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화 (19/651)

제19화: 파라다이스(2)

쉴 틈이 없다.

아예 쉴 틈을 주지 않고 훈련은 강행되었다.

강추위 속에서 침투와 습격, 도피 및 탈출 훈련이 살벌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아군과 저항군으로 나눠 돌아가며 훈련이 이어졌는데 여기서도 권총수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특히 저항군이 지키고 있는 적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가상의 침투 훈련에서는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걸음.

그건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하고 놀라우며 이해가 되지 않는 걸음이었다.

풀숲인데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먹잇감 가까이 접근하는 표범 같았다.

가브리엘 대위는 교관 앙드레로부터 보고를 받고 피식 웃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같이 훈련을 받는 훈련병들의 얘깁니다.”

가브리엘 대위는 껌을 한 개 꺼내 입안에 구겨 넣었다.

그건 일반적 상식에 반하는 말도 되지 않는 얘기였다.

물론 자신도 이미 권총수가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건 직접 확인하고 기록된 점수를 통해 알고 있다.

“사람이 마음에 들다보면 조금 오버를 하지.”

앙드레의 칭찬이 과하다는 뜻이었다.

“가서 보시죠.”

앙드레가 직접 한번 보라고 했다.

권총수가 펼치고 있는 건 일반적인 사람의 걸음이 아닌 불영보(佛影步)였다.

공공선사가 시키는 대로, 설명한 대로 내공을 일으켜 양발로 옮겼을 뿐이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해봤는데 갈수록 발소리가 작아졌고, 더욱 놀라운 건 속도였다.

분명히 똑같이 걷는데 빠르다.

“믿어지지가 않는군.”

산악훈련 종료를 앞두고 실시된 종합 평가와 테스트가 있는 날 가브리엘 대위는 훈련병이 되어 같이 참여했다.

모든 훈련과정의 마지막 수업은 교관과 지휘관들이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권총수는 중대장이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걸 알 리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를 좀 더 분명하게 살필 수 있었는데 앙드레의 보고는 전혀 더하거나 넘치지 않았다.

정말로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고양이도 아니고’

정찰조로 가장 선두에 선 권총수의 움직임은 신출귀몰했다.

무장 저항군과 불과 30미터 거리까지 다가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큰 관문이 남았다.

닷새 동안 150킬로를 이동하면서 직제별 전투를 포함한 여러 가지 비상 상황이 주어지고 훈련병들의 대처 능력을 테스트하는 장거리 전술행군이다.

백여 발씩 주어진 실탄을 사격하면서 실전처럼 이루어지는데 체력, 시가지 전투, 그리고 장거리 행군 과정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나온다.

말이 없다.

마지막 고개다.

훈련병들 얼굴에 긴장이 넘친다.

지금까지 피똥을 싸면서 석 달을 넘게 고생했는데 마지막 관문을 넘기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할 일이었다.

군장 무게만 해도 50여 킬로에 육박하고 3.5킬로짜리 F1소총에 든 일백 발의 총알 무게는 앞길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훈련은 고되고, 전투는 쉽게 하라고 했다.

그건 곧 전투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훈련이 고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싸아앙!”

엄청난 외침이 어두운 훈련소 밤을 갈라놓았다.

생활관의 불이 켜졌고 훈련병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당장 모든 대원들은 완전군장 하여 연병장에 집합한다. 반복한다. 모든 대원들은 10분 이내로 장거리 전술 행군 복장을 갖추고 즉시 연병장에 모일 것, 이상.”

스피커를 통해 차가운 명령이 쏟아졌다.

후다닥!

모두가 옷을 갈아입고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확실히 빠르다.

그동안 수십 차례 야간 전투 기동 비상이 걸렸지만 오늘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1소대와 2소대 모두 열외 인원 한 명도 없이 집합 한 것이다.

그만큼 군인으로서 분명히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교관들 역시 완전군장이었다.

전술행군 훈련은 그들도 똑같이 짊어지고 움직인다.

사열대에 가브리엘 대위가 나타났다.

“지금 이 시간부터 5일 동안 전술 행군이 실시된다. 날이 춥고 훈련 기간 중 폭설 예보가 있으나 우리는 자랑스런 외인부대원이다.”

불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말은 있고 듣는 사람도 있었다.

“군가 준비”

“아아악!”

힘차게 외치며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군가는 외인부대가 하나 둘 셋 넷”

‘우리는 지원병들 외인부대 사나이

우리는 명예와 충성, 충성이다

진군하자 외인부대여 진흙과 불타는 사막으로

차가운 마음과 튼튼한 심장으로 진군하자

통킹(베트남)에서는 불멸의 외인부대가

투엔 쾅에서는 멈추지 않은 돌격으로

죽자

죽자

비바람을 물리치고 진군하자

프랑스 최고의 병사들이여.

입소인원 54명에서 7주째 되던 날 39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전술행군 훈련에 투입된 인원은 32명인데 그사이 7명이 또 돌아갔다.

전술상 인원은 적지만 3개 소대로 편성됐다.

과연 150킬로 전술행군 훈련이 끝나면 또 몇 명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1소대부터 출발!”

가브리엘의 명령이 떨어졌다.

소대 깃발을 든 기수를 선두로 일행은 피레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유럽 남서부, 프랑스와 스페인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거대한 산맥 속으로 권총수는 사라졌다.

전술행군에서 제일 중요한 집결지에 도착했다.

피레네 산맥 북부능선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해서 3시간이 지난 새벽 4시였다.

집결지에 모인 뒤 본격적으로 소대별 작전 지시와 코스가 전달되었다.

사사삭!

1소대 통신병인 자위대 출신 나카야마가 날아오는 무전 내용을 수첩에 기록했다.

작전지시는 암호로 내려온다.

반복 지시가 내려온 듯 자신이 기록한 내용을 재차 확인한 나카야마는 수첩에 있는 해독 페이지를 펼쳐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1소대원 10명 전원이 나카야마를 에워싼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무슨 내용이야?”

다른 소대는 이미 출발하고 보이지 않는다.

1소대 훈련소대장 세르게이가 묻는다.

“B코스.”

재빨리 세르게이가 작전지도를 펼쳤다.

피레네 산맥이 자세히 나와 있는 지도에는 빨간 줄 세 개가 있었다.

그리고 쓰인 A, B, C 라는 글씨.

세르게이는 B자를 가리켰다.

“우리가 여기야. 봤지? 전술 행군 대형으로 출발!”

권총수는 재빨리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전술행군 훈련에서 권총수가 맡은 임무는 첨병(advance guard point)이었다.

첨병은 본대 대형보다 훨씬 먼 장거리지역을 살피고 수색하는 정찰과 달리 전투 행군 시 선두에서 적정을 파악하고 보고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세르게이가 군대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권총수에게 막중한 첨병 임무를 맡긴 것은 갈수록 교묘해지는 그의 능력들 때문이었다.

처음 권총수를 만난 건 마르세이유에서 오바뉴로 가는 시외버스였다.

물론 같은 버스를 탔지만 당시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기에 눈빛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13주째 접어든 지금의 권총수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밝은 성품에 동기들과 잘 조화를 이룬다.

항상 자신만만해서 좋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권총수가 어려워졌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같은 말을 했다.

‘이상하다니까. 묘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굳이 표현한다면 권위였다.

어쨌든 넘치는 체력, 백미터 달리기 선수를 방불케 하는 스피드, 거기에 야간 침투 및 습격 훈련에서 보여준 소리 없는 걸음 즉, 불영보는 권총수에게 첨병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대력금강심법을 끌어 올리자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이지만 어느 정도 앞이 보인다.

가파른 산길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50킬로 짜리 군장을 매고 40도는 될 것 같은 경사 길을 오르는데 숨이 고르다.

‘내공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아직도 확실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공공선사가 설명하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선천진기(先天眞氣)와 수련을 통해 얻는 후천진기(後天之氣)를 단련하여 이뤄낸 기운의 결정이라고 했다.

그걸 내공, 또는 내력이라고 부르는데 꾸준히 수련하면 힘이 계속 높아지고 어느 경지에 이르면 손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바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두들겨 부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땡초 졸라 거품 문다고 비아냥 거렸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틈틈이 수련했더니 내공이라는 것이 단전에 생겼고 지금 50킬로의 군장을 지고 암석 투성이인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자신이 증명하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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