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화 (20/651)

제20화: 닥치고 공격(1)

소대 선두에서 지휘하던 세르게이가 머리에 쓰고 있던 소대 지휘용 무전 헤드셋을 통해 입을 열었다.

“왜 그러나?”

무전을 보내온 사람은 첨병 권총수였다.

“지뢰지대야.”

“뭐?”

세르게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소대원들 눈이 빛난다.

“집결지 떠난 지 1시간 만에 지뢰지대가 나와.”

전술행군 훈련은 시간과도 싸움이었다.

A,B,C 코스 거리는 똑같다.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매복과 장애물의 위치만 다를 뿐 모든 과정은 동일하다.

그렇지만 첫 장애물이 지뢰지대라는 것에 세르게이 얼굴에 짜증이 배인 이유는 과거 스페츠나츠에서 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군대는 사기다.

사기로 살고 사기에 죽는다.

처음부터 편한 장애물이면 가볍게 헤치고 나가면서 대원들이 자신감을 갖는다.

자신감은 피로를 지연시키고 사기를 끌어올려 예상을 뛰어넘는 이동속도를 보여주지만 처음부터 힘들고 복잡한 훈련 관문을 맞이하게 되면 한껏 타오르던 기세가 꺾인다.

“젠장!”

권총수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한 세르게이와 대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마인(MINE)’

이라는 팻말이 나무에 붙어 있었다.

진짜 지뢰는 아니다.

훈련용인데 건드리면 푸시시 하며 흰색 연기가 나온다.

근처에 설치된 센서가 뿜어 나오는 연기를 체크하고 곧장 지휘부 컴퓨터로 입력된다.

실전에서는 우회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훈련에는 반드시 탐지 제거하고 통과해야 한다.

지뢰 탐지 법을 배웠지만 모두가 나설 수는 없다.

가장 실력이 좋은 대원 한두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머지는 뒤를 따르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탐지.”

권총수가 군장을 맨 채 옆구리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좋아”

세르게이 또한 대검을 뽑아 들고 지뢰지대로 들어섰다.

지뢰는 통상 5미터에서 8미터 간격으로 매설한다.

일상적으로 지뢰지대를 통과할 때 지뢰를 밟을 확률은 30프로 정도이다.

확률만 놓고 보면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걸리면 죽는 지뢰라는 것을 감안하면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더구나 영화와 달리 지뢰는 밟으면 무조건 터진다.

밟고 있으면 발을 떼기 전에는 안 터지는 현상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뚝!

권총수의 대검이 멈췄다.

“하나!”

파랑색 원통이 땅속에 묻혀 있고 위로 세 개의 수직 신관이 드러났다.

흔한 M16대인지뢰 모형이다.

조심스럽게 파낸 지뢰를 그 위에 올려놓으면 끝난다.

지뢰매설은 적의 이동을 막을 목적이 크기 때문에 주로 종(縱)방향으로 길게 깐다.

그러므로 지뢰지대를 간파하고 우회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의 이동을 붙잡아 놓는다는 건 아군으로서는 굉장한 소득이며 기회이다.

“둘!”

이번에는 세르게이가 한 개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탐지해 나갔다.

“통과!”

30미터쯤 나가자‘END’란 팻말이 나타났다.

“이동!”

세르게이가 곧장 일어나 소대를 지휘하며 손목시계를 봤다.

새벽 2시 30분이다.

휴대용 랜턴을 이용해 작전지도를 살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5분 단축’

훈련과목은 전술행군이지만 궁극적인 건 이 과목 또한 체력측정에 가깝다.

모든 군대는 강한 체력을 최우선의 목표를 삼는다.

19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새벽 소련 제40군은 아프카니스탄 접경 테르메즈 인근의 아무다르야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인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의 대통령 아민은 황급히 특수부대인‘요할라’부대를 대통령궁으로 불러들였다.

자신의 경호를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마침 요할라 부대는 산악 훈련 중이었고 부대장은 즉시 출발하면 이틀 내로 대통령궁에 도착할 것이라며 대통령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24일 침공한 소련군 최정예부터 스페츠나츠가 성탄절을 기해 대통령궁으로 들이닥쳤고 아민은 사살되고 말았다.

요할라 부대 사령관도 스페츠나츠의 기동이 그토록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트럭을 타고 왔다고 우겼고, 헬기로 수도 카불 외곽까지 이동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그들은 철저히 걸어 도착한 것이다.

빠른 기동력은 오로지 체력이 좌우한다.

외인부대 전술 행군 훈련 역시 깊이 들여다보면 체력훈련에 최종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체력이 기본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분야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이라크 전에서 미 해병대 소속의 타이푼이라는 저격수는 단 한 발을 위해 무려 29시간을 엎드려 있었다는 고백을 했었다.

군인에게 체력은 시작이고 전부인 것이다.

멈칫!

지뢰지대 이후 큰 난관 없이 행군하던 일행이 멈췄다.

‘Battle Obstacle(전투 장애물 지역)’

경사가 완만한 넓은 구릉지대였다.

“1분대 공격 앞으로!”

세르게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권총수를 포함한 4명의 대원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20여 미터를 달려간 1분대는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려 포복으로 첫 장애물인 철조망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사사삭!

이미 수많은 포복 훈련으로 팔꿈치와 무릎이 까져 본 경험이 있었지만 여전히 힘든 구간이다.

철조망 구간이 나타나자 모두 등에 지고 있던 군장을 내려 양쪽 발목에 어깨끈을 걸었다.

총을 가슴 앞으로 모은 뒤 물고기처럼 상체를 움직여 가는데 발목에 걸린 군장무게로 인해 더욱 헉헉 거렸다.

가까스로 철조망 지대를 통과한 뒤 다시 군장을 등에 지고 이번에는 물이 고인 작은 계곡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통나무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50킬로의 군장 무게로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누구도 아래 계곡의 웅덩이로 빠지는 사람은 없었다.

두두두두!

갑자기 예광탄이 섞인 기관총 사격이 시작되었다.

개활지 통과구역이다.

대원들을 맞출 리는 없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모두가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죽음 힘을 다해 달린다.

30여미터 구간의 개활지를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펑 하며 흰색의 연기가 피어 올랐다.

퍼퍼펑!

순식간에 근처를 덮어버리는 흰색연기는 CS탄(최루탄)이다.

재빨리 메고 있던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진짜 최루탄이기 때문에 방독면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곤욕을 치를 수가 있었다.

탕!

타탕!

연기 속으로 적(표적)이 나타났다.

방독면을 쓰고 사격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다.

외인부대 뿐만 아니라 각국 군 훈련과정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사격의 가치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고생한 만큼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대세였다.

방독면 하나로는 적의 화학공격을 피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보호의까지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방독면에 보호의까지 착용한 상태에서의 전투력이란 급속히 낮아질 건 자명했다.

특히 방독면 무용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적이 화생방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쪽으로 하여금 화생방 보호 장비를 착용토록 강제하여 전투력 저하를 유도할 목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방독면과 보호의, 그리고 보호 장갑, 보호덧신까지 착용하고 전투를 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전에서 화학전이 일어날 확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 이라크 전쟁에서 신경 가스탄이 사용되었고 시리아 내전에서는 여러 차례 화학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유엔보고서가 있었다.

하지만 훈련은 훈련이다.

방독면을 쓴 채 최루탄 너머에 있는 표적을 향해 매섭게 총알이 날아갔다.

드르르륵!

“공격 앞으로!”

1분대장 오스카르의 지시에 일제히 총을 쏘며 화생방 지역을 벗어났다.

150킬로 구간에 어떤 장애물과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조건 완전하고 빠른 시간에 통과할수록 좋은 점수가 나온다.

어둠 속에서 여러 모양을 한 크고 작은 장애물이 나타났다.

엄폐물을 이용한 기동 사격 구간이다.

탕!

타탕!

권총수는 납작한 바위 뒤에 엎드려 십여 발을 쏜 뒤 번개처럼 일어나 오른쪽으로 2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커다란 전나무 뒤로 숨었다.

적외선 조준경 속으로 표적 한 개가 슬쩍 나타났다.

탕!

명중이다.

탕!

타타탕!

연이어 벌떡 일어선 두 개의 표적이 거의 동시에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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