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스나이퍼( Sniper)스쿨(school)4
잔뜩 끌어올린 대력금강심법을 이용해 단전의 내공을 양팔에 모은다.
척!
척척척!
좌우 팔을 길게 뻗어가며 몸을 끌어 올렸다.
“헐!”
“원숭이!”
지켜보던 대원들이 입을 벌린다.
마치 성큼 성큼 걸어가는 사람처럼 너무 간단하게 올라가 봉 위에 달린 종을 쳤다.
빵!
권총수는 줄을 잡고 스르르 내려왔다.
가스통은 아직 꼭대기에 닿지 못했다.
몹시 힘이 드는 듯 신음 소리까지 흘리며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발악했다.
빠방!
가까스로 종을 치고 내려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팔에 힘이 빠지다 보니 줄을 잡고 내려오다 그만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만 것이다.
다행히 스스로 일어났고 크게 다친 곳은 없는 얼굴이었다.
* * *
입교 보름째.
권총수는 길도 없는 열대 우림을 달리고 있었다.
닥!
타타탁!
휴대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도 한 장과 등 뒤에 대각선으로 메고 있는 M10이 전부였다.
독도법 훈련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자신의 위치와 목표점을 단번에 찾아갈 수 있는 헨 수신 장치도 있고, 심지어는 DGPS(Differential GPS)나 CDGPS(Carrier Differential 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하면 일반 GPS와 달리 1cm 거리까지 좁힐 수도 있다.
그런 첨단 시대에 달랑 지도 한 장 보시(布施)하듯 던져 주고 2시간 이내로 찾아오란다.
수백 년 쌓이고 쌓인 낙엽은 늪처럼 발목을 붙잡았고,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이 얼굴과 목을 스치며 벌레에 물린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심심찮게 마주치는 뱀들은 뒷골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특히 숲속의 유격병으로 불리는 렙토니스 아케톨라를 마주칠 때면 몸서리가 쳐졌다.
신경독을 지닌 뱀으로 물렸다 하면 의료시설이 없는 정글이기 때문에 생존은 불가능하다.
물리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교관들의 설명이었다.
척!
권총수의 걸음이 멈췄다.
일부러 그런 날을 택했는지 몰라도 오늘따라 구름이 끼어 태양도 볼 수가 없다.
낮에 태양이 있고 밤에 달이 있으면 길을 찾는데 훨씬 수월하다.
스윽!
작은 바위 위에 지급된 지도를 펼쳤다.
툭툭!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지도 위로 비 오듯 떨어진다.
권총수의 눈은 지도의 등고선에 고정되었다.
등고선은 높이와 지형의 곡선을 나타낸다.
A라고 쓰인 곳을 한참 노려봤다.
지도의 난외주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숙지하고 등고선을 보면서 산의 생김새를 형상화시켜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는 것이다.
사사삭!
그리고 윗도리에서 펜을 꺼내 지도에 간단한 메모를 한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류가 나타났다.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물살이 세찼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지도가 잘못해 젖기라도 하면 낭패다.
종이는 물에 불기 때문에 나중 글씨와 그림을 정확히 분별할 수 없게 되고 그건 곧 실패를 부를 수도 있었다.
지도를 적당한 크기로 접어 녹색 베레모 안에 넣었다.
길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급류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헉!”
지팡이를 버리고 다시 산을 오르려던 권총수가 소스라쳤다.
거대한 뱀이 아름드리 나무를 휘감고 혀를 날름거린다.
황색 아나콘다다.
배가 고프지 않은 듯 그다지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족히 6,7미터는 될 듯 보였다.
슬금슬금!
권총수는 아나콘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떴다.
퍽!
퍼퍼퍼퍽!
틈만 나면 뛰었다.
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거리가 멀다.
목표지점까지 알고 있다고 해도 뛰지 않고 걸어서는 절대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다.
정글 마라톤이다.
과목은 저격수로써 반드시 익혀야 할 독도법이지만 이 또한 체력단련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10킬로가 넘는 정글을, 그것도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지도 하나에 의지하여 2시간 만에 주파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권총수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지치지 않는다.
전혀 지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힘들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력금강심법’
시간이 흐를수록 온몸에 힘이 팽팽해진다.
카스텔노다리 훈련소 때와는 또 달라졌다.
이름하여 내공이 좀 더 깊어진 듯 했다.
공공선사는 힘으로 내공의 깊이를 진단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백근짜리 바위를 들어 올리면 삼십 년 정도 되는 내공이라고 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 이백근 정도 되어 보이는 바위를 건드려봤는데 허리까지는 올렸으나 머리 위로 올려 만세를 부르지는 못했다.
머리 위로 들어올려야 30년으로 인정받는다.
처억!
뛰던 걸음을 세웠다.
한 사내가 보인다.
녹색 베레모에 붉은 조끼를 걸친 사내는 독도법 교관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것이 권총수 자신이 1등으로 도착한 듯 싶었다.
“이등병 권총수 도착했습니다.”
교관은 무덤덤한 얼굴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흘깃!
손목시계를 보더니 약간 놀란 얼굴이다.
“총수!”
“예 교관님!”
“코리아?”
“맞습니다.”
교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권총수는 그가 어떤 질문을 하려고 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너의 나라는 한국인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이곳 기아나 태생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임무를 완수 할 수 있느냐.
마치 이곳 지리를 훤히 아는 사람처럼...
“쉬어도 되겠습니까?”
“좋다!”
권총수는 납작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독도법은 갈수록 교묘해졌다.
차라리 골탕을 먹이기 위해 작정한 것 같았다.
어떻게 넓은 열대 우림 속에서 그런 닮은 꼴 지형을 찾아냈는지 생김새가 비슷한 산봉우리나 계곡을 찾도록 했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저격수에게 독도법은 공격 목적보다는 후퇴 즉, 적지에 갇혔거나 포위되었을 때 탈출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권총수는 항시 동기들 보다 한발 빠르게 도착했다.
오늘 실시된 K 코스도 가장 빨리 찾아낸 훈련병은 권총수였다.
교관의 허락하에 잠시 쉬고 있는데 사방에서 훈련병들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교관은 시간 내에 도착한 훈련병들을 세기 시작했다.
“셋, 넷, 다섯!”
그러더니 어느 한순간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프랑스 제9해병여단 2연대에서 온 멕시코 이민자 멘도사까지 잘랐다.
이후 도착자는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
탈락자가 나왔다는 건 독도법 훈련이 오늘로 마무리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탈락, 또 탈락이다.
11초 차이로 들어온 프랑스 제126보병연대 출신 로울레앙이 받아줄 것을 호소했지만 교관은 시선도 주지 않았다.
지난 10일간 치열하게 반복되었던 독도법 훈련에서 7명이 날아갔다.
* * *
스나이퍼 스쿨 교육 기관은 6개월 중 절반인 3개월이 지났다.
반환점을 돌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저격총의 방아쇠를 당겨 보지 못했다.
석 달 동안 독도법, 위장, 이동, 관측, 통신 등을 배우긴 했지만 철저히 체력 증진을 바탕에 깔고 실시된다.
이틀에 한 번씩 체력 측정이 있는데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에도 쉴 수 없다.
아침 먹고 뛰고, 점심 먹고 뛰고, 저녁 먹고 뛴다.
그런데도 탈락자는 계속 발생했다.
입교할 때 39명이었는데 이제는 절반이 채 안 되는 19명이 전부다.
한 가지 놀라운 건 금방이라도 탈락할 것 같았던 가스통이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