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신고(2)
생활반으로 들어온 권총수는 군장을 풀고 짐을 정리했다.
차곡차곡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오늘 내내 입었던 전투복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입었다.
왁자지껄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소대원들이 M10저격총에 몰려 있었다.
그들도 영화에서만 봤지 M10 실물은 처음인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돌아가며 바닥에 엎드려 사격 자세를 취해본다.
“자세 나오냐?”
나카야마가 저격수인 양 조준경에 눈을 대었다.
“총수, 유효사거리가 몇이야?”
태국 출신의 위생병 피아퐁이 물었다.
“1,200이던가.”
“와우!”
모두가 감탄하며 놀란다.
저격 총은 흔하지 않고 또한 고가인데다 M10은 TRG버전 중 최신형이다.
“야, 쪽바리 어떠냐? 자세 나오지?”
오민철이 바닥에 폼을 잡고 엎드렸다.
그걸 본 나카야마가 빙긋 웃었다
“거리 850, 풍향 동남풍, 풍속 1.2 현재기온 25도.”
생활반 벽에 걸린 온도계를 흘깃 살핀 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민철!”
한참 폼을 잡고 있을 때 소대장 맥그레인이 들어왔다.
“예 소대장님!”
“중대장님 호출이다!”
오민철은 멈칫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는 듯 맥그레인을 쳐다봤지만 아무 말 없이 맞은편 문으로 나가 버린다.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오민철은 중대장실을 노크 했다.
“오민철 이등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들어와!”
오민철은 문을 열고 들어가 힘차게 경례를 했다.
중대장 튀랑 대위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읽던 페이지에 볼펜을 끼워 덮었다.
“앉아!”
두 사람은 작은 원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요즘 어떤가? 이곳 생활에 만족하나?”
“만족합니다.”
“다행이군. 오민철 이등병.”
“예!”
“널 오늘부터 권총수 이등병 관측수로 임명한다. 이의있나?”
“관측수.”
오민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관측수는 저격수 곁에서 완벽한 저격을 위해 모든 정보와 상황을 체크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저격수보다 군 경험이 더 많고, 여러 가지 상식에 뛰어나야 하며 적 주변 상황을 관측, 있을 수 있는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저격수에게 알려준다.
유능한 저격수 옆에는 항상 더 유능한 관측수가 있다.
“왜 대답이 없나? 싫은가?”
“아...아닙니다.”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오민철의 표정이 우그러졌다.
자신을 특별히 불렀다는 건 중대장 또한 다각도로 고민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서로 소통이 잘 되리라 믿는다.”
오민철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권총수는 세르게이와 나란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누려보는 여유였다.
흘긋!
세르게이를 보았는데 표정이 밝지 못하다.
피식!
권총수는 세르게이 표정이 밝지 못한 이유를 알고 있는 듯 실소를 지었다.
가스텔로다리 훈련소 동기들이 카옌 스나이퍼 스쿨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권총수는 적당히 어깨에 힘을 주고 설명해주었는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유독 세르게이 눈이 빛났다.
스페츠나츠는 러시아의 자랑이자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훈련을 받는 최고의 부대다.
그런 곳을 나온 세르게인데 권총수 입을 통해 들은 저격수 훈련은 스페츠나츠 보다 한 수 위였다.
세상의 모든 군인은 자기가 속한 부대의 훈련이 가장 빡세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 애기를 듣다 보면 나중에는 혼자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설혹 권총수 얘기 역시 그런 뻥의 선에 올려놓는다 해도 즉, 절반만 믿어줘도 저격수 훈련은 어마무시한 것이다.
세르게이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기다림으로 불리는 인내력 훈련이었다.
100미터를 다섯 시간 동안 이동하고, 목만 내놓고 얼음물 속에서 한 시간을 기다 린다거나, 섭씨 35도에 습도가 80프로가 넘는 지역에서 하루 종일 길리슈트를 입고 매복한다는 대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건 훈련이라기 보다는 고문이었다.
더욱이 권총수의 마지막 한마디가 더욱 가슴을 울린다.
‘저격수 스쿨에서 탈락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사격실력 때문이 아니라 ‘인내력’과 ‘체력’ 때문이다‘
“총수!”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나카야마가 건들거리며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봐.”
“왜?”
“민철의 얼굴이 안 좋아.”
“민철형이, 조금 전 중대장님에게 불려갔잖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꺼져 쪽발이 새끼야 하며 욕을 했어.”
히죽!
권총수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꽁초를 버리고 생활관으로 걸어갔다.
예상대로 오민철은 자기 침상에 걸터앉아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앞으로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며 표정을 살폈다.
‘뭐지’
명랑하다 못해 속이 비었다는 말을 듣는 오민철의 심각한 얼굴은 평소 그를 잘 아는 권총수는 물론 소대원들에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형!”
오민철이 떨군 고개를 쳐들었다.
“말 좀 해봐. 말로만 나의 동포, 우리는 같은 민족하지 말고, 행복은 독식하고 슬픔은 나누는 거라며? 형 얼굴이 지금 비탄에 빠져 있어.”
“총수야! 내 나이 이제 서른한 살, 넌 스물한 살?”
“맞아!”
“카하하!”
오민철이 양손으로 얼굴을 힘차게 쓰다듬더니 말했다.
“날 더러 너의 관측수가 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눈싸움을 하듯 바라보았다.
피식!
권총수는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진짜야?”
“중대장님이 따로 불렀다.”
중대장이면 이곳 외인7중대 모든 지휘권을 갖고 있다.
사실 부대로 복귀하면서 자신의 관측수가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하긴 했었다.
관측수는 저격수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저격수 옆에서 풍향, 풍속, 거리, 온도 등 정확한 저격을 방해할 수 있는 자연적 요소들을 엄밀하게 측정하여 가르쳐 주고, 위급시에는 적으로부터 저격수를 보호 해야한다.
“내가 니 시다바리라니.”
“형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관측수 없이는 제대로된 저격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 몰라.”
“이게 죽고 싶어서.”
오민철이 벌떡 일어나자 권총수는 다람쥐처럼 생활관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퍽하는 소리를 내며 표적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단단하게 울리는 총성, 핀란드 Sako(사코)사에서 만든 M10이 내는 소리다.
5미터 간격으로 세워진 두 개의 표적 중 오른쪽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이후 총성이 이어졌고, 두 개의 표적 모두 이마에 선명한 총알구멍 십여 개가 몰렸다.
“다음은 심장, 거리 700, 바람은 정온(calm: 풍속이 0.2m/s(1knot) 이하일 때를 가리킨다)
우거진 숲속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리슈트를 걸친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오민철은 관측경을 통해 전방 상황을 수시로 보고했고, 권총수는 M10을 거치해 놓고 조준경을 통해 전방의 표적을 보았다.
“온도 33도, 습도 13.”
투툭!
오민철의 말이 떨어지자 권총수는 왼손으로 좌우 조절나사(winding adjustment)를 몇 클립 돌렸다.
“사수 준비됐으면 저격!”
오민철은 관측경으로 표적을 바라보았다.
관측경의 배율은 저격수의 것보다 높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어 탄착점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면 곧바로 지적한다.
‘사격은 알 수 없는 세계이다. 일반 사격수는 손으로 당기지만 저격수는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퍼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대력금강심법’
저격수의 경지는 놀랍게도 대력금강신법의 가장 기초인 몰아(沒我)였다.
몸을 잊고, 마음을 버리고, 감각까지 지울 때 비로소 모든 것이 고요(靜)해진다.
고요는 곧 일어남(起)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無), 새로운 것이 만들어(有)지는 길인 것이다.
들숨과 날숨을 하나로 모아 마음에 깊이 담글 때 비로소 눈이 열린다.
‘타앙!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탁!
권총수는 노리쇠를 당겼다가 다시 전진시켰다.
“명중!”
관측경으로 표적을 살피던 오민철이 왼쪽 심장이 뚫린 표적을 발견했다.
“줘봐!”
권총수는 관측경을 넘겨받아 자신이 쏜 700미터 표적을 살폈다.
심장 한 중앙으로 뚫린 M10 7.62밀리 탄구가 분명하게 보였다.
탄흔을 확인한 권총수는 다시 조준을 시작했다.
타탕!
탕!
일정시간을 두고 총소리는 울렸고 관측경에 단 1밀리의 오차도 없이 탄흔이 나타난다.
“으으으!”
그런데 갑자기 오민철이 괴이한 신음을 흘리면서 온 몸을 벌벌 떨었다.
권총수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형 왜 그래.”
“으어거거!”
“형!”
“제발! 쉬었다 하자. 오줌보가 터질 것 같다.”
권총수의 인상이 우그러졌다.
“내가 뭐랬어. 생리현상 처리용 봉투를 지참하라고 했잖아.”
“임마 여긴 전쟁터가 아니잖아.”
“여긴 전쟁터야.”
권총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오민철은 뭐라고 한마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권총수 얼굴에서 냉기가 떠올랐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전신으로 쫙 달라붙었다.
습도가 거의 없는 33도의 땡볕 속에서 지금 다섯 시간 째 꼼짝을 않는다.
저격수의 생명이 인내력과 위장술이라고 하지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벌써 200여발의 총알을 표적에 쏟고 있었다.
이라크의 태양에 흐물거리는 길리슈트를 입고 특유의 삼각형의 작은 눈이 조준경을 향해 조용히 잠겨든다.
탕!
총성이 울리고 어금니를 깨문 오민철은 다시 관측경을 눈으로 가져갔다.
생활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분위기 메이커인 오민철의 말수가 부쩍 줄어든 것이다.
급기야 소대원들이 어디 아픈 곳 있느냐면서 물었지만 오민철은 길게 한숨만 쉴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오민철의 침묵은 계속 이어졌고 언젠가부터 두 눈이 퀭해지기 시작했다.
근육질 가득하던 몸도 왜소해지며 체중이 줄어들었다.
급기야 오민철은 쓰러졌고 의무실에 실려 가고야 말았다.
오민철은 의무실 침대에 누워 링겔을 맞고 있었다.
바짝 마른 입술, 힘없는 눈동자, 푸석푸석한 피부는 마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프리카 난민을 보는 듯 했다.
“혀엉!”
권총수가 나타났다.
오민철은 힘 없는 시선으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민철을 향해 말했다.
“많이 봐 준거야.”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떠벌이 오민철이 실어증 걸리듯 말수가 줄어들고 체중이 빠진 이유는 훈련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장시간 노출된 햇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곤욕이긴 했지만 과거 707시절에 비하면 참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권총수의 훈련 강도가 세졌다.
처음에는 사격 위주로 훈련을 하는가 싶었는데 언젠가 부터는 사격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사격장에 도착하여 훈련에 들어가면 총알 한 방 쏘지 않고 엎드려 있기만 했다.
그러더니 하루낮 밤을 꼬박 세우며 엎드려 있지를 않나, 아침을 먹고 나와 100미터 거리를 이동하는데 무려 19시간을 소비했다.
훈련 기간에는 일제 대소변은 허용이 안됐고, 일단 잠복에 들어가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라크에는 한국의 들이나 산처럼 다양하고 많은 벌레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나타나는 벌레들 상당수가 독충들이어서 한번 쏘이거나 피부에 스치면 굉장한 통증과 붓기를 가져온다.
그런 독충들에게 물리고, 뜯기고 옷 속을 들어와 온몸을 샅샅이 훑고 다녀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누가 지켜보지도 않는데도 대충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