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8화 (38/651)

제38화: 구출작전(1)

오민철은 옛날을 떠올렸다.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지’

707시절 저격수였던 동기가 했던 말이 바야흐로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틈나는 대로 체력훈련을 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

사실 권총수는 처음 훈련 시작할 때 지나가듯 뱉었다.

“체력에 신경 써야 할거야.”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고 하여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

관측수도 반 저격수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사격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한 체력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권총수는 봐주는게 없었다.

생활관에서는 그렇게 살갑게 굴다가도 저격수가 되면 웃지도 않고 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일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훈련이 빡센 부대일수록 전장에서 생존확률이 높은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안 하면 형이나 나나 돈 못 벌고 죽어”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벌기 위해 왔잖아.”

권총수는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 * *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전장에서 비상은 곧 전선으로 투입 된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군장을 꾸려 등에 지고 불이 훤하게 켜진 벙커 회의실에 모였다.

“어!”

모두가 놀란다.

외인 7중대 다른 소대는 보이지 않고 정찰소대인 1소대만 모인 것이다.

“피곤하겠군”

오민철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의 오랜 특수부대 경험은 뭔가 닥쳐올 어떤 불길한 징후를 간파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중대장 튀랑 대위가 나타났다.

탁!

벽을 누르자 스크린처럼 전면 벽으로 커다란 지도 한 장이 내려왔다.

지도 한곳에 커다란 붉은 깃발이 있었는데 그건 이곳 보병 27여단을 가리킨다.

“새벽 01시 18분부로 외인 7중대 제1 정찰소대는 아르빌 동남쪽, 여기.”

중대장의 지시봉이 지도 한곳을 가리켰다.

소대원들의 눈이 빛난다.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곳은 모루칼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며칠 전 이라크 반군 고위 간부를 잡기 위해 이곳을 공격한 미군일부가 함정에 걸린 모양이다.”

“피해라면?”

지도 바로 앞에 있던 소대장 맥그레인 소위가 물었다.

“정보가 누설된 거지.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던 농부가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털어 버린 모양이다.”

“복장은?”

“일반인 복장이었다.”

“정확한 미군부대의 명칭은 무엇입니까?”

“씰3팀 소속의 한 소대이다.”

팟!

씰3팀 소속의 소대병력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몇 시간 안 되는 잠깐이었지만 그들과 같은 비행기를 탔고 특히 수송기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독서를 즐기고 있던 대위의 모습이 떠올랐다.

씰 3팀이라는 말에 소대원들의 안색이 변했다.

네이비 씰.

현대전에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특수부대다.

아무리 농민의 고발에 의해 정보가 샜다고 하지만 그들이 무너질 정도면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받아라!”

중대장이 트럼프 크기만한 카드 한 장씩을 주었다.

이른바 고가치 표적( High Value Target) 즉, 제거 대상인 적의 수뇌급 인물들 사진을 작전병사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로얄 카드였다.

권총수는 카드를 건네받아 살피다 깜짝 놀랐다.

수송기에서 만났던 씰 팀의 리더, 독서를 하고 있던 대위의 사진이었다.

“사망자 명단은 분명치 않으나 16명중 생존자는 극소수로 판단한다.”

“작전이 벌어진 정확한 시간이 언젭니까?”

“닷새 전이다.”

5일이 지났다는 뜻이다.

물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이런 곳에서 5일을 버틸 수 있을까.

더구나 아르빌과 모술 지역은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목줄을 노리는 총구가 사방에 널려 있다.

“사흘 전 소대장인 닉 대위의 개인 휴대전화기로 교신이 한번 들어온 뒤 아직까지는 어떤 연락도 없다.”

“왜 우리가 나서야 하죠?”

가장 원론적인 질문이 나왔다.

소대장 맥그레인의 질문에 중대장 대위가 빙긋 웃었다.

“작전지역에서 우리가 제일 가깝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해병대 제22원정 여단이 근처에 있긴 하지만 그들은 지금 모술 인근에서 IS와 치열한 교전중이다.

빼낼 수 있는 병력이 없다는 것이다.

* *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이다.

어둠이 흘러가듯 일단의 군인들이 마른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강바닥에 쌓이고 박힌 자갈과 바위로 행군이 더디고 자칫 발목을 삐끗할 수도 있지만 길이나 평지대를 따라 이동하다 적의 관측병에 걸리면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

강은 평지보다 낮다.

더욱이 좌우로 높은 둑이 있고 버드나무와 아카시아나무 등이 적의 감시를 차단시켜주는 병풍역할을 해줌으로 야간 이동에는 이 보다 더 적절한 지형도 없다.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옆이었다.

“10분간 휴식!”

소대장 맥그레인이 걸음을 세웠다.

대원들은 아카시아나무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부는 사주경계를 위해 흩어졌다.

맥그레인은 GPS를 이용해 현재의 위치를 살피더니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접힌 지도를 꺼냈다.

GPS는 대략의 지역을 찾는 데는 좋지만 세부적인 지형이나 위치를 찾는데는 지도가 필요하다.

맥그레인은 야시경을 쓰고 지도를 살폈다.

그때 고글식 야시경을 낀 권총수가 슬며시 다가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소대장 맥그레인이 모루칼이라고 쓰인 지점을 볼펜으로 가볍게 누른다.

“우리가 여기죠?”

권총수가 현재 지점을 가리킨다.

“티그리스 강까지는 9킬로를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맥그레인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는데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축적에 따라 지도가 표시하는 거리는 다르다.

작전지도는 대개 미디엄 스캐어 맵(Medium Scale Map:중축적지도)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실제 거리나 지형과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런 간극과 오차를 얼마만큼 줄이고 좁히느냐에 따라 작전 결과가 달라진다.

맥그레인이 배운 독도법 이론에 의하면 10킬로가 약간 넘는다.

그러나 권총수의 저격수 독도법을 응용하면 9킬로가 넘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둘 사이에 1킬로 차이가 존재한다.

군사작전에서 목표물 접근에서 1킬로 차이란 몰살당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죽음의 거리이다.

결정은 지휘관인 소대장 몫이다.

“휴식 끝, 이동!”

소대는 다시 움직였다.

누구도 말하는 이 없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긴장이 사라지는 대원들을 덮고 있었다.

* * *

닉 대위는 두 개의 바위가 만들어 낸 움푹한 곳에 등을 대고 앉아 어둠이 짙게 깔린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먹물을 뿌려 놓은 듯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땅.

그러나 그곳에는 죽음이 넘실대고 살육이 춤추고 있다.

방아쇠 한 번 제대로 당겨 보지 못하고 죽어가던 부하들 모습이 떠올랐다.

현장에서 11명이 죽었다.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이 현장을 빠져 나왔다.

빠져나온 네 명의 부하들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거의가 중상을 입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부하들은 무전기를 통해 작별인사를 보내왔다.

‘충성,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대위님과 함께하여 즐거웠습니다. 건강 하십시오’

마지막까지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부하들의 작별에 태어나 난생 처음 눈물을 흘렸다.

“음!”

장딴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몸을 움직이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살고 싶어 도주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적은 리더를 놓쳤다는 걸 알고 필사적으로 추격해오고 있었다.

잡으려는 자와 기어이 살아 복수하려는 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5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닉 대위는 몸을 일으켰다.

왼쪽 발은 거의 딛을 수 없기 때문에 땅바닥에 주저앉다 시피 하여 내려가야 한다.

올라가면 길이 없다.

내려가야 했다.

벌써 두 개의 봉우리를 넘었고 코 끝에 비릿한 바람이 실려 오는 것을 보면 멀지 않은 곳에 강이 흐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야간이라지만 바람에 이토록 눅눅한 습기가 실려 올 정도라면 큰 강이고 그건 티그리스일 것이다.

올리버 중사가 죽었고, 텍사스에 같은 고향을 두어 유난히 자신을 잘 따랐던 잭도 죽었다.

자신을 대신해 휴가중 플로리다에 있는 아내를 찾아가 생일을 축하해 주었던 제이콥 하사, 헨리상사, 제임스하사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살아 돌아가 공항에 내린다면 유족들이 달려와 울부짖으며 물을 것이다.

“제임스는 어떻게 죽었나요?”

“우리 헨리 죽을 때 당당했죠?”

혹시 두려워하지는 않았는지,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군인답게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죽었는지 부모들은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미합중국을 위해 군인답게 싸우다 전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의 죽음을 영광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우르르!

미끄러지듯 내려가다 보니 돌멩이가 굴러 떨어졌다.

야간 소음은 주간의 몇 배다.

닉 대위는 숨을 멈추며 어두운 전방을 노려보았다.

권총수의 의견이 맞았다.

정확히 9킬로를 걷자 티그리스강이 나온 것이다.

맥그레인의 안색이 변했다.

다행히 다른 소대원들은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만약 9킬로와 10킬로를 놓고 내기라도 했더라면 소대장 체면이고 뭐고 왕창 무너질 뻔 했다.

멕그레인은 GPS를 켰다.

화면에 파랑색 줄이 나타났는데 티그리스강 줄기다.

이어 강 오른쪽으로 붉은 선 한 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붉은 선은 도로를 가리킨다.

붉은 선의 도로 그 끝에 모루칼 마을이 있다.

일단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였다.

이미 위치가 노출 되었으니 이라크 반군 고위인물 아사드 준장은 피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상황은 유동적이다.

“전투대형으로!”

맥그레인 명령에 신속하게 2개 분대로 나눠졌다.

1분대장은 포르투갈 출신 라파엘이고 2분대장은 슬로베니아 출신 첼스키이며 둘 모두 까포랄 쉐프(Caporal-Chef:하사)이다.

“이동!”

도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1소대가, 왼쪽으로 2소대가 전진했다.

권총수는 M10 저격총을 대각선으로 메고 있었는데 적외선 조준경만 제외하고 다섯 발 들이 탄창까지 끼워 넣었다.

적외선 조준경은 워낙 예민하여 쉽게 고장이 일어난다.

이동하는 도중 나뭇가지에 잘못 휩쓸리면 기능을 상실할 수 있기에 저격 때가 아니면 거의 보관 통에 넣고 다닌다.

흘긋!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이 걷고 있다.

35킬로짜리 군장과 HK416 소총, 열영상장비, 직경 15센티가 넘는 관측경과 캣스럴(Kestrel 3000)기상측정기까지 메고도 거뜬해 보인다.

체력관리 소홀로 호된 고생을 한 이후 틈만 나면 연병장을 뛰고, 턱걸이를 하고, 20킬로짜리 타이어를 끌면서 몸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전 전성기 때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대기!”

헤드셋을 통해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척

모두가 은폐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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