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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8화 (28/651)

제28화: 스나이퍼( Sniper)스쿨(school)3

덥다.

이라크에서 잠깐 맛보았던 더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뜨거우면서도 끈적끈적한 공기는 단번에 인상을 쓰도록 만들었다.

이른바 후텁지근한 열대우림 특유의 날씨다.

지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전병으로 보이는 흑인이 다가와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오! 데썅 이등병 왔군.”

“예!”

“총수 타지!”

“예!”

권총수는 뒷좌석에 앉았다.

뒤고개 상사가 조수석에 선탑하고 지프는 곧 출발했다.

지프는 기아나 주도 카옌시 외곽으로 빠져 1시간가량을 달렸다.

점점 열대우림 속으로 들어갔는데 도로는 말끔히 단장되었고 어디선가 찍찍하는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녀석들 또 시작이군. 지금 들리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아나? 총수?”

“모릅니다.”

“이 지역에서만 사는 빨간 얼굴 원숭이지. 저길 봐라.”

뒤고개 상사는 차창 밖을 가리켰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노란색 털이 온몸을 뒤덮은 빨간 낯빛의 원숭이 무리가 차량 속도에 맞춰 나무 위를 달리고 있었다.

“자네를 환영하는 걸세. 어서 오게 친구 반갑군. 하면서 말이야.”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면서도 권총수는 시선을 빛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유난히 시뻘건 얼굴이 특이했다.

원숭이들은 차와 경주라도 하듯 나무를 타고 달리며 괴성을 질러댔는데 진짜로 자신을 환영하는 듯 보였다.

커다란 군부대가 나타났다.

지프는 바리케이트 앞에서 속도를 떨어뜨렸고 파머스를 든 무장 군인이 다가왔다.

전투복 상의에 폭발하는 수류탄 모양과 3REI란 글씨가 쓰인 패치를 달고 있다.

기아나에 파견 근무중인 제3외인 보병연대의 마크이다.

군인은 뒤고개 상사임을 확인하고 오른손을 뻗어 통과하라는 손동작을 했다.

척!

지프는 거수경례하는 군인을 지나 부대안으로 들어섰다.

‘카옌( Cayenne) 스나이퍼(sniper) 스쿨(School)’

이라는 글씨가 육중한 돌기둥에 각인되어 있었다.

꿀꺽!

권총수는 침을 삼켰다.

* * *

모두 39명이다.

그들 역시 프랑스 육해공 각군과 외인부대에서 저격수 후보들로 선발되어왔다고 했다.

13명씩 3개 소대 단위로 배정을 받았다.

교장은 까피탄(Capitaine:대위)이였는데 에르난데스라는 이름을 가진 노랑머리의 백인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첫날부터 비상이었다.

완전히 골아 떨어졌는데 귓가로 비상이라는 싸이렌 소리가 울렸다.

시쳇말로 분위기 적응 시간도 주지 않았다.

후다닥!

권총수는 번개처럼 일어나 전투복을 입고 연병장으로 달렸다.

“그만 여기까지.”

교관들이 나와 인원을 자르더니, 늦게 도착한 대원들은 이른바 선착순을 시켰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가장 일찍 도착한 권총수를 비롯한 13명이었다.

그들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위대한 프랑스군의 정신 즉, 전우애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이유로 어깨동무를 한 채 오리걸음을 시켰다.

훈련소나 이곳이나 잘해도 문제고 못해도 문제인 것은 분명했다.

군대는 어딜 가도 똑같다는 오민철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단순한 비상 훈련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형태의 기합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후텁지근한 날씨에 땅바닥을 구르다 보니 이제 막 진흙탕에서 나온 사람처럼 온몸은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체력은.”

교관의 외침에 일제히 따라 외친다.

“체력은.”

“생존이다.”

“생존이다.”

권총수는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합이 아니라 모든 것이 체력단련 목적으로 맞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카스텔노다리 훈련소와 다를 바 없이 이곳 역시 눈을 뜨고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끝없이 강조되고 반복되는 것은 바로 체력이었다.

체력은 곧 승리라는 공식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기상과 함께 30킬로의 군장을 메고 10킬로를 뛴다.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체력훈련에 들어가는데 턱걸이, 2000미터 달리기, 팔굽혀 펴기, 20킬로 모래주머니 메고 100미터 왕복하기, 20미터 높이의 줄잡고 오르기, 1킬로 전투수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카스텔노다리 훈련소와 차이점은 강도였다.

흔히 하는 말로 카스텔노다리 훈련소는 여기에 비하면 흥겨운 생활체육이었다.

이유도 없고, 뭐라고 혼내지도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뛰고, 달리고, 매달리고, 박는다.

더욱 힘든 건 모든 과정에 항상 무게 6.1kg짜리 저격소총 TRG M10을 몸에 메고 다닌다는 것이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몸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

3.6킬로짜리 파마스도 구보를 하다 보면 굉장한 부담이고 덜어내고 싶은 무게인데 두 배 가까운 총은 대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훈련 닷새째.

“준비!”

줄 잡고 오르기에 두 대원이 양쪽에 섰다.

훈련소 줄 잡고 오르기 높이는 5미터였다.

그러나 이곳은 네 배인 20미터이다.

발을 이용해 밧줄을 S자로 비튼다던가 무릎 사이에 끼우는 동작은 안 된다.

오로지 팔 힘으로만 올라가야 했다.

10초 이내에 올라가 끝에 있는 벨을 손으로 치면 된다.

20미터를 두 발로 달리는 일이라면 10초는 매우 넉넉한 시간이지만 두 팔만을 이용해 20미터 높이의 줄을 올라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삐익!

교관의 휘슬이 울렸다.

파파파팍!

두 명의 대원이 미친 듯이 줄을 잡고 올라갔다.

누가 더 앞섰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팽팽했는데 7미터 정도 오르자 조금씩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관은 손에 쥐고 있는 초시계를 흘긋 한번 보았다.

빵!

빵!

약 1초 간격으로 왼쪽 줄을 잡은 대원이 벨을 먼저 터치했다.

그러나 내려온 두 사람에게는 교관의 매정한 명령이 떨어졌다.

“팔굽혀펴기 일천 회를 실시한다.”

“예, 알겠습니다.”

두 대원은 한쪽으로 벗어나 엎드려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권총수가 일어섰다.

같이 줄을 오르게 된 대원은 프랑스 제94 보병연대에서 온 가스통이었다.

같은 1소대인데 가스통은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의 난민이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프랑스로 건너왔고 불법 체류자 신세로 쫓고 쫓기는 청소년기를 보내다 가까스로 프랑스 영주권을 얻었다.

그러나 배운 것도 없고 어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프리카 난민 출신이 살기에 프랑스는 또 하나의 사막이었다.

결국 가장 빠른 길이 모병제인 프랑스 군에 자원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자신의 결정에 매우 만족한다며 웃었다.

자기 월급으로 아버지와 두 동생을 충분히 건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흘긋 교관 몰래 가스통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잘해보자는 사인이었는데 가스통이 어색하게 웃는다.

한편 가스통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친구였다.

대원들 모두 고된 훈련으로 눕자마자 곯아떨어진다.

무리한 근골 사용으로 온몸이 욱신거려 상당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끙끙 앓는다.

단 한 사람, 세상모르고 질펀하게 자는 이가 있는데 바로 권총수였다.

지금 상황도 그러했다.

자신은 어떤 감정도 없다.

이른바 무 생각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몰아치는 체력 훈련에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숨을 쉬기 때문에 살아 있을 뿐 인간이 가져야 할 오욕칠정이 사라진 기계 같은 존재다.

교관은 주인이고 대원들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애완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이곳 훈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데 동료라고 같은 소대원이라며 잘해보자는 격려를 한다.

가스통은 다른 소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자기 눈에는 제정신을 갖추고 있는 소대원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나치 강제노동 수용소에 끌려 들어온 유태인 포로들이다.

고된 훈련에 거의 넋이 나간 얼굴들이었다.

권총수 말고는 누구의 얼굴에도 생기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혼자만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삑!

교관이 휘슬을 불자 권총수는 가볍게 점프하여 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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