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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화 (25/651)

제25화: 매복(2)

멀지않은 곳에 IS(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하고 막대한 유전까지 장악했다고 들었다.

모르간 상사를 따라가는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과거 비행기 주기장으로 썼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 앞에 한 대의 장갑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VBCI(Véhicule Blindé de Combat D'infanterie)였다.

세 명의 승무원 포함 최대 12명까지 태울 수 있는 병력 수송 장갑차로 이미 훈련소에서 몇 번 타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VBCI는 M811 25밀리 기관포와 AAT52 7.62mm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모르간이 장갑차 안에서 묵직한 탄통을 꺼내오더니 뚜껑을 열었다.

탄통에는 F1소총 25발들이 탄창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받아, 한 개는 장전하고 다른 하나는 탄창 집에 보관한다.”

총은 휴대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빈총이었다.

실탄 지급은 이제는 표적이 아닌 사람을 향해 쏘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제대로 장전되었는지 확인한다.”

“이상무!”

“이상 없습니다.”

“조정간 안전에 놓고 주목.”

장탄한 대원들을 둘러보며 모르간이 말했다.

“이라크는 전시국가다. 미국과의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곳곳에 친 후세인을 따르는 군대, 민병대, 일부 현역 군인들, 그리고 여기서 가까운 모술에는 스스로를 이슬람국가라 칭하는 IS가 있다.”

꿀꺽!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스페츠나츠 출신의 세르게이도 삼바의 정예 오스카르, 그리고 히말라야 눈 사나이이 비렌드라 역시 일체 말이 없다.

훈련과 실전은 공기부터 다르다는 훈련소 교관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교통수단으로 이라크에 들어왔나?”

“수송기입니다.”

“그렇다. 적은 하늘 높이 비행기가 나타나면 오늘도 침략자들이 왔음을 알고 길목에 숨는다.”

비행기를 보고 병력도착을 알아차린 뒤 길목에 숨어 있다가 전쟁 초보들을 공격한다는 뜻이었다.

“적지 않은 선배들이 그렇게 매복에 걸려 소속 부대의 문턱을 밟지도 못하고 떠났다.”

긴장이 또 한 차례 일행을 훑고 지나갔다.

“모두 행운을 빈다 탑승!”

모르간의 명령이 떨어졌다.

일행은 장갑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12명까지 태울 수 있다고 했지만 비좁다.

반듯하게 서로 마주보며 앉기보다는 몸을 대각선으로 만들어 겹치듯 앉아가야 할 정도였다.

“어떻게 덩치도 큰 놈들인데 우리 K200보다 작아.”

오민철이 투덜거렸다.

부으응!

수송기 소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았고 골이 지끈거린다.

권총수는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과 달리 가장 느긋하고 즐겁고, 한편으로는 행복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죽을 놈은 죽는다.

살 놈은 트럭에 부딪혀도 가벼운 타박상 정도만 입는다는 것이 권총수의 생사에 대한 지론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판돈이 클수록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전쟁터가 허가된 살인구역이긴 하지만 돈벌이가 쏠쏠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흐흐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어금니를 물고 있다.

외인부대에서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먹었지 전쟁터에서 벌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맞은 편 오민철은 그나마 조금 달랐다.

장갑차 연구원이나 되는 듯 붙어있는 여러 가지 장비와 기구들을 만지고 확인해보고 있었다.

‘정말 피곤한 형이야’

권총수는 눈을 감았다.

장갑차의 흔들림이 심한 것이 비포장도로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덥다.

에어컨이 설치되었다고는 하지만 땀이 흘러내렸다.

권총수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전투복 소매로 닦았다.

콰아앙!

바로 그때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장갑차가 흔들거렸다.

두두두두!

이어 곧장 콩을 볶는 것 같은 총소리가 들렸다.

장갑차에 탑재된 AT52 기관총 소리다.

“적이다. 즉시 산개하라.”

덜컹!

세르게이가 재빨리 장갑차 문을 열었고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허연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는 강바닥이었다.

강을 가로지르다 습격을 받은 것이다.

굵은 바위와 자갈들이 널려 있었고 곳곳에 아카시아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자기 몸의 두 배 정도 될 것 같은 바위에 엎드려 200여미터 떨어진 상류 잡목 숲을 바라보았다.

장갑차의 기관총과 25밀리 포는 그곳을 향해 집중 쏟아지고 있었다.

드륵!

드르르르!

적의 응사도 만만치 않았다.

소리가 AK다.

터지는 소리만큼이나 양쪽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딱!

누군가 자동으로 놓고 갈기다 어느새 탄알이 바닥 난 듯 빈 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계산해가면서 쏴야지 임마.”

오민철이 옆에 있는 나카야마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빌려줘.”

“전쟁터에서 총알을 빌려달라니 어이가 없네.”

오민철은 갖고 있던 25발들이 탄창을 뽑아 던져 주었다.

“야 이 섬놈 새끼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봐가면서 땡기란 말이야.”

오민철은 걸핏하면 나카야마를 섬놈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나카야마의 성격이 능청스러워 그냥 웃고 넘어간다.

“막스!”

그때 모르간 상사의 외침이 울렸다.

권총수는 흘긋 고개를 돌려 장갑차 쪽을 바라보았는데 조종수 막스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맞은 모양이다.

모르간 상사가 재빨리 장갑차로 뛰어올라 엎어진 막스를 끌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 자신이 기관총을 잡고 갈기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려 눈에 집중했다.

우거진 잡목들 사이로 사람들이 보인다.

얼룩무늬 차림도 있고, 평상복 차림에 터번을 두른 사내도 있었다.

예측한 대로 사내들 손에는 AK가 들려 있었다.

적들은 곧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관총이 무차별 갈겨지고 권총수 일행의 집요한 응사에 밀린 모양새였다.

타앙!

권총수의 총구에서 첫발이 나갔다.

한 사내의 머리가 뒤로 꺾이면서 피가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이 똑똑히 보인다.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다시 총구를 움직였다.

아무리 살펴도 더 이상 적의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때 기관총 소리가 멎었다.

장갑차에서 뛰어내린 모르간이 쌍안경으로 잡목 숲을 살폈다.

“앞으로!”

모르간 상사의 지휘 아래 잡목 숲을 향해 다가갔다.

숲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나뭇가지가 꺾이고 총탄에 부서진 바위들이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시쳅니다!”

서쪽을 수색하던 세르게이가 소리쳤다.

권총수는 재빨리 다가갔다.

민간인 복장의 시신 한 구가 있었는데 머리 윗부분이 날아가 버렸다.

권총수는 자신이 쏜 사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라크 군 같지는 않고?”

오민철이 적의 정체를 물었다.

모르간은 주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다.

“이라크에는 우릴 싫어하는 적들이 워낙 많다.”

특정 집단만 총을 겨누는 것이 아니어서 복장을 보고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적은 RPG-32로 장갑차를 노렸다.

RPG-32 화기에 대해서는 이미 훈련소에서 배웠다.

105밀리와 72밀리 두 가지 구경이 있는데 지금 발사된 건 105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장갑차 10여 미터 앞 바위를 때렸고 그 덕분에 산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조종수 막스가 사망했다.

장갑차 역시 포탄 유폭에 엔진이 멎어 버렸다.

장갑차는 말이 장갑이지 탱크와 달리 외부 공격에 약하다.

전차와 맞먹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수송용은 전장의 택시라는 별명처럼 보병을 작전지까지 무사히 태워다 주는 것이 주 임무다.

기관총 정도는 막지만 그 이상의 강력한 공격에는 무너진다.

그건 만약 RPG-32에 맞았다면 모두 몰살당했을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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