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방아쇠(2)
카스텔노다리 훈련소에서 다시 오바뉴에 있는 외인부대 본부로 돌아왔다.
여기서 이제 각자 전입부대를 명령받고 떠날 것이다.
임시 생활관 벽에 걸린 달력이 2016년 2월15일을 나타내고 있었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해 정확히 4개월의 훈련을 마친 것이다.
54명에서 30명으로 줄어든 동기들 중 누가 탈락을 했는지, 다음 기수로 밀려났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시간은 빨랐다.
4개월 교육을 받았을 뿐인데 전혀 새로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과감히 비행기를 탄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유병칠과 투덜거리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피식!
갑자기 메마른 미소가 흘러나왔다.
“집중!”
그때 까포랄(Caporal:병장)계급의 흑인 사내가 수첩을 들고 들어섰다.
“호명자는 보급품 백을 메고 나오도록. 세르게이!”
“예!”
세르게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을 갖고 나오란 말이야.”
“예!”
세르게이가 자기 물건이 담긴 군장을 메고 다가가 섰다.
“오스카르.”
“예!”
그 역시 재빨리 세르게이 뒤에 섰다.
“나카야마.”
“예!”
“비렌드라!”
“예!!”
“그리고 권총수.”
권총수는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나오라고.”
“예!”
권총수 역시 지급받은 물품을 담은 백을 메고 걸어 나갔다.
“따라와!”
권총수는 궁금한 표정으로 병장 계급의 흑인을 따라갔다.
외인부대는 자신의 병과를 당사자의 의견에 최대한 맡긴다.
자신이 가고 싶은 부대를 말하면 큰 문제 없다고 판단되면 거의 보내주는 것이다.
흑인 병장은 일행을 중대장실로 데려갔다.
가브리엘 중대장이 안쪽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 장방형의 흰색 탁자가 놓였다.
“어!”
권총수가 놀라는 소릴 했는데 오민철을 포함해 낯익은 동기 다섯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앉아!”
일행은 의자를 뒤로 꺼내 앉았다.
가브리엘은 서류를 쥐고 한참을 살피더니 고개를 들었다.
“너희 열 명에게 무척 이해를 구하고 싶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외인부대는 개인의 판단과 생각을 존중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명령으로 병과를 지정하기도 한다.”
권총수는 자신들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갈 곳이 정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가브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스르르!
그러자 천장으로부터 거대한 지도 한 장이 천천히 내려왔다.
모두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지도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유일하게 권총수만이 눈을 빛냈다.
공부는 하기 싫고, 그래서 자주 또래 아이들과 보육원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놓고 나라 찾기 게임을 자주 했다.
그래서 나름 누구보다도 지도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중동이다’
한눈에 페르시아만이 있고 좌우로 이란과 사우디가 보인다.
페르시아만 깊숙이 들어가면 쿠웨이트가 있으며 그 뒤로 이라크가 버티고 있다.
“어딘지 알겠나?”
아무도 대답이 없다.
권총수가 힘차게 말했다.
“중동 아닙니까?”
“빙고, 정확하다. 맞다. 여긴 영원한 지구상의 화약고라는 중동이다.”
중동이라는 말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는데 오민철이었다.
‘아크(Akh)부대!’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라는 뜻이다.
UAE 왕세자가 자국의 군사훈련 지원과 협력 방안 등을 요청해 왔고, 2011년1월 특전사 1진이 파견되었다.
바로 이때 707특공대 일원으로 아랍에미레이트 파병을 갔었다.
비록 전투가 아닌 UAE군 훈련지도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사막이라는 특수지형에 대한 적응 훈련이 대부분이었지만 굉장히 힘들었다.
걸핏하면 불어오는 모래폭풍과 간간이 날아오는 테러집단으로부터의 공격, 물론 인명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완전한 실전이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자고 일어나면 시리아 내전과 IS의 공격으로 수백 명이 죽었다는 알자지라 방송의 뉴스였다.
검은 복면의 IS대원들이 서방 기자들과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참수하는 장면을 밥먹듯 보아왔고,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격렬한 전쟁,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화학무기의 잔혹함을 두 눈으로 보았다.
반군지역에 거주하는 시리아 국민 수백 명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동공이 수축되면서 입에서는 비누 거품을 물고 발버둥 치다 숨져갔다.
직접 방아쇠를 당겨 인명을 살상해보지는 않았지만 24시간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역임에는 분명했다.
“지금 이 지역 상황이 아주 복잡하다. 항상 반 전쟁 상태였지만 지금은 최악이다.”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직감적으로 전쟁터로 급파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현재 프랑스는 이곳에 제6 경기갑 여단과 제27보병여단 제11공수여단이 들어가 있다. 너희는 프랑스군 제27보병여단으로 배속될 것이다.”
“이등병 나카야마 질문 있습니다.”
외인부대에 일본인은 적지 않았다.
이번 기수만 해도 나카야마를 포함해 일본인 다섯이 지원해 한 명 탈락하고 네 명이 합격했다.
그들 모두 자위대 출신들이다.
“하도록!”
“배속이라 하면 외인부대 소속은 유지한다는 뜻입니까?”
“물론이다. 한 번 외인부대는 영원히 외인부대이다. 전쟁이나 해외파병이라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프랑스 군대는 승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돕고 결속하게 되어있다.”
가브리엘은 침묵하고 있는 다른 대원들을 훑어보았다.
“질문 있는 사람 없나? 민철.”
“네 중대장님!”
“할 말 없나? 내가 알기로는 한국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부대가 UAE에 파병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건 너도 그쪽 출신이니 혹시 파병 경험 있냐는 질문이었다.
“있습니다.”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
“8개월입니다.”
“가보니 어떻던가?”
“적과 교전은 없었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지대였습니다.”
“잘됐군. 궁금한 건 민철에게 물어보면 되겠어.”
그러면서 가브리엘 대위가 방을 나가려 하자 오민철이 벌떡 손을 들고 물었다.
“밖에 나가 담배 한 개비 피워도 되겠습니까?”
“좋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래가 채워진 직사각형으로 된 커다란 재떨이를 앞에 놓고 일행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람들은 오민철을 향해 중동의 상황을 다그치듯 물었다.
전쟁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전쟁이 무서웠다면 지구촌 어느 부대보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외인부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을 하는 동료들의 눈이 커져 있었다.
그건 약간의 흥분과 전쟁이라는 호기심이었다.
오민철은 특유의 허풍과 사실을 적당히 버무려 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중동이라는 곳이 엘도라도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처럼 그럴싸하게 각색했다.
“총수 넌 궁금한 것 없냐. 형이 다 말해 줄 테니까 물어봐.”
권총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권총수 머릿속은 월급 계산으로 정신이 없었다.
외인부대 처우규정에 보면 해외 파병, 그중에서 분쟁지역으로 파병이 될 경우 여러 가지 수당이 붙는다.
분쟁지역도 A, B, C 등급으로 나뉜다.
A등급은 전쟁지역이다.
B는 정치적 종교적 차이로 유혈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으로 대체적으로 중동이다.
C 지역은 해외파병이다.
지금 가게 될 중동이면 B등급인데 이등병 기본급 1300유로와 최대 월급의 2배에서 3배 가까운 여러 가지 위험수당이 붙는다.
최소 500은 넘게 받는다는 얘기다.
꿀꺽!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지금 이뤄지고 있었다.
훈련 끝나자마자 전쟁지역으로 보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이왕지사 돈 벌러 왔기 때문에 수당이 많이 붙는 위험지역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2공수연대와 3연대의 월급이 많은 건 해외주둔부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쪽으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더 위험수당이 많이 붙는 분쟁지역으로 간다는 말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너무 좋아 미치겠는데 눈치 없는 오민철은 자신이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벌써 쫄면 어떡해, 아이구 우리 총수 어쩌냐.”
권총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한 달에 우리 돈 500 잡고, 그중 절반을 쓰고 절반을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허걱.’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계산대로 이뤄진다면 일 년에 3000만원을 모을 수가 있었다.
과거에는 적지 않은 장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직접 사야 했지만 지금의 외인부대는 전투복은 물론 각종 피복과 군장류를 지급 받는다.
단지 자기 취향에 맞춰 개인적으로 케리어나 사제 컴뱃 티셔츠 등을 사서 입는 건 허락된다.
‘10년이면 3억’
꿀꺽!
이번에는 목젖이 심하게 요동할 만큼 마른 침을 삼켰다.
10년 후라고 해봤자 한국 나이로 31살 밖에 되지 않는다.
“집합!”
입까지 벌리고 한참 돈 계산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