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4화 (34/651)

제34화: 레드윙(1)

좌우 벽과 가운데 3열씩 놓여 있는 의자에 앉은 병사들은 잡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거의가 졸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사실 잡담이 적을 수밖에 없는 건 수송기 엔진소리로 인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군장들은 수송기 뒤쪽으로 쌓아 그물로 덮어 비행기가 요동을 해도 움직이지 않도록 해놨다.

권총수는 맨 뒤쪽 의자에 혼자 썰렁하니 앉아 있었는데 군장은 빈 의자에 올려놓았다.

맨 뒤에 앉아 있다 보니 병사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해외파병은 프랑스 국내 근무자보다 월급이 더 높고, 분쟁지역 근무는 위험수당이 들어가면서 더욱 세진다.

문득 이들 월급이 얼마쯤 될까 궁금해졌다.

스윽!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는데 흑인병사 한 명이 군장이 놓인 옆 의자로 다가와 앉았다.

“난 마구풀리!”

하면서 손을 내민다.

“권총수.”

척!

두 사람은 손을 뻗어 악수를 나눴다.

“재페니스? 차이니스?”

“사우스 코리아.”

“탄자니아.”

“세렝게티.”

“오 예!”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손뼉을 부딪혔다.

권총수가 가장 좋아한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먹고 먹히는 사자들의 전쟁을 보면 짜릿했다.

두 사람은 불어로 얘기를 나눴는데 마구풀리의 프랑스어 실력은 상당했다.

“총수는 어디서 오는 거야?”

지금 이 수송기에 타고 있는 병력은 전부 기아나에 주둔하고 있는 외인부대원들이다.

권총수 혼자만 소속이 다른 것이다.

“훈련 받고 자대로 돌아가는 길이야.”

“무슨 훈련?”

권총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마구풀리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빵!”

그러면서 사격자세를 취한다.

화악!

사격자세를 취한 권총수의 행동에 마구풀리는 뭔가를 직감한 듯 깜짝 놀랐다.

“스나이퍼 스쿨?”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마구풀리는 다시 한번 권총수의 위아래를 훑었다.

“아웃?”

조심스럽게 물었다.

탈락하여 부대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권총수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이것저것 마구 질문이 날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마구풀리는 올해 서른두 살이었다.

탄자니아는 모병제인데 말이 직업군인일 뿐 처우가 매우 열악했다.

아버지가 수렵 감시인으로 활동하다 밀렵꾼의 총에 다리를 맞아 들어앉으면서부터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17세가 되자마자 군에 지원하여 10년을 근무했지만 군인 월급으로 일곱 가족의 생계는 항상 위태로웠다.

그래서 제대를 한 뒤 곧장 외인부대에 뛰어들었다.

“몇 년 차?”

마구풀리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5년이라는 뜻이다.

“연장할거야?”

“당연하지.”

외인부대에 들어오면서 생활은 확 달라졌다.

집도 새로 짓고, 적지 않은 땅도 샀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기아나 현지 여성과 결혼까지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동구권을 포함해 아프리카 쪽 사람들에게 외인부대는 엘도라도임이 분명했다.

마구풀리는 장기복무를 할 것이라고 했다.

15년 근무하면 연금혜택이 주어지고 18년 이상이면 전역당시 계급 호봉의 80프로를 연금으로 받는다.

“괜찮아?”

UAE에 주둔하는 13외인여단 병력의 상당수가 지금 쿠웨이트로 이동하고 있다.

이라크 반군의 거센 테러, 이슬람국가 창설을 목표로 무서운 기세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IS, 그리고 날로 격화되어가고 있는 시리아 내전으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초비상이다.

전장에 출동하는데 괜찮냐는 질문인데 의외로 마구풀리는 싱긋 웃었다.

“군인이잖아.”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돈을 벌기 위해 외인부대에 지원했지만 그에 앞서 군인이므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따위를 두려워했다면 군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은 단순해야 한다.’

외인부대 훈련소 중대장 가브리엘 대위가 했던 말이다.

복잡하면 상관의 명령체계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다.

마구풀리의 대답이야말로 군인은 단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군인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담긴 대답이었다.

수송기가 UAE 공군기지 활주로에 착륙했다.

제3외인연대 병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어느새 각자의 군장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가장 나중에 내렸다.

권총수는 승무원인 백인 하사와 악수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행운을 빈다. 총수.”

척!

권총수는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군장을 메고 다시 대기를 했다.

USE에서 이라크 아르빌로 들어가는 길은 세 가지였다.

사우디 요르단을 거쳐 이라크로 들어가는 루트가 있고, 배를 이용해 쿠웨이트로 들어가 이라크 국경을 넘을 수도 있다.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은 항공기를 이용해 터어키로 들어간 뒤 곧장 이라크 국경을 넘는 것이다.

세 번째 코스는 아르빌이 국경에서 200여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빠르다.

하지만 이 코스 주변으로 IS는 물론 이라크 반군과 쿠르드민병대까지 쫙 깔려 있다.

결국 권총수가 선택한 코스는 첫 번째였다.

내일 아침 요르단으로 향하는 미군 수송기를 타는 것이다.

요르단에 도착하면 제27여단에서 나온 헬기를 이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권총수 이등병?”

미군 소위 한명이 다가왔다.

“예!”

“가지!”

미군 소위는 권총수를 데리고 오늘 밤을 보낼 미군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미군 다섯 명이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그들과 악수를 하며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며 웃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미군 수송기가 기지를 이륙했다.

수송기에는 권총수 혼자가 아니었다.

미군 열여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권총수에게 외인부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권총수는 있는 그대로를 얘기해 주었다.

군기는 어떠냐, 소문에 듣자면 구타가 있다는데 사실이냐, 구보를 그렇게 많이 한다는데 하루에 몇 킬로씩 뛰냐, 월급은 얼마냐 등등 질문은 끝이 없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외인부대에 대한 질문이 뜸해졌다.

궁금한 것이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16명의 미군을 자세히 살폈다.

휴대하고 있는 소총은 HK416이다.

정확한 명칭은 해클러 운트 코흐(Heckler & Koch)416이다.

HK416은 미군의 대표적 총기인 M4의 단점을 제거하여 만들어진 소총이다.

M4의 최대 단점은 노리쇠에 있다.

평균 10,000발에서 13,000발까지 단단히 버텨준다.

이후부터는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HK416은 20,000발을 거뜬히 넘긴다.

많이 쏴도 고장이 없는 것 보다 더 뛰어난 총기는 없다.

여러 가지에서 M4를 압도하여 각국 특수부대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프랑스도 2014년부터 F1의 한계를 인정하고 독일로부터 HK416 10만 정을 들여와 보급했다.

프랑스 국내가 아닌 외인부대 파병병력은 HK416을 쓴다.

그러나 카스텔노다리 훈련소에서 사용한 건 F1이었다.

‘독서라!’

권총수는 책 한 권을 펼쳐들고 있는 미군을 바라보았다.

대위 계급장이었다.

한눈에 16명의 리더로 보였는데 서른 초반 정도로 보였다.

화악!

문득 이모저모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왼쪽 팔뚝 견장은 성조기다.

그런데 오른쪽 녹색 견장에 검정색 독수리 한 마리가 삼지창을 낚아채고 있는 그림이었다.

순간 퍼득 스치는 카스텔노다리에서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2000년 이후 일어난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였는데 그중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아흐마드 샤(Ahmad Shah)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레드윙 작전(Operation Red Wing)이었다.

작전은 2005년 6월 27일에 시작되었는데 투입된 부대는 씰 190팀.

랭글리(CIA)가 아흐마드 샤의 위치를 파악하자 곧바로 정찰조가 투입되었다.

정찰조는 네 명.

이들은 MH-47 시누크(Chinook) 헬리콥터를 이용해 파키스탄 접경으로 날아갔고 무사히 아프카니스탄 작전지역에 투입했다.

비트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온통 암석으로 덮인 산에 몸을 숨길만 한 곳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여기저기 지형을 살피다 그만 아침이 되고 말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찰에 나섰는데 그만 불쑥 민간인 세 명과 만나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