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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화 (27/651)

제27화: 스나이퍼( Sniper)스쿨(school)2

권총수는 텅 빈 커피잔을 들어 마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긴장을 숨길 수 없을 때 나타내는 행동이다.

“편히 앉아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권총수가 상체를 약간 낮췄다.

팔랑!

요리스 소령은 다시 한번 권총수의 훈련소 기록을 살폈다.

“튀랑 대위도 흔쾌히 우리의 제의를 수락했다”

요리스 소령은 서류를 보며 말했는데 여기서 우리라는 건 프랑스 27보병 여단을 의미한다.

튀랑 대위는 당연히 27여단에 배속된 제7외인중대장이다.

여단이라는 상급 부대에서 외인부대 제7중대장에게 어떤 것을 제의 했을까.

제의와 명령은 다르다.

아무리 수직적 관계인 군대라고 하지만 소속 부대에서 누군가를 어떤 특정목적에 의해 차출할 때면 당사자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이해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단 내 저격수가 고작 둘 뿐이다. 특히 특수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외인 중대의 작전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격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단장님을 비롯한 사령부의 판단이다.”

오민철의 얼굴이 눈앞으로 스쳐갔다.

‘저격수는 골로 가는 보직이야 임마. 707훈련은 저격수 훈련에 비하면 방위다.’

‘방위는 또 뭡니까?’

‘됐고, 너 내 말 명심해. 이 형이 같은 동포로써 마음을 담아 하는 말이다. 저격수 하라고 하면 싫다고 해.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본인이 거부하면 잠시 고민 하거든, 알았지. 다른 건 다 해도 저격수는 죽어도 싫다고 하란 말이야. 필사즉생, 빡세게 눈에 힘을 주고 차라리 날 죽이십시오 하는 비장미를 풍기란 말이야.’

오민철은 수송기에서 신신당부를 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낯선 상사계급의 군인이 들어섰다.

척!

상사는 요리스 소령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일찍 왔군요. 뒤고개 상사.”

마흔 초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상사 뒤고개, 그는 누구인가.

뒤고개는 권총수를 위 아래로 훑었는데 눈살을 찌푸린다.

“이 친구입니까?”

“마음에 안 드나요?”

“서류 좀 보겠습니다.”

“보세요.”

뒤고개 상사가 권총수의 훈련소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류는 모두 7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매우 꼼꼼하게 살폈다.

“실력은 좋은데.”

“체격 조건이 불만족스럽다?”

“어떻게 제 마음을?”

뒤고개 상사가 씨익 웃었다.

“177센티미터면 동양인 체구치고는 그다지 왜소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데려가겠습니다.”

“권총수 이등병!”

요리스 소령이 불렀다.

“예! 행정관님!”

“뒤고개 상사를 따라간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보면 알게 된다.”

결국 권총수는 짐도 풀어보지 못하고 뒤고개 상사를 따라나섰다.

또 비행기다.

이번에는 탑승자가 달랑 자신과 뒤고개 상사 둘 뿐이었다.

뒤고개 상사는 권총수의 훈련소 기록을 보고 또 보았다.

“권총수 이등병.”

“예 상사님!”

권총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어딜 가는지 궁금하지 않나?”

“많이 궁금합니다.”

“기아나라고 들어봤나?”

“브라질과 붙어 있는 작은 나라 말입니까.”

지도 찾기 실력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나라가 아닌 프랑스 영토다. 알겠지만 그곳에는 제3외인 보병연대가 있다.”

“훈련소에서 들었습니다.”

“어떻게 들었나?”

그곳에 대한 권총수의 평가가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개고생 한다고 들었습니다.”

훈련소 교관들의 말을 빌리면 기아나는 외인부대 해외파병지 중 가장 혹독하여 외인부대의 유배지로 불린다고 했다.

덥고 습한 날씨와, 풍토병, 무자비한 정글 속 훈련은 적지 않은 탈영병까지 만들고 있었다.

“개고생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분명한 건 매우 불편한 곳이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진짜 지옥이 있다.”

“압니다.”

“안다고?”

뒤고개 상사의 눈이 커졌다.

“카옌 스나이퍼 스쿨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알고 있었나?”

뒤고개 상사의 눈이 커졌다.

“인간세상의 지옥이라고 들었습니다.”

뒤고개 상사는 빙긋 웃었다.

“지옥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고생스러운 곳이긴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할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제가 지금 저격수 훈련을 받으러 가는 겁니까?”

권총수는 약간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싫은가?”

네, 하고 대답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군인은 솔직해야 한다.”

빙그르르!

권총수의 눈알이 한 바퀴 돌았다.

뒤고개는 자신을 보고 있었는데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려 있다.

인생 20년.

남들은 풋내기, 귓불에 물기도 마르지 않는 놈, 어휴 이 새싹 하며 우습게 볼지 모른다.

그러나 스무 살 처먹고 나만큼 나름 인생 풍파 겪어 본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 칠 자신은 있다.

이미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는 건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습니다.”

“하하하!”

뒤고개 상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오민철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행정관 요리스 소령으로부터 권총수가 조금 전 떠났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행정관님.”

아무리 군대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자기 나라에서는 피가 섞여야 형제지만 외국에서는 같은 동포가 형제라고 했는데 나에게 귀띔 한 마디 없이 보낼 수 있습니까.

군인이라고 하지만 그 자식 나이 이제 스물한 살입니다.

아직은 내 보살핌이 필요할 녀석인데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 정 하나 나눌 기회조차 주지 않고 보내다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꿀꺽!

군대다.

군대는 세상의 감정과 이성이 흐르는 곳이 아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민철!”

“예 행정관님!”

“섭섭한가?”

“아닙니다.”

섭섭하지만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그럼 가보도록!”

척!

힘차게 거수경례를 한 오민철은 행정관 사무실을 나왔다.

생활관으로 돌아오자 동기들 시선이 모아졌다.

“민철, 어떻게 됐어?”

“왜 총수는 오지 않는 거야?”

벌컥벌컥!

오민철은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비웠다.

“프랑스 군대도 좆같네. 우리 막내 떠났단다.”

“어딜, 설마 진짜 저격수 스쿨로?”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우리 총수 불쌍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

오민철은 침대 매트리스 위로 벌렁 누워 버렸다.

4개월이란 시간은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서로의 가슴에 깊이 꽂아 넣었다.

이른바 전우애라고 해도 좋았고, 그냥 같이 부대끼며 땀 흘리다 보니 미운정 고운정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었다.

어리다는 건 동양이든 서양이든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해 낼 거야.”

“그래, 총수는 보통 녀석이 아니잖아.”

“물론이지!”

여기저기서 자기 최면을 걸듯 권총수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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