가 심하다고 봐야 한다.
실선 같은 핏자국을 따라 마을에서 2킬로 정도 벗어난 일행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맥그레인은 착잡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밀을 베어낸 황량한 밭이 끝없이 이어졌고, 밭두렁에는 가로수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었다.
“만만찮겠는데요.”
1소대 사병들중 가장 고참이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레오나르도 중사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외인부대에까지 와서도 레오나르도와 브라질 출신 오스카르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걸핏하면 으르렁 댔으며 생활관에서도 말 섞는 걸 보지 못했다.
한일전의 축구처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그야말로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소대장님!”
그때 무전이 걸려왔다.
상대는 권총수였다.
“이쪽으로 좀 와보시죠.”
권총수는 동쪽 멀리 밭둑 끝에 서 있었다.
맥그레인은 곧장 밭둑을 걸어갔다.
“뭔가?”
권총수와 오민철이 가시덤불을 가리켰다.
“여깁니다.”
맥그레인은 가시덤불 아래를 바라보았다.
“뭐가 이상한가?”
자신은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사람이 누웠던 흔적입니다. 그리고 여기 피가 묻었잖습니까.”
권총수가 가시나무 줄기 한곳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가시 끝에 피가 묻었다.
가시 끝에 묻은 약간의 붉은색.
웬만한 집중력이 아니면 절대 찾아내지 못했을 증거였다.
“닉 대위일까?”
마을에서 가시덤불까지는 3킬로 정도 떨어졌다.
3킬로면 안전하지는 않지만 추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봐도 무리는 없었다.
“피했다가 해가 뜨자 이곳에서 몸을 숨긴 모양입니다.”
권총수의 추론에 맥그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여길 나와 어디로 갔을 것 갔냐는 질문이었다.
권총수는 돌아섰다.
“저기죠.”
산봉우리 하나가 높이 솟아 있었다.
권총수는 단언하듯 말했다.
“산은 도망자가 숨는데 아주 적절한 곳이죠.”
“소대 집합!”
맥그레인이 무전기로 지시를 내렸다.
10여분 정도 지나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소대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기 산이다. 개인 간격 10미터 유지 하여 수색한다.”
대원들이 쫙 퍼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저격수인 만큼 제1총기는 M10이다.
권총은 공격이 아닌 호신무기다.
적의 제일 표적은 이쪽의 저격수이고, 모든 병력은 권총수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권총은 마지막 위험에 빠질 경우를 대비한 총기인 셈이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텔레반은 생포한 영국군 저격수를 부대원들 모두가 돌아가면서 대검으로 찔렀다.
그것도 모자라 죽은 시신 위로 트럭을 지나가도록 했을 만큼 저격수에 대한 적의와 분노는 큰 것이다.
관측수가 저격수보다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조건중 첫째는 돌파능력이다.
위험에 직면했을 때 저격수의 신변을 얼마만큼 잘 지키며 퇴로를 만드느냐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중대장 튀랑대위는 오민철이야 말로 권총수를 가장 분명하게 지킬수 있는 대원으로 점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