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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화 (30/651)

제30화: 느리게, 아주(1)

기상과 함께 30킬로 무게의 군장을 메고 1시간 30분에 주파해야 하는 10킬로 급속 행군, 처음 15개에서 시작하던 턱걸이는 어느새 31개까지 끌어 올렸다.

수평 팔굽혀펴기는 5분에 200개를 해냈다.

수평 팔굽혀펴기는 지면으로부터 30센티 가까이 올라온 봉을 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맨땅에 손바닥을 짚고 하는 것이다.

상 하체가 완전히 수평을 이루기 때문에 힘들다.

가장 약세를 보였던 10초 안에 20미터 줄잡고 오르기도 이제는 가볍게 해냈고, 모래주머니 메고 100미터 달리기를 20초에 주파했다.

뚱뚱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나같이 홀쭉했다.

적게 빠진 사람이 5킬로였으며 많게는 13킬로까지 빠진 대원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식사가 볼품없는 것도 아니었다.

외인부대 훈련소와는 격이 다르다고 할 만큼 잘 나오고 있었다.

다른 프랑스 부대에서 온 대원들 역시 식사에는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하지만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땀으로 빼는 칼로리가 많다 보니 쓸데없는 군살들이 앞다투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한 마리 야수들이다.

눈에서는 쉴 사이 없는 광채가 번뜩였고 휴식 시간인데도 떠드는 사람이 없다.

이틀 전부터 흡연이 허가됐다.

저격수는 가급적 금연이 좋다고 했지만 강제하지는 않았다.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힘들면 말수가 줄어든다.

“가스통!”

권총수가 새카맣게 탄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가스통을 바라보았다.

“졸업할 수 있을까?”

저격수 학교는 다른 훈련기관과 달리 일정한 성적에 오르지 못하면 그냥 보낸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다.

그래서 단 한 명도 졸업을 시키지 못할 때가 흔하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뭔데?”

“너.”

“갑자기 난 왜?”

“넌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할 거야.”

피식!

권총수는 입술을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 * *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2차 대전 독일군과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배경이었다.

스나이퍼 스쿨답게 독일군과 소련군에서 활약했던 남녀 저격수를 다루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여자 군인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그녀는 말 그대로 원샷 원킬이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영화는 소련군 저격수인 그녀가 독일군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흥미 있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소련군이 발표한 그녀의 총에 죽은 독일군만 305명이다.

독일군 측에서는 200명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죽음의 숙녀’로 불리운 걸 보면 2차 대전 저격수 신화 맨 앞줄에 올려놔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은 건 305명을 죽이기 위해 304발을 쐈다는 것이다.

쏜 총알 보다 한 명이 더 죽었다는 건 어느 단계에서 한 발에 두 명을 죽였다는 말이 된다.

총알 대비 명중률 백 프로를 넘긴 환상의 실력이다.

명중률 99.588%,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2차대전사에서 지울 수 없는 기록을 남긴 바실리 자이체프보다 한 발 더 나간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저격수로서는 더 좋은 자질을 갖추었다고 한다.

차분한 데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이야말로 저격수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성보다 겁이 많다는 건 저격수 자질의 결정판이다.

겁이 많은 저격수 일수록 신중하고 차분하다,

공격적인 성향이 아닌 방어적이고 소심할수록 실패가 거의 없다.

그래서 한때 여성 저격수가 인기를 끌 때가 있었지만 어느 한순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건데 남자와 달리 적에게 붙잡혔을 때 상상을 초월한 성고문을 당한 것이다.

저격수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똘똘 뭉친 적은 생포된 저격수를 절대 편하게 죽이지 않는다.

칼로 살점을 베어내고, 내장을 꺼내 난도질하고, 트럭에 매달고 다니면서 분노를 달랜다.

하물며 여자 저격수는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짐승도 하지 못할 짓을 자행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최초로 여자 저격수를 탄생시킨 소련이 가장 앞장서 폐지했을까.

“아!”

영화를 보고 있던 권총수가 돌연 신음을 터뜨렸다.

영화는 루드밀라의 눈부신 저격 솜씨를 보여주려고 틀어준 것이 아니었다.

딱 한 장면에 집중 시켰다.

“아아!”

권총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루드밀라가 독일군 대위를 저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타겟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저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드밀라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은폐 엄폐물 하나 없는 개활지를 낮은 포복으로 이동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적의 눈에 띄어 벌집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매우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동하여 적에게 자신의 몸이 주위의 일부분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루드밀라가 이동한 거리는 150미터였는데 무려 18시간을 소비했다.

“음!”

권총수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대원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딱!

영화가 끝났다.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고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출발선과 도착선의 거리는 100미터라고 했다.

걷는다면 이백여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을 짧은 거리였다.

그런데 기괴한 숙제가 주어졌다.

출발선에서부터 도착선까지 5시간 만에 주파하라는 것이다.

‘100미터를 5시간에 걸쳐 주파하라’

교관들의 자세한 이론적 설명이 없었지만 대원들 모두 어떤 훈련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느린 접근.

저격수가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기다.

입대 전 세상에서 봤던 100미터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보는 100미터는 너무 가깝다.

누구도 선뜻 출발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렸고, 어떤 이는 실소를 지었다.

황당하다 못해 실로 어처구니 없는 훈련.

모든 것이 빨라야 한다고 가르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느림의 미학 운운한다.

“뭣들 하나. 출발하지 않을 건가?”

교관들이 버럭 소릴 지르며 출발할 것을 명령했다.

적의 관측병으로 하여금 지형지물의 한 부분으로 인식케 만들 정도면 얼마나 느리게 가야 할까.

단순히 느리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주위 지형과 지물을 잘 살핀 뒤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양으로 신체를 만들어야 했다.

모두가 6.4킬로짜리 저격총 TRG 10을 등에 메고 출발선에 엎드렸다.

다섯 시간.

주파해야 할 거리는 100미터.

느린 것보다 주위 지형과의 조화를 강조한다.

정글의 습도는 80퍼센트, 기온은 섭씨 31도였다.

“출발!”

교관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갈 수 있을까’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권총수의 눈이 골인 지점을 바라보았다.

아찔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확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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